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처럼
故 박종철 수필가
가자미로 태어나 가자미처럼 납작하게 살았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물밑에서 접시처럼 엎디어 살았다. 넓은 바다가 두려워 선 듯 멀리 헤엄쳐 보지도못한 채 곁눈질하며 몸을 사렸다. 주위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한시도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다. 귀신같은 발로 숨통을 되는 문어와 잽싸고 날카로운 이빨의 상어와 통째로 먹이로 들이키는고래와 같으 santlan시한 사냥끈들을 피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살았다.
그러다 보니 눈은 사시로 변했고 세상 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동네 주변만 맴돌며 살았다. 겁쟁이인 나는 다급해지면서 모래톱 속으로 숨기도 하고 눈에 띄기 쉬운 하얀 배는 바닥에 깔고 거무스름한 등을 보호색으로 하여 사냥꾼들을 따돌리며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였다. 모래톱에 엎드려 플랑크톤이나 갑각류, 작은 조개등을 잡아 먹으며 연명했다.
그물망에 갇힌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면서도 꿈 하나는 버릴 수가 없었다. 햇빛이 모래 바닥까지 들어와 우리 동네를 수정같이 환하게 밝혀주는 물 밖의 세상을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회가 오면 햇살 쏟아지는 세상으로 나가 오색무지개가 걸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고 싶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저지리러놓은 공해 때문에 먹이들이 줄어들고 쉼쉬기조차 힘들어지자 분이네와 이웃들도 떠나서 마음은 모래무덤처럼 썰렁해졌다. 하루종일 모래를 뒤지며 먹이를 찾아보지만 끼니를 거를 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침을 삼키게 하는 먹이가 눈앞에서 알찐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었다. 공짜먹이가 눈앞에서 살랑거리는데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날쌔게 먹이를 챘다. 순간 의선택이 꿈에도 그리던 밝은 세상으로 뛰어오르게 한 것이다. 환희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되는구나. 하지만 꿈은 잠시뿐, 사람들이 유혹한 낚시에 걸려 버둥거리게 되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보았지만 꿈은 유리파편처럼 산산 조각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귀를 울렸다.
끝내는 남향진 어촌식당 수족관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좁은 수족관 안에는 같이 접혀온 이웃들과 재빠른 오징어아줌마, 굼뜬 우력아저씨들도 붙들려 와 죽음을 기다른 사형수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런 죄명도 없이. 식당주인 아주머니는 손발이 잽싸고 부지런하다.
이 집의 인기 종목은 가자미회무침과 회덮밥이다.
망치 매운텅 또한 일품이다. 날카로운 난도질로 육신은 갈기갈기 찢겨져 큰 그릇에 담겨지고 생살에다 시고 매운 붉은 초장을 쏟아붓고 양배추와 버무려 회무침으로 둔갑하게 된다. 육질은 담백하고 단백질도 풍부하고 잔뼈가 오독오독 씹히는 맛에 이 식당은 문전상시를 이룬다.
식당 벽에는 강원도 강릉시 남항진 어촌주민들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06.11. 1 이명박
이명박 전태통령이 남항진을 방문하였을 때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남긴 글이다.
우리 가족은 아따금 남항진을 찾는다.
남항진과 안목을 이어주는 솔바람 다리가 아치형으로 아름답게 걸렸고 죽섬이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파도소리, 갈매기소리로 귀를 달래고 그네에 앉아 마음을 출렁거려 보기도 하고, 먼 수평선을 시선을 던지며 파도처럼 설렜던 젊은 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제 경포와 안목고 남항진이 이어져 주말이면 자동차와 사람들이 북적이고 음식점,카페들이 성시를 이룬다. 우리 가족은 입맛이 궁할 때 솔바람 다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남항진 어촌식장을 찾아간다. 상큼하고 부드러운 가자미의 육질과 잔뼈를 오독오독 씹으며 회무침의 진미를 맛보기도 한다.
가자미는 구워서, 끓여서, 쪄서 먹기도 하고 회로,식혜로 뼈까지 몽땅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가자미는 하늘의 무심한고 억울함이 남아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채 사람들의 입을 흘겨보며 원망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도 가자미처럼 살아온 것 같다. 가자미처럼 용기가 없어서 먼 바다를 헤엄쳐 나가 보지도 못하고 한 지역에서만 맴돌았다. 문어처럼 은밀하게 다가가 흡혈귀 같은 다리로, 목은 이빨로 먹이를 두 동강 내는 민첩함고 잔인함도 배우지 못하였다. 고래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배포와 능력도 갖추지 못한 죄로 숨죽이며 살았다.
세상살이에 서툴러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 살면서 불만이 가득한 사시 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흘겨보며 살았을까. 담백하고 부드러운 가자미의 속살을 씹는다. 뼈까지 오독오독 씹으며 입맛을 연신 다신다. 가자미회무침이 참 맛있기도 하다.(끝)
-강릉가는 길 제 18집300p-304P 실린 글
첫댓글 아무리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나타낸 글이라 하더라도 표현하는 말만은 쉽게 써야 한다는 수필 원칙을 다시 생각해 보며 생전의 선생님을 그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