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와 이론] 11월 4일 세미나 토론
사회학적인 방향으로의 진로 수정은 이론의 상업화에 대한 (철저히 이론적인) 저항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론의 상업화는 1960년대의 사회학 붐이 1970년대에는 기호학이나 언어학의 유행으로, 다시 1980년대에는 해체 이론의 유행으로 대체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텍스트사회학은 사회학과 기호학의 종합을 통해서 두 이론의 설득력을 동시에 증대시키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모든 개념의 가치를 박탈 내지 평준화시키는 시장 사회의 악영향으로부터 이론이라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 이론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이이356)
위의 대목에서 지마는‘이론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개념의 가치를 박탈 내지 평준화시키는 시장 사회의 악영향’등이 이데올로기를 야기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현대 시장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생활 세계/(언어가 없는) 하위 체계 사이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의미 부여와 시장 법칙이 조장한 의미에 대한 무관심(무차별성) 사이의 대립인 것 같다. 나는 앞으로 교환가치가 모든 문화적․질적 가치를 부정하는 시장 사회에서, 특정한 종교적․정치적․윤리적․미적 가치들을 수호하는 데 이데올로기가 이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데올로기와 교환가치 사이에는 변증법적인 대립 관계가 성립한다. 이 대립은 생활세계와 하위 시스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이이380)
그런데 위의 대목에서는‘이데올로기적 의미 부여’와‘시장 법칙이 조장한 의미에 대한 무관심(무차별성)’을 대립시킴으로써‘시장 법칙이 조장한 의미에 대한 무관심(무차별성)’은 마치 중립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러한 지마의 입장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부정적 현상들은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 자체는 옹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인다. 즉, 이론의 상업화, 시장사회의 악영향 등이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됐음에도 상업화와 시장사회는 문제이지만 자본주의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거나 아니면 그러한 부정적 현상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거나. 그러면서도‘이데올로기와 교환가치’를 변증법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문제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 나가겠다는 입장.
파롤이나 언어 수행은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개인에 의한 추상적인 (문법) 규칙의 이용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요인이나 집단의 특징에 따라 좌우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이는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상징 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이358)
기호학과 사회언어학이 언어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인식에 도달했다면,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지배와 교환 및 제도화 과정이 어떤 언어적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밝혀낸 것이다.(이이368)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과학은 “사회적 대상 구성 과정에서 말이 수행하는 역할은 물론, 모든 계급 투쟁Klassenkampf에서 계층을 구성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분류투쟁Klassifizierungskampf의 역할까지도 연구해야 한다. 나이에 따른 계층, 성에 따른 계층, 사회 계층, 나아가서는 씨족․종족․인종․민족과 같은 집단의 구성에서도 분류법의 의미는 결정적인 것이다.”(이이370)
기호학이나 사회언어학과의 입장과 달리 텍스트기호학, 텍스트사회학을 주장하는 지마는 부르디외의 입장에 주목한다. 부르디외의‘상징자본’,‘지배와 교환 및 제도화 과정이 어떤 언어적 기반위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밝히는 작업’,‘모든 계급 투쟁Klassenkampf에서 계층을 구성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분류투쟁Klassifizierungskampf’등은 관심가질 만한 중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텍스트사회학과 텍스트기호학은 사회언어학과는 달리 거의 전적으로 파생된 언어나 2차적 언어로 씌어진 텍스트(글)에 대한 연구다. 우리는 2차적 언어라는 개념을−그레마스와 로트만을 따라서−픽션/허구의 언어, 학문의 언어, 이데올로기의 언어, 철학의 언어, 광고의 언어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2차적 언어의 기능은 (독일어․영어 등의) 자연어에 의존하고 있다. 이 점에서 두 언어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2차적 언어는 자연어의 어휘․의미․통사 구조를 기반으로 특수한 2차적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는 언제나 1차적 의미 및 이에 상응하는 문화적 컨텍스트와 무관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이361)
지마는 1차 언어와 2차 언어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마는 두 언어를‘근본적으로 구별’한다. 텍스트사회학과 텍스트기호학이 1차 언어로부터 ‘파생된 언어나 2차적 언어로 씌어진 텍스트’를 연구한다고 한다면 그 둘 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이 존재하는지 따져 봐야할 중요한 지점이다. 이렇게 1차 언어와 2차 언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연구를 시작하는 태도는 지마답지 못한 태도로 보인다. 지마의 말대로 ‘2차적 언어는 자연어의 어휘․의미․통사 구조를 기반으로 특수한 2차적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1차적 언어와 2차적 언어 는‘무관하게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언어를 ‘근본적으로’구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텍스트사회학은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기호론처럼 이데올로기 비판적 이론이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사회학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론들에 대해서도 사회 비판적인 입장에서 그 역사적인 생성의 맥락을 관찰하는 이론인 것이다.(이이373)
허구의 영역에서 사회학적으로 중요한(유관적인) 것은 어떤 “내용”이나 “이념”이 아니라 의미론적․서술적 구조다. 바로 이 구조 속에서 집단의 관심과 입장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정의내리고 분류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이지, 레이몬드 윌리엄스가 디킨스의 작품에서 읽어내는 “사회 사상”이나, 문예학자 아우스가 프랑스의 시들에서 발견했다고 믿는 사회적 규범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이이375)
텍스트사회학은 “이데올로기 비판적이며,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다른 이론들을 사회 비판적인 입장에서 역사적인 생성의 맥락을 관찰하는 이론”이다.
텍스트사회학은 ‘내용’이나 ‘이념’보다 집단의 관심과 입장이 표현되는 ‘의미론적 서술구조’, ‘현실’[을 정의내리고 분류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더 중요시 여긴다.
텍스트사회학은 “어떤 새로운 사회 이론의 구상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술화의 사회적인 위치를 규명”하려고 노력할 뿐이다.(이이376)
신화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해서, 사회적․학문적 영역에서의 지배관계와 이러한 지배 관계를 공고히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언어적․비언어적 구조(이를테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까지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판 이론(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에서 말하는 비동일성은, 비판의 충동이 개인에게서 출발해서 인식 그 자체를 목표로 전진하며, 정치적이고 전술적인 고려나 기타 다른 목적에 대한 고려에 의해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이 개인적 영역으로 퇴각하는 것은 주관적 임의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사적인 내면성의 영역으로의 도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전체를 인식하는 개인의 의식은 단순히 개별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사고의 수미 일관성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포착”하기 때문이다.(이이377)
아도르노와 공유!
어떠한 학문적․정치적․종교적 조직에도 구애받지 않은 자율적 개인만이 사회과학의 객관성을 확립하는 대화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오직 그러한 개인만이 자기반성, 대화 및 (비판적 합리주의에서 말하는)가설에 대한 비판적 검증에 진지한 태도로 임할 것이다.(이이378)
“어떠한 학문적․정치적․종교적 조직에도 구애받지 않은 자율적 개인”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존재할 수 있는가?
프랑스 사회언어학의 대표자인 칼베도 형식적 언어학이 언어 체계를 사회적 대립과 이해 관계(관심)로부터 분리키시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언어에 대한 스탈린의 테제 사이의 일치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언어(기호)가 사회적 갈등이나 계급 투쟁, 더 나아가서 언어를 만들어내고 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생각은 곧바로 언어학(혹은 기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면서 언어적 사실들을 물질적 측면에서 고찰하기를 거부하는 형식주의로 귀착될 것이기 때문이다.”(이이406)
형식적 언어학에 대한 비판!
나는 이데올로기들이 경쟁하는 와중에서 이론적 의사 소통의 시도가 진행되기도 하는 의사 소통 상황을 사회언어적 상황이라고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언어학적 상황 속에서는 다양한 사회어와 술화들이 서로 반발하는가 하면 서로를 확인해주기도 하고, 서로 화합하는가 하면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언어학적 상황”이라는 개념은 결국 하버마스의 “이상적 발화 상황”에 대한 대안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나는 관념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간주관성”의 개념을 사회기호학적 개념인 “간술화성”의 개념으로 대체할 것도 제안한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의 여러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 사회어 및 술화이기 때문이다.(이이406)
하버마스의 “이상적 발화 상황”대신 “사회언어학적 상황” 제안
또 다시 “관념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간주관성”의 개념을 사회기호학적 개념인 “간술화성”의 개념으로 대체할 것“도 제안
텍스트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의사 소통 상황에서는 하나의 단어에도 경쟁하는 다양한 집단어에서 유래한 모순적인 의미들이 실려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정의(定議)나 분류와 같은 의미론적 과정은 특정 개인과 집단이 다른 개인과 집단에 맞서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관철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이407)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