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imajaro is a snow covered mountain 19,710 feet high, and is the highest mountain in Africa, Its western summit is called by Masai ‘Ngaje Ngai,’ the House of God. Close to the western summit there is the dried and frozen carcass of a leopard. No one has explained what the leopard was seeking for at that altitude.” (킬리만자로는 눈 덮인 19,710피트 높이 산이고,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 서쪽 봉오리를 마사이족은 ‘응가에 응가이’라 하고, ‘하느님의 집’이라 부른다. 서쪽 봉오리 근처에 얼어서 말라 죽은 표범 사체가 있다.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헤밍웨이 소설 <The Snows of the Kilimanjaro, 1936>의 첫 문장이다.
킬리만자로 등정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입산료 850불(2021)을 국립공원에 내야 한다. 그 외 혼자 등반 시 가이드 1명, 포터 2명, 요리사 1명은 필수요원이다. 단독 등산은 국립공원 측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정상으로 가는 코스는 여러 개 있다. 6박 7일은 잡아야 한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에베레스트 산이나 K2봉 같이 생명이 위태로운 위험한 산행은 아니다. 에베레스트는 등반을 하다가 죽는 확률이 5.4%이다. 올해도 350명 등산객 중 벌써 11명이 죽었다. 킬리만자로는 하루 10km를 걸을 수 있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고산병적응(acclimatization)만 하면 7일 만에 누구나 등반이 가능하다. 89세 노인도, 10살 어린이도 등반했다는 기록이 있다. 힘든 건 고산병(High Altitude Acme)이지만, 4,700m에 올랐다가 다시 4,000m를 내려가 1박을 하고 다시 원래 고도로 올라가는, 적응 훈련만 하면 대부분 등정에 성공한다.
킬리만자로는 독일인, 한스 메이어(Hans Meyer)가 1889년 처음으로 올랐다. 킬리만자로 산록에는 오래전부터 마사이 족이 살고 있다. 그들이 정상을 올랐을까? 기록이 없어 모른다. 내 생각에는 오르지 않았나 싶다. 사람도 포유동물이다. 동물의 행위는 포식자를 피하여 도망을 가던지, 먹이를 찾아다니든지, 짝을 찾아다니는 행동이다. 이유가 있다. 킬리만자로정상까지 추적하는 포식자는 없고, 산정에는 먹을 것도, 사랑 할 짝도 없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산정을 오르는 것일까? 정상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4,000m까지는 동‧식물이 있어 경치가 있다. 5,000m를 넘으면 흙과 바위와 눈 밖에 없다. 경치라 할 수 없다. 사막이고 설산이다. 등산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산소가 부족하여 건강에도 좋지도 않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매년 5만 명이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을 찾는다. 어떤 포유동물도 목적 없이 산 정상을 오르는 짐승은 없다. 왜 인간만이 산을 오르려 할까?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힐러리에게 왜 산을 올랐느냐고 물으니,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힐러리가 한 말이지만, 그 말이 언론에 회자되기는 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이 들어 병원을 가는 사람에게 병원에 왜 가느냐고 물을 떄 병원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미친놈 취급을 할 것이다. 입산료를 4천만 원이나 내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에베레스트를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가? 네팔 관광국은 이제까지 일인 당 1만 불 하던 입산료를 올해부터 에베레스트 등정 시 3.5만 불, 다른 8,000m 고봉은 2만 불로 올렸다.
킬리만자로는 원추형 사화산이다. 5,895m이다. 적도 아래 만년설이 붙어 있는 산이다. 산 아래는 열대우림, 2,000m~3,000m에는 산림지대, 3,000m~4,000m는 관목지대, 4,000m~5,000m는 사막, 5,000m 이상은 만년설 지대이다. 수직으로 기후대가 분포한다. 학문적으로 수직 생태계의 분포는 높은 연구가치가 있다. 멀리 떨어진 탄자니아의 도시, 모시(Moshi, 20만 명)에서 보면 열대 지방에서의 만년설이 덮인 산은 참으로 아름답다. 가까이 가면 흙과 나무이다.
나도 1989년에 킬리만자로 등반을 시도했다. 등반 이틀째 되는 날 호롬보(Horombo, 3,720m)산장에서 하산했다. 힘들었거나 고산증세 때문이 아니다. 저녁에 왜 내가 고통스러운 등반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올라가야 할 아무런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정상 등반을 위하여 단체 산행그룹에 2천 불이 넘는 돈을 냈지만, 포기했다. 한 사람의 포터만 대동하고 하산했다. 동행한 터키 등반대원들은 나를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또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간 일이 있다.
헤밍웨이는 작가로서 삶의 절정을 맛본 사람이다. 원하는 소설을 썼고, 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 또 작가의 최고 영예인 노벨문학상(1958)을 타기도 했다. 많은 여성과 사랑도 했다. 평생 좋아하는 아프리카 국립공원에서 큰 짐승 사냥을 했다. 정상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소설속의 표범과 같이 죽었다(자살). 실존의 성공은 그랬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 청와대 생활을 감옥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정치인은 누구나 대통령을 원한다. 왜 인간은 정상에 오르려 하는 것일까?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것은 인간 유전자 속에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