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은 찾아도 찾을 수 없지만, 그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일백 법계에 일천 여시를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覓之了不可得。而不可言其無。具造百界千如。而不可言其有。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실진상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은 없다고 말하고, 그것이 있다고 말하나 그것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렇지만 교학의 측면에서 반드시 이러한 명상名相 술어를 세워야 배우는 사람이 체득하여 깨닫기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런 명사 술어는 가설한 것으로 결정코 사실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사용하여 진실을 체득하면 됩니다. 이것을 자수용自受用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술어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사실진상을 소개하여 그가 개오하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이 집착해서도 다른 사람이 집착하도록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불법 수학의 가장 곤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간 사람에게 무시 겁 이래 세세생생 가장 큰 병폐가 집착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집착하기만 하면 결정코 여래의 진실한 뜻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 최후에 어쩔 수 없이 한마디 말씀을 하셔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체 모든 것을 부정해버렸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께서는 한마디 법도 설하신 적이 없고, 누군가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셨다고 말하면 그것을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49년간 설법하셨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확실히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뜻으로부터 체득하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집착하면 틀렸고, 집착하면 미혹에 빠집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 출현품出現品》에서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여래의 지혜덕상이 있느니라(一切眾生皆有如來智慧德相)”라고 잘 말씀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일체중생은 부처님과 같습니다. 차이가 없고 본래 부처님입니다. 왜 당신은 이런 모양으로 변해버렸는가? “단지 망상집착으로 인해 증득할 수 없느니라(但以妄想執著而不能證得)”. 이것이 진실한 지식입니다. 한마디 말로 우리들 병의 뿌리를 말하자면 우리들의 병의 뿌리는 바로 분별 집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일체 분별 집착을 여의면 대자재를 얻을 수 있고 일진법계에 계입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진법계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들 눈앞의 생활에 펼쳐져있습니다. 설사 당신이 서방극락세계에 가더라도 화장세계에 가더라도 만약 일념에 집착을 일으키면 당신은 여전히 범부입니다. 이로써 불법은 다른 것이 없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집착을 깨뜨릴 뿐입니다. 이 말이 진실입니다.
소승에서는 아집我執을 깨뜨려 없애면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한다고 하고, 대승에서는 법집法執을 깨뜨려 없애면 원만히 성불한다고 합니다. 성불은 아집과 법집, 두 가지 집착을 깨뜨릴 뿐입니다. 두 가지 집착은 두 가지 장애의 근원입니다. 아집은 번뇌장煩惱障의 근원입니다. 당신에게 아집이 있으면 결정코 번뇌가 있습니다. 당신이 번뇌를 어떻게든 여의어야 개오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게 법집이 있으면 결정코 무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집이 없으면 무명이 끊어져버리고, 아집이 없으면 견사번뇌가 깨뜨려져 육도윤회를 벗어납니다. 대소승 경전에서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불은 다른 것이 없고, 바로 망상집착을 깨뜨리는 것일 뿐입니다. 대승의 수많은 종파에서 말하는 무량한 법문의 방법과 이론은 모두 사람들을 집착을 깨뜨리도록 돕고, 사람들이 명심견성하도록 돕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선택한 것은 염불법문으로 그 방법은 간단하고 손쉬운 것입니다. 곧 한마디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을 자신의 진실한 공부로 삼고 게다가 아미타부처님 본원 위신력의 협조를 덧붙이면 됩니다.
근기 성향이 예리한 사람, 무엇이 근기와 성품이 예리하다고 하고 근기 성향이 둔하다고 합니다까? 예리하고 둔하고는 다른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분별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분별 집착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의 근기 성향은 예리하고 기꺼이 내려놓지 못한 사람의 근기 성향은 둔합니다. 바로 이렇게 된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기꺼이 내려놓으면 손쉽게 개오할 수 있고 계입할 수 있지만, 당신이 기꺼이 내려놓지 않으면 개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깨달음의 문제에서 큰 장애가 있으니 바로 집착입니다.
《미타요해강기》 정공법사
첫댓글 정공법사님의 설법은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습니다. 번역으로 온전히 대신할 수 없는 청중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는 힘과 매력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