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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 개관/ 6. 물두멍(a laver of brass, 탈출38,1-8)
탈출40,30-32절은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고 말한다.
물두멍은 놋거울로 만든 일종의 커다란 세수 대야로서 번제단 앞 성소 입구에 위치했다. 그 용도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혹은 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손발을 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모양이나 크기, 제조방법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거나 제사 의식을 집전하기 전 사막의 흙과 먼지로 더렵혀진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는 정결례였다.
그러나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는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두멍에 담긴 물은 인간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아낌없이 쏟아 흘리신 예수의 물과 피를 연상케 한다(요한19,34; 묵시7,14).
<물두멍의 모양과 크기>
모양이나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는 성경상의 언급이 없으나 원어 ‘키요르(כּיּר)’는 둥근, 도려낸, 솥 등의 뜻이므로 둥글게 생긴 큰 대야나 욕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두멍의 재료>
탈출38,8절에 의하면 이것은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들은 이스라엘의 절기 때에 춤을 추고 노래하는 역할을 맡은 여인들이었던 것 같다(15,20). 그들이 자신들의 거울로 물두멍을 만들도록 헌물(獻沕)한 것은 그들 자신의 단장보다 하느님을 더 생각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그들이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였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마태10,38-39). 여기에서 거울은 동판(銅版)거울을 가리킨다(1코린13,12). 한편 이러한 물두멍은 본래 하나였으나, 훗날 솔로몬 당시에는 성전의 규모에 비례하여 10개로 늘어났다(1열왕7,38). 물두멍을 고정시키기 위한 발(foot)이 있는데 이를 받침이라고 한다.
<물두멍의 위치>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회막, 곧 성막 본체와 번제단을 일직선상으로 연결하는 선에서 남쪽으로 약간 비껴난 지점에 몰두멍을 두었다(유대 랍비들). 아마 이는 물두멍이 회막 앞 정중앙 부분에 위치하면 제사장이 성소를 출입할 때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두멍의 용도>
“수족을 씻되,”물로 몸을 씻는 것은 고대에 성행하던 종교 예식이었다. 이는 곧 죄를 씻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행동이기도 하면서 먼지와 흙으로 더러워지기 쉬운 광야 지대에서는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물이 귀한 광야 지대에서 매번 제사 드리기에 앞서 손과 발을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상당한 노력이 따라야 했다.
이로 볼 때 하느님께 대한 예배와 제사는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노력과 정성이 따라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도 이와 같이(또한 예수의 말씀처럼) 신령과 진정으로(사람의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예배드려야 한다(요4:24). 아울러 이 행위는 이 세상에 사는 믿는 이들이 주위의 온갖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영혼이 더렵혀졌을 때 그리스도의 말씀의 생명수로 매일 정결케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요한13,8-10).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심령(영)이 물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두멍에 담긴 물은 인간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아낌없이 쏟아 흘리신 예수의 물과 피를 연상케 한다(요19,34; 묵시7,14).
물두멍의 크기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여인들이 바친 동 거울의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물두멍은 주님의 보혈의 능력처럼 모든 죄인들을 씻기고도 남음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주님께서 마지막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감히 주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말인가? 이는 종이나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한13,8)고 하셨다.
이것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 받고 거듭난 사람도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회개를 통해 깨끗한 후에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의 생명수로 매일 정결케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요한13,8-10). 물이 귀한 광야 지대에서 매번 제사 드리기에 앞서 손과 발을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주님께서 씻는 것을 강조하신 것은 보면 이를 뒷받침해 주신다.
<씻지 않으면>
탈출30,20절은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고 말한다. 비록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부정한 몸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면 이는 곧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침범이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물로 씻어 의식적으로 정결케 되었다고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채 하느님을 보고,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었다(이사6,5).
“그와 그 자손이…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물론 이러한 의식적인 규례는 구약제사제도가 지속되는 동안 아론과 그 자손인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영적인 의미는 오늘날 만인 제사장적 자격을 지니고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예수의 재림시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오늘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생명수로 매일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로마5,9).
<제사장 임명>
탈출29,4절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라고 말한다. “물로 씻기고,”여기 물은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있는 큰대야(물두멍)의 물을 가리킨다(탈출40,30). 한편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됨에 앞서 먼저 몸을 씻음은 몸을 씻음으로써 몸과 영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2코린7,1; 에페5,26).
따라서 향후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 갈 때와 번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 먼저 이 대야의 물로 손발을 깨끗히 씻어야 했다(30,20). 탈출기(출애굽기) 28장은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대제사장의 복장에 대한 언급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야 할 의식이기 때문이었다. 믿는 이들이 하느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성과 면밀함을 갖추어야 한다.
<구속과 구원>
탈출30,17절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고 말한다. 물두멍은 ‘놋’으로만 만들었으며 둥글게 만들었지만 크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물두멍은 운반하기 위한 ‘고리’나 ‘채’가 없다. 물두멍은 ‘물’을 사용했는데 ‘제사장’에게만 허용되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번제단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것처럼 물두멍 또한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물두멍은 언제나 물이 채워져 있다. ‘물’은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여 ‘깨끗케 하는 능력’이다. 물두멍에서 깨끗케 되기 전에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물두멍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성결’과 ‘성화’이다. 하느님의 은혜로 거룩하게 씻김을 받아야 하느님 앞에 나갈 수 있다. 탈출30,18-20절은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요한3,5절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라’고 하셨다. 모세는 ‘단 한번만’그들의 전신을 씻겼다. 중생의 상징으로 거듭남은 단 한번으로 영원하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손발을 씻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매일 씻음이 필요하다.
‘발을 씻는 것’은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인 ‘물’로써 자신의 백성 안에서 역사하신다. 제사장은 물두멍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본다. 로마 군병이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피’는 속죄를 의미하며 ‘물’은 정결케 함이다.
‘속죄의 보혈’은 누구나 구원받을 때 적용되며, 그 후엔 ‘계속적인 물로 씻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물두멍의 의미이다. 요한13,8절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구원은 이미 제단(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실생활에서의 ‘주님과의 동행’을 말한다.
주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단번에 완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제공하셨다. 주님의 피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었고 ‘하느님의 공의’가 완전히 충족되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셨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하고(탈출30,18), 물두멍은 ‘심판’을 상징한다. 사용된 것은 ‘물’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것에 주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은 악에 빠지는 것을 방지한다. 말씀은 더러움을 씻는데 사용해야 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은 영혼의 회복을 위해 사용한다. 롯이 두 천사의 발을 씻기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소돔에는 그들을 위한 회복이 없다.
놋 거울은 애굽의 물건이었지만 옛 것이 버려지고 새 것이 되었다. 놋 거울은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물두멍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먼저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바친 ‘여인들의 헌신’이 있었다. 또한 성막을 짓고 기구들을 만듦에 지시하신 것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일꾼들을 하느님이 예비하셨다(탈출35,30-35).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의도를 이들이 깨닫고 실행할 수 있도록 성령이 임한 것이다.
브살렐이 첫 번째로 지명 받았다. 그는 유다 지파로 홀의 손자 우리의 아들이다.‘브살렐’의 뜻은 ‘하느님의 그늘 밑, 하느님의 보호’이다. 또한 유다의 뜻은 찬양이며, 우리의 뜻은 빛이요, 홀의 뜻은 자유이다. 두 번째로 오홀리압을 부르셨는데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이다. 오홀리압의 뜻은‘아버지의 장막’이다. 단은 심판, 아히사막은 의지할 형의 뜻이다.
유다가 이스라엘이 진행할 때 먼저 인솔하면, 단은 후미를 이끌었다. 브사렐과 오홀리압 이 두 사람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했다. 하느님이 그의 종들을 택하셨다. 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진정한 섬김의 요소는 ‘순종’에 있다. ‘물두멍의 치수’와 ‘물의 양’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하느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죄에 넘어질 때에 계속 그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요한13,10절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목욕’과 ‘발 씻음’을 구별하시고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목욕하는 것은 거듭남의 씻음을 말한다. 거듭난 믿는 이들은 그들의 영 안에서는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지만, 그들의 몸 안에서는 여전히 육체 안에 살며 땅 위에서 행하고 있다. 땅에 속한 것들과 접촉하면서 거듭난 믿는 이들은 자주 더러워진다. 이것은 그들과 주님과의 교통뿐만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 사이의 교통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과 말씀과 생명으로 씻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들과 주님과의 교통, 또 거듭난 이들 사이의 교통이 유지되도록, 그들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지, 피로 죄들을 씻어 내는 것(1요한1,9)은 아니다. 그러나 유다는 목욕하지 못했다. “너희가 깨끗하지만 다는 아니다(13,10).”
우리는 번제단을 통과할 때 피 뿌림을 받고, 물두멍에서 씻음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법리적 구속)을 받은 후, 하느님의 말씀으로 계속 ‘정화(유기적 구원)’하여 씻어야만 변화되어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우리를 깨끗케 하는 것은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번제단을 지나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지만, 신약 시대의 우리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느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다.
‘주님 흘리신 물과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주님의 의로 옷 입혀주시니 웬 은혜인가? 벌레만도 못한 지렁이 같은 날 위해 주님 고난 당하셨네!’(기억나는 찬송가 중에서)
알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