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유적지 또는 코린트 유적지
B.C.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고대 도시국가를 B.C. 44년
로마 황제 시저가 재건한 로마 시대의 유적이다.
코린트시에서 약 8km 떨어진 아크로코린트 산기슭에 있다.
코린트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이오니아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리온 항구를 품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며 에게해로 나갈 수 있는 켄크레아 항구를 품고 있다.
코린트는 이런 지리적 잇점을 바탕으로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가
연결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활발한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 51년 경에 처음으로 고린도로 갔다.
그는 일년 반 동안이나 많은 힘을 들여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는데,
신자 대부분은 이방인들의 종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후 바울이 에페소에 체류하는 동안 고린도 교회 분파들의 분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그 교회는 바울에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에페소에서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이것이 고린도 전서이다.
이 편지의 13장 '사랑의 찬가'와 15장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명하다.
이 밖에 신전 남쪽에는 상점 등의 흔적이 있는 아고라가 있으며,
아고라에서 북쪽 레카이온 항구까지 이어진 레카이온 거리에는 배수구까지
있었다고 한다. 입구 근처에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시저 일족의 상 등
출토된 발굴품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
옥타비아 신전
코린트식 기둥 양식을 잘 나타낸 로마시대의 신전이다.
고린도에 있는 아폴로 신전
아폴로 신전은 아고라 북쪽 끝에 있는데, BC 6세기경에 태양신 아폴론을 위해
축조했는데, 현재는 도리아식 일곱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그리스 신전 중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되었다
고린도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건축 당시에는 38개의 원주로 된
신전이었으나 현재는 7개의 원주만이 남아 있다.
아고라의 남서쪽 스토아
아폴로 신전의 서쪽에 거대한 아고라(광장 혹은 포럼)가 있으며,
이 아고라 서쪽에 스토아(상점)가 있다.
이 스토아에는 고대 그리스의 건조물 중에서 가장 큰 주랑이 있다.
주랑 주변에는 가게와 레스토랑이 있고, 그 남쪽에는 기둥들에 둘러싸인
남바실리카가 있다.
상점들의 중심부의 가운데에 베마(연단)가 있으며, 포럼의 동쪽 끝에는
율리아나의 바실리카(Julian Basilica)가 있다.
이 바실리카는 아고라 동쪽 끝의 집회소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율리아나 시저의 가족들상이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고린도 운하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폭 23m ,깊이 90m, 길이 6,343m의 운하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 곳에 여러 차례 운하를 건설하려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마침내 19세기 (1883년~1893년)에 이르러 프랑스 민간회사에 의해 완공되었다고 한다.
운하위로는 열차와 버스가 다니는 다리가 가로놓여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궤도를 이용해서 이동시킨 듯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 운하는 세계 최초의 운하로서 많은 유태인을 동원해서 건설하였는데
2만톤이하만 운항이 가능하고 더 큰배는 견인한단다.
돌뿐인 곳을 파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고하며,
그리스에 많은 부를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운하는 단단한 암석을 깍아서 만든 것으로 길이 6km, 넓이 23m, 깊이 90m이다.
이 운하로 피레우스(Piraeus)항이 주요한 지중해 항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 있는 근대 올림픽 경기장
2004년 올림픽 때 양궁 경기가 열렸고 마라톤 결승점이 있는 곳이다
시내 한가운데 있으며 손기정 선수, 황영주 선수의 이름이 석탑에 새겨져 있다.
에기나 섬에서 에게해를 배경으로 한 컷
에기나 섬은 피레우스항에서 배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에게해 섬 중의 하나로 고대에 독립된 도시국가였으며
아테네 와는 막강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강력한 곳이라고한다.
에게라는 명칭은 전설상의 아테네왕 아이게우스, 또는 해신 포세이돈의 성지
아이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에기나 섬에서 새우 튀김과 삶은 문어를 먹었다
시장안에 있는 이 식당의 주인은 한국전 참전 용사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들이 이 집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주문할 때는 "원 새우, 원 문어"라고 하면
새우 튀김 한 접시와 문어 한 접시를 가져왔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에기나 섬에서 본 그리스 정교의 작은 사원
어부들이 출항하기 전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를 올리고 가는 곳이라고 한다
위 작은 사원의 내부
아테네의 가로수
가로수가 거의 이렇게 생겼는데 열매는 오렌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름은 네렌지라고 하며 씨가 많고 시어서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테네에 있는 대통령궁
대통령 궁 맞은 편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본 오리들
아테네 국회 의사당 건물 앞 의장병 교대식
신타그마 광장 동쪽 아말리아스(Amalias) 거리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건물 정면 벽에는 무명 용사의 부조가 있다.
( 오른쪽에 반쯤 보이는 것)
1923년 터키 제국에 항전하다가 희생된 용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중세 이래의 전통의상을 입은 의장병 두 명이 서 있는데,
30분마다 자리를 바꾸는 의식을 행한다.
또 한 시간마다 의장병 교대식이 있다.
마침 우리들이 갔을 때 병사들이 교대식을 하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병사들이 미니 스커트 같은 스타일의 제복에
흰 타이스를 신고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크게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폼이 유머러스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했다...
신발이 동화(?)스럽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는 곳
필로파프스 언덕 유적 근처에 있으며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후
이 곳에 억류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 유명한 악처한테서 얻은 늦둥이가 울음을 터트리니,
'얘야 울지마라. 죽는 내가 행복할지 살아있는 네가 행복할지 모르지
않느냐' 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 철학자 답다...
그는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소크라테스는 유죄 판결을 받고, 형량을 선고하는 2차 투표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한다.
최후변론에서 그는 "아테네 사람들은 머지 않아 현인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단다..
그리고는 바로 "악법도 법"이라며 조용히 독배를 마시고 숨졌다고한다...
그리스 여행을 끝내고 터키로 가기위해 피레우스항에서 배를 탔다.
9시간 정도 걸려 터키 가까이에 있는 히오스 섬(그리스 령)으로 갔다.
밤 동안 자면서 간 것이다.
굉장히 큰 배였는데 1방에 4명씩, 나는 이층 침대의 아래칸에 누웠다.
잠들었다가 배가 흔들려서 잠을 깼다.
멀미가 나고 머리가 아팠다.
히오스 섬에 새벽에 도착했는데 땅을 밟으니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터키 령인 체스메로 갔다.
1시간 정도 배를 탔는데 이 1시간 동안은 히오스 섬까지 올 때보다
훨씬 심한 파도에 모두들 긴장하고 심한 멀미들을 했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아고라의 남서쪽 스토아를 돌려 주시오, 배곱때문에 볼수가 없소. . .
내 컴에서는 잘 보이는데... ㅠㅠ 다시 올려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