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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땅' 마나슬루 어라운드 트레킹, 윤욱현 대장님과 대원 7명의 행복했던 기억만 남길 바라며.. -
14박 16일간의 마나슬루 트레킹을 다녀온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산행 중 띄엄 띄엄 썼던 기록물을 펼쳐본다.
다녀온지 얼마 안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련하다. 여기에선 어느곳 하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오르게 하는 장소도 사물도 없다.
[첫째날.9월 25일.(월)] 광주→인천공항→카트만두 삼사라 Hotel
1년여간을 기다려온 마나슬루 트레킹.정녕 실화인가.
인천 공항에 가기까지는 참 순조로웠으나 이미 기내 탑승까지 하였는데 4시간 딜레이는 웬말이냐.게다가 비행기 교체까지.
하지만 이정도는 양호한편이라며 위안을 삼고, 드디어 네팔 카트만두 공항 입성 !
허용인원에 비해 공항 내부는 너무나도 협소하다. 짐 찾고 나오는데만 한시간 이상 소요.
공항밖에서 가이드 갈덴과 여러 스텝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꽃목걸이를 걸고 인증샷도 남겨본다.다들 들떠보인다.마치 진짜 원정대원이 된것같은 착각도 들었다.
말로만 듣던 삼사라 호텔에서 김미곤 대장님과 이은석 대원이 기다리고 계셨다.
낭파이 고숨 원정대 선발대로 미리 오셨으나 안좋은 날씨사정으로 루크라행 경비행기가 안떠서 며칠째 체류중이시다.
그리고 처음으로 맛 본 현지식 밀크티(홍차+우유). 오묘한 맛이다.
설레는 마음 가득안고 잠자리에 든다. 아직 시작에 불과할뿐인데, 앞으로 다가올 트레킹이 꽤 길게만 느껴질것 같다.
[둘째날.9월 26일(화)] 카트만두→아르갓바자르
트레킹의 시작점 아르갓바자르(*시장)라는 마을로 가기위하여 짚차로 9시간을 가야한다.
그 곳에 가면 7성급 호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원하면 닭도 잡아먹을수 있다고 하는데 불길한 생각이 엄습해온다. 하루종일 온갖 먼지를 마시며 도착한 마을이 보인다.사실 마을보다도 숙소만 생각이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을의 개념이 잘 안잡힌 상태였나보다.
Wifi 가 삼사라 호텔만큼 빠르지 않지만 방 안에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정전의 연속으로인한 더위와의 싸움과 방 안 도마뱀의 출몰로 충격의 도가니가되었다.언니들은 귀엽다고 사진까지 찍는다.
짚차를 타고 험한길을 가는 내내 '이러다 죽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상에만 그칠뿐, 울퉁불퉁 오르락 내리락 짚차에 몸을 맡겨 혼연일체가 된 채,어느순간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수십곡 혹은 수백곡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엇박자 네팔 음악을 들으며~꽤 중독성 있다.
노래도 에어컨도 모두 안나오는 차로 이동한 언니와 형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다.
'걷고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는 하루였다.
[셋째날.9월 27일(수)] 아르갓바자르→마차콜라(869m)
마차(*물고기)콜라는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큰 마을이다.
보통 산행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저녁 6시전에 끝마쳤다.
1시간 반 정도 차로 이동 후 첫 산행 시작 ! 그저 고산지대 적응만 걱정을 해왔던지라 아직은 크게 실감이 안난다.
너무나도 더웠던 하루다.고소따위야, 당장 고산지대에 오르지않으면 뜨거운 햇살에 바짝 말라 타버릴것만 같았다.
첫 날이라서 모두들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중간중간 쉴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들이다.
후회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것같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라는 생각에 시작한 발걸음.
기나긴 추석 가족,친척들과 고작 며칠을 살붙이며 있는다고,그것 또한 싫어서 장기간 여행을 택하였다.
마차콜라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풀었으나, 아직 포터들이 도착전이라서 기다렸다.
밤이면 마을에 전기가 안들어와서 랜턴을 가지고 다녔다. 25일부터 시작했다는 마을 축제도 다녀왔다.
사회자,심사위원,관객 등 소소하게나마 구색을 갖춘 소규모 마을 잔치였다. 돈 주고도 절대 못 볼 광경이다.
워밍업 첫 날이라서 긴장은 조금됐지만 내일이 기다려지고, 갈덴의 매 끼 식사 또한 기다려진다.
갈 길이 아직 멀다. 페이스 조절 잘하자.
(점심 : 비빔밥 / 저녁 : 닭볶음+피자) 갈덴의 식사메뉴는 잊고 싶지않아서 기록해두었다.
[넷째날.9월 28일(목)]마차콜라→자갓(1,340m)
그래도 전 날 잠은 어느정도 잤다.
이틀밤을 거의 몇시간 못잤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힘든 산행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아침 메뉴는 스팸과 감자조림.역시나 미토차 : ) *네팔어로 맛있다.
어젯밤 미리 카고백을 캡핑해둔 덕분에 아침 먹기 전 늦지않게 내놓을 수 있었다.
(카고백을 빨리 내놓아야 포터들이 서둘러서 먼저 출발할수있다.)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졌다. 관장님께서 세심한 아이디어를 내놓으셨다. 크린랩으로 신발이 젖지않게 다리에 테이핑을 하고, 판쵸우의를 미리 배낭 밖으로 꺼내놓았다.
막상 출발하려니 다행히 비가 잦아들었다.산행 도중 들린 식당에서 콜라 4개를 주문한 후 갈덴에게 네팔어 숫자를 배웠다.
(1,2,3,4,5 *액,뚜이,띤,짜르,빠츠)
깐치(*여자막내)인 내가 직접 계산을 해보았다. "꼬꼬콜라 짜르,꺼띠요?" 800루피란다. 후훗, 한국돈으로 콜라 1개에 2,000원이다.
고산지대로 올라갈수록 점점 물 값이 배로 올랐다.40루피>100루피>150루피>200루피. 수송에 대한 비용이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그 와중에 깎는 재미가 있다.
자갓으로 가는길에 따또바니(*온천)를 지나치며 뭉친 다리근육과 발의 붓기를 빼주었다.
두 줄기로 물이 흐르며 고여있는 물에서 족욕도 가능한, 반박할 수 없는 천연 온천이다.
아직은 워밍업에 불과하지만 그냥 저냥 큰 걱정없이 즐겁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느리게 가는 느낌이다.
한순간 한장면 소중한 한 컷을 위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려준 언니,형님,관장님께 감사하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채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해준 네팔이란 나라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나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뒤에서 계속 살펴보게 된다.
넷째날 머무른 마을에서도 어린 아이들의 춤 잔치가 펼쳐졌다. 한창 신나게 춤을 추는데 전기 배터리가 나가서 음악이 안나와
춤을 출 수 없게되자 몹시 아쉬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점심 : 떡라면 / 저녁 : 모모,감자튀김.팝콘)
[다섯째날.9월 29일(금)] 자갓→뎅(1,860m)
오늘은 1시간 일찍 기상. 출발도 1시간 반 정도 일찍하였다.
쾌적한 롯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또 거의 못잤다.고산지대를 한번 찍고 내려와야 그제서야 푹 잘 수 있으려나.
행미언니는 더워서 잠을 설쳤고, 옆 방 예빈언니와 오림언니는 푹 잘잤다고 한다.
벌레 들어오는게 싫어서 창문을 굳게 닫고 자서 룸메 행미언니까지 잠을 설치게 한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운행은 계속 관장님과 함께 맨 뒤에서 걸었다. 함께하는 트레킹이기전에 각기 다른 페이스가 있기때문에 각개전투라고도 한다.
멀쩌감치 떨어져 걸으며 서로를 응원해줄뿐이다.
트레킹 3일째. 평상시 약했던 부분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나는 왼쪽 무릎이 시큼시큼 아파오고, 예빈언니는 발목이 부어올랐다.
오림언니는 결국 스틱을 접어두고 배낭 어깨끈을 손으로 잡는다.
DSLR 사진기를 들고 고군분투하며 멋있는 사진을 찍어주시는 현철형님의 컨디션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관장님은 어깨가 아프시다. 하지만 짐을 덜어드릴수가 없다. 행미언니는 감기기운이 있어서 셀프로 약처방을 했다.
덕신형님도 분명 힘드셨을텐데 우산으로 그늘을 막으며,고수의 향기를 풀풀 풍기시며 앞장서 가신다.
판선형님은 항상 한결같은 미소로 운행을 하시기에 힘이되었다.
출발한지 2시간정도 지났을까, 뜻밖에 이름모를 흰산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렇게나 일찍 보게될지 몰랐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노력한만큼 마나슬루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겠지.옴마니 반메훔 ~ (*신의 뜻에 따라서)
관장님께서 7년전 오셨을때랑 거의 변한게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단순히 산을 오르기만 하는게 아니였다. 걷고 또 걸으며 점점 이들의 삶에 녹아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가능한 순박하면서 투박하기까지 한 네팔인의 삶.
하지만 백번이고,천번이고 생각해도 나 또한 내가 태어나고 자란곳이 좋다.
오늘부터는 체온손실을 최소화하기위해 '샤워는 절대 불가'이다. 얼굴과 발만 씻고 몸은 물티슈로. 생각보다 쾌적하다.
앞으로 점점 운행이 어려워진다고한다. 거리는 비슷하지만 고도가 높아지기때문이다.
오늘 머무르는 뎅의 높이 1,860이면 한라산보다 조금 낮은 우리에게 어느정도 익숙한 고도이다.
천천히~~비스타리~~비스타리~ 자만하지말자. 그럴정도의 몸상태도 아니다.
(점심 : 수제비 / 간식 : 컵라면 / 저녁 : 닭볶음)
[여섯째날.9월 30일(토)] 뎅→남룽(2,630m)
어젯밤 잠들기전 목이 칼칼하니 감기기운이 약간있다.
행미언니가 감기약 하나를 챙겨둔게 생각나서 꺼내다 먹을까 하다가 말았다.
하루하루 피로 누적으로 온갖 증상이 다 나타난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모든것을 다 이겨낼 수 있기를. 옴마니 반메훔~
아직은 집이 그립거나 한국에 가고싶다는 생각은 안든다.
아직은 아침 모닝콜 대신 나오는 따뜻한 차가 좋고, 갈덴의 요리가 좋고, 사람이 좋다.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좋고, 눈을 마주치며 "나마스떼' 합장하는 소리가 좋다.
소똥,말똥,당나귀똥, 똥이란 똥은 이제 익숙해져서 잘도 피해 걷는다.
물론 씻지 못해서 찝찝하고, 와이파이 사용이 자유롭지 못해 답답한건 있지만, 그뿐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고산지대로 갈수록 힌두교에서 불교문화로 정착이 되어있다고 한다. 오색빛깔 룸따가 파란하늘 아래 휘날린다.
그리고 점점 곰파(절)가 많이 보일거라고 한다. 내일이면 야크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눈이 아래로 쳐져있는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점심을 먹기 전 기다리는 동안 예빈언니와 행미언니가 손발을 씻으면서 머리도 같이 씻어내렸다.
해가 쨍하고 떴기에 금방 마를것만 같았지만, 순간 관장님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가 머리 감으라고 했어?!"
고소 예방을 위해 머리를 절대 감으면 안된다고 하셨지만 낮이기도 하고 날이 좋아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것이다.
머리가 젖은채로 바로 버프를 뒤집어썼다. '고산병..도대체 너는 누구냐..'
둘이서 버프를 쓴 채 천진난만하게 셀카를 찍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언니들,ㅎ
나랑 오림언니는 머리가 길어서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못하여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룽에 도착하기전까지 심하게 가빠르진 않았지만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졌다. 오늘까지 워밍업은 끝.
내일부터가 진짜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즐기자. 우리 마술 트레킹 8명의 진가를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오자!
자기전 감기약 한 알 먹었으니 부디 단 몇시간이라도 푹 잘 수 있기를. 양옆방의 소음 그까이꺼.
이어폰으로 틀어막고라도 자고야 말거다.방음 전혀 안됨ㅠ
(점심 : 짜장밥 / 저녁 : 야크고기+감자전)
[일곱째날.10월 1일(일)] 남룽→사마가온(3,540m)
처음으로 고소 먹은날이다.잊을수가 없다.
출발도 좋았고,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로'에서 달밧을 먹은후였을까. 오르막길이 힘겹기 시작했다.비스타리~비스타리~주문을 외워도 소용이 없다.
결국 나와 관장님은 후미에서 긴 휴식을 취한후에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어차피 저녁 먹을 시간전에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갔던지라,
덕신형님께서 중간에 마중을 나와 계실지는 몰랐다.
보통 늦어도 5~10분 정도 차이가 나는데 20분이 넘도록 기다려도 보이질 않으니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난 힘든 기색 안보이려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내 배낭을 주라고 하신다. 절대 원치 않았다.
힘든 상태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한게 아니였고 시간은 걸려도 꾸준히 천천히 갈 자신이 있었기때문이다.
관장님도 괜찮다며 배낭을 벗으라고 하신다. 멋있게 고집 피우고 싶었지만 자존심 피울 문제는 아닌것같았다.
짐은 덜었지만 결코 몸도 마음도 가볍지 않았다.
땅끝기맥 산행을 갔을때 그 중 제일 지쳐있었던 나래 언니의 배낭을 관장님과 다른분들이 나눠서 메고 갔던적이 있다.
언니가 맨 몸으로 걸으며 많이 울었었다. 여러가지 감정이 담긴 눈물이였을테다.
난 포기한게 아닌데,지금까지 해왔던것처럼만 가면 되는데..약한 모습 보이기 싫었다.
나만 모르는 신호를 덕신형님과 관장님께서 주고 받으셨나 보다. 다른분들이 쉬고 계신곳 못가서 배낭을 다시 주셨다.
내 마음을 읽으셨구나.것도 모르고. 울컥했지만 그것조차 보이기 싫었다.
그렇게 힘든 산행이 끝나고 사마가온에 도착. 오자마자 배가 고팠던지라 말린 고구마를 먹고, 침낭속으로 쏙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목도 아프고 열도 난다.
아프니까 괜히 서러워서 침낭을 뒤집어 쓰고 소리없이 울었다.
옆에서 행미언니는 약해진 면역력으로 기관지가 안좋아져서 힘들어한다.
저녁을 먹으려고 나왔는데도 속이 메스껍고 음식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갈덴에게 부탁하여 억지로 숭늉 몇 숟갈을 떴다.
(이경주 강사님께서 챙겨주신 숭늉이다.)
다른분들은 크게 이상증세는 없어보였다. 정말 헬기를 부를수만 있다면 당장이고 불러서 내려가고싶었다.
타지에서 아프니 배로 더 서러웠고 '집에 가고싶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이길 바라는건 아니지만 왜 하필.
아프니까 별별 생각이 다든다. 급한대로 타이레놀과 이뇨제를 먹고 관장님과 마을 한바퀴 돌고 오니 머리 아픔과 메스꺼움 증세는
사라졌다. 심지어 배까지 고파와서 아까 먹다 남긴 숭늉을 다시 먹으며 배를 채웠다.
다들 힘든건 마찬가지일텐데 꼭 혼자만 티나게 아파서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
고산의 맛을 제대로 보고나니 고소증세가 올 수 밖에 없었던 나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며 어떤게 문제였는지 되짚어보았다.
_첫째.초기 하계옷 입고 산행시 쉬는 타임에 겉옷 안입고 찬바람 맞음.
_둘째.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함.피로누적.
_셋째.사마가온 도착후 땀배출 안한채로 바로 침낭에 들어가서 산소공급 부족.
다음날이 걱정이다. 함께 왔으니 함께 가는게 당연한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여덟째날.10월 2일(화)] 사마가온→B.C(4,800m)→사마가온
우리의 목표지점인 랍게패스(5,106m) 산행을 위하여 오늘은 미리 하루 전 고소적응 훈련을 하는 날이다.
마나슬루 베이스캠프까지 가는게 원래 계획이였지만, 언제 화이트아웃으로 변하여 우리의 시야를 가릴지 모르는 상황으로,
선두가 오전 10시 30분까지 올라간 지점에서 다운을 하여 뒤따라오는 사람과 만나서 하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부담은 덜었지만, 내일을 위해서 어느정도는 고소적응을 하고 내려오고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무리한 산행은 독이될수 있다고 한다.
200m 정도 올랐을까. 일본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최초 일본인 산악회에서 마나슬루 등반시 만들었던 곳이다.야크 카라카도 보인다.
쉬다가 다시 운행을 시작할때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게 고소에 좋다는 팁을 얻었다. 올라갈수록 컨디션이 점점 살아남을 느낀다.
안심이다. 중간중간 간식도 먹고, 갈덴이 싸준 주먹밥과 감자도 꺼내 먹었다.
현철형님께서 자꾸 허기가 지는지 배고프시다며 뭔가를 계속 꺼내드시는데, 문득 체끼가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에 급체를 했을 당시 나도 배가고파 허겁지겁 먹고나서 며칠을 고생했던적이 있다.
역시나 속이 안좋고, 메스껍다고 하신다. 잠도 오고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자 관장님께서 현철형님을 한쪽으로 배낭에 받쳐 눕히신 후,
우모복과 판쵸우의로 바람을 막아주신다. 비상사태를 염려하시어 미리 챙겨오신것이다.
이것저것 짊어지고 온 관장님의 배낭 무게와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온 리더로서의 부담의 짐 중 어느게 더 무겁게 느껴지셨을까.
견줄수나 있을까? 그렇게 몇 분 휴식을 취하신 후 현철형님께서 몇 걸음 더 몇 미터 더 올라가신다.
꺼억-하고 소화되는 소리라도 들리면 내가 다 시원하다.
이번 트레킹에선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고소' 누구나 올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이겨내며 한걸음 한걸음 뗀 자가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나 자신에게 승자이다. 4,250m 까지 오른 후 선두를 만나서 함께 하산하였다.
올라갈때만큼 하산할때도 급 고도가 낮아지므로 천천히 페이스조절하며 내려가는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산하는 도중 화이트아웃이 된다. 당황하지 않고. 비스타리. 끝이 안보이는길을 내려가는데 꽤 먼 거리를 포터 2명이 마중 나와서 밀크차를 건낸다. 참 따뜻하기도 해라.
[아홉째날.10월 3일(화)]사마가온→다람살라(4,460m)
'제일 힘들고, 슬펐던 날'이라고 딱 한줄 기록이 되어있다.
삼도를 지나 거리가 얼마 안되는 점심 식사 장소에 시간 맞춰 가기위해 오늘 산행은 조금 늦게 시작하였다.
출발전부터 추워서 부엌에 있는 아궁이앞에 앉아서 불을 쬐어본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생각을 못했는데 얇은 춘추용 등산바지를 입은게 화근이였던것 같다.
사마가온을 떠나기전 베나레모(*토요일에 태어난 아이)라는 4살짜리 여자아이와 작별인사를 했다.
첫 날 아파서 부엌에서 펑펑 울던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이.
부엌 안 가족사진에 딸 사진은 없고, 아들들과 찍은 사진만 있기에 그 집 싸우니(*사모님)에게 물어보니,
아직 딸과 같이 사진을 못찍었다고 한다.
다음에 또 오게될 기회가 있으면,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기를 챙겨와서 선물로 사진을 찍어 주면 좋을것같단 생각을 했다.
10시간 정도 걷는 내내 아래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잠이 온다. 메스껍다. 무기력하다. 계속 그 상태로 걷고 또 걸었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고,해가 뜨면 고글과 챙모자를 쓰고, 해가 지면 벗고, 허기지기전에 먹고 마시고 반복이다.
부지런떠느라 쉴틈이 없다.
긴 나무막대로 된 체크 포스트가 끝이 없이 나오는걸 보고 결국에 화를 참지 못했다. 관장님께서는 자꾸 행복한 생각을 하라고 하시는데, 부정적이고 예민한 나만 보인다. 그렇게 기나긴 산행후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텐트가 수십동 쳐져있는 야영지같은 곳이다.
저녁을 먹은후 암흑으로 뒤덮힌 곳에서 방황을 하다 우리 스탭(쿡,포터)들이 있는 부엌을 찾았다. 어느순간 편한 안식처가 되버린 부엌.쿡이 내일 먹을 감자를 찌고있다.
따또바니(*따뜻한물)를 한잔,두잔 마신후에야 진정이 됐다. 내일은 '선두로 가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열째날.10월 4일(수)]다람살라→랍게패스(5,106)→빔탕(3,590m)
D-DAY.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쓸만한 체력은 아니지만 온 힘과 정신력을 쏟을 각오로 출발이다.
저 멀리 덕신형님이 보일듯 말듯 선두로 가신다.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간다. 그 뒤로 행미언니가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 서다를 반복한다. 난 어제했던 각오대로 앞장서 갔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고, 허기지기전에 먹고, 오르막길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으면 물을 마시어 수분섭취를 충분히 한 후 헤치고 나아갔다. 관장님과 함께 걸으면서 본대로, 들은대로 그렇게 올라갔다.
오늘의 산행을 위해 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리더인 관장님께 첫날부터 꾸준히 내 상태를 보고하고 어필하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발에 물집 잡힌것 하나조차 나에게,우리팀에게,그리고 우리 일정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수도 있기때문이다.
매 아침마다 측정했던 산소포화도와 맥박의 수치는 수치일뿐, 그 외에것들은 알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팠다.표현했고,이겨냈다. 모두가 고맙게도 이겨냈고 안전하게 랍게패스를 통과하고 빔탕까지 하산하였다. 그 다음날 다라파니(1,860m)까지 내려와서야 7일만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신기하게도 와이파이가 터진다.
우리의 히말라야 산행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
이번 마술 트레킹은 내 인생에서 고작 16일을 차지할 뿐인데도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였다.
무엇을 크게 얻기위해 시작한건 아니였지만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가는곳은 단지 돈을 주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노력해서 올라간만큼 볼 수 있는 새롭고 경이로운 곳이였다.
발 길 닿는 곳 모든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구슬땀 흘려 일궈낸 농부의 한 해 수확물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용기도 생겼다. 여전히 혼자 산행은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나와 내 동반자를 챙길 수 있는 자신감은 붙은셈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건 네팔이란 낯선 나라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온 것이다.
산이 항상 제자리에 있듯 내가 다녀온 네팔 또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있겠지.이번 트레킹을 추억하며 다음에 꼭 한번 다시 가보고싶다. 각자 이번 트레킹에서 느낀것도 얻어가는것도 다르겠지만, 함께하여 행복했던 순간만큼은 오래오래 간직하였으면 좋겠다..
첫댓글 깐치 덕분에 다시 한번 생생하게 기억이 다 나고만 ㅋ
힘들었던 것 보다는 좋았고 즐거웠던 것들이 더 많아서 행복했던 트레킹이였어
벌써 추억이 된다는 생각에 서운하긴 하지만 그 추억으로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질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최고의추억이 아닐까 싶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꼭 가보자 콜~~??
부럽고 재미있네요 한 10년이상은 우려먹을수 있는 추억 만들어온것 같네요
글이 진솔하게 잘 써졌네? 올~ 의외인걸 ㅎㅎㅎ
고생했고, 같이 다녀온것마냥 생생하다 그리고 많이 부러워
함께한 듯 글이 생생하다.
많이 힘들었던 트래킹 이었던것 같은데 잘 극복하고 이겨내서 대단하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번 여행이 큰 밑거름이 되리란 생각이 드는구나.
안전하게 잘 다녀 온 우리 회원분들 짱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