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부터 한무제, 김일제, 곽거병,광무제릉
진시황릉은 멀리서 보면 산처럼 보인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45mx350mx76m이다.
높이는 55m라는 책자도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올라가 본 나는 55미터가 맞을 듯하다.
진시황릉은 영정이 13세에 황제자리에 앉아 짓기 시작하여 죽을때까지 38년간 연인원 70만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진씨황릉과 병마용갱의 맥이 들어오는 동남쪽의 산
한무제의 릉
멀리 보이는 한무제의 무릉.
아래는 김일제의 릉이다.
김일제의 묘, 김일제의 중국식발음은 진리디 이다.
김일제의 묘, 김일제는 한무제 암살을 막아 생명을 구한 공로로 거기장군이 되어 흉노 토벌에 나서서 공로를 세우고 한무제가 죽기전에 8세의 아들을 황제에 앉히고 왕망과 김일제에게 황위를 잘 보필 할 것을 부탁하고 죽는다. 김일제는 죽기직전에 소제로 부터 투후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고, 그 동생 윤 또한 투후 호칭을 받았다.
신라 문무왕의 비문에 투후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신라 김씨의 시조는 성한왕이다 라고 한것은 윤의 7대후손 알지를 말하고 있다. 이 이유는 한무제의 처남인 왕망에 의해서 한나라가 망하고 신나라를 세울때 김일제도 개국공신으로 역할을 하여 15년후 다시 유씨 집안의 광무제가 권력을 잡고 후한나라를
건국하면서 투후 집안은 도망가고 사라지는데 이때 김일제와 김윤후손들은 숨어서 살면서 서쪽이동하여 산동반도까지 와서 사는동안 180년에 걸쳐 7대를 살다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서해바다로 가야국에
도착 한세대 나이가 많았던 김수로가 먼저 왕이 되고 알지는 신라땅으로 넘어왔으니 그가 신라김씨 시조 김알지요 성한왕이다. 즉 한나라의 장군, 제후, 투후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전의 금성명리풍수학회 정국희 회장과 찰칵
곽거병의 묘
곽거병묘 꼭대기에는 정자가 서 있다.
곽거병 묘
곽거병 비석
마답흉노상, 곽거병의 흉노 휴도왕과 싸움에서 이긴 공로로 만든 석상이다. 이때 김일제는 생포되어 한무제의 마부로 노예생활을 한다.
마답흉노상 그리고 표지석
곽거병의 묘에서 왼쪽에 보이는 한무제릉 모습
곽거병의 묘에서 바라본 김일제의 묘, 김일제는 지구상 최초의 김씨 성을 한무제로부터 받았다.
광무제의 릉 위에 수백년은 된 듯한 향나무 숲
광무제의 릉 입구 전경
진시황 병마용갱의 모습
진시황릉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