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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과 함께한 설악산 산행 2
1. 일자 : 2010. 5. 21-22 (석탄일)
2. 장소 : 설악산 (1708m)
3. 행로 및 시간
[한계령(13:12, 920m) -> 전망바위(14:16, 중식) -> 다리(14:55) -> 서북능선 삼거리(15:05, 끝청 4.2km) -> 1474봉(16:41) -> 나무개선문(17:41) -> 끝청(18:00) -> 끝청갈림길(18:48, 소청/대청 0.6km) -> (노을/참꽃) -> 소청봉(19:12) -> 소청대피소(19:25) -> (1박) -> 소청대피소(05:45) -> 소청봉(06:04) -> 이정표(06:29, 소청봉/희운각 650m) -> (전망데크) -> 희운각(06:58) -> (휴식) -> 무너미고개(07:20, 소공원 8.3km, 양폭 1.8km, 마등령 4.9km, 대청봉 2.5km) -> 천당폭포(08:31) -> 양폭(08:40) -> 양폭대피소(08:47) -> 칠선곡입구(09:18, 580m, 비선대 2.6km) -> 귀면암(09:42) -> (중식/탁족) -> 비선대(11:03) -> 설악동(11:47)]
< 설악산 산행을 준비하며 >
1953년 인류 최초로 8000미터급 고산 무산소 단독등정에 성공했던 오스트리아 산악인 헤르만 볼은, 낭가파르밧을 등정하면서“나는 준비했습니다. 내 생애는 당신(낭가파르밧)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내가 아직 당신을 몰랐을 때에도 모든 것은 그 준비였습니다”라는 말로 경외의 대상인 산에 대한 존경심과 철저한 준비의 과정을 피력하였다.
당시 열악한 장비사정으로 인해 8000미터급 고산의 등정 성공여부는 가벼운 산소 마스크의 개발 여부에 좌우될 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무산소로 인간한계의 극점 에베레스트 8000미터 고봉을 오른 그의 의지와 실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모름지기 등산가라면 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새로운 산에 도전하는 정신과 준비 과정에서의 철저함을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내게 있어서, 헤르만 볼의 낭가파르밧과 같은 존재이다. 사실 짧지 않은 등산의 여정에서 늘 마음 속으로는, 신록이 돋기 시작한 봄이나, 운무로 덮인 여름이나, 단풍이 물든 가을이나, 하얀 눈 세상으로 변한 겨울이나, 언제나 우람한 암릉의 장관이 펼쳐진 공룡을 그리고 있었다.
흔히 취미 삼아 등산을 하는 사람과 이른바 ‘산꾼’을 구분하는 잣대 중 하나는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을 올라 보았느냐는 것이다. (백두대간과 정맥들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산꾼의 경지를 넘어선 ‘산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나름 정의하고 싶다.) 그간 지리산 종주는 작년에 다녀왔고, 설악과 지리의 여러 코스를 섭렵했으며, 100명산 중 절반을 올라 보았고, 이제 공룡능선만 넘고 나면 스스로를 산꾼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경외로운 산에 대한 자만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등산 인생의 한 단계를 도약해 보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
이번 설악산 등산은 작년 초여름 동료들과 함께한 대청봉 등산이 나름 인기가 있어 2탄으로 준비한 것인데,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면 참가자가 늘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줄어드는 현상을 반복하다가, 결국 3명의 정예요원만이 참가하기로 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벤처와 등산은 많은 것이 닮아 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가 그렇고, 초반 오르막의 힘겨움, 정상으로 향하는 힘겹고 또는 지루한 과정, 왜 도전했을까 하는 후회, 정상에서의 희열, 예기치 못하는 하산의 힘겨움, 그리고 무사귀환(지속성장)과 또 새로운 산을 향하는 마음… 등등이 벤처와 산의 공통점이다.
가야 할 등산코스를 마음 속에 드려본다. 첫 날 한계령에서 대청까지는 작년에 가 보았고 날씨도 산행하기에 최적인 시기인 만큼 5시간이면 충분한 것이니, 서북능선의 장엄한 풍광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어 보자. 대청에서 소청대피소까지의 짧은 산행으로 첫 날의 여정을 마무리하면 오후 5시 즈음이 될 것이다. (실제로는 버스가 연휴로 늦게 도착했고 산행시간이 더 걸려 7시간 넘어 소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해질녘의 하늘을 안주 삼아 소주도 한 잔 해야겠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소청대피소에서 선잠을 자다 새벽을 맞을 것이며, 졸린 눈으로 다시 행장을 꾸려 희운각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을 것이다.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을 넘을 마음에 준비를 하고 신선대, 1275봉, 나한봉을 넘어 마등령에 도착하여 공룡을 넘은 감격을 맛 볼 것이다. (실제는 공룡 대신 천불동으로 하산하였다.) 힘겨운 다리를 이끌고 하산하는 길은 비선대까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일 것이고, 마지막 힘을 내어 설악동까지 내려와 길었던 1박 2일의 여정이 마무리 될 것이다. 총 등산시간은 15시간을 예상해 본다. 거리로는 근 23km의 먼 거리이다. 만약 둘째 날 아침 몸에 무리가 생기는 동료가 생기면 가차없이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기로 마음 속에 다짐한다. 등산의 완성은 ‘무사히 집으로’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ㅅ 산악회’에 전화를 하여 예약을 마치고, 짐을 꾸린다. 40L 배낭에 옷가지와 코펠, 버너, 가스를 넣으니 벌써 꽉 찬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므로 소주는 팩으로, 3끼 밥은 비닐에 담고, 반찬은 최소화 했다. 행장 준비를 마치고 한 번 메어 보니 무찔하다. 오르지도 못하고 무게에 짓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석가탄신일 아침, 부처님의 자비가 내 산행 길에도 비추기를 기원하며 장도에 나선다.
< 희망사항 >
주초부터 비가 주절주절 내린다. 그것도 많이. 주간일기예보에는 토요일 비가 예상된다 한다. 하늘이 하시는 일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먼 길 가는데 가뜩이나 무거운 배낭에 비옷까지 더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지난 주 명지산엘 다녀 왔다. 나름 공룡능선을 넘기 위한 테스트 산행이었는데, 1000m 가 넘는 고도 차를 이기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5시간 만에 주파했는데도 몸은 별 피로를 느끼지 못했을 만큼 최근 몸 컨디션이 좋다. 금요일 대청까지의 산행에서 체력 안배를 잘 해서, 소청에서 토요일 아침을 맞을 때도 공룡을 넘을 힘이 남아 있기를 바래 본다.
산에 다니며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설악은 모든 면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니, 오늘 날씨가 좋다면 설악의 명징하고 장엄한 파노라마가 한 눈에 들어올 것이며, 흐린 날이라면 연무에 젖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경험할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있는 그대로의 산을 즐기고 싶다.
끝청에서 돌아 보는 서북의 긴 능선 길의 장엄함, 대청에서 맛보는 또 무언가를 해 냈구나 하는 성취감, 귓부리에 이는 소청의 저녁 바람,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달 빛을 안주 삼은 소주 한 잔의 추억, 저 멀리 아스라한 속초 바다의 비릿한 내음, 별이 바다 물결에 던지는 빛 그림자, 산에서의 첫 날 밤의 설렘, 소청에서 맞는 서늘한 새벽 기운과 일출, 공룡 바위 틈에서 살포시 얼굴을 내민 수줍은 들꽃, 공룡에 뼈대 위에 서 맞는 아침 공기와 암릉의 파노라마, 비선대의 푸른 물빛 그리고 설악동에서 맛보는 막걸리 한 잔 등이 내가 설악에서 기대하는 것들이다.
* 여기까지는 금번 설악 산행을 준비하며 출발 전 틈틈이 정리한 것인데, 당초 공룡능선을 목표로 출발한 산행은 여러 사정으로 실제로는 천불동계곡으로 내려 오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었다. 물론 공룡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처음 가보는 천불동계 곡의 절경도 평생 못 잊을 모습이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 한계령 가는 길에서 >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날씨가 맑고 공기는 서늘하다. 인덕원에서 박차장을 만나 버스에 오른다. 커다란 버스에 덩그러니 둘 만 타고 출발한다. 사당에서 장책임과 합류한다. 복정에서 마지막 손님들을 때우고 버스는 한계령으로 향한다.
버스 안에는 대략 30명이 탑승했는데, 앞 좌석에 낯 익은 얼굴이 보인다. 예전 같이 근무했던 박OO 선배다. 5-6년만의 조우다. 입사 시기가 비슷하여 가깝게 지냈고 직장 산악회에서 산에도 같이 다니던 사이이고, 2000년 초 벤처 업무 관계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분이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한다. 옆에 닮은 분이 앉아 있는데 말해 주지 않아도 형님이신 것 같다. 형제가 같이 산행을 떠나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좋아 보인다. 그간의 안내산악회 버스에서 아는 분을 만나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흔히 안내산악회 버스를 ‘묻지마 버스’라 하는데 이는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특징에서 명명된 것인데, 앞으로는 가끔은 아는 분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외곽을 타다 춘천고속도로와 합류할 예정인가 본데, 상일 부근에서 정체가 심하다. 기사가 방향을 바꾸어 팔당대교 쪽으로 행로를 변경한다. 눈을 감고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를 자장가 삼아 간밤에 부족한 잠을 청한다.
한참을 졸다가 깨어보니 양평대교 부근을 지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이 시간에는 홍천 정도에 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찾아 온 3일간의 황금연휴를 우리들만 기다렸던 것은 아닌가 보다.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후에도 한참을 달려, 버스 여행의 지겨움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길은 뚫리고 ‘한계령’ 고개로 올라선다(13:00).
< 한계령에서 서북능선 삼거리 >
근 6시간의 기다림 끝에 한계령에 도착했다. 행장을 꾸리고 한계령 도로 건너 산봉우리에 눈길을 한번 주고는 미련 없이 108계단으로 올라선다. 초반부터 다리가 묵직하다. 설악루에 올라서자 초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쬔다. 4월까지 겨울인가 싶었고 5월초까지도 눈 구경을 했는데, 벌써 초여름 기운이 돈다. 올 봄은 정말 실종되었나 보다.
위령탑 계단을 올라서서 바위 모퉁이를 돌며 첫 된비알을 맞는다(13:15). 국립공원 거리 표시 팻말을 이제 막 하나를 지났는데(0.5km) 땀이 난다(13:40). 박차장과 장책임의 얼굴에도 힘겨움이 묻어난다. 한 낮의 산행, 특히 초반 오르막 길은 체력 소모가 그만큼 크다. 첫 이정표를 조금 지나자 다리가 산 길에 익숙해졌는지 걸을만하다. 그러나 박차장과 장책임은 번갈아 가며 힘겨움을 호소한다. 특히 박차장은 작년과 다르게 몹시 힘겨워한다. 체력이 좋은 사람인데, 역시 초반 오르막 산행은 누구에게나 ‘마의 30분’임에 틀림없다.
출발 1km 이정을 목전에 둔 시점에 하늘이 막 트이는 작은 전망바위 앞에 선다(14:16). 몸에 에너지 보충이 늦어지면 더 쉽게 피로가 몰려 오기에, 잠시 쉬며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점심이래 봐야 김밥 한 줄이 전부이지만, 배 속에 음식이 들어가자 모두들 힘이 난다. 새벽 6시 이전에 식사를 하고 근 8시간만의 식사이니 배가 아니 고플 수 있겠는가? 배 속이 든든해지니 주위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 틈새로 한계령 넘어 ‘삼형제’봉으로 추정되는 바위 산이 눈에 들어 온다. 언제 보아도 근사한 모습이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 삼거리까지 거리는 2.5km이다. 아직 거리는 반도 못 왔는데 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다. 갈 길이 멀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지능선 안부에 올라서자 1차 오르막이 끝난다. 박차장이 급속히 체력을 회복하여 길을 앞장선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다가 길을 놓치고 다시 ‘07-02’이정표 앞으로 돌아왔다. 소위 ‘알바’를 한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내리막을 내려서서 걷기 편한 산허리 길로 들어서며 비로서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 첫 전망바위에서 / 한계령 길에서 본 귀때기청 모습 >
멀리 가야 할 서북능선 길이 눈에 들어오는 작은 전망대에 선다(14:32). 모두의 얼굴에서 몸이 산에 적응 완료했음을 알 수 있다. 서북능선 길은 돌이 무너져 하얀 속살을 드려낸 암괴류/너널갱이 보이는 1474봉까지 마치 평지길인 냥 보인다. (사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완만함 속에서도 굴곡진 길이 계속되어 몹시 힘든 길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걷는 길에 얼레지가 지천이다. 부근에는 노랑제비꽃도 눈에 보인다. 설악의 들꽃도 지난 주 명지산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노랑제비꽃 / 얼레지 / 현호색 >
최근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지며, 들꽃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이는, 시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물론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꽃은 자연상태의 꽃만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름을 아는 것은’이 남이 아닌 존재가 되어감을 의미하는 것을 들꽃과의 사귐에서도 느끼고 있다.
서쪽 방향 멀리 귀때기청의 모습이 보인다(14:50). 삼각형 모양의 정상부 밑으로 분홍색 진달래/철쭉이 만발해 있다. 육안으로는 선명한데 사진기에 담아 축소해 놓고 보니 그 흔적만 희미하다. 역시 우리 눈만큼 선명한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는가 보다. 다시 언덕을 내려서니 한계령 샘이 있는 나무다리 앞에 선다(13:55). 몇 년 전 수해로 무너진 것이 많이 복구되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하다. 작은 계곡은 물이 말라 황량하다. 다리를 지나자 길게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저 계단을 올라서면 오늘 산행의 1차 목적지 서북능선 삼거리에 닿게 될 것이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한계령 방향의 전경은 언제 보아도 시원하다. 초록이 물들어 가는 산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기분은 감동 그 자체다.
드디어 서북능선 삼거리에 도착했다(14:05). 한계령 출발 2시간이 다 되어간다. 중간에 식사시간을 제외한 순수 걷는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힘겨움을 이기려고 자주 쉬면서 와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년과 별반 뒤처지는 시간은 아니다. 노심초사, 애걸복걸하고 매사에 긴장하며 살지만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우리네 인생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서북능선 삼거리에서 끝청 >
서북능선 삼거리에는 먼저 온 대장과 여성분들이 우리를 반긴다. 오늘 산행대장은 처음 보는 분인데 말이 참 많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는 다섯 분의 여성이 함께 하는데 2분은 혼자 온 분들이다. 60초 초반의 여성분은 작은 체구의 온화하게 생기신 분인데 산행에서만큼은 고수의 풍모가 엿보인다. 젊은 여성분은 야윈 모습인데 첫인상과는 다르게 별 힘 안들이고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두들 서북능선 삼거리까지도 헉헉거리는 우리보다는 한 수 위임에 틀림없다. (다음 날 보니 여성분 5명 모두는 우리와는 다르게 공룡능선을 가볍게 완주했다. 부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출발 후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햇살이 여전히 따갑다.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는, 나뭇잎들이 그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계절에 능선에 서는 것은 힘겨움을 배가 시킨다. 문뜩 작년 6월 이 길을 걸으며 밑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무척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서북능삼거리에서 1274봉까지의 길은 녹녹하지 않았다. 삼거리에서 작은 언덕을 넘어 모퉁이를 돌자, 멋진 바위가 서 있는 지역을 통과한다. 바위도 멋지지만 깊은 골을 따라 빛을 받아 더욱 푸르게 빛나는 신록이 더 멋지다.
< 서북능선 삼거리에서 >
길가에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분홍색 꽃들이 지천이다. 고사목은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의 아련히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곤 하는데, 오늘도 주목의 고사목을 보면서 유사한 감정을 느껴본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너덜 길을 지나며 장책임이 조금씩 뒤처진다. 오랜만에 오는 산길에 힘이 부치나 보다. 어제도 늦게까지 무거운 주제로 회의를 했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현업에서 요구한 자료를 보내 주고 늦게 퇴근한 모양인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난제를 헤쳐가는 모습이 고맙다.
한참을 걷다 힘에 부쳐 배낭을 내려놓는데, 길가 이정표가 ’09-07’을 알린다(15:59). 숫자는 무슨 암호 같지만 사실은, 설악산 9번 등산로를 3.5km 왔음을 알리는 산꾼들은 다 아는 표식이다. 기억을 되집어 보니 작년에도 이곳에서 가뿐 숨을 달래며 쉬어 갔던 기억이 난다. 산에서의 산꾼의 행태는 시절은 달라도 유사성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뾰쪽한 너덜에 다리에 힘이 배가 되고 신경도 많이 쓰이지만 좌측으로 고개를 내미는 설악의 연봉들이 만들어 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1474봉 밑으로 부서진 돌들이 흘러 내린 모습이 선명하고 반대편으로는 용아능선의 희고 우람한 골격이 인상적이다. 멀리 이름 모를 설악의 봉우리들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설악은 항상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암괴류 지역을 넘어서 한참을 기어 올라서야 1474봉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14:41). 장책임 말한다. 길이 편하다 하여 소풍 가는 심정으로 왔는데 길이 장난이 아니라 한다. 길이 다른 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굴곡이 적고 걷기에 편하다 하여도 여기는 1400m가 넘는 설악의 주능선인데 거저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1474봉을 지나 끝청을 향해 길을 나선다. 박차장은 특유의 에너지로 길을 선도한다. 장책임은 눈에 띄게 뒤처진다. 내가 중간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며 걷는다. 평지길을 한참 걷는데 길가에 현호색이 보인다. 푸른 빛깔의 요염한 꽃인데 사진을 찍어 놓고 보면 어른거려 항상 선명한 모습을 확보 하기가 쉽지 않다.
잠시 후 한계령 5.1km, 대청대피소 2.6km라는 이정표를 맞는다(07:14). 잠시 평지길이 이어지니 길이 매양 이와 같았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이정표를 지나 변화 없는 길을 20여 분 걷자, 일전에 ‘나무개선문’이라 명명한 특이한 모양의 나무에 도착한다. 작년에 처음 보았을 때 보다는 감동은 덜 하지만 이곳을 지나면 끝청이 멀지 않았음에 알기에 새로운 힘이 솟는다. 길은 다시 끝청으로 향하는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장책임을 기다리느라 걷다가 멈춤을 반복함에 시간이 늘어진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마지막 힘을 내 보자고 한다.
< 1474봉에서 / 나무 개선문에서 >
< 끝청에서 본 전경 >
시간이 오후 6시를 지나고 있다. 오매불망 그리던 끝청에 도착했다(18:00). 저 멀리 가리봉과 주걱봉이 아스라하고 발 밑으로는 진달래가 연분홍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참 좋은 계절에 설악에 왔구나 하는 기쁨이 솟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장책임이 오지 않아 내려가 보니 다리에 쥐가 와서 대장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우려했던 사태다. 왼쪽 종아리에 바늘 자욱이 선명하다. 내 생각만하고 너무 밀어 붙인 것에 대한 후회가 앞선다. 경치고 뭐고 앞으로의 길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대장의 걱정하는 말 뒤에는 ‘이래서 공룡 넘을 수 있겠어요’하는 빈정거림이 느껴진다. 걱정해 주는 것은 좋지만, 순간 자존심이 상한다.
< 끝청에서 소청 >
앞으로의 길은 이제와는 다르게 심한 경사는 없지만 그래도 끝청갈림길까지는 40분은 걸릴 것이다. 중청으로 향하는 산허리길 뒤로 대청의 모습이 조심스레 보인다. 중청에서 대청으로 향하는 길의 전모가 드러난다(18:21). 대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개미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끝청 이후 장책임의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어 가고 있다. 그가 하는 개발 과제처럼 산 길도 힘겨웠을 것이다. 산 길에서의 힘겨움을 이겨 내었듯이 그가 하는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대청봉으로 배경으로 / 중청대피소와 대청봉 >
드디어 끝청 갈림에 섰다(18:47). 예상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희망도 보인다. 대장에게 부탁하여 대청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는다. 대장의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지금까지 소청대피소에는 일행 중 2명만이 도착했다 한다. 우리의 행보가 늦었다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느린 걸음으로나마 끊임없이 걸어 온 결과이다.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꾸준한 노력은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이루게 하기 마련이다.
소청으로 내려 서기 전 한참 동안 대청의 모습을 가슴에 담는다. 시간 여유가 조금만 더 있어도 올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욕심을 억누른다.
< 대청봉을 배경으로 >
끝청 갈림길에서 소청봉까지는 0.6km 거리다. 초입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참으로 놀랍다. 화채능선의 우람한 골격미 좌측으로 공룡의 뼈대가 선명히 드러난다. 1275봉의 뾰족한 봉우리도 보이고 천화대, 범봉 등으로 추정되는 바위들이 서로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그 뒤로는 울산바위의 모습이 아스라하다. 멀리 속초 시가지도 어른거린다. 이제까지 산에서 보아온 모습 중 최고 수준이다.
< 소청으로 향하는 길에 / 공룡능선과 울산바위 모습 >
돌아 가며 추억을 담는 것으로 부족하여 홀로 전경 사진을 몇 장 더 담고는 소청으로 아쉬운 걸음을 돌린다. 시간이
어느 싯귀에 나오는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서늘한 바람이 능선에 불어온다. 바람에 나뭇잎이 설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너머로 장엄한 노을이 번지고 있다.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말이다. (이상,
< 소청 하산 길에 장엄한 노을을 배경으로 >
끝청에서 소청으로 향하는
길은 나무데크 길인데 널찍하니 걷기에 무척 편하다. 그런데 이 길로 내려 가기 망정이지 올라 오려면
힘깨나 들겠다. 중간 중간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들이 마련되어 있어 좋았다. 소청봉을 지난다(19:12). 소청에서 올려다 본 중청의 모습이
저녁 노을을 받아 붉어지고 있다. 저 멀리 장책임이 천천히 내려 오고 있다. 멀리서 보는 그의 표정에도 감동이 묻어 있다.
소청봉에서 소청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돌 길이다. 길 옆으로 진한 분홍빛을 띤 참꽃이 만발해 있다. 지난 4월 비슬산에서 보지 못한 수달래를 이곳 소청에서 만끽하고 있다. 이 역시 감동적인 모습이다. 생각해 보아라, 금빛 물결이 출렁이는 빛을 받으며 진분홍 꽃을 보고 걷는 모습, 바로 앞에는 오늘 하루 지친 육신이 쉬어갈 산장이 있다. 신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 해질녘의 설악 >
< 소청대피소에서의 하룻밤 >
산행 출발 전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달 빛을 안주 삼은 소주 한 잔의 추억, 저 멀리 아스라한 속초 바다의 비릿한 내음, 별이 바다 물결에 던지는 빛 그림자, 산에서의 첫 날 밤의 설렘’등등의 희망사항은 모두 소청에서의 숙박을 전제로 희망의 나래를 펴 본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산행에서의 소청에서의 하룻밤은 의미가 크다.
해질녘에 들어 선 소청대피소의 첫인상은 ‘복작거림’이다. 비탈에 선 오렌지색 숙박동 밑으로 나무식탁이 배치되어 있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매점 앞 평상에도 자리가 거의 없다. 하룻밤 묵을 방의 위치를 확인하고, 먼저 온 박사장 형제께 인사를 드리고 입구 평상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는다. 옆 자리에는 6시경에 도착했다는 남자 2명, 여자 1명이 불그레한 얼굴로 앉자마자 우리에게 술을 권한다. 목소리에 ‘한 잔 찐하게 했습니다’라는 시그널이 묻어 있다. 여자분이 권하는 코펠 뚜껑에 담긴‘알피니즘 스타일’ 의 양주와 소주가 섞인 폭탄주를 한 모금씩 돌려 먹는 것으로 소청대피소에서의 밤이 시작되었다.
박차장이 준비한 닭갈비와 장책임이 준비한 김치찌개로 맛난 저녁을 먹는다. 저 멀리 속초 시가지의 불빛이 아스라하다. 옆 일행의 강요에 의해 통성명을 한다. 그들은 남자는 30대 초반의 군의관들이었고, 여자는 심리치료사로 예전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 연으로 매년 이렇게 산을 찾고 있다고 한다. 부러운 인연이다.
남자 둘은 벌써 술이 많이 취했는데 옆에 발렌 타인 양주 한 병이 뒹굴고 있다. 저 무거운 것을 어찌 메고 이 험한 곳을 올랐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군의관의 군인정신의 산물인 듯하다. 남자 중 한 명이 우리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것을 알고는 자기 사촌 형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장책임의 예전 동료임이 밝혀지고, 전화 연결이 되면서 분위기는 급히 ‘형님 동생’ 모드로 변한다. 그들은 안주를 넉넉히 준비해 왔는데 목살, 소시지 구이, 참치 무침 등 산 밑에서도 흔치 않은 음식들을 계속 우리에게 공급한다. 고마울 따름이다. 잠시 후 박사장 형제도 합류하여 술판이 커진다. 박사장과 박차장은 대학 선후배이고 박사장 형님도 그들과 동문이니, 세상 참 좁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9시 소등과 함께 사위가 어두워 지더니, 술판이 정리 모드로 변한다. 기분 좋을 만큼 잘 마셨다. 군의관 일행은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 같이 온 여자분의 고생이 많다. 그래도 기분 좋게 뒤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밤 하늘에 별이 떠 있다.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카시오페아도 보이는데 은하수는 확인이 안 된다. 멀리 속초 앞 바다의 모습도 보인다. 반짝이는 불 빛이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집 떠난지 하룻만에 다시 집이 그립다.
이후 소청대피소에서의 잠자리는 악몽이었다. 대여섯명이 자기에 맞을 작은 방에 남녀 20여명이 뒤섞여 잠을 자야 한다. 누우면 양 옆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고 발을 뻗으면 앞사람의 발과 맞닿는다. 갑자기 ‘난민 수용소’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그나마 잠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군의관들을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군의관들은 매점 앞 통로에서 잤는데, 주인의 배려로 숙면을 취했다 하니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 하나 보다.) 약한 코골이에 익숙해 질 무렵, 밤 늦게 깍두기 머리를 한 건장한 중년의 남자와 일행 한 명이 나타나 조용한 방 안을 다 깨어 놓더니, 이내 엄청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한다. 정말 가관이다. 그들 둘을 제외하고는 밤새 한잠도 못 자는 눈치다.
잠도 안 오고 뒤척이다, 요기와 갈증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다. 새벽 2시다. 누군가의 말대로 ‘깨어 나기에는 너무 이른, 새벽 기상 시간을 고려하면 다시 잠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바깥 공기는 예상외로 춥지 않다. 바람도 한 점 없다. 탁한 공기와 후텁지근한 방안보다 나아 보여, 한참을 앉아서 속초 시가지의 불 빛을 감상해본다. 하늘에는 별들이 잠자리로 숨어들었나, ‘이불’만 덮여 있다. 한참을 그리 있다가 다시 방에 들어가 졸다가 아침을 맞는다.
아침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곳을 왜 ‘산장’이라 하지 않고 ‘대피소’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 일행 대부분은 평균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 불편한 ‘수용소’의 환경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놀랍다. 산 꾼으로서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하나 보다. 그들의 남에 대한 배려와 인내가 놀라울 따름이다.
아쉬운 것은 소득이 늘어나고 국민의식이 높아진 만큼,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국가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민간에 위탁했다면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던가 말이다. 간 밤에 한 무리의 외국인이 대피소에 들어왔는데 그들이 우리의 이런 숙박문화를 보면 무어라 할지 안 보아도 뻔하다. 등산 잡지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일본과 스위스 등 산악문화 선진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케냐의 유명 산의 숙박시설도 우리보다는 훨씬 좋다. 설악산이 그들의 후지산, 알프스, 킬로만자로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아마도 소청에서 바라 본 경치만으로는도 우리 설악이 그들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 소청대피소의 아침 >
새벽 4시 신새볔에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난다. 장차장의 몸 상태와 한 숨 못 잔 내 몸 상황을 통해 판단컨대 공룡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롭게 소청의 아침을 맞기로 한다. 새벽 4시 30분인데 어젯밤과 같이 평상과 데크에는 빈 자리가 없다. 일부 산꾼을 벌써 짐을 챙겨 공룡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처럼, 군의관 일행 옆에서 식사를 한다. 어제의 숫기는 어디로 가고 조용한 의사 선생님으로 변해 있는 그들을 보고 웃음이 나온다. 우리 나라 남자 특유의 이중적 성격이 감지된다. 산책 삼아 박차장과 샘터에서 물을 길어 온다. 다리에는 별 무리가 없다. 다행이다.
아침을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어두웠을 때는 몰랐는데, 훤해지니 앞 쪽으로 설악의 절경이 펼쳐진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 산장/대피소 중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은 단연 소청이라고, 명불허전이다. 공룡능선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 설악의 등줄기는 언제 보아도 든든하다. 그 뒤로 주름진 산 줄기 뒤로 보이는 울산바위도 멋지다. 이 좋은 것을 우리만 보는 것 같아, 가족과 직장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 아침, 소청에서 본 설악의 등줄기 >
설거지를 하고, 일행을 보내고 군의관들과도 작별 인사를 한다. 공룡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개별적으로도 흔적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하룻밤 묵었던 소청대피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소청에서의 추억을 마무리한다.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서 첫날밤을 보낸 신부가, 아침에 일어나 꿋꿋이 살아갈 앞 날을 개척하는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는 신랑이 있듯이 내게는 멋진 모습의 설악이 있다.
다시 배낭을 멘다. 어제 보다는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묵직하다(
소청대피소에서 된비알을 올라 소청봉에 오른다. 다리가 산에 적응하는데 다시 시간이 걸린다. 기분 좋은 노곤함이 전해진다. 소청에서 전열을 정비한다(06:04).
< 아침, 소청에서 설악의 정기를 받고 / 소청대피소에서 >
< 소청봉에서 무너미 >
소청봉에서 우측 길이 희운각대피소 가는 길이다. 잘 정비된 돌 길을 따라 굽어 보는 공룡능선 길이 더욱 선명해 진다. 밝은 회색톤의 화강암이 만들어 내는 물결이 용솟음 친다. 그 앞쪽으로 희운각의 모습이 보인다.
20여 분 가파르지만 걷기에 부담이 없는 길을 내려서자 희운각/소청봉 65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06:29). 고도는 급격히 낮아 진다. 아침 햇살이 제법 눈부시다. 지금이 아침 6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훤하다. 주위 나무의 새 잎들이 막 돋아 나려 하고 있다. 계절로 치면 초봄이다. 개화하려는 벚꽃 밑에 나무데크와 전망대가 설치된 쉼터에 도착한다(06:49).
< 소청 하산 길에서 본 공룡 >
< 희운각 위 전망데크에서 >
쉼터에서 새순이 돋은 나무와 기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서니 희운각 대피소의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소청이 대피소에서 보는 경치로 최고라면, 희운각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물의 모습이 멋진 곳이다. 희운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전열을 정비한다(07:00).
< 헬기가 뜨고 / 낮아진 고도에서의 신록 >
다시 걷는 길,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헬기가 떴다. 이른 아침 무슨 변고가 있어 헬기까지 뜨는지 모르겠다. 헬기는 소청봉 부근에서 멈추더니 누군가를 실어 올리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누군지 모르지만 무사귀환을 빌어 본다.
희운각 밑 인공으로 만든 헬리포트에서 여성 두 명이 침구를 정리하고 있다. 등산 대중화와 여성 산악인 증가를 대변하는 광경이다(07:19). 그 바로 밑이 무너미 고개이다(07:20). 무려 8개나 되는 이정표가 어지럽게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내가 가야 할 소공원까지는 8.3km, 양폭까지는 1.8km, 마등령까지는 4.9km이다. 가지 못하는 공룡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만 더 좋은 추억을 위해 저축하는 심정으로 무너미를 지나친다. 천불동 계곡 길도 경치로는 공룡만 못하지 않을 것이다.
< 무너미에서 양폭 >
양폭대피소를 목표로 길을 나선다. 잘 정비된 널찍한 길을 따라 내려가니 고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양폭대피소 0.9km 이정표에 도착하여 널부러저 앉아 휴식에 취한다(07:58).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맞는 아침이다. 이정을 지나며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다리도 나오고 계곡도 보인다. 어차피 서두를 것 없는 길, 계곡에 발을 담근다. 탁족이다. 걷어 올린 발을 차가운 물에 담그자. 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제 오늘 눈이 황홀한 광경을 보고, 머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내 다리는 무척 힘겨운 걸음을 걸었을 것이다. 이제 다리와 발에게 안식을 주어야겠다.
< 폭포 부근에서의 탁족 >
< 양폭 가는 길의 멋진 다리 1 / 양폭에서 >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리 걷는 길, 발 아래 폭포가 보인다(08:31). 천당폭포다. 이름에서 사이비 같은 인상을 주지만 제법 우람한 폭포다. 그 밑으로는 너무도 잘 만들어진 멋진 다리가 보인다. 암갈색의 인공 조형물이 자연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져 있다. 내가 이제껏 보아 온 다리 중에 최고로 멋진 다리다. 다리가 허공 높이 매달려 있어 걸으면서 공포감이 들 정도다. 다리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양폭의 모습이 들어난다(08:40).
협곡을 이루는 다리를 지나니 또다시 멋진 다리가 이어진다. 바위와 물과 나뭇잎과 다리가 만들어 내는 협주곡이 설악에서의 아침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정말 멋진 경험이다. 계단을 내려서자 양폭대피소의 모습이 보인다(08:40). 잘 만들어진 현대식 건물이다. 주위는 온통 바위와 계곡으로 둘러 쌓여 있다.
< 양폭 가는 길의 멋진 다리 2 / 하산길에 >
< 양폭에서 설악동 >
< 천불동 계곡 전경 / 귀면암 모습 >
양폭을 지나면서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아 진다. 꼬마를 앞세운 아빠, 엄마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낀다. 잘 그려진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칠선골 입구 이정표에서 잠시 멈춘다(09:18). 고도가 580m 수준으로 많이 낮아져 있다. 이제 비선대까지는 2.6km가 남아 있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가도 12시 정도면 설악동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천불동 하산 길의 모습 1 >
귀면암 부근을 지난다(09:42). 멋진 모습의 근사한 이정표를 기대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조금은 실망이다. 천불동 계곡의 길을 걷다 보니, 외국인들이 참 많이 눈에 보인다. 그들에게 설악은 어떻게 비추어질까 궁금하다. 계곡길을 계속 걷다 보니 배가 고파진다. 다시 계곡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편다(10:30). 옷도 갈아 입는다. 새로운 기분으로 탁족도 한다. 하루에 두 번 탁족. 설악과 같은 긴 코스의 산이 아니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시간을 보니 11시가 넘었다. 비선대는 지척의 위치에 있었다(11:03).
< 천불동 하산 길의 모습 2 >
비선대에서 설악동 가는 길은 널따란 신작로다.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길을 40여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자, 설악동 입구가 보인다. 소청대피소에서 6시간이 걸린 먼 길이었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건강한 모습이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 에필로그 >
산행을 준비하면서, 금번 산행의 제목을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과 함께한 설악산 산행 2’로 정하고 여러 희망사항을 나열했었다. 설악동에 내려와 C지구 주차장 평상에 누워 지난 산행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당초 산행 신청 인원이 너무 많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정말 ‘기우’였는데, 술자리에서는 호기롭게 신청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뒤 말을 흐리던 동료들이, 초보자들로 애당초 험난한 산길을 함께 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은, 오히려 현명했다고 할 수 있겠다. 3명의 단출한 멤버였지만, 적어도 등산하는 동안에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살아가는 것도, 또 우리가 하고 있는 일도 모두 오늘 등산처럼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도 있고, 힘겨움이 있는가 하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느끼는 달콤함 성취감도 있다. 결과 못지 않게 목표 달성의 과정이 중요하고 무리가 되면 물러설 줄도 아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지 못한 공룡능선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크다. 미련이 남는다. 그 미련은 그리움이 되어 언젠가 다시 공룡을 찾을 것이다. 보다 큰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대신 천불동의 황홀한 경관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산 후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 특히 여성 5명 모두 약속된 시간에 공룡능선을 넘어 무사히 하산한 것을 보고, 부러움과 함께 다음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녀들의 체력과 용기 그리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오늘 등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북능선의 풍경도 공룡의 웅장함도 천불동의 화려함 보다도, 소청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이었던 같다. 좁은 방에서 피곤한 몸의 2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자면서도 작은 불평은 있었지만, 인내와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산꾼들, 그들에게는 공룡이라는 새 아침의 희망이 있기에 간밤의 희생을 과감히 감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얻었다.
하산 후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는 서울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어제 밤 늦게 대피소에 들어 모든 사람을 깨워 놓고 자신들만 숙면을 취하던 깍두기 아저씨 일행이 또 늦어 전체가 기다린 것은 옥에 티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렇다 설악과 내 동료들은 내게 잊혀지지 않은 존재로 영원할 것이다. 오늘 오르지 못한 공룡능선은 언젠가 그리움으로 그 길 위에 다시 나를 서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