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孝寧大君)의 유묵첩(遺墨帖)에 대한 발문
호남 관찰사로 있는 이공 진수(李公震壽)가 그의 선조인 효령대군 정효공(靖孝公)의 유묵 한 첩을 나에게 보여 주며 말하기를, “이는 우리 선조께서 전라도 강진현(康津縣)에 있는 만덕사(萬德寺)에 토지를 시주하여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명복(冥福)을 비신 내용입니다. 우리 선조께서는 태종대왕의 둘째 아드님이셨습니다. 양녕대군(讓寧大君)께서 장자(長子)로 저위(儲位 동궁 )에 계셨는데, 영묘(英廟 세종대왕 )께서 서열이 셋째였으나 태어나면서 성덕(聖德)이 있는 것을 보고는 세자의 자리를 사양하고자 하여, 밤중에 선조(先祖)의 침소로 찾아와서 물으시기를, ‘내가 병을 칭탁하여 세자의 자리를 사양하고자 하니, 자네는 어찌하겠는가?’ 하시자, 선조께서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합장(合掌)하고 벽을 향하시니, 양녕대군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로부터 선조는 매번 합장하고 벽을 향해 앉으시곤 하였는데, 태종께서 왕림하여 물으시자 대답하기를, ‘밤에 꿈속에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신(臣)에게 가르치기를, 「너는 나의 제자이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부처에게 마음을 귀의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종대왕이 서열을 넘어 저위에 오르시니, 우리 선조께서 덕을 숨기시고 스스로 버려진 것은 실로 주(周)나라의 우중(虞仲)과 같습니다. 지금 이 사찰에 토지를 시주한 것도 불교에 귀의하여 자취를 감춘 한 가지 일입니다. 지금 300년이 지나고 여러 번 병란을 겪은 뒤에 작은 종이 조각을 얻었는데 수택(手澤)이 완연하니, 후손들이 공경히 보고 추모하는 마음을 부침에 있어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군(君)이 한마디 말씀을 뒤에 써 주어서 숨은 덕을 발휘해 주기 바랍니다.” 하였다.
나는 이에 유묵첩을 받들어 공경히 읽고 마음속에 느낀 바를 삼가 써서 돌려주며 말하였다.
“옛날에 삼가 들으니, 양녕대군이 세자(世子)의 자리를 내놓고 나가신 뒤에 양녕대군은 효령대군이 산사(山寺)에서 수륙 대회(水陸大會)를 개최한다는 말을 듣고는, 팔뚝에 새매를 앉히고 누렁개를 끌고 나아가서 사슴과 노루를 사냥하여 잡고 꿩과 토끼를 수레에 가득히 실은 다음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로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며 태연자약하였다. 효령대군이 말하기를, ‘형님께서는 전생에 많은 복을 쌓으셨기 때문에 지금 부귀를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만일 현생에 선행(善行)을 닦지 않으면 장차 내생에 악보(惡報)를 받을 것이니, 어찌하시렵니까?’ 하니, 양녕대군이 말하기를, ‘내 살아서 동국(東國) 국왕의 형님이 되어 이처럼 부귀를 누리고 있으며, 죽으면 또 장차 서천여래(西天如來)의 형님이 될 것이니, 비록 선한 일을 닦지 않으나 어찌 악보를 소멸할 방도가 없겠는가.’ 하고는 이에 형제가 서로 웃으며 파했다고 한다. 이렇게 묻고 대답한 것을 가지고 관찰해 보면 양녕대군은 본래 미친 것이 아니요 칭탁한 바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효령대군은 본래 영불(佞佛)한 것이 아니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옛날 태백(泰伯)이 단위(端委)를 하고서 오(吳)나라를 개국하였고 우중(虞仲)이 머리를 자르고 문신(文身)을 하였으니, 그 처신이 비록 다르나 그 사양한 덕은 똑같다. 어찌 그 행적을 가지고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우리 조종(祖宗)의 본손과 지손이 진실로 전대(前代)인 고려조보다 훨씬 많으며 양녕과 효령 두 대군의 후손이 번창하고 성함은 또 여러 종적(宗籍)보다 월등하니, 지극한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후손이 있는 것이다. 또 천도(天道)의 분명함을 징험할 수 있다.”
[주1] 주(周)나라의 우중(虞仲) : 우중은 주나라 태왕(太王)의 둘째 아들로, 태왕이 셋째 아들 계력(季歷)에게 전위(傳位)하여 손자 창(昌)이 나라를 이어받게 하려 하자, 형인 태백(泰伯)과 함께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몸에 문신(文身)을 한 다음 형만(荊蠻)으로 피하였다.
[주2] 수륙 대회(水陸大會) : 물이나 육지에 있는 고혼(孤魂)과 악귀에게 법식을 공양하는 법회로서 수륙재(水陸齋), 비제회(悲濟會)라고도 한다.
[주3] 영불(佞佛) : 부처에게 아첨한다는 뜻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자신의 복(福)을 비는 일을 이른다.
[주4] 태백(泰伯)이 …… 개국하였고 : 태백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큰아들이다. 태왕이 셋째 아들 계력(季歷)에게 전위하여 손자 창(昌)이 나라를 이어받게 하려 하자, 태백이 아우 우중(虞仲)과 함께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몸에 문신(文身)을 한 다음 형만(荊蠻)으로 피하였다. 단위(端委)는 주나라 때의 예복으로, 《춘추좌씨전》 애공(哀公) 7년에 “태백이 단위를 하고서 주나라 예를 다스렸다.〔太伯端委以治周禮〕” 하였다.
孝寧大君遺墨帖跋
湖南方伯李公震壽。以其先祖孝寧大君靖孝公遺墨一帖示余曰。此我先祖以田施全羅道康津縣萬德山寺。爲追薦冥福於先王先后事也。我先祖 太宗大王第二子也。讓寧以長子在儲位。見英廟序居第三而生有聖德。欲讓其位。乘夜就先祖寢所問曰。吾欲託疾。君當何爲。先祖無語。只合掌向壁。讓寧頷之。自此先祖每合掌向壁而坐。太宗臨問之。 對曰夜夢如來敎臣曰汝是吾弟子。是以歸心於佛。因此世宗大王越序陞儲位。我先祖隱德自廢。實同周家之虞仲。今此施田僧寺。亦其韜晦之一事。而今得片紙於三百年累經兵燹之後。手澤宛然。其在後孫敬玩寓慕之心。當復如何。願得君一言之書諸後。發揮其潛德也。余於是奉帖敬讀。謹書所感於懷以復之曰。昔者竊聞之。讓寧遜出之後。聞孝寧開水陸大會於山寺。臂蒼牽黃。獵獐鹿載雉兔。往其會中。炰肉進酒自若也。孝寧曰兄於過去世多種福。今享富貴。乃於現在世。不修善。將於未來世。受惡報何。讓寧曰吾生爲東國人君之兄。以此享富貴。死則又將爲西天如來之兄。雖不修善事。豈無消滅惡報之道乎。於是兄弟相笑而罷云。以此問答觀之。讓寧之本非狂悖而有所託可知也。孝寧之本非佞佛而有爲爲可知也。昔泰伯端委而開吳。虞仲斷髮而文身。其處身雖異。其讓德則一也。何可以其迹而貳之哉。我祖宗本支之多。固遠勝於前代。而讓寧孝寧二大君苗裔之繁衍昌盛。又有逾於諸宗籍。至德之必有後。又可驗天道之昭昭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