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杜牧, 정원 19년(803년)~대중 6년(852년))은 중국 당나라 후기, 즉 만당(晩唐)의 시인이다.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지금의 산시성 시안시) 사람으로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이다.
'樊川'의 한자는
樊 (번): '울타리'를 뜻합니다.
川 (천): '내', 즉 시냇물이나 강을 뜻합니다.
'樊川(번천)'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두목(杜牧)의 호(號)로 잘 알려져 있으며, 중국 섬서성(陕西省)西安(시안)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지역의 옛 지명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한나라 장군 '번쾌(樊噲)'의 식읍이었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통전(通典)》의 저자로 유명한 대학자 두우(杜佑)의 손자로, 마찬가지로 당나라 후기의 시인으로 꼽히는 두순학은 그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
중당(中唐) 시대의 시인 두보와 작풍이 비슷하며, 노두(老杜) 두보와 구별하기 위해 소두(小杜)라고도 부르며, 동시대의 시인 이상은과 함께 「만당(晩唐)의 이두(李杜)」로 통칭된다.
■ 당나라 시기 구분 (당시)
초당(初唐): 초기(7세기)
성당(盛唐): 번성기, 시의 황금기 (8세기 중반)
중당(中唐): 중기, 사회 비판적 시, 개인적 감정 심화 (8세기 후반~9세기 초)
만당(晩唐): 후기, 애상적이고 섬세한 시 (9세기 중반 ~ 907년 멸망)
'만당(晩唐)'과 '중당(中唐)'의 특징 (문학적 의미)
중당(中唐)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서정시, 한유(韓愈)의 산문 등 사회 현실을 담은 시가 발달.
만당(晩唐) 시인: 이상은(李商隱), 두목(杜牧) 등 감상적이고 섬세한 시, 덧없는 인생을 노래.
만당(晩唐) 시기 당시(唐詩)의 섬세하고 기교적인 풍조에 비해 평이하면서도 호방한 시를 지었다. 그의 시는 풍류를 즐기기 위한 풍류시와 과거의 역사를 노래한 영사(詠史), 시사 풍자에 뛰어날 뿐 아니라 요염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럼에도 강건한 면을 모두 갖추어 때때로 리얼리즘을 떠나서 인상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강남(江南)의 풍경을 그림처럼 표현한 〈강남춘〉(江南春)이 유명하며, 양주에서 풍류재자(風流才子)로서 지내덜 시절의 모습을 그린 〈견회〉(遣懷)는 현실을 벗어난 가상적이라는 시풍(詩風)을 반영하고 있다.
제오강정(題烏江亭)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捲土重來未可知
승패란 병가(兵家)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
수치를 안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게 사나이라
강동(江東)의 자제에 숨은 인재가 많으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돌아올지도 몰랐을지라
강남춘(江南春)
千里鴬啼緑映紅
水村山郭酒旗風
南朝四百八十寺
多少樓臺烟雨中
천지에 꾀꼬리 소리, 푸르고 붉은 꽃들이 서로 비추고
강마을 산어귀에 술집 깃발 펄럭이는데
남조(南朝) 때의 480개 절이
다소 누대가 안개비 속에 잠겼구나
부(賦)로는 23세 때 정치에 대한 정의감을 불태우며 지었던 〈아방궁부〉(阿房宮賦)가 유명하다.
당 후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인기도가 높지만, 성당(盛唐)을 중시하여 중당(中唐)・만당(晩唐)의 시를 비판했던 명의 고문사파(古文辭派)의 문학관이 반영된 《당시선》(唐詩選)에는 두목의 시가 한 수도 실려 있지 않다.
당나라(唐, 618년 ~ 907년), 두우(杜佑)가 쓴 통전(通典)은 고구려의 강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전(通典)』권 제185, 변방1, 동이 하, 고구려
基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東西六千里).”
“그 땅은 후한 시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