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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개봉(开封)
황량한 들판을 달린 버스가 드디어 도심에 진입하고 곧이어 터미널로 들어선다.
첫 번째 목적지 开封이다. 北京, 西安, 洛阳, 南京, 杭州、安阳과 더불어
중국 7대 고도중의 하나인 开封은 춘추전국시대 위(魏)부터 5대10국,
북송과 금나라 등의 왕조가 수도를 건립한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송나라가 수도로 정한 이후 개봉은 전 세계의 무역상이 드나들던 글로벌 도시로,
明,清代엔 하남성의 성도(省会)로 대도시의 면모를 유지하였다.
그러다 근대중국 설립 이후 현급으로 주저 앉으면서 성도의 자리마저 郑州로 내어주고
현재는 농산물 집산지, 근, 현대공업도시로 거듭나고 있으며 특히 개봉이 가장 번성했을 때인
송나라 때 유적을 발굴, 복원하여 관광도시로의 변신에도 힘쓰고 있는 도시이다.
비수기 중의 비수기라는 1월에 추운 날씨까지 겹쳐 터미널을 빠져 나가는 여행객들은
우리뿐인 것 같다. 터미널 문을 나오니 삼륜인력거 아저씨들이 호객을 한다.
규격화된 모양새와 번호판까지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경 후통의 인력거처럼
관광용으로 개발된 인력거인 모양이다.
가격도 적당하고 나름 운치도 있어 보여 탑승을 결정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를 태우고 가시는 인력거 아저씨의 내공이 만만찮다. 발로는 페달을 밟으면서
정확한 표준어로 손짓까지 곁들이시며 개봉의 유래와 도로, 인근 유적까지
고대사까지 인용하시며 장황한 설명을 해주신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인력거가 멈춘 곳은 인력거 아저씨가 소개한 빈관 입구.
처음에 가기로 한 숙소는 유스호스텔이지만 국제연맹 미 가입 업체라
내심 의심도 했던 차에 그 업소는 시설면에서 평이 안 좋다는 아저씨의 말에
소개를 부탁했더니 데려다 준 宾馆이다. 주위를 보니 相国寺 표지판이 보인다.
구글 지도를 찍어보니 거의 시내 중심가다.
안내데스크로 가니 예쁘장한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다.
가격을 물으니 150元/1실. 협상의 귀재 윤선생님이 나서 다시 가격을 깎고
120元/1실에 결정을 보고 체크인을 했다.
키를 받아 올라간 방은 생각보다 넓고 깨끗했다. 空调, 화장실 모두 정상작동.
배낭을 풀고 짐 정리를 한 다음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인력거 아저씨를 만났다.
방으로 올라가기 전 점심을 먹을 식당소개와 오늘 여행지 开封府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10元.
아저씨가 소개해 주신 식당은 우리가 왔던 길에서 본 东京이라는 식당이다.
개봉의 대표 먹을거리 灌汤包를 먹기 위해 유명한 第一楼로 데려다 달랬더니
第一楼 일대가 공사로 소음과 먼지 때문에 좀 그렇다며 여기 사람들이
가격과 맛 때문에 많이 가는 곳이라며 소개해 주신 곳이다.
우리가 통칭해서 만두라고 부르는 중국만두는 크게 馒头, 包子, 饺子로 나눌 수 있다.
馒头는 소가 없는 그냥 빵 정도로 보면 되고 饺子는 우리의 교자만두와 같다.
주로 물에 넣어 삶거나 기름에 구워서 먹는다. 그리고 包子는 우리의 왕만두(?) 쯤 되겠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증기로 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 우리가 먹을 점심은 . 상해小笼包, 천진狗不理와 함께 흔히 중국3대 包子라고
일컬어지는 包子의 지존 개봉灌汤包이다.
송나라때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유구한 역사의 灌汤包는 包子 속 육즙이 포인트다.
얇은 피에 돼지고기 등을 넣은 소를 넣고 小笼에서 찔 때 包子 속에 육즙이 생성되는데
그 육즙의 맛이 이 灌汤包의 품질을 가늠할 척도이자 맛 집의 기준이 된단다.
아직 12시가 안 된 시간이라 식당은 한산.
자리를 잡고 灌汤包, 역시 대봉의 대표요리인 이어배면(鲤鱼焙面)과 京酱肉丝그리고 밥을 시켰다.
灌汤包를 제대로 먹으려면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보단 숟가락에 얹어
包子 속 육즙을 먼저 빨아 먹은 다음 나머지를 먹는다는데 우린 그냥 젓가락으로….
鲤鱼焙面은 잉어로 만든 음식인데 서태후도 칭찬해 마지 않았다는 糖醋熘鱼와 焙面이
결합된 근대음식이다.기름에 익힌 잉어에 糖醋소스를 얹고 龙须面으로 덮어 완성하다.
糖醋라는 단어가 말해 주듯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第一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환상적인 맛은 아니고 그냥 먹을만한 수준인 것 같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그렇게 먹고 개봉부(开封府)로 출발.
가는 동안 인력거 아저씨의 가이드는 다시 시작되었다.
도심 속 성벽을 통과할 때 다시 성벽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신다.
송나라 때 세워진 것이며 얼마나 견고한지 명나라를 멸망시킨 이자성(李自成)의
농민봉기군이 7일 밤낮을 공격해도 무너뜨리지 못한 난공불락의 성이다…. 등등.
북경으로 패키지 여행가면 보통 만리정성을 가기 전 대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는데
그 식당 가는 길 부근 로터리에 있는 동상의 주인공인 이자성의 이야기를
개봉에서 들을 줄이야.
우리가 타고 온 삼륜차.
드디어 도착한 개봉부(开封府)
五代 때부터 존재했던 开封府는 여러 왕조를 거치다가 원대 때 황하의 범람으로 인한 대홍수로 사라졌다가
명,청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송(宋)대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지금의 开封府가 비록 복원건물이지만 그 인기는 개봉관광 최고이다.
1993년 대만에서 제작하여 대륙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한 판관 포청천의 포증(包拯이
부윤으로 재직하면서 숱한 명판결을 보여준 현장이 바로 개봉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는 거의
포청천에 관한 사료와 유물이 주를 이룬다.
성수기엔 수문장과 교지 전달식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데 정문 앞도 그렇고 내부도 절간처럼 조용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의문(儀門). 의문(儀門)은 예전 관가의 대문 다음 문의 통상적 명칭이다.
드라마에서도 나오는 억울함을 알리는 북.
포청천이 개봉부윤으로 오기 전까지는 고소절차가 상당히 복잡하였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 중간에서 '커트'
당하기가 다반사이고 하다보니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시시비비가 가려질리가 만무했다.
그런 제도를 포청천이 부임해 오면서 누구를 막론하고 저렇게 북을 쳐서 직소하는 제도로 바꾸었다고 한다.
의문(儀門)의 현판.
개봉부 관인의 모형
정청 앞마당에 公生明 바위. 荀子의 公生明 偏生暗(공평함은 총명을 낳고 치우침은 우매함을 낳는다)에서
나온 말씀을 새긴 바위이다.
우청(右廳)의 기둥을 부여잡고
正廳 내 부윤의 집무장소. 정확히 포청천의 집무장소라 하겠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라고 불호령을 내리는 포펑천의 음성이 들려 오는 듯 하다.
앞에서 부터 개작두,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는 일반백성, 용작두는 황족, 호작두는 탐관오리용이다.
때에 따라 황족이나 관리더라도 죄질이 나쁘거나 악랄할 땐 개작두로도 처형했다고 한다.
정청 귀퉁에 새겨 놓은 돌짐승
평소엔 정청 앞에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복장과 분장을 제대로 한 배우들이 포청천 이야기 중 흥미 있는 한 장면을 보여 준다는데
입장료도 가격을 낮춰 발매하는 비수기라 공연은 캔슬. 정말 관람객이 우리들 뿐이다.
의사청(議事廳) 옆문에 붙어.
포청천 시절의 개봉부 관리회의 모습을 제현한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는 의사청(議事廳)
제민당(齊民堂). 의사청(議事廳) 뒷 편에 자리잡고 잇다.
포청천의 사당인 청심루(淸心樓)
(淸心樓)에서 내려다 본 개봉부의 전경.
청심루에 올라 안개 자욱한 호수(包公湖)와 개봉부를 위에서 지켜 보다가 다시 호숫가를 거쳐
대문쪽으로 가니 한무리의 관람객이 들어 온다. 복색을 보니 남방의 소수민족인 것 같다.
윤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걸고.... 이윽고 같이 기념촬영.
운남에서 왔다는 어느 소수민족 여인과 함께.
다시 개봉부를 나와 다음 목적지인 청명상하원으로 갔다.
이번엔 택시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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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운남에서 온 소수민족 彝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