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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일본어에서 같은 한자로 표시되지만 기본적인 의미가 다르거나, 한 쪽에 없는 다른 의미가 덧붙여진 한자어를 살펴보았다. 한국어 ‘철저(徹底)하다’(형용사)와 일본어 ‘徹底(てってい)する’(자동사)와 같이 의미는 같으나 품사가 다른 한자어는 논외로 했다.
1. 공부(工夫)
工夫를 くふう라고 읽을 경우에는 골똘히 생각한다, 궁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나,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가리키는 한국어 공부와는 의미가 다르다. 工夫를 こうふ라고도 읽는데 이때는 공사를 하는 인부라는 또 다른 뜻이 된다.
한국어의 [공부]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勉強(べんきょう)이다. 참고로 "勉强(べんきょう)する"라는 단어는 "공부하다"라는 뜻 외에 "흥정하다"라는 뜻도 있다.
[工夫]는 원래 중국의 송명학(宋明學;주자학·양명학)에서 사용된 용어로 <공부(功夫)>라고 쓴 적도 있다. 당시의 속어(구어)로는 <시간과 노력을 사용한다>, <수고를 끼친다>의 뜻이 있었지만, 송명학에서는 완전한 인격에 이르기 위한 실천·수행·공부·노력 등을 모두 이 단어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주희(朱熹)는 임종에 즈음하여 <견고(堅苦)의 공부를 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며, 또 선어(禪語)에서 좌선전념(坐禪專念)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일 외에 오늘날 한국에서는 <학문을 배움>을 의미하여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천·수행·공부·노력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중국식 권법인 쿵푸를 [功夫] 또는 工夫로 쓰기도 한다.
2. 관념(觀念)
일본어 ‘観念(かんねん)’에는 단념, 각오와 같은 뜻도 포함된다. 이때는 する를 붙여 자동사로 활용한다는 것도 한국어와 다르다.
3. 대장(臺帳, 台帳: だいちょう: 일본식 한자에서는 台를 臺의 약자처럼 씀)
台帳(대장, 臺帳)은 장부(帳簿 ちょうぼ))나 원부(原簿 げん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일본어에서는 연극 대본을 가리킬 때도 台帳(だいちょう)을 쓴다. 가부키(歌舞伎) 대본을 台帳(だいちょう)라고 부른 데서 나온 것이다.
4. 대장부
일본어에서 大丈夫(だいじょうぶ)는 괜찮다는 뜻으로 쓰인다. 원래는 한국어의 대장부(大丈夫)와 같이 사내대장부를 의미했지만,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이 부상 따위를 입고서도 "나는 대장부다. (그러니까 괜찮다)" 라고 말하던 데서 뜻이 섞였다고 한다.
4. 대(對)하여
한국어에서는 '……에 대(對)하여'라는 어구를 ……을 주제나 화제로 삼는다는 뜻으로, 즉 '……에 관(關)하여'와 같은 의미로 쓸 때가 있다. 그러나 일본어 対(たい)する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に対(たい)して라고 옮기면 틀리고, ……に関(かん)して나 ……について와 같은 표현으로 옮겨야 한다.
5. 무시(無視)
한국어로 어떤 사람을 ‘무시(無視)한다’고 하면 ‘멸시하다, 얕보다’와 같은 뜻으로도 해석되나, 일본어의 ‘無視(むし)する’는 글자 그대로 ‘없는 것으로 본다, 즉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어의 ‘무시하다’를 쓴 문장을 일본어로 옮기려면 ‘無視する’ 대신 ‘なめる’, ‘馬鹿(ばか)にする’와 같은 표현을 써야 한다.
6. 문구(文句)
일본어 文句(もんく)는 한국어 문구와 같은 뜻, 즉 문장의 구절이나 글귀라는 뜻 외에도 ‘불만’, ‘불평’, ‘이의’와 같은 뜻이 있고 이 뜻으로 더 자주 쓴다.
7. 미혹(迷惑)
한국어의 ‘미혹(迷惑)’은 글자 그대로 ‘정신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뜻한다. 일본어의 ‘迷惑(めいわく)’는 그보다는 '폐를 끼친다'고 할 때의 ‘폐’, 즉 ‘귀찮거나 곤란한 일’을 가리킬 때 더 자주 쓴다.
8. 성패(成敗)
일본어에서 成敗는 ‘せいはい’와 ‘せいばい’ 등 두 가지로 읽힌다. ‘せいはい’는 한국어 성패(成敗)와 마찬가지로 성공과 실패라는 의미를 띠는 반면, ‘せいばい’는 ‘처벌, 재판’과 같은 의미로 ‘お仕置(しお)き’와 비슷하게 쓰인다.
9. 성형외과(成形外科)
‘성형(成形)’은 일본어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나 ‘성형외과(成形外科, plastic surgery)’는 ‘成形外科’라고 하지 않고 ‘形成外科(けいせいげか)’라고 한다. 즉, 한국에서는 성형외과이나 일본에서는 '형성외과'이다.
‘成形手術(せいけいしゅじゅつ)’은 문자 그대로 결손된 신체 부분을 '만드는' 수술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쌍꺼풀수술처럼 치료나 기능 회복과 무관한 미용 목적의 시술을 행하는 외과는 ‘美容外科(びようげか)’라고 해서 따로 분류하며, 뼈를 깎거나 보형물을 넣어서 얼굴 형태를 바꾸는 수술도 성형수술(成形手術)이 아닌 ‘정형수술(整形手術, せいけいしゅじゅつ)’이라 부른다.
한국의 성형수술 실태를 논할 때(한국 학계의 발표나 뉴스를 인용해서) 드물게 ‘成形手術’을 한국어와 같은 의미로 쓰기도 하는데, 이때는 한자어 직역에 해당한다. 즉, 일본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 일본식 한자어를 글자 그대로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0. ‘~식(式)으로’
'이런 식으로'라는 어구에서처럼 식(式)을 의존명사로 쓰는 일이 있다. 이때는 고유어 의존명사 '투'와 통하는 용법으로 방식이나 형태 등을 나타내는데, 일본어 ‘~式(しき)’에는 이와 같은 용법이 없어서 ‘こんな式(しき)に’, ‘こういう式(しき)に’와 같이 옮기면 틀린다. 이때는 ‘~様(よう)に’나 ‘~風(ふう)に’로 옮겨야 의미가 통한다.
11. 심중(心中)
일본어에서 心中은 ‘しんちゅう’와 ‘しんじゅう’ 등 두 가지로 읽힌다. ‘しんちゅう’는 한국어와 같은 마음속이라는 뜻이다. ‘しんじゅう’도 원래는 이와 비슷한 뜻에서 파생해서 마음속에 품은 충성심이나 의리, 애정을 확인시킨다는 뜻이었으나, 여기서 의미가 한정되어 오늘날에는 ‘동반자살’, 그 중에서도 ‘정사(情死: 사랑하는 남녀의 동반자살)’만을 가리키며, 이에 비유해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しんちゅう'는 한국어 심중(心中)처럼 명사로만 쓰는 반면 ‘しんじゅうする’와 같이 자동사로 활용하기도 한다.
12. 애인(愛人)
한국어에서 ‘애인(愛人)’과 ‘연인(戀人)’은 같은 뜻으로 뜻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다소 다르게 쓰인다. ‘恋人(こいびと)’은 한국어의 연인(戀人)과 같은 뜻이나, ‘愛人(あいじん)’은 ‘떳떳치 못한 관계를 맺은 이성, 즉 정부(情夫, 情婦)’를 완곡하게 표현할 때 쓰인다.
참고로 일본어에서는 ‘愛人(あいじん)’이 한국어의 정부(情婦)에 해당하는 것과 달리, 중국어에서는 ‘愛人(아이런)’은 배우자나 약혼자라는 의미가 강하고, ‘情婦(칭푸)가 한국어의 애인에 해당한다.
13. 양복(洋服)
한국어의 ‘양복(洋服)’이나 일본어의 ‘洋服(ようふく)’ 모두 서양식 의복이라는 기본 의미는 같지만, 한국에서 양복이라고 하면 주로 정장(특히 남성의)을 가리키는 반면 일본에서는 단순히 ‘和服(わふく)’에 대비되는 서양식 옷을 가리킬 때 ‘洋服(ようふく)’라는 단어를 쓴다. 따라서 일본어에서는 洋服(ようふく)이 보통의 평상복을 의미하며, 양복 정장을 뜻할 때는 영어 suit에서 따서 ‘スーツ’라고 쓴다.
14. 연중(年中)
일본어의 ‘年中(ねんじゅう)’는 ‘한 해 동안’이라는 뜻의 명사로서 쓰임과 동시에 ‘늘, 항상’이라는 뜻을 지닌 부사로도 쓰인다. 따라서 일본어 문장에서 한자어 年中이 나온다면 1년이라는 시간에만 매여서 해독하면 안 된다.
15. 의견(意見)
일본어 ‘意見(いけん)’에는 ‘훈계, 충고’와 같은 뜻이 포함되고 이때는 ‘する’를 붙여서 타동사로 활용한다. 즉 ‘意見(いけん)する’라고 하면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훈계나 충고를 하는 것이다.
16. 이과(理科)
일본어의 ‘理科(りか)’는 전공계열이나 학문의 계통(자연과학, 공학, 의학 등을 포괄하는) 외에도 한국 초·중·고등학교 과학에 해당하는 교과목 이름으로 쓰인다. 한국에서 '이과 과목'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의미가 다르다.
17. 집념(執念)
일본어 ‘執念(しゅうねん)’에는 한국어 집념(執念)에는 없는 ‘원한, 앙심’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18. 천지(天地)
일본어 ‘天地(てんち)’는 비유적으로 책이나 종이의 윗면과 아랫면, 물건의 위아래를 나타내는 데도 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어렸을 때 해본 기억이 있는 덴찌 게임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天地無用(てんちむよう)이라는 어구도 원래는 화물이나 소포의 위아래를 뒤집으면 안 된다는 경고문에서 나온 관용구다. ‘する’를 붙여서 상하를 뒤집는다는 의미의 타동사로 활용하는 용법도 있는데 방언이나 고어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19. 팔방미인(八方美人)
한국에서 팔방미인(八方美人)이 다재다능한 사람을 비유하는 긍정적인 용도인 데 반해 일본어의 ‘八方美人(はっぽうびじん)’은 ‘모든 사람과 붙임성 있게 사귄다’는 의미로, 때로는 ‘여기저기 굽신거리거나 여러 명의 이성에게 수작을 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20.평범(平凡)
일본어의 ‘平凡(へい-ぼん)’은 우리말의 평범과 마찬가지로 보통이라는 의미이지만, ‘너무 평범해서 뭔가 뒤떨어진다’거나 ‘나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20. 평판(評判)
한국어 평판(評判)에는 '긍정적인 평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지만, 일본어 ‘評判(ひょうばん)’에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소문, 사람들의 평가, 평가를 해서 판정하는 일(또는 판정한 결과)과 같은 뜻 외에도, 그 ‘평가가 좋다’는 뜻이 더 있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평판이 좋다’는 뜻을 아예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評判の本(ほん)’이라고 하면 '평판이 좋은[높은] 책'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21. 학생(學生)
일본어의 ‘学生(がくせい)’도 한국어처럼 일반적인 의미, 즉 ‘학교에 적을 두고 배우는 일을 주로 하는 신분’을 나타내나, 주로 대학생을 가리키는 것이 한국어와 다르다. 초등학생은 ‘児童(じどう)’, 중·고등학생은 ‘生徒(せいと)’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2. 학원(學院)
일본어의 ‘学院(がくいん)’은 아오야마 학원대학같이 보통 ‘학교법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법인을 '학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때는 한자로 學園이라고 표기하는 점이 다르다.
초·중·고등학생이 교과목 보충 학습, 또는 예능이나 체육, 외국어 등을 공부하는 사설 교육기관은 ‘塾(じゅく)’이라고 하며(예를 들어 영어학원은 ‘英語塾(えいごじゅく)’, 보습학원은 ‘学習塾(がくしゅうじゅく)’이다),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학원, 그 중에서도 대학 입시 학원(특히 재수생을 대상으로 한)은 ‘予備校(よびこう)’라고 한다. ‘塾’은 ‘慶應義塾’ 등과 같이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쓰인다.
23. 해체(解體)
일본어 ‘解体(かいたい)’는 ‘해부(解剖, かいぼう)’와 같은 뜻으로도 쓰이는데, 정확히는 解剖(かいぼう)의 옛날 말투에 해당한다. 일본 책 중 '……해체신서'라는 어구가 들어가는 제목이 많은데, 이 말은 1774년 발행된 일본 최초의 서양 의학 번역서 ≪해체신서≫(解体新書, かいたいしんしょ)에서 따온 것으로 이 당시 사람이나 동물을 해부하는 것을 ‘解体(かいたい)’라고 했다.
24. 흑막(黑幕)
흑막(黑幕)이란 원래 공연이 끝날 때나 공연 도중 쉬는 시간에 드리우는 검은 장막(또는 커튼)을 뜻하며 일본어 ‘黒幕(くろまく)’도 원래 뜻은 같다. 그러나 비유적인 의미는 양국이 서로 달라서, 한국어에서는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상황’을 가리키는 반면, 일본어에서는 ‘배후를 조종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25. 무실(無實)
무실(無實)이라는 단어는 원래 유명무실(有名無實)의 경우처럼 실제 내용이 없음을 가르키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일본어에서는 ‘無實(むじつ)の罪’와 같이 누명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첫댓글 '無實의 罪'(むじつのつみ)를 원죄(冤罪:えんざい, 무고죄 또는 누명죄)라고 하지요. 둘다 울 말에서도 가능한 표현인 데 잘 안쓰여서 생소하게 들리는 말이고 다른 뜻으로 곡해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