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沙溪) 김 선생(金先生)의 천장(遷葬) 때 올린 제문
숭정(崇禎) 14년 신사년(1641, 인조19) 1월 9일 을유는 바로 사계 선생을 천장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표질(表姪) 송준길(宋浚吉)은 고질로 인해 달려갈 수 없으므로 하루 전에 아들 광식(光栻)을 대신 보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안주를 영연(靈筵)에 올리고 다음과 같이 제문을 고하게 합니다.
아, 슬픕니다. 선생께서 돌아가신 지 지금 10여 년이 되고 보니, 선생의 음성과 용모가 날로 아득해져서 어렴풋이 기억할 수조차 없어서, 성현의 정미한 말씀을 밝힐 수 없고 끊어진 학통(學統)을 찾기 어렵습니다. 선생의 담론(談論)을 회상하니 지극한 비통만 새롭습니다.
아, 슬픕니다. 뛰어난 인걸(人傑)이 떠나자 세도(世道)가 변하여 온갖 해괴한 일들이 없는 것이 없는데, 누가 있어서 기강을 유지하고 제방을 엄격히 만들어서 세도를 부식(扶植)하고 백성을 구제할 것이며, 누가 있어서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 우뚝이 서서 소신을 주창하고 전성(前聖)을 이어 후학을 계도하는 일을 몸소 담당하여 사도(斯道)를 보위하고 사람들을 선(善)하게 만든다는 말입니까. 이는 저희 몇몇 소자(小子)들이 사사로운 애통으로 하는 말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선생의 도(道)를 도외시하지 않는 자들이 선생을 추모하여 서거하신 뒤에도 못 잊어함이 더욱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또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아, 슬픕니다. 어리석은 소자가 일찍이 선생의 문하에 유학할 때 선생께서 장려하고 교육하신 은혜가 천지부모(天地父母)와 같을 뿐만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소자는 자질이 어리석고 나약하여 원래 교육을 받을 만한 바탕이 못 되는 데다가 의귀(依歸)한 선생을 잃은 뒤로는 퇴보만 있고 진보는 없었습니다. 그런 데다가 거듭 고질이 몸을 속박하여 다시 분발해 매진할 가망이 없다 보니, 새로운 지식은 늘어나지 않고 지난날에 배운 것은 모두 황폐해졌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귀밑머리가 이미 희었습니다.
지난날 온갖 방법으로 부지런히 어루만져 교육하시면서 소자를 성취시키고자 하신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지금 이렇게 혼매(昏昧)하고 쇠잔(衰殘)한 한 병자(病者)가 되었을 뿐이니, 학문에 뜻을 둔 것이 성실하지 못하여 하늘도 돕지 않은 것을 스스로 슬퍼합니다. 신세를 생각하면 슬프고 부끄러우니, 후일 지하에 가서 무슨 면목으로 선생을 뵙겠습니까.
전에 선생께서 서거하셨을 때 이미 옛날 자공(子貢)처럼 스승의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 동안 시묘(侍墓)도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또 천장하는 때를 당하여 광중(壙中) 옆에 서서 한 번 영결도 하지 못하고 보니, 아득한 우주처럼 이 마음의 슬픔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은사(恩師)의 영령이 계시다면 오셔서 흠향하소서.
[주1] 표질(表姪) : 누이의 아들이다. 동춘의 어머니가 사계(沙溪)의 종매(從妹)이므로 동춘은 사계의 종생질(從甥姪)이 되고, 사계는 동춘의 종표숙(從表叔) 이 된다.
[주2] 자공(子貢)처럼 …… 시묘(侍墓) : 옛날 공자(孔子)의 상(喪)에 제자들이 모두 심상삼년(心喪三年)의 복을 입고 돌아갔으나, 자공은 홀로 공자의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을 더 머물며 시묘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祭沙溪金先生遷葬文
維崇禎十四年歲次辛巳正月初九日乙酉。卽沙溪先生遷奉之期也。表姪宋浚吉。方抱痼疾。不得往赴。前一日。敬遣子光栻。以淸醑庶肴。奠于靈筵。文以告之曰。嗚呼哀哉。先生之歿。距今十餘年矣。音容日遠。影響無憑。微言莫闡。墜緖難尋。追惟謦欬。至痛猶新。嗚呼哀哉。龍虎旣亡。世道嬗變。千怪百鬼。無所不有。孰有維持倫紀。嚴設堤防。以扶斯世而濟斯民。孰有孤雊獨倡。身任繼開。以衛斯道而淑斯人。斯不惟數三小子區區私痛已也。環東土一域。不外於先生之道者。所以追思永慕。旣沒世而愈不能忘。於是尤切。此固人心所同。又安可誣也。嗚呼哀哉。小子顓蒙。早游函丈。所以奬礪敎育。蓋不翅如天地父母。顧此昏弱之質。元非受采之資。一失依歸。有退無進。重以痼疾纏髓。無復有奮迅勇往之望。新知不繼。舊學盡荒。而歲月侵尋。顚毛已種種矣。何昔日辛勤撫育。欲其成就之萬方。而今直爲此昏昧摧剝。兀然一病人也。自悼志學無誠。天不助佑。撫念身世。旣悲且慙。他年地下。更有何顏。築室三年。旣孤於前。臨穴一訣。更負於今。茫茫宇宙。此情何極。伏惟恩靈如在。尙賜歆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