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거 쿼더(Sieger Köder, 1925-2015)는 독일의 가톨릭 사제이자 화가이다.
그는 표현주의 기법으로 20세기 그리스도교미술을 강력하고 다양하게 해석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그림으로 표현한 설교자”이다.
그가 그린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마태오복음 25장 31-46절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으로 우리를 새로운 묵상에로 이끌어준다.
그림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먼 곳으로
성경말씀의 순서대로 여섯 개의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맨 앞에 손을 내미는 검은손과 빵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손에서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왼쪽의 펼쳐져 있는 검은손에 예수님의 못자국 상처가 보인다.
시커먼 손바닥에 있는 붉은 핏자국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세상의 상처 안에 숨겨져 있는 예수님의 상처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검은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가장 보잘것없는 우리 주변사람이고 그가 바로 세상 안에 있는 예수님이다.
빵을 쪼개고 있는 손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손이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셨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보라색 옷을 입은 검은 수염의 남자에게 물을 따라주는 장면에서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여인은 유리주전자의 물을 빈 잔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따라주고 있다.
남자는 양손으로 작은 물 잔을 쥐고 맞은편에 있는 여자에게 물을 청하고 있다.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듯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이 여인의 시선은
자비와 연민의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빈 잔을 쥐고 있는 남자의 시선에서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된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자,
사마리아 여인이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운데는 문이 열려있고 파란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길가는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모자를 쓴 남자가 나그네라는 것은
그가 입고 있는 두꺼운 옷과 오른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로 알 수 있고,
그의 등 뒤에 있는 노을은 날이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문간에 서있는 나그네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젊은 여자는 양손을 나그네의 어깨에 얹으며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아들이고 있다.
타인을 맞이하는 것은 열린 마음일 때 가능하다.
그 타인이 바로 예수님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작가는 나그네를 수염이 있는 예수님처럼 그렸다.
문 옆에 붙어있는 검은 포스터에는 옷을 벗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포스터 아래에는 한 수녀가 누워있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데,
그 환자는 예수님의 모습처럼 느껴지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수도복을 입은 여자는 작은 잔을 들고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정성껏 간호해주고 있다.
병자는 오랜 병고에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지만 수녀의 모습은 생기가 있고 밝게 그려져 있다.
우리는 그 수녀의 모습에서 빈자의 어머니 성 마더 데레사를 연상하게 된다.
우리가 보살피는 모든 환자에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수복을 입은 사람을 감싸 안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상단 왼쪽에는 쇠창살이 있는 작은 창문이 있고 그 창문은 내다보기 힘든 높이에 있어
일반 창문과는 다른 감옥을 표현하고 있다.
그 창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이 감옥의 사람을 비춰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늘진 곳에 한 남자가
손목이 묶여있고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 죄수를 안고 있다.
지금 죄수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홀로 작은 감옥에서 고독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방문객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다.
감옥에 갇힌 이도 바로 가장 보잘 것 없는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는 손이 강조되고 있다.
제일 앞쪽에 있는 검은 손은 때 묻은 손이고 예수님의 상처가 선명하게 박혀있는 손이다.
검은 손은 빵을 쪼개고 있는 손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큰손으로 빵을 나누는 두 손의 중압감은 전체 그림을 주도하며,
다른 손의 의미를 더욱 부여하고 있다.
을 따르고 있는 손과 물 잔을 쥐고 있는 손, 두 팔을 벌려 나그네를 맞이하는 손,
환자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는 손, 죄수를 감싸 안고 있는 손과 묶인 이의 손에서
참된 자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화가는 맨 앞에 있는 빵을 나누는 손과
검은 손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가 이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이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이 얼굴 없는 손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가난한 사람의 검은 손이 그려져 있다.
손은 애타게 먹을 것을 바라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먹을 것을 주는 손과 도움을 청하는 손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우리는 지금 어떤 손의 주인공인가?
첫댓글 성화 감상하는데 설명이 잘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묵상에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관심 부탁드려용^_^
저 검은손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지하도 입구에서 엎드린채 검게 때묻은 손을 뻗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적선하는 마음으로 천원짜리 한 장 바구니에 넣으면서 "참 안됫다" 하며 지나쳐 왔던게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그 손이 예수님의 손이었다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뭐라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