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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물 스크랩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봉봉오봉 추천 1 조회 51 18.03.20 08:4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가 있었다.


 - 성냥공장 아가씨- (민다성)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두갑 일년이면 몇갑이냐

서울에선 뻐스타고 고향갈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에 성냥공장 아가씨는 미스김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만드는 아가씨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는 더 예뻐

서울에선 뻐스타고 고향갈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에 성냥공장 아가씨는 멋쟁이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두갑 일년이면 몇갑이냐

서울에선 뻐스타고 고향갈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에 성냥공장 아가씨는 미스김


이 노래를 저속하게 개사해서 많이 불러댓다
80년대 이전까지 군대에서 사병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노래이다.

물론 군가도 아니고, 진중가요라고도 할 수 없는 통속적인 노래이다.

이 곳에 소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저속한 그 노래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도 한 갑 두 갑 일년에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갔다가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과 동행 귀국할 때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일반에게 생활용품으로 대중화하기는 국권피탈 후인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성냥[朝鮮燐寸]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군산·수원·영등포·마산·부산에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 판매함으로써 가정용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공장설치도 일체 허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도 배우지 못하게 하여,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서는 성냥 1통에 쌀 1되라는 비싼 값으로 판매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인천에 대한성냥을 비롯하여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의 공장이 설립되어 월간 400만 포의 성냥을 생산 공급하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에는 150여 개 업체로 정리되었고, 1970년대부터 자동화시설로 전환함에 따라

업체 규모의 대형화로 업체수가 20개로 감소되었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


즉, 우리 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은 일본인이 인천에 세운 조선성냥이고,일본인들은 성냥의 독점화를 위하여
조선인의 기술 습득을 막았다. 그로 인해 일제 강점기 때는 성냥 한 통이 쌀 1되였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공장도 인천의 대한성냥이었고, 성냥공장이 자동화시설을 갖추고
대형화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또한, 우리 나라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전까지국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소득 수준이 낮았으니 국민 대부분이 돈이 없었고 소비도 많지 않았다.


신발도 짚신을 신거나 집 주위에서는 맨발로 다닐 만큼 절약했고,

옷도 천을 사다가 집에서 해 입는 경우가 많았다.

군것질은 보통 사람에게는 사치였고, 외식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절약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성냥이었다. 전기가 일상화 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도

매일 불(남포불, 등잔불, 촛불 등)을 켜기 위해 성냥이 있어야 했고,전기 밥솥이 없으니


밥을 짓기 위해서도 성냥이 있어야 했으며, 라이터가 귀한 시절이니 담뱃불도 성냥이었다.

즉, 성냥은 집집마다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당시로서는 불황이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성냥공장 아가씨들은 가난한 부모를 위해서 또는 힘들게 공부하는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서

먹을 것을 아끼고, 입을 것을 절약하며 일을 했다.


그러다가 명절 때 귀성하는 날 그 아가씨들이 고향에 가져가는 선물 보따리 속에는

귀금속은 아니지만 집에서 꼭 필요한 생필품인 성냥 눈물겨운 그 성냥이 들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훔치다가 들켜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받기도 했을 그 시절의 누이를 생각하면 서러운 마음도 든다.


 

 

 

 

 

 

 


 

 

성냥공장 아가씨 / 민다성

1 절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두갑 일년이면 몇갑이야

서울에선 버스타고 고향갈 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 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는 미스김 

 

2 절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 아가씨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는 더 예뻐

서울에선 버스타고 고향갈 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 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는 멋쟁이 

 

3 절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 아가씨

하루에 한갑두갑 일년이면 몇갑이야

서울에선 버스타고 고향갈 땐 자가용

삐까번쩍 쏙 빼입고 폼나게 데이트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는 미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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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3.20 20:36

    첫댓글 그러니까요
    구전가요가 아닌 노래가
    있었네요...

  • 작성자 18.03.20 21:05

    구전가요을 채록하여 한것인지
    아니면.
    이 노래가 먼저인지는 모르것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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