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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의 건설 배경
그리스인들은 거듭된 페르시아와의 전쟁(기원전 499~449)에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을 주축으로 마침내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전쟁 중(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아테네 침공과 약탈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폐허로 만들었다. 파르테논 이전의 아테네 신전을 비롯해 그 곳에 있던 다른 모든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쟁의 승리로 그리스인들은 자신감과 애국심을 새로이 되찾았으며, 전리품들은 화려한 새로운 신전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건축의 열기는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들어 최고조에 달했다.
페리클레스(Pericles, 기원전 495년경~429년)는 델로스 동맹을 통해 아테네 제국을 세우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개전 후 2년 동안 아테네를 이끌었다. 그가 아테네를 지도하던 시기인 기원전 457년~429년사이를 "페리클레스의 시대"라고 한다.
기원전 461년 강력한 정적이었던 키몬을 도편 추방하는데 성공하면서 권력을 잡은 페리클레스는 점점 강해지는 아테네의 지배력과 그리스의 번영을 표현하고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기원전 454년,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섬에 있던 동맹의 금고가 위험하다며, 안전하게 금고를 통제한다는 구실로 아테네로 동맹의 금고를 옮겨왔다.
페리클레스가 자신의 야심찬 건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바로 이 동맹 금고에서 나왔는데, 기원전 449년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신전을 대대적으로 재건하는 데 9,000 탈란톤을 쓸 수 있게 하는 칙령을 제안하였다.
그 건설 계획은 "페리클레스의 아크로폴리스"에 집중되어 프로필레아, 파르테논 신전, 그리고 아테나 여신의 황금상 등이 있었다.
그는 '익티누스'와 '칼리크라테스'에게 중심신전인 파르테논의 건축을 맡겼고, '페이디아스'를 수석 조각가로 임명하여 아크로폴리스의 복구를 실행하였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페리클레스시대의 건물 2개(파르테논과 프로필레아)는 도리스식 건축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익티누스와 칼리크라테스는 전무후무한 완벽한 비례를 실현시켰다.
페리클레스의 야심찬 아크로폴리스 재건계획은 기원전 431년에 갑작스럽게 중지되었다. 그 해에 점점 세력을 키워오던 스파르타가 아테네에 대한 반항으로 봉기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전쟁의 와중에서 총사령관으로서 군사 작전을 총괄하다가 역병으로 사망하였다(기원전 429년).
이 전쟁은 기원전 404년까지 계속되었으나 기원전 421년~413년의 짧은 휴식기(니키아스의 평화)가 있었다. 이 때에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기념물들을 완성 할 수 있었고, 2채의 훌륭한 이오니아식 신전인 에렉테움(기원전 421년~406년)과 아테나 니케 신전(기원전 421년)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아테네 니케 신전은 파르테논을 건설한 '칼리크라테스'가 맡았으며, 에렉테움은 프로필레아를 건축한 '므네시클레스'가 건설했다. 두 건축가는 이전의 건물과는 전혀 다른 양식을 사용했다. 즉 이오니아식 오더의 유연한 형태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호가 바뀌었던 것이다. 도리스식 오더는 파르테논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완벽함에 다시는 이르지 못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특징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로 기원전 447년부터 기원전 432년까지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건축가의 설계로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사실 파르테논 신전은 웅장함보다는 그 뛰어난 미술성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이 신전은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는 다른 의미로 도리아식 신전이자 그리스 신전 전체의 정형이 된 건축물이다. 신전의 전체 크기는 가로 31m, 세로 70m이며, 전면 8주-측면 17주의 주익식으로 기둥 하나의 높이가 10.433m에 달하는 4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스툼의 포세이돈 신전이 기둥의 위계 문제를 해결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은 모서리에 관한 문제(corner problem)를 해결했다. '모서리 문제'란 트리글리프의 위치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는 트리글리프의 중심과 주신의 중심을 일치시키는 것이 통례인데, 이럴 경우 모서리 부분에 놓이는 마지막 트리글리프 때문에 메토프가 불완전한 조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메토프 조각을 없애버리면 마지막 기둥 위에 놓이는 보의 끄트머리가 기둥 두께의 절반만 걸치게 되어 구조적으로 불안해진다. 이 문제는 트리글리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고전기 신전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는데, 마지막 트리글리프를 기둥 끄트머리에 맞춰 위치시키는 것으로 해결했다. 구조적 안정성을 먼저 택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는데, 메토프와 트리글리프의 크기 및 두 부재 사이의 간격과 기둥 사이의 간격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둥 사이의 간격을 메토프와 트리글리프에 맞춰 조절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페스툼의 포세이돈 신전도 이런 방식을 취했다. 파르테논 이전까지의 신전은 조절에 따른 부재 사이 간격의 불일치를 육안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해서 불일치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추려 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지은 장인은 이런 타협을 옳은 해결로 보지 않았다. 이상비례의 규범을 지키면서 건물이 현장에서 지어지기 위해서 두 번의 조절은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모서리 쪽의 마지막 기둥을 트리글리프 끝 선에 맞춰 안으로 밀어 넣었고 마지막 기둥 간격을 다른 쪽보다 좁은 상태로 그냥 놔두었다. 파르테논의 기둥 간격은 일정하지 않은데, 이 속에는 이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스 건축에서 이상비례의 핵심은 단순히 황금 비례 같은 수치를 그대로 옮겨놓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현장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일치의 문제를 해결해낸 조절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 표현한 것이다. 파르테논이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의 이상적 비례와 구조적 완결성 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불일치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절 능력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서 단순한 수치적 간격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의 착시 현상을 감안해서 균등한 간격을 느낄 수 있게 간격을 조절하였다.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직선의 형태로 보여지는 곡선적 건축의 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언뜻 보기에 모든 모서리가 정확한 직각이고 모든 평면이 직선으로 설계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파르테논에서 보는 모든 직선은 실은 곡선이고 모든 각도는 직각이 절대로 아니다. 모든 기둥이 살짝 안으로 기울어졌으며, 이들 기둥의 모양새도 배가 나온 것처럼 살짝 볼록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플랫폼을 비롯하여 지붕까지의 모든 건물의 평면이 살짝 위로 볼록하다는 것이다. 정밀하게 보면 퍼펙트한 포물선의 치수를 보이는데, 이는 두 사람이 보자기를 펴서 양단 끝을 두 손으로 잡고 펄럭거리며 땅에 놓았을 때 가운데가 볼록 올라오는 곡선을 생각하면 된다.
완벽을 추구했던 설계자는 이러한 곡선을 추가했고, 모든 기둥과 모서리를 곡선으로 만들어 착시현상을 교정했다. 신기한 건 이 신전이 디자이너들이 의도한 대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자리에는 원래 아테나 여신의 옛 신전으로 역사가들이 옛 파르테논 신전(Pre-Parthenon)이라 칭하는 건물이 있었으나,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여타 그리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파르테논 신전도 국가 금고로 쓰였으며, 특히 이곳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쓰였다.
기원후 6세기에 파르테논 신전은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기독교 교회로 쓰였다가,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 1460년대 초에 모스크로 쓰였고 첨탑이 건설되었다.
1687년 9월 26일 파르테논 신전 안에 쌓아놓은 오스만 투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불이 붙었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신전과 그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1806년 엘긴의 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가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파르테논에 남은 일부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물은 오늘날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라고 불리는데, 1816년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매각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엘긴 마블을 다시 그리스로 반환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
파르테논 신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신전을 장식하고있는 조각의 아름다움에 있다.
건물 앞뒤의 페디먼트에는 인물 군상들이 있었고 조각된 메토프들로 네 면이 꾸며져 있었다. 내부에는 연속적인 장면들이 조각된 프리츠가 있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장식된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동쪽 박공(East Pediment)의 주제는 아테네 여신의 탄생이며 서쪽 박공(West Pediment)에는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 신의 싸움이 들어간다.
동쪽 박공의 중앙에는 제우스와 아테네 여신이 배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여신의 탄생을 지켜보는 신들과 사람들이 삼각형 공간에 맞는 자세를 하고 있다. 뛰거나 누워있고 말 타는 사람 등 여러 자세이다. 동쪽은 헬리오스(Helios ; sun)의 태양 마차가 떠오르면서 해가 뜨는 모습, 서쪽은 해가 지면서 셀레네(Selene ; moon)가 마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쪽 페디먼트는 조각이 거의 안 남아있다. 동쪽 박공에 있던 말머리와 디오니소스(Dionysus)신, 여신 조각이 대영 박물관에 남아있다.
왼쪽에 있는 디오니소스 신은 여신의 탄생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고개를 돌리고 손에 컵을 들고 유유자적하게 즐기고 있다. 고전기 전성기 남자 신체 조각으로 유려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오른쪽의 세 여신의 옷 주름이 몸에 감겨서 굵은 허벅지 등 몸의 실루엣이 보인다. '피디아스'가 만들어 낸 새로운 드레스 코드 'Wet drapery(물에 젖은 옷 주름 양식)'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인체라고 생각했다. 남자 운동선수들은 나체로 올림픽에 나가므로 누드 조각이 나오는데 여자들의 누드를 보일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이 아직 없었다. 원통 같은 옷을 입은 고졸기 여자 조각 코레(Kore)는 몸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피디아스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얇은 옷이 흘러 내려 어깨, 아랫배, 다리가 드러나게 합리화를 시킨다. 주름이 몸에 감겨 실루엣이 잘 보이는 것이 drapery technique 이다.
아르고스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폴리클라이토스(Polykleitos)'는 <canon(법칙)>이라는 책에서 신체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자세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를 고안해낸다. 파르테논 신전 조각 책임자 피디아스는 인물에 콘트라포스토를 응용하였다. 폴리클라이토스의 콘트라포스토와 피디아스의 Wet drapery가 어우러져 기원전 4세기경에 여자의 누드가 나온다. 아테네 여신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세 명의 여신들에게서 피디아스가 누드의 문을 열어 놓았다. 여자들 몸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canon(법칙)>
서쪽 박공에는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들고 싸우고 있다. 아테네 여신과 포세이돈 신이 아테네인들에게 나타나서 올리브 나무와 물을 각각 선물로 약속을 하는데 아테네인들은 아테네 여신을 섬길 것을 선택한다.
지혜의 여신 아테네(Athena)는 아테네인이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는 반면, 화가 난 포세이돈(Poseidon)은 아테네가 가뭄으로 고생할 것이라고 저주를 한다.
프리즈 위에 전체 92개의 메토프가 있었는데 거의 다 파괴가 되었다. 동서남북 메토프의 주제가 다 다르다.
서쪽 메토프에는 아마존 여신과 그리스 용사들의 싸움, 동쪽에는 신과 거인들과의 싸움, 북쪽에는 트로이를 점령하는 장면이 있다. 메토프의 주제는 거의 전쟁이다. 동쪽에서 온 이질적인 집단인 페르시아를 무찔러 승리를 이룬 고대 그리스인의 최근의 기억(recent memory)이 은유되어 있다.
14개의 남쪽 메토프 주제는 라피트와 켄타우로스의 싸움으로 대영 박물관에 잘 남아있다. 반인반수 켄타우로스가 그리스인의 조상 라피트의 목을 조른다. 16년 동안 파르테논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명의 조각가가 92개의 메토프를 만들었기에 Old fashioned 조각가와 젊은 조각가 사이에 기술 차이가 난다.
조각가에 따라 메토프가 부조처럼 납작하거나 아니면 입체감이 난다. ‘메토프 31’은 고전기의 old fashioned style로서 부조 같은 표현이지만 ‘메토프 27’은 벽에서 떨어져 공간감이 두드러진다. 두 팔을 벌린 라피트 발 뒤에 켄타우로스의 육중한 몸이 들어갈 정도로 입체적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 조각들은 원래는 채색이 되어 인형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본전 외벽 상부 4면에는 길이 163m에 이르는 대(大)프리즈 장식(현존 130m)이 있는데 우아한 이오니아 양식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중후한 도리아식 요소와 적절하게 융합한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인 이상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프리즈의 주제는 아테네 여신을 위한 축제 행렬이며 각종 사회 구성원이 다 나타난다. 인물은 신들을 합쳐 총 360여 명, 말 219필을 헤아린다. 그 귀중한 잔존부분 가운데 아직도 건축에 남아 있는 일부와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분을 제외한 여타의 대부분은 '엘긴 마블스'로서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는 페이디아스에 의해 완성된 11m 높이의 아테네 여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청동으로 된 몸체에 팔과 얼굴은 상아로, 중앙에 스핑크스 상이 새겨진 헬멧과 의상, 그리고 손에 든 방패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은 당시 가장 아름다운 조각 중 하나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내슈빌
내슈빌(Nashville)은 미국의 테네시주 중부에 있는 테네시 주의 주도로 '컨트리 음악의 도시'라고 일컬어지며 한때 이곳에서 미국 음반의 대다수가 만들어졌다. 인구 51만이며 테네시주 중앙분지 서북부에 위치하며 일찍부터 목화지대의 중심지를 이루었으며, 테네시 강 연안에 자리하여 하항(河港)으로 발달하였다.
그리스풍 건축물이 많아 ‘남부의 아테네’란 애칭을 갖고 있는데, 이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이다.
내슈빌 센테니얼 공원(Centennial Park)에 있는 이 건축물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실물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1897년 내슈빌에서 열린 테네시주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설립되었다. 처음 건축될 당시 석고, 나무, 벽돌로 만드는 바람에 오랜 보존은 불가능하여 박람회 이후 철거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게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1920년부터 콘크리트로 재건을 시작 했다고 한다. 1931년에 완성했으며 세계유일의 실물 크기를 자랑한다. 1990년에는 이 지역 출신 젊은 조각가 '앨런 르콰이어'에 의해 아테나 파르테노스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현재는 미국 현대 회화를 비롯해 중세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전시관 한편엔 파르테논 건축과정을 담은 사진자료와 아테네에서 수집한 조각들(대부분 파손된 것)도 몇 개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변천과정(유튜브 동영상 첨부)
https://youtu.be/WtYQBkyfb9A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전경 : www.youtube.com/watch?v=OUg5C6za2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