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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
안데르센(H. C. Adersen 1805-1875)
윤후남 역(2004), 서울: 현대지성사
해가 저물어 가는 추운 어느 겨울날,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는 어두운 거리를 한 소녀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난한 그 소녀는 맨발에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다. 사실 소녀가 집을 나설 때엔 슬리퍼를 신고 있었으나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추위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 슬리퍼는 소녀의 어머니가 신던 것으로 너무 컸기 때문에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두 대의 마차를 피하려고 서둘러 길을 건너다 그만 벗겨져 나가고 말았다. 소녀는 슬리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한 짝은 찾을 수가 없었고, 다른 한 짝은 사내애가 가지고 달아났다. 동생을 갖게 되면 요람으로 쓰겠다면서. 이렇게 해서 소녀는 추위에 검붉어진 맨발로 거리를 걷게 된 것이다. 소녀의 낡은 앞치마에는 한 무더기의 성냥이 있었고 한 다발은 손에 들려 있었다.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팔러 다녔지만 성냥을 사는 사람도, 소녀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소녀는 추위와 배고픔에 덜덜 떨면서 기다시피 살살 걸었다. 어깨를 내리덮은 긴 금발 머리 위로 눈송이가 떨어졌지만 소녀는 무표정했다.
집집마다 창문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왔고 거리에는 거위 고기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그윽했다. 그 날은 마침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소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처마가 쑥 나와 있는 집 사이의 귀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발을 깔고 앉았지만 추위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녀는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냥을 한 개비도 못 팔았으니 집으로 가져 갈 돈이 없었고, 그걸 알면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집이라고 해서 여기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눈비를 막을 지붕뿐이었으며, 짚과 넝마로 커다란 틈새를 막긴 했지만 세찬 바람이 지붕을 뚫고 들어왔다. 소녀의 작은 손은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아!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면 손가락을 녹일 수 있을 텐데!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빼냈다.
“치직!” 성냥개비가 타면서 얼마나 따뜻한 소리를 냈던가. 작은 불꽃은 작은 촛불처럼 따뜻하고 밝은 빛을 냈다. 소녀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번쩍이는 놋쇠발과 장식이 달린 커다란 난롯가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는 불꽃이 너무도 따스하게 보여 두 발을 녹이려고 뻗었다. 그러나 불꽃은 이내 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난로도 사라져 버렸다. 소녀의 손에는 반쯤 타다 만 성냥 고투리만 남아 있었다.
소녀는 새 성냥개비를 꺼내 벽에 그었다. 그러자 환한 불꽃이 타오르면서 벽을 비추었다. 벽이 베일처럼 투명해지더니 방안이 들여다보였다. 눈처럼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위어에는 맛있는 음식과 거위구위가 차려 있었는데, 사과와 자두로 채워진 잘 구어 진 거위구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위가 접시에서 뛰어내려 뒤뚱거리며 방바닥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에 칼과 포크가 꽂힌 채, 바로 그 때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다. 이제 보이는 것은 두껍고 차가운 벽뿐이었다.
소녀는 또 하나의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제 소녀는 멋진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앉아 있었다. 그것은 성탄절 전날 밤에 소녀가 부유한 상인 집 유리문을 통해 본 나무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푸른 가지에는 수천 개의 촛불이 타올랐고, 진열장에서 본 것과 같은 색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그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녀가 나무를 향해 손을 뻗자 성냥불이 꺼져 버렸다.
크리스마스 촛불들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였다.
그때 별 하나가 화려하게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누가 죽어 가나봐!” 하고 소녀는 중얼 거렸다. 이 세상에서 소녀를 사랑해 주었던 단 한 사람인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녀에게 얘기해 주었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느님의 품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소녀는 다시 성냥불을 켰다. 그러자 주위가 환해지면서 불빛 속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로 서 계셨다.
“할머니! 절 데려가 주세요. 성냥불이 꺼지면 가 버릴 거죠? 따뜻한 난로처럼 맛있는 거위구이처럼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사라졌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실 거죠?” 소녀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남아있는 성냥 더미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를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성냥 더미에 불이 붙자 주위가 대낮보다 더 환해졌다.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거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고 밝은 빛을 내며 지구 너머 먼 곳으로 아주높이 올라갔다. 그곳에는 추위도 배고픔도 고통도 없었다. 바로 하느님 곁이었으니까.
다음날 새벽, 어슴프레한 빛을 받으며 길모퉁이에 한 가엾은 소녀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뺨은 창백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날 밤에 얼어 죽은 소녀였다. 새해의 태양이 떠올라 죽은 소녀 위에 빛을 뿌렸다. 소녀는 타 버린 성냥 다발을 손에 쥔 채 시체가 되어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쯧쯧 몸을 녹이려고 했던 게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으나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새해 아침에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영광스런 나라로 갔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The Little Match Girl
by Hans Christian Andersen (1846)
It was terribly cold and nearly dark on the last evening of the old year, and the snow was falling fast. In the cold and the darkness, a poor little girl, with bare head and naked feet, roamed through the streets. It is true she had on a pair of slippers when she left home, but they were not of much use. They were very large, so large, indeed, that they had belonged to her mother, and the poor little creature had lost them in running across the street to avoid two carriages that were rolling along at a terrible rate. One of the slippers she could not find, and a boy seized upon the other and ran away with it, saying that he could use it as a cradle, when he had children of his own. So the little girl went on with her little naked feet, which were quite red and blue with the cold. In an old apron she carried a number of matches, and had a bundle of them in her hands. No one had bought anything of her the whole day, nor had anyone given her even a penny Shivering with cold and hunger, she crept along; poor little child, she looked the picture of misery. The snowflakes fell on her long, fair hair, which hung in curls on her shoulders, but she regarded them not.
Lights were shining form every window, and there was a savory smell of roast goose, for it was New-year's eve-yes, she remembered that. In a corner, between two houses, one of which projected beyond the other, she sank down and huddled herself together. She had drawn her little feet under her, but she could not keep off the cold, and she dared not go home, for she had sold no matches, and could not take home even a penny of money. Her father would certainly beat her; besides, it was almost as cold at home as here, for they had only the roof to cover them, through which the wind howled, although the largest holes had been stopped up with straw and rags. Her little hands were almost frozen with the cold. Ah! perhaps a burning match might be some good, if she could draw it frorm the bundle and strike it against the wall, just to warm her fingers. She drew one out-"scratch!" how it sputtered as it burnt! It gave a warm, bright light, like a little candle, as she held her hand over it. It was really a wonderful light. It seemed to the little girl that she was sitting by a large iron stove, with polished brass feet and a brass ornament. How the fire burned! and seemed so beautifully warm that the child stretched out her feet as if to warm them, when, lo! the flame of the match went out, the stove vanished, and she had only the remains of the half-burnt match in her hand.
She rubbed another match on the wall. It burst into a flame, and where its light fell upon the wall it became as transparent as a veil, and she could see into the room.
The table was covered with a snowy white table-cloth, on which stood a splendid dinner service, and a steaming roast goose, stuffed with apples and dried plums.
And what was still more wonderful, the goose jumped down from the dish and waddled across the floor, with a knife and fork in its breast, to the little girl. Then the match went out, and there remained nothing but the thick, damp, cold wall before her.
She lighted another match, and then she found herself sitting under a beautiful Christmas-tree. It was larger and more beautifully decorated than the one which she had seen through the glass door at the rich merchant's. Thousands of tapers were burning upon the green branches, and colored picture, like those she had seen in the show-window, looked down upon it all. The little one stretched out her hand toward them, and the match went out.
The Christmas lights rose higher and higher, till they looked to her like the stars in the sky. Then she saw a star fall, leaving behind it a bright streak of fire. "Someone is dying," thought the little girl, for her old grandmother, the only one who had ever loved her, and who was now dead, had told her that when a star falls, a soul was going up to God.
She again rubbed a match on the wall, and the light shone round her; in the brightness stood her old grandmother, clear and shining, yet mild and loving in her appearance. "Grandmother." cried the little one, "O take me with you; I know you will go away when the match burns out; you will vanish like the warm stove. the roast goose, and the large, glorious Christmas-tree." And she made haste to light the whole bundle of matches, for she wished to keep her grandmother there. And the matches glowed with a light that was brighter than the noon day, and her grandmother had never appeared so large or so beautiful. She took the little girl in her arms, and they both flew upwards in brightness and joy far above the earth where there was neither cold nor hunger nor pain, for they were with God.
In the dawn of morning there lay the poor little one, with pale cheeks and smiling mouth, leaning against the wall she had been frozen to death on the last evening of the year; and the New-year's sun rose and shone upon a little corpse! The child still sat, in the stiffness of death, holding the matches in her hand, one bundle of which was burnt. "She tried to warm herself." said some. No one imagined what beautiful things she had seen, nor into what glory she had entered with her grandmother, on New-year's day.
***The Complete Fairy Tales and Stories Translated from the Danish by Erik Christian Haugaard Anchor Books Doubleday, New York.
첫댓글 벌써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머니 슬리퍼라는 것에서 더욱 모성적 측면과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와우!! 벌써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