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8월 <시문학> 신인상 심사기
우주적 상상력과 시각의 전환, 사이버 세계 속의 공간인식, 현대의 구조와 생명의식
신인상 응모작품을 대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은 기대감에 설렌다. 그 시간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상투적인 시의 틀을 벗어난 젊은 상상력의 언어와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고와 언어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심사위원들의 눈이 머무는 곳은 새로운 감각의 언어와 시의 구조다. 이런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무언의 눈길로 인정하고 공감을 나눈 이강하의 우주적 상상력, 김예진의 사이버 세계 속의 공간인식, 이영선의 현대적 구조 속에서 드러내는 생명의식에 박수를 보내며 아깝게 당선권에서 밀려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강하의 시편들은 시의 구조와 발상이 파격적이고 신선하다. 「천문학자」에서는 ‘천문학자가 허블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순간 그는 타오르는 우리의 내부를 본다.’, ‘우리가 별똥별을 볼 때 사실 우주의 공간에서 불타고 있는 행성은 우리 자신이다.’이라는 우주적 상상과시각의 전환이 새로움의 원천이 되고 있다.「결벽증과 비누」에서는 ‘비누는 허공 중에 내 디딘 한 발을 더 반복할 수 없는/가장 깨끗한 절벽이다’이라는 상상의 논리가 창조적인 시적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옥탑방의 노을」에서는 언어의 긴장감과 함께 ‘뭉크의 누이’ ‘몽고의 백만 기병’ 등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의 공간이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강하의 발랄한 시적 상상력과 논리의 비약은 시속에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김예진의 「사이버 동네」는 인터넷 시대의 사이버 공간을 여러 개의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그 공간을 방문하며 친근하게 사는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촉하고 있다. 이런 사이버 세계 속의 공간 인식은 사이버 공간에서 현대인들은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는 부정적 태도보다 시적 공간의 확대와 새로운 활력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파업선고」는 한 가정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구조를 객관적 시각에서 사회적 언어로 담아낸 것이 흥미롭다.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타인의 집」은 밤과 새벽이라는 공간 속에서 펼치는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의미보다는 이미지 자체에 중심을 두는 시로 읽힌다. 이미지의 선명성이 부족한 것이 지적되었으나 개성의 분출이라는 시적 가능성이 기대를 걸게 한다.
이영선의「야채가 방치되다」는 현대인의 생활구조 속에서 제기되는 생명의식이 충격을 준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갇힌 채 방치된 야채의 악취와 부패가 단순한 사실적 이미지의 공간을 넘어서 현대의 경쟁사회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책가방을 짊어진 채 아파트 계단만 올랐다’라는 소외된 아이들의 문제에까지 연상의 확대를 보여주어서 시인의 시적능력에 주목하게 된다. 「각도기」는 ‘도시의 조각난 거리를 다초점으로 응시’하는 시인의 시각이 신선하게 감지된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꿈을 재생시키는 에너지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된다.「콩나물」은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콩나물과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수인을 병치하여 전개하는 시의 구도가 어머니라는 모성 속에서 통일성을 형성한다. 시인은 사회적 발언을 정제된 시적 이미지를 통해서 하고 있다. 내적의식에서 벗어나서 독자들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라는 시적기능의 확대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아깝게 선외로 밀려난 응모 작품 중 손정아의 「어항을 씻는다」외 12편은 시적 감수성과 맑은 언어가 매력적이었으나 대상을 대하는 시각이 단조로운 것이 지적되었다. 최함이의 「밤의 연고」외 9편의 풍자적인 언어는 긍정적으로 인식되었지만 격조 있는 시의 이미지가 형성되지 못한 점이 흠이 되었다. 백수자의 「실패를 풀다」외10편은 시적 형상화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현대적 감각의 언어와 사유가 부족한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점 보강하여 재응모하기를 바라는 것이 심사위원의 공통된 의견이었음을 부기 한다.
심사위원: 문덕수 신규호 심상운(글) 양병호
신인 우수 작품상 (시)
이 강 하
천문학자
우리는 별이다.
아니다 별이 되어 간다.
아니다 별처럼 빛난다.
아니다 우리는 불탄다.
아주 몇몇만 자기가 별인 줄 알고 산다. 우리가 별똥별을 볼 때 사실 우주의 공간에서 불타고 있는 행성은 우리 자신이다. 별똥별의 눈동자에 한 획을 그으며 타오르는 불, 그 불은 우리 자신이다. 별똥별은 억광년의 거리에서 스스로 불타면서, 불타면서 전속력으로 우주의 공간을 횡단하는 우리를 목격한다. 천문학자가 허블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순간 그는 타오르는 우리의 내부를 본다.
별의 소실점에서 역으로 우리를 불덩어리로 쳐다보는 별
우리는 거리와 시간의 편견에 사로잡힌 지구별에서 노숙자나 대통령이나 영웅이나 고아로 기껏 용써봤자 재벌이나 왕의 아들로 태어난다. 결국 소금 벽돌을 등에 진 낙타처럼 땅 속에 운명을 묻는다. 그러나 억광년의 거리 바깥에서 우리를 보며 소원을 비는 별똥별의 시시한 운명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운행이 거꾸로 된 허블 망원경의 렌즈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줄긋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별이다.
아니다 불탄다.
결벽증과 비누
먼지를 의심하는 환자들은 희망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
완벽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의심 속에서 사랑하고
자신에게 올 사랑을 위해서
그 닦아 놓은 청결한 빈자리를 다시 닦는다
불멸의 먼지는 매번 그들에게 증상을 반복할 희망을 준다
진짜 희망이 없는 환자들은 먼지가 아니라
먼지를 닦는 비누를 의심한다
구두약과 왁스와 스스로는 씻을 수 없는 왕의 범죄 같은
걸레는 씻어지면서도 걸레이고
비누에 낀 먼지는 왕의 자결처럼 비누의 살점과 함께 사라진다
불멸의 먼지는 완벽한 비누가 닦아 내지만
완벽한 비누를 의심하면 첫사랑의 편지가 불타는 것처럼
신경증 환자가 의지할 신경이 따로 없는 것처럼
자기 머리 위에 세워진 신전을 자기가 불태워야 한다
완벽한 살인을 다시 한 번 의심 속에서 살인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 사냥감을 위해
스스로가 사냥감이 되어야 하는 비누의 운명
그 때 살해되는 것은 세계의 모든 청결과 사랑이 아닌가!
비누를 의심하는 순간, 비누와 함께
미끌미끌한 살점을 하수구에 놓치는 방법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비누는 허공 중에 내 디딘 한 발을 더 반복할 수 없는
가장 깨끗한 절벽이다
옥탑방의 노을
삐라와 빨치산처럼 수상한 뜬소문들이
저무는 하루의 하늘가에 파다하다
저수지의 뚝방에서는 105, 106, 107번의 구타
우리가 서로의 상처가 되는 구타의 시간에
기차가 비명을 지르며 터널에 잠긴다
뭉크의 누이가 흔들의자에서 흔들리는 시간
몽고의 백만 기마병들이 서쪽을 향하여 진군을 계속하고
계속하는 동안 구름 위의 흔들의자가 흔들렸을까,
구름의 심장에 그어진 일격의 칼부림
그을린 놋그릇 같은 하늘에 은빛 스크래치를 내며
조난 신호를 보내는 비행기 한 대 잠겨가고, 그 때
매한가지의 심정으로 가슴을 쥐어짜며 대답하는
허수아비의 목이 쉬어버린 침묵이란
이윽고 이 처참한 하루의 피로를 짊어지고 있는
노을 속의 거인들이 불의 채찍을 휘두르면
나는 거인이 씹다 버린 껌마냥 구겨진 채
옥탑방의 낡은 의자로 던져질 것이다
신인 우수 작품상 (시)
김 예 진
사이버 동네
난로불이 나를 향하고 있어요
내가 움직이면 조용히 따라다니기도 해요
유자차가 있고 커피도 진열되어 있고요
한쪽 벽에는 시계와 달력이 의무적으로 걸려 있어요
째깍째깍 시간은 세월을 잘도 넘기구요
빙그르르 의자는 나를 태워 노트북 안으로 데리고가요
그 동네서 역시 나는 잘 놀고 있어요 내가 자주 즐겨 찾는 집들이 있는데요 지금 그 문들 따고 들어가요 그런대로 잘 꾸며진 정원을 거쳐 이집 저집 차례대로 드나들며 눈인사를 해요 거기는 교육자도 살고 예술가도 살고 운동가도 살고 있어요 전부 다 환영을 하네요 교양 있게 나를 반겨요 그중에 거칠고 짧은 말투도 있지만 난 모두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요 바로 옆 동네는 말꼬리를 물고 삿대질하며 피터지게 싸우고 있네요 참 꼴 볼견이에요 말릴 생각도 없지만 못 본 척 지나치는 나는 더 대단해요 나는 듣고 싶은 말만 들어요 묻고 싶은 말만 물어요 눈 감고 귀 막고 그냥 세계여행을 떠나버려요 미주를 돌아 구라파를 거쳐 바로크풍의 성당에서 미사를 올려요 서서히 이국정서에 빠져 들어요 때 마침 친구한테 문자가 오면 막 자랑질해요
시간을 핑계로
동남아 여행은 다음에 가기로 결정 내렸어요
그런대로 괜찮은 오후였어요
정말 무모하게 돌아다녔나 봐요
슬슬 배가 고파와요
좀 이따 저녁 밥하러 가면 되고요
파업선고
당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신은 뭐든지 열심이다 비릿한 바다를 잡아 올리는 일, 남새밭을 뽑아 데치는 일, 기름진 재주와 고소한 묘기를 손끝으로 야무지게 휘어잡는 일, 날마다 지지고 볶는 일에 능숙한 당신의 권력이 푸짐하게 부풀고 있다 알게 모르게 당신의 기념일 몇 주년을 기억해내어 사랑의 크기를 재고 무게를 다는 일, 그런 재미로 사는 당신은 지루할 새가 없겠다 당신의 축제일을 건너뛰기라도 하면 여측 없이 협상테이블로 불려나간다 원칙에도 없는 조건을 제시하며 얄팍한 시위를 벌이는 당신은 의기양양이다 안팎으로 군중을 이끄는 당신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 원만한 타협이 없는 앞치마가 기세등등한 명분을 차려놓고 파업을 주도하는 권력이 되었다
까탈 부리는 권력이 당신의 족보가 되었다
타인의 집
바람이 허용되는 시간
찬란한 접시가 내려앉은 푸짐한 밤
사방으로 날개를 펼치며
한밤을 대낮같이 구부려 쓰는 유전자
하늘의 뚜껑을 열면 별이 등장하고
달 속에서
그림자 뛰어나와 등불 밑에서 접촉을 한다
그들이 모여서 주로 하는 일은
조명이 와글거리는
저녁을 밤새도록 헐어놓고
적당한 농담이 어울리는
밤의 화첩을 뒤적거리다
기껏해야 안개비나 만나고
곤경에 처한 가로등이나 만나고
여럿이 엉겨 붙은 반 시체더미를 만나는 일이다
이처럼 밤의 영혼을 거두고 다니다
새벽을 수거해가는 리어카에
냄새나는 밤을 봉투째 실어 보내면
미끄러져가는 아스팔트에 밤차의 불빛도 죽어간다
모든 전율이 가라앉은
첫새벽의 동작은 피로해 보였고
종잡을 수 없는
이마위에 그믐달이 비뚜름히 앉아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계바늘이 몸져누웠다
신인 우수 작품상 (시)
이 영 선
야채가 방치되다
주둥이가 꽉 비틀린 검은 봉지 속
세상 한 켠 숨 가쁜 비닐에 갇힌 야채들이 썩어 문드러졌다
며칠째 방치된 어린 잎사귀들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눈. 코. 입들이 진물되어 흘렀다
푸른 혈관들이 차 오른 악취에 발버둥치면서 뇌수가 터졌다
손에 들린 비닐 봉지
옆구리로 들어온 햇살이 온 몸을 출렁거린다
등교길에 세워진 바리케이드에 아이들이 걸렸다
샤프심같은 눈빛에 찔려 피멍으로 얼룩진 얼굴을 가리고
말라 비틀어진 책가방을 짊어진 채 아파트 계단만 올랐다
소외된 시간으로 뒤집힌 낮과 밤을
산산조각 탈골된 제 모습으로 낙서하며 휘청, 고층 난간에서 중심을 잃었다
CCTV조차 외면한 아파트 건물 뒤에
하얀 국화 꽃잎이 흐물거리는 얼굴을 덮어쓰고 염을 했다
여린 살갗을 벗겨내는 팔월의 태양이 꿈틀거린다
스치로폼 박스 안의 푸른 야채가 얼음속에 뿌리 숨기고 있다
햇빛을 투과하지 못하는 비닐 속의 야채들
백골 부서지는 소리로 창문을 흔든다
검은 그림자에게 끌려 다니는 계절이다
각도기
도시의 조각난 거리를 다초점으로 응시한다
각을 세운 골목마다 내려앉은 어둠이
참선의 포물선을 긋는다
일상의 눈금을 지나오던 회전문
직선으로 뻗은 기둥에 매달려
빗금으로 채워진
저녁을 닫아걸었다
삶의 굴절이 시작된 높이에서
시간에 끼여 귀가하지 못한 꿈
지축이 흔들리는 다각형의 가파른 절벽을 올랐다
이중 잣대에 중심을 잃은 수평이 기운다
트랙을 활주한 시간들이 릴레이하며 뒹군다
망원 렌즈에 빨려든 우주의 눈금들
0에서 시작하는 사선의 좌표를 손에 쥐고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지름길을 찾아 굴곡진 각도를 좁힌다
수직과 수평이 하나로 만나는
최선의 구도를 잡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히며 꺾어야했다
각을 잡으며 횡단하는 천체의 재생모드
달빛에 교차되는 밤하늘을 분해하다
새벽을 다시 조립한다
보름달이 경사진 언덕의 아파트를 넘어가고 있다
콩나물
고무신이 끌고 다닌 복도 끝
녹색 페인트로 갱생 되어진 교도소의 철문이 열린다
콘크리트 벽에 눌린 계절의 암실에서
매일 자라나는 들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검은 헝겊으로 두 눈을 가린 어둠이 하늘을 조여왔다
엽록이 춤추는 숲을 뛰어다니며
아스파라긴산 웃음을 틔워내던 유년기는 잊었다
여름 장마에 젖은 꽃들이 황달진 얼굴을 밀실에 감추었다
비린내를 풍기는 습지
폭우 쏟아지는 불면의 밤을 물받이로 받아내며
손목에 감긴 수갑을 풀어내던 날
옷을 갈아 입으면서 중년의 발아를 기도했다
패륜 자식을 둔 어미의 씻김굿에 타작되어 껍질을 벗을 수 있었다
밤하늘을 세공하는 별빛이 새벽의 창을 열었고
한 발 한 발
섬유질의 끈질긴 생명력은 철문을 뚫었다
음지에서 뻗어 자란 뿌리들이 한 움큼씩 뽑혀 올라온다
누렇게 부패한 과거를 털어내며 좁은 복도를 걸어 나오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세상은 온통 푸르렀다
우주를 지나다니다 등골 휜 무지개
어머니가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며 검은 담요 자꾸 덮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