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신예들의 돌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틀을 제사하는 위협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해 변하고 발전하며 또 즐거워진다. 웨스트라이프, 샤키라, M2M, 양성원, 곽윤찬.
2002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기대주, 이들을 주목하라.
미국 시장을 비웃은 아일랜드 뮤지션
웨스트 라이프
"너무나 당연해서 할 말이 없다. 엔싱크나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경우에도 발라드로 시작해 상업성이 가미되며 처음과는 많이 다른 음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웨스트라이프는 계속해서 자기의 이미지를 지켜 나간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고, 또 그만큼 반응도 온다."
(BMG 팝 마케팅부 이지현)
확실히 유별난, 특별한 뮤지션이다. 국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 차트의 도움 없이 국내에서 보여준 음반 판매량도 그렇고, 멀게는 영국에서 7개 싱글을 연속으로 넘버원에 올리며 기네스 북에 오른 것만 보더라도. 최대 음반 시장인 미국을 제외하고도 무려 1천2백만 장이 팔렸으니 음반 판매량 자랑은 그만 해도 충분할 듯하다.
아일랜드 출신인 이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우연히 택시에서 이들 중 세 명을 발견한 보이존(Boyzone)의 매니저 루이스 월시 덕분. 99년 4월 발표한 데뷔 싱글 `웨어 잇 어게인(Wear It Again)`이 단숨에 UK차트 1위에 진입하더니 영국 내에서 4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만 1백20만 장, 전세계적으로 5백만 장 이상이 팔린 첫 앨범 <웨스트라이프>와 두 번째 앨범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에서 발표한 싱글마다 차트 정상에 등극해 발표된 9개 싱글 중 8개가 넘버원을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두 번째 앨범은 타이틀 곡 `마이 러브(My Love)`가 국내 방송 차트에서 6주 간 정상을 차지하더니 내한 공연과 더불어 더블 플래티넘을 훌쩍 넘겨 올 가을에는 무려 20만 장이나 팔렸다.
11월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을 보니 웨스트라이프가 확실한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이번엔 아예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표방하며 앨범의 제목을 <월드 오브 아워 오운(World of Our Own)>으로 정했다. 발라드의 기본 톤은 유지하되 다채로운 컬러로 채색했고,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반응? 비틀스가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브리티시 인베이션(British Invasion)`의 신화가 이들로 인해 다시 세워지지 않을까?
남미 여전사, 미국을 점령하다
샤키라
남미에 이어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그래미 어워드와 MTV 비디오 어워드 수상자인 샤키라를 아는지. 76년 컬럼비아에서 태어난 샤키라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떡잎부터 다른 될성부른 나무였다. 완벽한 3개 국어 구사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8살에 작곡을 시작하고, 13살 때 굴지의 음반사인 소니의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으며, 91년 데뷔 앨범 <마지아(Magia)>를 발표해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으니. 2집 <펠리그로(Peligro)>가 실패하자 잠시 모델 활동과 멜로 드라마 배우로 활동하며 제법 인기도 얻었지만 음악적 `끼`는 어쩔 수가 없었던지 96년 세 번째 앨범 <피에스 데스칼조스(Pies Descalzos)>를 들고 음악계로 컴백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다. 첫 싱글인 `에스토이 아쿠이(Estoy Aqui)`가 라틴 뮤직 차트 넘버원을 차지하더니 이내 이 앨범은 8개국에서 4백만 장 이상 판매,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한순간 최고의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2년 후 샤키라는 네 번째 앨범 <돈데 에스탄 로스 라드로네스(Donde Estan Los Ladrones)>로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실력을 공인받으며 미국 시장을 넘볼 기회를 잡게 된다. 2000년 발표한 <엠티비 언플러그드(MTV Unplugged)>를 앞세워 영미권 진출의 토대를 마련한 후 그해 가을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오호우스 아시(Ojous Asi)`로 최고 여자 팝 보컬 퍼포먼스상을 수상하며 안정궤도에 올랐다.
2002년을 눈앞에 두고 샤키라는 그녀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첫 번째 영어 앨범인 <론드리 서비스(Laundry Service)>로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고, 반응들이 무섭게 몰려오고 있다. 2002년을 휩쓸었다는 승전보, 너무 성급한 기대일까.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이다. 중동, 동양 그리고 남미의 음악적 요소가 섞여 빚어내는 그녀의 음악은 환상적이고 민속적이며 월등한 차이를 보여준다. 뛰어난 음악성과 함께 여자도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등 월드 스타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소니뮤직 팝 마케팅부 권인경)
산뜻하고 풋풋해 더 도드라진다
M2M
18세의 마릿(Marit Elisabeth Larsen)과 17세의 마리온(Marion Elise Raven). 이들의 이름이 M으로 시작해 `M&M`으로 하려고 했다가 초콜릿 상표와 같아 불가피하게 M2M으로 바꿨다지만 자신들로부터 나오는 초콜릿 같은 단맛은 바꾸지 못한 듯하다. 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초콜릿을 입에 넣었을 때 실실 배어 나오는 웃음 같은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이들은 노르웨이의 오슬로 외곽 작은 마을 출신으로 십여 년 전 어린이 TV프로그램과 뮤지컬에서 만났다. 팀을 결성한 후 만화영화 <포켓몬>의 삽입곡 `돈 세이 유 러브 미(Don`t Say You Love Me)`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어린 티를 벗고(?) 도전장을 내민 데뷔 앨범은 작년에 발매한 <셰이드 오브 퍼플(Shades of Purple)>. 커버 사진도 그렇지만 어쩌면 그렇게 노래에도 보랏빛이 감도는지.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플래티넘을 달성했고, 전세계적으로 2백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난 11월에는 두 번째 앨범 <빅 룸(The Big Room)>을 발매했다. 풋풋함이 사라질까 내심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오히려 풋풋함은 파워감을 덧댄 보컬과 시원스러운 기타 사운드, 북구적인 서정미와 동양적인 감성까지 담아내고 있다. 수록곡 13곡을 이들이 직접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수차례 언급한 대로 이들의 노래는 동요 같다. 상업성에 찌든 대형 팝시장에서 이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위험스러운 추측은 접어 두고 찌든 상업성 속에서 만난 맑은 샘물이 주는 신선함에 잔뜩 취해 봄은 어떨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을 직접 작사, 작곡했다. 내한 때 보니 발랄하고 예쁜 외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끊임없이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음악이 몸에 배어 있는 가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타성을 염두에 두고 활동한다기 보다는 음악이 좋아 노래하는 가수라 더욱 신선하다. 전세계 팬들도 그런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워너뮤직 팝 마케팅부 박수현)
첼로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 제시
양성원
"양성원의 데뷔는 남성 첼리스트가 부족한 한국 음악계의 특성상 일단 반가운 소식이었고, 그의 뛰어난 기량을 보곤 이내 감탄했다.
게다가 그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또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기 때문에 가능성이 무한한 아티스트이다." (EMI 클래식 마케팅부 이동은)
한국 예술 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인 첼리스트 양성원이 데뷔 앨범으로 코다이의 곡을 골랐다는 것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의아함과 그의 당참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바흐의 대위법을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어법을 고집한 졸탄 코다이. 그는 작곡가보다는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정립한 이론가로 더욱 유명하며 곡도 까다로워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양성원의 데뷔 앨범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편안함`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데뷔 앨범답지 않게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구축했다는 점.
그렇다고 그가 고리타분한 연주자는 절대 아니다. 앨범이 발매된 2000년 12월에는 소프라노 박미혜, 가수 이문세와 더불어 콘서트 <아주 특별한 만남…겨울>을 통해 대중 앞에 성큼 다가섰는가 하면, 강동석, 김영욱, 정명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의 공연인 <7인의 남자들> <7인의 음악인들>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였다.
그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아티스트다. 파리 고등 국립 음악원과 인디애나 대학원을 졸업하며 본격적인 연주자로 나선 그는 일찌감치 뉴욕 링컨 센터의 알리스 튤리 홀, 파리의 살리 가보,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의 테라스 극장, 동경의 추다 홀 등에서의 독주회를 통해 연주자로서의 명성을 날렸고, 프랑스 국립 TV와 유로비전을 통해 전유럽에 중계되기도 했다. 내년 2월 초에는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곡을 담은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첫 앨범에 비해 훨씬 친근한 곡으로 선정했다. 낯선 곡에 이어 익숙한 곡을 어떤 어법으로 풀어낼지 기대가 크다.
재즈의 숨겨진 표정을 들춰내다
곽윤찬
"에알시 레이블에서 발매한 첫 번째 한국인 아티스트로 보기 드문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연주나 편곡 실려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이론적 지식도 해박해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즈를 가장 사랑하고 즐길 줄 알며 표현할 줄 아는 뮤지션이다."
(유니버셜 뮤직 클래식ㆍ재즈 마케팅부 김은강)
곽윤찬이 1990년 후반을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 주목받는 재즈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는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니버설 뮤직이 선택한 최초의 한국인 재즈 아티스트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는 실제 많은 활동을 통해 재즈계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2001년 발매된 그의 첫 앨범 <서니 데이즈(Sunny Days)>는 여러모로 눈길을 끌었다. 금세기 재즈의 최고 거장 제프 해밀턴, 존 클레이튼과 함께 작업을 한 것도 그렇고, 데뷔 앨범의 작업을 거장들과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하루 만에 끝낸 것도 그렇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곽윤찬은 7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고교 시절 본격적으로 재즈에 입문한 케이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클래식과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곽윤찬은 도쿄의 뮤즈 음악원과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 컨템퍼러리 재즈 그룹 `쿨`을 조직해 활동을 하며 최세진, 이정식, 이주한, 전성식 등과 음악적 교류를 쌓았고, 척 맨지오니와 데일 필더, 게이코 리의 내한 공연 때 피아노 연주를 했다. 밤에는 연주로, 낮에는 강의로 그리고 틈나는 대로 방송일을 하며 밤낮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가 12월에 로댕 갤러리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2002년 4월에는 제프 해밀턴, 존 클레이튼과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재즈가 얼마나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무척이나 세련되고 친근한 어법으로 보여준 곽윤찬, 2002년 그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