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희정 |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예비 중학생들에게 졸업을 해서 가장 좋은 이유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일기를 더 이상 쓰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이제 일기를 쓰지 않아도 선생님이 검사하지 않으니까 형식적인 일기마저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대답에 담겨 있다.
정작 이제부터 자신만의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일기가 6년동안 자신을 괴롭혔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수단 중에 글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런 수단의 하나를 너무 일찍 포기한다.
그림일기를 제대로 활용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글을 너무 일찍 쓰게 하다보니 아이들은 ‘글을 쓰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6년 내내 일기를 쓰기 싫어하고 쓰더라도 형식적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듣고 한 것에 대해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정신과 치료에도 그림이 등장하고 심리상태를 진단하기도 한다. 이런 좋은 재료가 초등학교에서 잘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의 예비소집이 있었다. 이 아이들 중 대부분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유치원에서 배우고 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일기다. 일기라는 좋은 글쓰기 프로그램이 숙제로 전락하고 끝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숙제로 6년 동안 아이들을 괴롭힌다.
아이들이 입학하면 첫 과제물이 그림일기다. 하루 있었던 일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문제는 이런 행복이 그림일기를 더 이상 쓰지 않고 글로만 쓰는 일기로 넘어갈 때 아이는 아이대로 학부모들은 학부모대로 힘들어한다.
빠른 경우 1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 그림일기가 사라지고 글 일기로 바꾸게 된다. 2학년이 되면 그림일기를 쓰는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아직 글을 구체적으로 쓸 수도 없고 글감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그림일기를 빼앗고 글 일기로 옮겨놓다보니 아이들은 일기에 대해 항상 부담을 느끼고 끝내 글쓰기에서 멀어진다.
사회에 나가면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많다. 이런 처지인데도 초등학교 시절 일기에 질려 글을 쓰려면 공포마저 생긴다고 말한다. 글과 멀어진 지금을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너무 급하게 글 일기를 써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글 일기로 몰아넣지 말자. 그림일기를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자유롭게 자신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면 어떨까. 5학년이 되면 그 때부터 글 일기를 쓰게 해도 글을 쓰는데 전혀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만은 4학년까지 저학년으로 보고 5학년이 되면 고학년으로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선행학습이 아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다들 알고는 있지만 글쓰기를 너무 빨리 시작하면 그보다 훨씬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기는 글쓰기를 배우는 데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아이들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글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주지 않고 일기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그림일기에 대한 활용 방안을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고민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