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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교훈
11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flee from these things, you man of God, and pursue righteousness, godliness, faith, love, perseverance and gentleness.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Σὺ δέ, ὦ ἄνθρωπε Θεοῦ, ταῦτα φεῦγε·
you however, o man of God, these flee
직역하면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피하라’(φεῦγ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flee) 언제나 피하라는 뜻입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δίωκε δὲ δικαιοσύνην, εὐσέβειαν, πίστιν, ἀγάπην, ὑπομονήν, πραϋπαθίαν.
pursue now righteousness, godliness, faith, love, perseverance and gentleness.
‘따르며’(δίωκε)도 현재 명령형으로서( pursue) 언제나 따르라는 뜻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이란 표현은 모세(신 33:1), 사무엘(삼상 9:8), 엘리야(왕상 17:18), 엘리사(왕하 4:7)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을 호칭하는 성직자에 대한 존칭어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 목사에게 이런 존칭어를 사용해서 존엄한 성직자로서의 직임을 자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성직자로서 자각심으로 인해, 사람은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와 같은 고상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더러운 옷을 입으면 아무 데서나 딩굴 수 있으나, 깨끗하고 고귀한 옷을 입으면, 갈 자리 앉을 자리를 성별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해야 할 것들’은 이단자들이 싸우고 돈을 추구하는 것들(4-10절)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따라야 할 것들’은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 여섯 가지 덕목을 가리킵니다.
3. ‘의와 경건’은 실제적인 경건 생활을 가리키고, ‘믿음과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키고, ‘인내와 온유’는 대적자를 대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ight the good fight of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and you made the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ἀγωνίζου τὸν καλὸν ἀγῶνα τῆς πίστεως,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싸우라’(ἀγωνίζου)는 현재 명령형으로서(fight) 언제나 싸우라는 뜻입니다.
영생을 취하라
ἐπιλαβοῦ τῆς αἰωνίου ζωῆς,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취하라’(ἐπιλαβοῦ)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take hold) 단호하게 취하라는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εἰς ἣν ἐκλήθης
to which you were called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ἐκλήθης)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were called) 과거에 확실하게 부름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καὶ ὡμολόγησας τὴν καλὴν ὁμολογίαν, ἐνώπιον πολλῶν μαρτύρων.
and you confessed the good confession, before many witnesses
‘(증언)하였도다’(ὡμολόγησας)는 부정과거로서(you confessed) 과거에 확실히 증언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은 이 세상이 전쟁터와 같아서, 성도들은 마귀와 싸우고, 불신 이단과 싸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8절에서도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2. ‘영생을 취하라’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자가 얻게 될 상급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47절에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생을 취하라’는 말씀은 이미 가지고 있는 영생을 굳게 붙잡고 누리라는 뜻입니다.
즉, 여기서 ‘영생’이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리키고, 성령 충만한 상태를 가리키고, 결국 천국 영생을 가리킵니다.
3.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을 모시고, 성령 충만하여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4.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언을 했다’에서 ‘증언’(ὁμολογίαν: confession)이란 신앙 고백을 가리키는데, 세례 받을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선한 증언’이란 당시 기독교를 핍박하는 때였으므로, ‘예수님을 주님(임금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어렵고도 선한 증언이었기 때문입니다.
13절.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cha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who gives life to all things, and of Christ Jesus, who testified the good confession before Pontius Pilate,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내가 너를 명하노니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τοῦ ζωογονοῦντος τὰ πάντα
I charge before the God, the (One) giving life the all
‘살게 하시는’(ζωογονοῦντος)은 현재분사로서(giving life) 항상 살게 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글번역에 ‘살게 하신’(ζωογονοῦντος: giving life)은 현재분사로서, 하나님께서 현재 만물을 살게 하고 계시는(살게 하시는) 것을 뜻하고, 한글 번역처럼 ‘살게 하신’으로 과거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바울 사도도 사도행전 17장 28절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ζῶμεν καὶ κινούμεθα καὶ ἐσμέν: we live and move and are)”고 했습니다.
‘내가 명하노니’(παραγγέλλω)는 현재형으로서(I charge) 현재 명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를’(σοι)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본에는 빠져있고(Nestle 1904, Tischendorf), 여러 사본에는 들어있습니다(Westcott and Hort, Byzantine, Greek Orthdox).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καὶ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τοῦ μαρτυρήσαντος ἐπὶ Ποντίου Πειλάτου τὴν καλὴν ὁμολογίαν
and Christ Jesus, the (One) having testified before Pontius Pilate the good confession
‘(증언을) 하신’(μαρτυρήσαντο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 having testified) 과거에 확실하게 증언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AD 26-36년에 유대나라를 다스린 로마의 총독이었고, 그의 아내(Clsaudia Plecla)는 숨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형 판결에 내어주는 본디오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요 18: 36-37)
2. ‘선한 증언을 하신’(μαρτυρήσαντος: having testified)이란 단순히 ‘증언하신’이란 뜻이고, ‘선한’이란 말은 본문에 없는 것을 첨가한 것이고, ‘증언하셨다’는 것은 신앙 고백을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를 죽일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셨다는 뜻입니다.
1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you keep the commandment without stain or reproach until the appearing of our Lord Jesus Christ,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τηρῆσαί σε τὴν ἐντολὴν ἄσπιλον. ἀνεπίλημπτον
to keep you the commandment without stain, above reproach
직역하면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도록 너에게 (명령한다)’는 뜻입니다.
즉 ‘지키라’(τηρῆσαί)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keep) 앞 절의 ‘내가 명한다’(παραγγέλλω: I charge)에 연결되는 말로서, 굳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μέχρι τῆς ἐπιφανεία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until the appearing of the Lord of us, Jesus Christ,
1. ‘나타나심’(ἐπιφανείας: appearing)이란 단어는 일반적인 ‘강림’(παρουσίᾳ: coming: 살전 2:19)이란 단어 보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로마 황제 같은 중요한 인물이 갑자기 나타날 때도 쓰였습니다. (갈리굴라 황제의 비문에도 나타남)
2. ‘이 명령을 지키라’는 11-12절에 말씀한 ‘이것들을(이단들의 싸움과 물질욕)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는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15절.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ich He will bring about at the proper time-- He who is the blessed and only Sovereign,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ἣν καιροῖς ἰδίοις δείξει
which times in the own He will display
직역하면 ‘그 자신의 때에 그분이 보이실 것이다’는 뜻입니다.
‘보이시리니’(δείξει)는 미래형으로서(He will display) 미래에 나타나 보이실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ὁ μακάριος καὶ μόνος Δυνάστης,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βασιλευόντων καὶ Κύριος τῶν κυριευόντων,
the blessed and alone Sovereign,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본문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없으므로, 하나님을 가리킬 수 있고, 14절과 연결해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1. ‘기약’(καιροῖς ἰδίοις)이란 ‘그 자신의 때들’(times in the own )이란 뜻인데, 여기서 복수형(καιροῖς: times)은 관용적인 용법으로서 그냥 ‘때’를 의미합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데,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마 24:36)
2. ‘하나님은 복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시라는 뜻이고, ‘유일한 주권자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가리키며,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라’는 것은 당시 로마 황제에게도 쓰였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절대 주권자이심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도 고백된 것으로서, 당시 성도들의 신앙고백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신앙 고백은 성부 하나님께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16절.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alone possesses immortality and dwells in unapproachable light, whom no man has seen or can see. To Him be honor and eternal dominion! Amen.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ὁ μόνος ἔχων ἀθανασίαν,
who alone having immortality
직역하면 ‘그만이 불멸을 가지고 계시고’란 뜻입니다.
‘가지고 계시고’(ἔχων)는 현재분사로서(having) 현재 가지고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φῶς οἰκῶν ἀπρόσιτον,
in light dwelling unapproachable
‘거하시고’(οἰκῶν)도 현재분사로서(dwelling) 현재 거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ὃν εἶδεν οὐδεὶς ἀνθρώπων, οὐδὲ ἰδεῖν δύναται·
whom saw no one of men, nor to see is able
‘보지 못하였고’에서 동사(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saw) 역사상 한 번도 보지 못한 절대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볼 수 없는 이시니’에서 앞의 동사(ἰδ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ee)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을 가리키고, 뒤의 동사(δύναται)는 현재형으로서(is able) 언제나 절대 볼 수 없는 진리적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ᾧ τιμὴ καὶ κράτος αἰώνιον· ἀμήν.
to whom honor and dominion eternal, amen.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는 것은 당시 로마 황제들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자칭했기 때문에, 로마 황제들은 죽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죽지 않고 영생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표현했습니다( 계 17:4, 19:16).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빛이시고(요일 1:5), 예수님도 빛이신데(요 1:9), 모세 같은 위대한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가까이 가지 못 한 것을 가리킵니다( 출 33:17-23).
‘하나님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불 수 없는 자시다’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고(출 33:20),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 1:18).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리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마지막 송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단자들처럼 물질적 탐욕으로 주의 일을 하지 말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로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날마다 영생을 취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