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회의 공화국이다. 언제 어디서나 회의다. 기업에서는 매일처럼 실적을 올리기 위한 미팅을 하고, 공무원들은 경비절감이나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대학도 발표 위주의 수업으로 변했고, 초-중-고교에서도 논술과 구술을 대비하기 위한 토론수업이 진행중이다.
하루에 한 번만 회의를 하는 곳이면 아주 편한 직장이다. 많은 직장에서는 회의가 꼬리를 물어 진짜 회의가 일기도 한다.
회의와는 관계가 적을 것 같은 스포츠 기자들도 회의에 지쳐있다. 필자가 신문사 야구부장을 할 때를 살펴보자.
부장은 오전 8시에 부원들과 미팅을 한 뒤 30분 뒤 각 부장들과 편집국장이 자리를 함께 하는 데스크 회의에 들어간다. 여기에서는 그날의 신문 1면과 각 면의 주요한 기사들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각 부장들은 부원회의에서 1면 후보를 비롯한 굵직한 기사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스포츠 신문의 1면은 주로 야구기사다. 데스크 회의에서 1면 아이템이 결정되면 부원들과 다시 모여 기사 방향과 톤을 결정한다. 아침에만 세 번의 미팅을 하는 것이다.
가판 기사를 마감하고, 기자들은 취재 현장으로 떠난다. 이 때가 오전 11시 쯤이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또 회의다. 지방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30분 뒤 데스크회의다. 또 아이디어를 모아 각 부장들이 편집국장과 머리를 맞댄다.
그리고 야간 경기로 진행되는 프로야구가 끝날 무렵에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내근자 위주로 간이 미팅을 한다. 현장에서 보내온 기사를 어떻게 정리 종합해 1면을 만들고 다른 면들은 어떻게 조정하는 가를 상의한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하루에 최소한 여섯 번의 회의를 한다.
그러나 요즘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선전하고 있어 오전 10시나 11시쯤 1면 기사를 바꿀 때가 있다.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거나 최희섭이 홈런을 날리면 예정된 1면을 빼고 바꿔치기를 한다. 1면 기사를 바꾸면 보통 4면까지 대체기사를 마련해야 한다. 30분 내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부원들이 모여 5분 내에 아이디어를 모으고 미국의 특파원과 통화하며 20여분 만에 기사 너냇꼭지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눈을 잠깐 붙인 뒤 다음날 아침 8시에 어김없이 메모지를 들고 부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낼 것을 독촉해야 한다.
게다가 특집기사 아이디어, 창간 아이디어, 지면 개선안, 회사 발전안 등을 부정기적으로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회의를 하면 부원들은 눈을 부장과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회의에 지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뜻한, 많은 이들이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가뭄에 콩나기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상사는 많은 아이디어를 뽑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10여명의 부원이 앉는 타원형 회의 테이블의 자리배치에 신경을 썼다.
먼저 연조가 낮은 기자를 필자의 오른쪽 대각선에 위치시키고, 차장이나 고참기자를 필자의 정면이나 왼쪽에 앉게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사람은 정면보다는 측면, 즉 대각선에 있을 때 발언이 자연스럽다. 특히 심장이 있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상대에게 멀리하면 더욱 안정감이 있다. 신참 기자를 오른쪽 대각선에 앉힌 것은 차분하게 많은 말을 하라는 의미다. 또 고참의 생각은 경험적으로 부장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려면 신참들의 새로운 생각을 많이 들어야 한다.
회의석상에서 상사를 마주보며 발언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고참을 필자의 정면이나 왼쪽 대각선에 자리잡게 한 것은 이들은 자리의 불리함에 크게 영향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리를 잡으면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점심은 막내인 김태엽씨가 사는 게 어떨까”, “1면을 쓴 신창범씨가 점심까지도 수고를 하지” 등의 가벼운 말을 던진다. 이러면 다른 부원들이 “그래, 그래. 한번 쏴라” 등으로 응원을 해 발언을 위한 얼굴 근육운동과 뇌순환 운동은 끝난 셈이다.
다음은 안건을 내놓는다. “오늘은 3월21일 창간 기념일을 앞두고 야구부가 할 기획과 다른 부에서 했으면 좋을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위해 모였는데, 자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얘기해 보세요. 입에 딱 맞는 이야기는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무 내용이나 툭툭 던지듯 말하면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경험적으로 권하고 싶지 않다. 특히 신문사처럼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요구하면 적극적인 사람만 말하고, 소극적이거나 무책임한 경우는 발언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지지 발언하는 게 고작이다.
필자는 회의가 원활하지 않으면 곧바로 지명 방법으로 바꾼다.
“아드보카트와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기사를 1면에 올리는 경우와 박찬호와 이승엽의 투-타 맹활약을 1면에 올리는 것을 생각하세요. 어떤 것이 좋은 지 독자들의 취향과 판매 영향, 신문의 품위 등을 고려해 김남형씨부터 돌아가면서 얘기를 하세요.”
지명을 하면 부원 10명이 모두 생각을 말하게 된다. 심리적 강제 상태가 돼 모두가 안건에 대해 고민한다. 다른 부원이 애기할 때 자기의 의견과 같으면 찬조발언을 하고, 생각이 다르면 이의를 제기해 회의가 활기를 띤다.
회의가 잘 되기 위해서는 사회자는 질문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직원은 발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중요한 게 질문의 기술이다. 말이 없는 직원들에게서 질문을 잘하면 아이디어가 샘솟는 반면 잘 묻지 못하면 꿀먹은 벙어리를 만들기 십상이다. 질문의 방법을 보자.
먼저 폐쇄형 질문이다.
직원들이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있을 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좋다.
폐쇄형은 '예', '아니오'로 대답되기에 누구나 자기생각을 말할 수 있다.
EX)박지성이 골을 잘 넣는 것은 상대팀이 약해서 그런 것입니까, 박지성의 기량이 뛰어나서 그런 것입니까.
이같은 질문에는 큰 부담없이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박지성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답을 하면 다음으로 '어떤 점이 그의 특징이냐'고 오픈형으로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어 대화가 활성화될 수 있다.
다음으로 한명씩 지명하는 방법이다.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것은 평가 되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때 상사가 부정적인 언어를 구사하면 회의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질 것이다. 이경우는 따뜻한 말과 함께 "누구부터 차례로 발표하세요"라고 말한다.
EX) 이것이 신제품의 개요입니다. 이 상품 판매전략을 김길동씨부터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말해 볼까요?
또 질문을 쉽게, 그리고 작게 한다. 사람은 평가받지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말하고 싶어진다. 이런 때 "답변에는 아무런 제약이나 책임이 없습니다. 모든 말을 다 수용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세요"라고 하면 직원들의 말문을 여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질문을 처음부터 무겁게 하면 입을 열기 어렵다. 어려운 질문을 가벼운 질문으로 바꿔서 하는 게 사회자나 책임자의 요령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공용화를 실시해야 하는가"라고 묻기 보다는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3가지 이유는 이렇습니다. 홍길동씨는 이 세가지 이유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볍게 물을 수는 없다. 꼭 큰 질문을 해야 할 때, 즉 큰 사안을 결정해야 하는 때는 폐쇄형으로 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야유회를 어디로 가는 것에 앞서 '야유회를 간다, 안간다'가 먼저 결정되어야 할 상황이면 이렇게 질문할 수 밖에 없다.
EX) 이번 야유회 가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사회자에게 질문의 능력이 요구된다면 발표자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말하는 기술이 필요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반론을 펼 때는 더욱 그렇다.
반론을 다음처럼 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첫째, 상대 의견을 존중한다.
"네 말이 틀렸다"라는 확언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표현은 상대의 감정만 자극시킨다. 먼저 상대의 말을 요약해 심리적으로 다독거린 뒤 내 주장을 펼친다.
EX) 김과장은 이번 기회에 영남지역까지 판매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거지.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그런데 내 생각은 지금처럼 서울에만 총력을 기울이는 게 우리회사 자금여력으로 볼 때 적절하다는 거지.
둘째,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상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야. 그럴수는 없어"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대화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감정이 난 상태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상대의 주장을 다 들은 뒤 내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3.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지 마라.
대의명분을 유난히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대화는 두 사람이 이상이 하는 현실게임이다. 그렇기에 명분 보다는 현실적인 말을 하는 게 좋다.
"나이가 40도 넘은 사람이 그런 학생과 같은 말을 하는가" 보다는 "많은 경험을 통한 참신한 생각같다. 하지만 우리 고객은 학생층이 아닌 장년층이니까~"라고 말하는 게 좋다.
회의때 불평하는 부하 다루기
회의때나 사석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이 있다. 이들은 특히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먼저 회의에서의 불만을 터뜨리면 개인과 관계된 것은 면담을 통해 이야기 하도록 한다. 전체 모임에서는 사적인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사적인 자리를 마련해 부하의 고민을 끌어내야 한다. 이 때 절대로 부정적인 언어를 선택하면 안된다.
"음, 표정이 너무 안좋아. 나에게 무슨 불만 있는것 아냐"라고 물으면 바로 부하의 화가 폭발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요즘 많이 힘들거야. 나도 월급도 준 데다 매일 야근까지 해 힘드네. 자네도 말 못할 어려움이 많겠지"라고 하면 부하의 가슴이 다소 누그러지고 마음을 열 가능성이 있다.
또 회의에서 떨어진 과업을 맡아 고민하는 직원에게는 격려가 필요하다. 격려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막연하고 일반적인 것은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예를 들어 "힘을 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네"라고 말한다고 힘이 될까. 아니다. 오히려 더 부담만 느낄 수 있다.
이 때는 확신을 심는 사례를 찾아야 한다. "모두 사람은 불안해. 나도 5년 전에 그런 불안감에 빠졌어. 하지만 계획대로 열심히 일하니까 목표를 달성했어"라고 하면 부하 직원이 어느정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
앗! 직장인은 회의를 회의하네
한국 직장인들은 회의에 대해 회의를 하는 경향이다. 직장인의 절대다수는 불필요한 회의가 많다고 본다.
2006년 4월에 채용업체 사람인(www.saramin.co.kr)의 발표에 따르면 자사 회원인 직장인 68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0.8%가 자신이 경험한 회의중 꼭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50% 이하라고 답했다.
회의 횟수는 주 1회(42%)가 가장 많았고, 17%는 거의 매일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하루에도 몇차례씩 한다는 응답도 9.9%나 됐다.
또 퍼센트별로는 10건 중 세 번 정도만 필요한 회의라는 게 18.8%로 가장 많았고, 회의중 절반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 경우는 불과 15.1%에 지나지 않았다.
회의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미만(42.5%)이 대부분이었고, 직장인들은 꼭 필요할 때만 의사표시를 한다(64%)고 말해 회의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TIP
발표력 향상을 위한 가족회의
대학입시에서 논술과 구술이 중요해지면서 가족회의도 느는 경향이다. 학생이 있는 집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부모가 정리를 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면 토론과 발표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발표가 습관이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회의나 토론에 대해 부담감이 적은 것은 당연지사다.
자녀의 성격개조나 발표력 향상까지 꾀하는 가족회의라면 몇 가지 신경을 써야 한다.
첫째, 부모는 문제제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의견을 말한다.
아이 둘과 부모가 함께 하는 자리라면 먼저 작은 아이의 의견을 듣고, 다음으로 큰 아이의 생각을 묻는다. 두번 째 안건에서는 큰 아이를 먼저 발표시키고, 이어서 작은 아이에게 발언의 기회를 준다.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위계질서는 인정하되 회의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심어주는 의미가 있다. 세상을 많이 산 부모가 먼저 생각을 밝히면 아이들은 따라가는 수가 많다. 권위적인 가정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부모는 사회자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밝혀야 아이들의 발언이 활발해진다.
둘째, 아이끼리의 이해다툼이라면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 싸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왜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게 한다. 이때 두 아이에게 시간을 똑같이 배분해야 한다. 많은 집에서는 "형인 네가 참아야지. 동생하고 똑같이 하면 어떻게 해"라고 위 아이를 질책한다. 하지만 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으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왜 싸웠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게 하고 반성을 유도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싸우면 절대 동생의 편도, 형의 편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동생이라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면 의지력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셋째, 메모를 하게 한다.
글쓰기와 말하기의 뿌리는 같다. 주장할 내용을 메모를 하면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 있다. 또 상대의 주장을 메모하면, 논리성을 배울수 있을뿐 아니라 반론을 펼칠 때 좋은 자료가 된다. 또 메모하는 게 습관이 되면 대화에서 중요한 경청 능력도 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