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감나무 집
김현주
그 집 마당에 들어서니 메조 꽃이 피어 있었다. 감나무에는 검게 마른 감 꼬투리가 까딱까딱 바람을 타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미처 따지 못해 남겨 놓은 홍시는 까치밥이 되었다. 새는 연지 빛 홍시를 쪼아 먹고 꼬투리만 남겼다. 꼬투리는 나무에 매달린 채 겨울을 살았지만, 다시 봄이 와도 제 몸을 떨구지 못했다. 감나무는 꽃도 피우지 않고 그대로 여름을 살았다. 올해는 한 개의 감도 열리지 않았다. 감꽃이 피지 않은 감나무 아래는 얼마나 어두웠을까.
봄을 못 본 감나무 아래 메조 꽃이 가을 햇살을 타고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문학회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맏언니시다. 일흔이 한참 지난 나이에도 서울을 오가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신다. 시집도 몇 권 내신 시인이시고, 서예가협회에서 회장을 역임하고 계시는 서예가이시기도 한 그야말로 다재다능하신 분이다. 몇 년 전에 부군을 여의시고 혼자 사신다.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거쳐 보름을 병실에서 보내셨다 한다. 폐렴이 왔고 열이 식지 않아 중환자실에서 몇 날을 보내셨다.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은 꺼질 듯 작았다.
외출준비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드린 전화다. 퇴원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혼자 식사를 차려 드신다는 소리에 마음보다 손이 먼저 도발을 했다. 오른손은 전화기를 든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왼손은 벌써 팥을 덜어 내 씻고 있었다. 또 손이 빌 새도 없이 찹쌀이 꺼내져 물에 담가지고 있었다.
뽀얀 쌀뜨물이 포말을 만들어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물빛에 어머니 살아생전의 한 토막이 해리 포터의 한 장면처럼 나타났다.
내 어머니는 강단이 있으신 건지 티를 내지 않으신 건지 사소한 감기조차도 앓으신 적이 없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기억의 오류일 수도 무관심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 어머니는 늘 건강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서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사고가 있었다. 도마를 놓고 칼질을 하다가 손에서 미끄러진 칼이 어머니의 발등을 찍었다. 며칠을 아니 한참을 거동 못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왜 좀 더 세밀히 살피지 못했을까 많은 후회가 인다.
거동을 못하시니 때가 되어도 식사준비가 어려워서 힘이 드셨을 것이다. 생살을 건드린 칼의 쇳독은 오래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휴가를 내어 집을 찾았다가 경악했다.
불 꺼진 방 안 방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어느 전시장의 전시품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이었다. 어느 그릇엔 수저가 꽂아져 있었고, 어느 그릇엔 국그릇도 포개져 있었다. 오열이 터져 나온 건 말할 것도 없다.
뭐야~~ 이것들은……?
목울음을 누르고 나온 첫마디였다.
“안 죽을랑게 밥은 챙겨 묵었는디 일어서지를 못헌게 설거지를 못했다야. 맥없이 내 새끼한테 시방 이 꼴을 보인다 잉.”
엄마는 당신의 불편함보다 그 상황을 내게 보인 것이 못내 미안한지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먹고사는 일이 그리 어렵다. 한 번 경험을 했기에 마음보다 손이 더 앞선 것이다 세상에 끼니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일단은 드시게 해야 될 것 같았다. 찰밥을 지어 두 개의 찬합에 나누어 담고, 어제 마침 버무려 놓은 배추겉절이와 열무김치를 덜어 담다가 부추김치도 한 주먹 덜어 통에 나누어 담았다. 밥통과 김치 통이 든 보따리를 들고 강의실에 갔다. 문우들과 밥을 먹고 제물포역으로 달렸다.
초인종을 누르니 신발 끄는 소리와 함께 선배님이 나오셨다. 조금 핼쑥해지시긴 했어도 다행히 염려한 것보다 좋아 보였다.
찬합의 밥들을 일인용 그릇들에 나누어 담고 냉동실과 냉장실에 구분해 넣었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가지고 간 김에 기름을 발라 굽고 상을 차려 둘이 오붓하게 저녁을 먹었다. 열무 순으로 끓인 된장국이 슴슴하니 맛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감나무 아래가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늦기 전에 서둘러 가라고. 등을 떠미신다.
붉은 메조 꽃이 감나무를 밝힌다. 그 빛이 선배님의 파리한 얼굴에도 가 앉기를 바라며 감나무 집을 나왔다.
김현주 | 2018년 『서정문학』 신인상 시, 2021년 『문예바다』 신인상 수필 당선. 시집 『저녁 문산리』(공저), 산문집 『꽃살문에 앉은 바람』. 인천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 지원사업 선정(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