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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망군 선조, 인조, 고종과 함께
'사드문제' '지피지기' 정치로 극복한다
한국이 술렁거리고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불법과 초법의 제국주의적 정권을 악용하고 남용하고 오용한 자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고 3년 동안 바다에 방치를 했던 세월호가 인양되고 대선을 향한 행보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한국이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 흘러가고 하고 있다. 국민들은 누구나 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국민들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이라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독재 향수에 빠진 자나 민주주의에 열광하는 자나, 보수주의자나 진보성향의 사람이나, 현실주의자나 이상주의자자나, 정치 초년생이나 정치 관록이 있는 자나 다 똑 같이 자기와 자기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좋은 나라’를 만들 거라고 주장한다. 국민들 또한 자기감정과 정서에 맞는 사람이 지도자로 뽑히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서는 “좋은 나무 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이 대선주자들의 구호와 허울 좋은 공약, 정치적 선동과 정책을 위한 정책, 학연과 인연, 지연을 넘어서야 한다. ‘못된 ’ 지도자를 세워놓고 나쁜 열매를 맺었다고 질타하지 말고 ‘좋은 ’ 지도자를 심혈을 기울여서 세워야 한다.
사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과 집념이 있는 좋은 지도자가 절박하게 필요하다. 사드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하는 가장 큰 문제이다. 미국 좋고 중국 좋고 한국도 좋은 해법이 없다.
자기들 땅이 아닌 우리 땅에 국민들이 반대하는 위험한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굳이 강권하는 강대국의 저의와 역사적, 군사적 배경, 정치와 경제적인 배경이가 무엇인지를 숙지해야야 한다.
강대국을 등에 업고 국민들을 속이고 몰아붙이며 비밀리 열심히 충성스럽게 그 일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정권의 진짜 속 샘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하여 완강한 태도를 취하며 외교 분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이웃나라의 자세와 태도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한반도가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고 ‘갑오동학전쟁’,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자꾸 떠오른다. 갑오동학전쟁은 왕을 비롯한 기득권자들과 그들의 요청으로 개입한 청나라와 일본 제국주의의 개입으로 끝이 났다. 그 뒤로 조선은 걷잡을 수 없는 망국의 길로 들어섰고 2천만 겨레는 고난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친일파들은 그 용광로에서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오늘까지도 그 위세로 우리의 정체성을 흔든다.
촛불항쟁의 정신이 줄기차게 이어져서 과연 갑오농민운동처럼 실패하지 않고 ‘좋은’ 지도자를 세워서 모두가 함께 사는 ‘새 시대’를 열어갈지 아니면 ‘못된’ 지도자를 뽑고 그들에 의해서 국민들이 바보천치로 취급당하며 ‘몇 사람’을 위한 기득권자들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사드배치의 문제를 국가와 국민의 역량으로 극복할 것인지 조선 말기처럼 넘어지고 말 것인지를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촛불을 든 모든 이들에게 ‘한국의 차기 대선주자’라고 나서는 이들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람‘일지 ’기득권자의 기득권자에 의한 기득권자를 위한 사람‘인지? 사드문제를 극복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사람인지를 체크해보라고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
조선의 역사에서 백성을 한없는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간 선조, 인조와 고종을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으며 좋은 지도자를 세워 촛불 항쟁의 정신이 꺼지지 않길 바란다.
조선은 1392년에 태조 이성계에 의해 세워지고 1910년 순종 때 망한 나라로 배우고 알고 있지만 나는 조선을 세 번이나 망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임진왜란 때 망하였고 두 번째는 병자호란 때 망하였으며 세 번째 일본의 침입으로 1910년 한일병탄으로 망하여서 조선은 우리 역사 저편으로 갔다. 나라가 망하는 시대에 왕과 관리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지도자가 '좋은' '바람직한' 지도자인지를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맞은 선조와 중앙의 고관들, 병자호란을 맞은 인조와 중앙의 대신들, 일제에게 침략을 당한 고종과 중앙의 고관들의 면면을 보면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썩고 부패한 중에 300년을 더 존속했다는 것은 아직 역사적으로 밝히지 못한 무엇이 있음에 분명하다. 나는 주자학에 근거한 명분론, 신분제도와 정치싸움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500년 역사를 지켜온 내적인 이유로 삼강오륜에 세뇌된 백성들의 불사이군의 충성심과 희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밖으로 중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자기들의 속사정으로 인해 조선침략을 감행하였어도 멸망시키지 못하고 철수하였다고 본다.
조선의 망군인 선조, 인조, 고종은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고 백성을 고난과 고통에 빠트린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무능하나 권력에 대한 탐욕이 강하였다.
한 마디로 일인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보위에 올라서 백성들을 희생시켰고 나라를 멸망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그들은 나라를 통치할 역량도 지식도 뜻도 열정도 없었던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공을 많이 세운 세자 광해군을 질투하였으며 미워하였고 기회를 노려서 폐세자를 하려고 하였다. 인조는 전란을 극복하며 부국강병에 힘쓰는 광해군을 명분 없는 거사로 축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인 자기를 대신해서 인질로 잡혀간 맏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가 청과 음모를 해서 자기를 축출한다고 의심하며 질시하였고 결국은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죽음으로 몰아갔다. 고종은 개혁을 단행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아버지 대원군을 끝내는 청나라에 잡혀가서 죽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백성을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쳤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갔으며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 땅으로 도망치고자 하였다. 인조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청의 침략에 도망칠 곳이 없어서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쳐서 항전을 하다가 결국은 항복하였다. 고종은 을미사변을 겪은 후 러시아공관으로 구명도생을 하였다.
그들은 외세를 의존하였으며 파병 요청을 하였다.
선조는 왜와의 전쟁을 위해서 명나라에 파병 요청을 하였고 인조는 파병을 요청을 겨를도 없이 12월 2일에 심양에서 출발한 청나라의 2만 대군이 파죽지세로 몰려와서 명에 도움을 요청할 시간이 없었고 요청을 했다할지라도 명은 파병을 할 능력이 없었다. 고종은 갑오농민전쟁을 진압하고자 청에 파병을 요청하였고 결국은 그로 말미암아 멸망의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들은 국사를 위해서 귀를 열고 들어야 하나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혼군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것이다. 바른 말, 개혁과 변화를 요청하는 말을 싫어할 뿐 만 아니라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 선조는 황윤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외면하였으며 전쟁 중에도 여전히 그런 자세로 임하였다. 인조는 광해 임금을 반정을 통해서 축출하고 왕이 된 자였기에 반정 공신의 말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일 수밖에 없었고 고종은 민비를 비롯한 민비척족들에게 휘둘려서 바른 정언의 요로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은 국제관계에 대하여 무식하였고 침략에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선조는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하였고 인조는 정묘호란을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관계에 둔하여 친명배금정책을 추진하며 주전론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고종은 1882년 나라를 지킬 자국의 구식군인들을 신식군대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1882년에 해산시켰으며 그 뒤로 외교를 통한 보전을 하고자 하였으나 세계의 흐름에 아둔하였다.
두려움이 컸던 무능한 왕 선조시대에 있었던 임진왜란으로 최소한 1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포로로 잡혀간 백성을 42만 명으로 계산하는 학자도 있다. 포로들 중에는 나가사키나 히라도에서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의 노예상인에게 팔리어 나갔으며 인도, 마카오 심지어는 유럽에 까지 끌려갔다. 일본에 남은 자들은 다이묘의 노예로서 농부, 노동자, 장인으로 일하였다. 쇄환되어 돌아온 자는 6,000명 내지 7,000명으로 계산된다.
무능하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컸던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대략 66만 명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었다. 포로 속에는 소현 세자와 세자비, 봉림대군을 비롯하여 고관대작의 자제들, 정묘호란을 통과하며 숭명을 내세우고 주전을 부르짖었던 주전파들의 가속들도 있었다. 심양성과 채소밭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들을 노예로 매매하는 시장과 속환시장이 열렸으며 1645년에 소현세자와 세자비가 귀국하면서 속환이 끝났지만 돌아온 숫자는 잡혀간 숫자의 10%도 되지 않았다. 선조와 인조 시대에 있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인구는 약 100만 명이 격감한 1,076만 명이 되었다. 이 통계는 많은 우리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양 전쟁으로 죽었는가를 웅변해 준다.
아버지를 대원군으로 둔 덕분에 왕이 된 고종은 부친의 인내와 지략으로 1863년 왕이 되었다. 처음에는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으나 대원군의 개혁정치가 실패로 끝난 1873년 민비와 척족세력, 유림세력을 등에 업고 왕권을 어렵사리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혁정치의 길로 나가지 못하고 열강의 침략과 이권 분쟁에 휘말려서 1905년 본인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을사조약에서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김으로 실제로 망국의 왕이 되었다. 그의 치하에서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죽임당한 국민이 수 십 만에 이른다. 또한 굶주림과 학대를 피해서 만주로 살길을 찾아 도망간 소위 만주 이민자들이 1910년에 202,000 여명에 이르렀다. 최소한 50 여만 명의 백성이 죽거나 도망을 친 것이다.
조선 역사는 자기 만 아는 왕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지향의 신하 그룹이야 말로 인간 재앙으로서 백성의 피를 빨아 먹는 악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촛불항쟁이 막히고 닫힌 민주화, 평화에의 물꼬를 튼 것은 21세기 초반의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지금부터다. 너도 나도 촛불을 운운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앞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 집단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동원하여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촛불항쟁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지는 일이 발생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조선의 3대 망군이었던 자들은 '부지피부지기'의 존재들이었다. 자기를 나라로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몇 몇 권신들과 그 들의 당에 입을 맞추면서 국사를 이끈 혼군들이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지도자는 국민의 의지가 함축된 촛불항쟁의 의미를 알고 그 뜻을 구현하려는 자로서 혼군, 망군들과는 달리 “지피지기”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지피지기’의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지피지기'의 정치를 하려면
첫째는 자기를 알아야 한다. 우선 자기 정체를 알아야 한다. 자기가 정치인인지, 학자인지, 사업가인지, 공무원인지, 사회복지 사업가인자. 평화 운동가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업가가 최고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서로에게 불행일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학자나 연구가가 정치를 하는 것 또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학문과 연구는 분명한 대상이 있고 연구 방법이 있고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국내외를 아울러야하는 정치는 결과가 학문적인 연구에서처럼 나와 주지 않는다. 정치는 사회복지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가 사회복지 업무는 아니다. 정치가 평화운동을 포함하고 있지만 평화운동이 다 정치일 수는 없다. 정치는 밥을 먹고 자나 깨나 언제나 바른 정치에 대한 연구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며 실행에 옮기는 자의 것이다.
연구를 하면서, 사업을 하면서, 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마츄어 정치인에 불과하다. 자기의 시간과 정신과 마음을 온통 정치에 쏟아 부으며 연구하고 노력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인은 뚜렷한 국가관 위에 자기의 정치 이상, 신념, 소신이 있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구상과 대안, 보다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정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세상을 듣고 읽는 분별력, 통찰력과 인내심,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집단과 함께 하려는 포용력과 협상능력이 있어야 한다. 평화에의 의지, 정의구현과 민의와 생명존중의 의지와 신념이 분명해야 한다.
둘째는 국민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의 입장과 형편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국민에게 강요만하고 국민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자들은 아직도 봉건사회 의식 속에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은 다양한 집단과 지역의 상황과 문제, 갈등과 이해관계를 알아야 한다. 국민에게 귀를 열고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국민의 정서와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어느 누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도 국민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국가라는 장, 사회라는 장을 법 앞에 평등하며 상식이 통하며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며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과 부패, 뇌물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국민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와 함께하는 그룹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몸을 담은 정당이나 집단이 자기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와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그 집단에 몸을 담아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어진 자리와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몸담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소명으로 받았다면 다름에 대한 입장을 바르게 표명하는 것이 긴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자금과 스타정치인, 이해타산과 당리당략에 따라 떠도는 정치인은 더 이상 아니다. 가치와 정치신념으로 함께 하는 정치를 추구하며 그런 그룹에 몸을 담는 것이 정치인의 정도가 아닌가!
촛불항쟁을 자기들의 정치 선전의 기회로 삼으면서 마치 자기들의 결과물인 것처럼 생각하며 국민들을 혼란하게 만들며 이합집산 하는 자들은 아니다. 지금 친러파, 친일파, 친청파로 갈라져서 이전투구를 벌였던 조선 말기처럼 갈라지면 안 된다. 일본에게 먹힌 조선의 멸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치는 하나가 되어서 사드 배치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넷째는 국가와 민족을 알아야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언론, 교육, 국방, 기업, 자연 등등의 수준과 상황과 형편을 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살림을 펴가야 한다. 사드배치 문제가 주는 민족적 고난을 극복하고 분단국가의 지도자로서 민족적 국가적 과제와 사명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우리 민족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5000년 역사에 잇대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5000년 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과 한국의 역사가 우리가 사는 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며 우리 시대의 정치가 후대에 의해서 평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른 정치,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을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
민족의 기원을 알아야 한다. 우리 조상과 민족을 알면 우리가 친일부역자들이 강조했던 내선일체에 왜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 왜 우리가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역사를 알면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에 일본에 대하여 저자세로 일관하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벗어날 것이며 친일파 청산이 역사바로잡기로서 왜 소중한지를 안다. 역사는 우리가 결코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될 수 없으며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공동체임을 가르쳐 준다.
다섯째는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외국과 세상의 흐름을 알아야한다. 대원군은 시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었지만 쇄국정책으로 외국과 세상의 흐름을 차단함으로서 조선개혁의 기회를 안타깝게도 놓치고 말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오늘날의 정치는 나라 안의 살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매사에 나라 안과 밖이 교차하면서 새끼를 꼬듯이 사회와 문화, 정치과 경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정치인은 세계의 흐름을 읽고 한국 정치의 외연을 넓히는 외교를 하면서 실익을 추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많은 우방국을 만들며 우리를 압박해오는 강대국을 향해서 유연하게 대처할 실력과 의지와 집념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는 하나님과 국민과 역사 앞에 겸손하며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 중독 중에 가장 무서운 중독은 권력중독이다. 자기도 죽이고 국민도 죽이며 역사를 죽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한다는 것은 자기가 한계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정치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지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로 함께 정치라는 살림의 예술을 펼쳐가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낙엽이 지듯이 자연스럽게 떠나는 것이다.
‘지피지기’의 정치인을 바르게 분별하는 우리 국민들이 되어서 촛불항쟁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길 빈다. 부디 촛불 항쟁의 승리로 자족하지 말고 친일파 매국노와 같은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기회주의자 정치인들, 역대 독재자들의 주구처럼 정치철학 없이 들러리 서는 허영에 가득 찬 허수아비 정치인들, 분열을 조장하며 악독하고 위선적인 인신공격형 정치인들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준엄한 심판을 내려지길 빈다.
2017. 3. 29. 천진
우담 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