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이야기 / 조정진 / 사회300 / 후마니타스 / 2020
별점과 소감
5점 만점에 4.4점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저자의 '경험치'이다. 저자는 고용 불안정의 비정규직 노인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버스배차원, 아파트 경비원, 빌딩 경비원, 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약 3년을 근무한 기록을 책으로 썼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갑질과 과중한 노동,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 하는 삶을 담담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이야기 한다. 책 속의 문장들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저자가 되기도 하고, 그 가족이 되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그 반대편에서 갑질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 발췌
- ‘개인연금에 가입한 지 20년이 넘었기에 노후에 상당한 보탬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국민연금은 62세부터 받을 수 있지만, 60세부터 받겠다고 신청했더니 담당자는 그렇게 하면 조기 수령이 되어 평생 동안의 월 수령액이 많이 줄어든다고 적극 말렸다.’15쪽
(38년간 일했으면 노후에는 편안히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삶에는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 ‘당신이 신입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놀랐소. 내가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없으니까. 지금 동명고속이 운행하는 버스 노선이 둘인데 최근에 하나를 더 인수했소. 운행 노선 하나마다 최소 한 명씩 있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난 지금까지 그걸 혼자서 해왔소. 이 회사는 사업을 확장했으면서도 최저임금이 올라 사람을 추가로 쓸 수 없다면서 나 혼자 세 개 노선을 다 하라고 밀어붙입디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충원을 안 해주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고 한 번 말해 본 건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네.“ 23쪽
(25년간 근무한 직원을 그만두게 하는데도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순진한건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버스 회사에서 내 임계장 생활은 그것으로 끝났다. 잘리고 난 다음날, 생활정보지에는 동명고속에서 배차 계장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려 있었다. 석 줄짜리 짤막한 구인 광고였다. 다만, “근골격계가 좋은 건강한 분”이라는 문구가 고딕체로 추가돼 있었다. 46쪽 (소화물을 싣다가 다쳐서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는데 돌아온 건 해고였다. 임시계약직노인장의 아픔이 느껴진다.)
-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하려 한 내게 세상은 준엄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체 아파트 경비원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숨까지 내던지게 되었을까? 그가 견디지 못한 “민원과 폭언”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순간적 분노로 저지른 일은 아닐 것이다. 켜켜이 쌓인 울분이 퇴적층의 가스로 농축되어 있다가 불티가 던져지자 한순간에 타오르고 만 것이리라. 만일 어제 아침에 이 뉴스를 봤더라면 나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원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64쪽
(아파트경비원의 자살 뉴스를 접하고 생각이 많은 저자의 모습이다.)
- 경비원을 시작할 때 선임자가 해 준 첫 번째 충고는 주민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투면 항상 졌다. 내가 옳으면 주민은 항상 더 옳았다. 69쪽
(절대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우리는 제복을 바라볼 때 어떤 힘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제복을 볼 때는 무시를 느끼기도 하나보다.)
- 힘없는 노인들의 심부름은 힘이 조금 남아 있는 내가 기꺼이 해드렸다. 그러나 멀쩡하게 젊은 사람들의 심부름은 기꺼이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거절하기는 더 어려운 노릇이었다. 81쪽
(호의가 지나치면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파트 경비업무를 하는 분들이지 심부름꾼이 아닌데 호의로 시작해 준 일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뇌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이다. )
- 높이 자란 나무에 사다리를 걸치고 톱을 들고 올라가야 하는 가지치기 작업은 정말 위태롭다. 나무 위에서 아래를 보니 까마득한 높이에 현기증이 난다. 밑에는 추락에 대비한 매트 한 장 없다. 공중에 올라가 있으면 전동톱을 쥔 손이 후들거린다. 사다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심을 잃고 사다리와 사람이 함께 무너진 일도 있었다. 구경하는 주민들은 나무 꼭대기에서 겁을 먹고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재미있어 했지만, 공중에 매달린 나는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면 끔찍한 순간을 견뎌야 했다. 일용 시급자의 안전은 항상 위태롭다. 84쪽
(그 위험한 작업을 보면서 재미있어 한다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해 가는 것일까? 무뇌인 것일까?)
-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 십 번씩 손을 씻는 이가 경비원 말고 누가 있을까? 우리의 손은 하루 종일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는 손이지만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87쪽
(계속 씻어야 하는 손... 깨끗한 손은 일을 하지 않은 손일 수도 있지만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손일 수도 있다.)
-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 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생계 앞에서 호기롭게 그만둘 수 없는 현실이 타협을 가르친다.)
- 어느 이른 새벽에 꽃봉오리를 털어 내는 그의 모습을 봤다. 대빗자루로 사정없이 털어 내자 봉오리들이 힘없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중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 맺혀 있는 봉오리까지 다 털어냈다. 꽃봉오리들은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원망을 토해 내듯 땅에 부딪히자마자 마지막 힘을 다해 품고 있던 꽃잎들을 토했 냈다. 피지도 못하고 봉오리로 소멸하는 꽃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181쪽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반대적으로도 생각해 볼 일. 또 오죽하면 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상황)
- 난 다시 실업자가 됐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게는 가족이 있고 다시 일터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젠 시급 일터가 두려웠다. 살길이 캄캄했다.
207쪽
(상식적인 사람이 일자리에서 해고되는 사회.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힘드셨는데 왜 가족과 함께 나눌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
- 대기업답게 경비원의 업무 법위는 문서로 규정돼 있었다. 제1호에서 제9호까지 나열돼 있는 업무들은 경비직의 일상적인 규정들이다. 그러나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인 규정이 하나 더 있다. 경비원에게 시킬 수 있는 업무를 경비 관련 제반 업무로 특정하지 않고, 막연히 제반 업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무한정 확장시킬 수 있는 독소 조항이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 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와 굴레가 됐다. 219쪽
(대기업의 횡포,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부터 찾는가보다.)
- 이 곳에서 경비원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상무였다. 그는 경비원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법도 없었다. 다만 틈만 나면 쓰레기 봉투와 핀셋을 들고 화단이나 야외무대 뒤편 등 후미진 곳을 찾아다니며 숨어 있는 꽁초와 쓰레기를 주웠다. (중략) 조금 전에 청소를 했는데도 상무님은 꼭꼭 숨은 꽁초와 씹다 버린 껌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러고 나면 그는 꼭 전리품이 가득 든 쓰레기 봉지를 높이 쳐들어 보였다. 그것은 청소와 흡연 단속을 게을리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면 현장팀장이 경비원을 집합시켰다. 223쪽
(그 상무는 자신이 한 행동으로 경비원들을 질책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생각해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 이처럼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 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250쪽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라고 말하는 관리자가 있다는 이야기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정말 뇌구조가 궁금하다.)
-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6항에 따르면,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인권 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번 논의는 법원이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 이외의 잡무를 시키는 것을 위법으로 해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논의의 주체는 정부(국토교통부, 경찰)와 공동주택 관리업체였고,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경비원은 제외돼 이었다. 힘 있는 여론 주도층의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며, 아파트 입주다 대표회의연합체, 주택관리사협회 등 아파트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도 많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벌써부터 경비업법이나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서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국토교통부와 경찰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것이 아파트 주민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252~253쪽
(당사자들이 제외된 법 개정 논의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 아내 매원, 둘째 출산을 앞둔 딸 아명이, 사위 황서방.... (중략)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259쪽
(가족을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에 그 어떤 문장보다도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대안은 제시하진 않는다. 그건 우리들의 몫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