■ 34世 이현직(李顯稷)
[성 명] 이현직(李顯稷)[
[생몰년] 1797년(정조 21)∼1876(고종 13)
[본 관] 경주(慶州)
[자·호] 백형(伯衡)
[시 대] 조선 후기
[성 격] 무신(武臣)
[세계도]
이현직(李顯稷) 선생은 33世 광암공 이벽(曠庵公 李蘗/세례명: 요한세자)의 백부에게로 양자 입적했다.
17世 국당공 천(蒨)→18世 문정공 경중(敬中)→21世진사공타(佗)→23世 감정공 거(筥)→26世 지퇴당공
→27世 찰방공 이숙(李潚)→28世 묵암공 경상(慶相)→32世 동추공 부만(溥萬)→33世 격(格)→34世 계자 현직(顯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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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백형(伯衡), 호(號)는 오산(梧山)으로, 양부(養父)는 1769년(영조 45) 무과에 올라 총관(摠管)을 지낸 이격(李格, 1748~1812)이고 양모는 안동김씨(安東金氏, 1748~1820)이다.
생부(生父)는 이욱「李稶, 1763(영조 39)~1807(순조 7)」이고 생모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공(公)은 1823년(순조 23)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1829년(순조 29) 12월 25일 고성현령(固城縣令)에 제수되고. 1830년(순조 30) 2월에 부임하여 1831년 08월에 중죄인이 옥에서 달아 난 일로 파직되었다.
그리고 1875년 6월 그곳 읍인들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行 縣令 李顯稷 善政碑)
또한 1846년(헌종 12)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와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1854년(철종 5) 삼도수군통제사( 三道水軍統制使)· 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총융사(摠戎使)가 되었고, 이듬해 어영대장(御營大將)과 공조판서(工曹判書)로 있으면서 경복궁 중건을 감독하였다.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난 뒤 전국에 암행어사(暗行御史)를 보내 주로 변방 방비를 사찰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통제사들의 죄가 드러나 중신인 그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水軍節度使)에 특별히 임명하였다.
그러나 1869년(고종 6) 호포전(戶布錢)을 걷기 위하여 작성한 호적에 향리들의 부정이 있어 일어난 고성민란으로 파직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刑曹判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를 거쳤고, 신미양요(辛未洋擾)가 거의 끝나갈 때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에 임명되었다.
경복궁 신무문(神武門)의 현판이 선생의 글씨이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金甌錄 ◇武陞資錄
첫댓글 묵암(默菴) 이경상(李慶相, 1603~1647)이다. 이경상은 경주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 자손으로 형 이격(李格)은 종이품 어영대장을 지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경상은 오늘 말하려는 광암(曠菴) 이벽(李檗, 1754~1785)의 6대조.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