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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맑은샘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전정일
[토트네스 이야기③ 작은 것이 아름다운 슈마허컬리지-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다]
슈타이너학교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슈마허컬리지로 간다. 3시에 슈마허컬리지에 닿을 때도 비가 줄곧 내리고 춥다.
영국 남부 데본에서 생태교육의 메카로 알려진 슈마허 칼리지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유명한 슈마허 철학을 바탕으로 1991년 설립된 대안대학이다. 퍼머컬쳐와 동양사상의 생태주의의 이론과 현실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토트네스가 전환마을토트네스로 발돋움하는데 정신으로서 노릇을 한 걸로도 유명하다. 자연과 함께 사는 새로운 도덕과 경제, 지속가능한 생태철학을 주제로 사티슈쿠마르, 반다나 시바, 제인 구달 같은 석학을 초대해 한 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열고 가장 짧은 1주 강의부터 5주 코스까지 다양하다. 슈타이너컬리지 누리집을 가보면 다음과 같이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Schumacher College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닌 사우스 데본의 다팅톤 (Dartington)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첨단 학습에 대한 부러움을 자아냅니다. 우리의 일은 전 세계 공동 거주자로서 영감을 얻고, 도전하고,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애쓰는 질문에 답하고 건전한 지식, 직감 및 경이로움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Schumacher College는 자연 기반 교육, 개인 변혁 및 집단 행동을위한 국제 센터입니다. 단기간의 과정과 대학원생을 위해 사상가, 실천가 및 활동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보다 탄력 있고 평등하며 지속 가능한 세상에서 교육, 공동 창작 및 참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슈마허칼리지 https://www.schumachercollege.org.uk/>
슈마허컬리지의 슈마허가 누구인가.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 인간을 위한 경제학, 중간기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가치를 말한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아니던가. 예전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으며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무한한 산업발전을 목표로 하는 경제 성장 체제는 본질로 폭력과 같고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는 글을 보고 한동안의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슈마허 일생을 다시 읽어볼 만해서 작은것이 아름답다 책에 나온 저자 소개를 다시 읽어본다.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1977) 독일에서 태어나 1930년 로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스물두 살 때부터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거대기술과 물질주의에 근원적 도전을 던지며, 인류의 '생각의 대전환'을 이루어낸 극소수의 창조적 인물. E. F. 슈마허는 1911년 독일 본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전운이 감돌던 독일로 귀국했다. 1934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적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수감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복지정책의 기초를 닦았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제안한 금융제도는 그 유명한 '케인즈 플랜'에 반영되었다. 1950년부터 20여 년간 영국 국립석탄위원회 자문을 맡으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기반한 서구문명의 종언을 예고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1955년 경제 자문관으로 버마를 방문하면서 '불교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철학을 제시했다. 인도에서 처참한 빈곤을 목격하면서는 지역 규모에 알맞으며 사용하기 쉽고 생태적인 '중간기술' 개념을 창조했다. 이는 기계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1965년 '중간기술개발그룹'을 발족해 전 세계에 중간기술을 보급하고, 제3세계를 돌며 자급경제를 지원했다. 1973년 첫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출간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단 한 문장은 한 시대의 상징이 되어 퍼져나갔다. 실제 경험이 없는 이론화에 불만을 느낀 그는 여러 분야에 진출하여 기업가, 언론인, 경제학자로 알려졌으며 전쟁 중에는 옥스퍼드에서 잠시 학업을 재개했다. 독일의 영국 점령 지역 통제위원회 경제 자문관, 영국 석탄공사 경제 자문관, 영국 토양협회 의장, 스코드 바더 사 이사를 역임했으며, 개발도상국을 위해 중간 기술 개념을 창안하고 중간기술개발집단을 설립하여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농촌 개발에 대한 그의 권고안은 수많은 개발도상국 정부에서 주목받았으며 1974년에는 대영제국 지도자 훈장(CBE)을 받았다.
현대 환경 운동사에서 최초의 전체주의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슈마허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의 틀 속에 버무릴 줄 아는 위대한 경제학자였다. 주요 저서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 『혼돈으로부터의 도피』, 『좋은 작업』, 『경제 성장의 근원』 등이 있다. 말년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무의 잠재력을 연구했으나 1977년 강연 순회 도중 사망하면서 그 사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우러러본 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작은것이 아름답다 저자 소개>
슈마허컬리지를 들어가는 길에 있던 큰 나무, 비 내리는 건물 풍경이 아주 인상에 남는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아늑함을 안겨주는 큰 거실에서 사티슈쿠마르와 함께 학교를 설립자 가운데 한 분인 통합과학자 스테판 박사로부터 슈마허컬리지에 대한 소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테판 박사는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 스스로 조절되는 하나의 생명체로 소개한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과 함께 가이아 이론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분이다. 쓴 책이 <Animate Earth : Science, Intuition, Gaia>이다.
“자연과 연결을 중요시 하는 한국 불교를 알고 있다. 또 한국하면 <오래된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떠오른다. 25년전 생태위기에 대응책으로 다팅턴 부지에 슈마허컬리지를 설립했다. 사티슈쿠마르는 주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지구를 파괴 하는 걸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태위기를 초래한 서구 문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생각했다. 알다시피 슈마허는 경제학자이고 미얀마에서 불교영향을 받았다. 1973년 출간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작은 학교 설립 뜻이 모두 들어있다. 부제가 인간중심의 경제를 위하여이다. 그래서 설립할 때 슈마허라고 이름을 지었다. 서구문명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파괴했다. 인디언 아쉬람 모델을 바탕으로 슈마허컬리지가 세워졌다. 왜 인디언 아쉬람일까? 인도와 연결점이 뭘까? 연결점은 1920년대 앨마허스트가 1200에이커에서 500에키커 농장지대를 산 것이다. 그 땅은 다팅톤트러스트에 속해있고 넓은 부지와 숲, 건물이 있었다. 다팅톤홀은 잉글랜드 남서부에서 멋진 중세풍 건물이다. 왜 인도와 연결될까? 앨마 부인과 인도 타고르가 연결되어 있다. 1925년 타고르와 찍은 앨마부인 사진이 여기 있다. 타고르는 시인이자 철학자, 활동가요 교육가였다. 1913년 <기탄잘리>로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에세이와 시를 쓰며 인도의 지혜를 담았다. 타고르가 말하길 인도 힌두교 선불교 불교 모두 숲에서 지혜가 나온다고 했다. 숲속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았다. 앨마허스트는 타고르의 1920년대 개인비서였다. 도로시라는 부자 부인과 결혼했는데 타고르가 말하길 영국에서 큰 땅을 사고 고대 인도인들처럼 공간을 만들어 숲에서 지혜를 찾아라고 했다.
슈마허는 타고르 영향으로 서구 문명의 자연파괴와 극복 대안을 묻는다. 인도의 영향이 있다. 처음 20명 학생이 모여 요리, 정원가꾸기, 청소하기를 하며 아쉬람처럼 살았다. 서로 배우는 걸 모토로 삼았다. 첫 코스는 1991년 1월에 시작했는데 제임스러브록의 가이아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제임스 러브록은 알다시피 살아있는 지구 가이아 이론을 주장한 유명한 과학자다. 두 번째 교육과정은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였다. 핼레나와 러브락을 만났다. 플리머스대학과 같이 학점을 수여하고 교육을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단기과정과 석사과정을 운영했다. 석사과정은 전인과학, 전환경제학, 생태구성사유가 있었다. 식재료를 기르기 위해 친환경 농사도 지었다. 목공제작 수공예 과정으로 머리 가슴 손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했다. 우리 모두는 채식주의자이자 요리사다. 순환적 시스템으로 도와가며 살고 있다. 1,2주나 5주 단기과정과 석사과정이 있다. 우리 교사들은 녹색지도자이고 스스로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테판 박사가 들려준 슈마허컬리지의 역사에서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곁에 있던 토트네스 사람 할도 슈마허컬리지에서 강의를 해서 설명을 거들어준다. 할의 이야기다.
“트랜지션타운토트네스의 설계자인 롭 홉킨스도 슈마허컬리지에서 전환 강의를 했다. 의식을 깨우고 아이디어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전환네트워크 시작은 슈마허 교사들로부터 시작됐다. 초빙교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 생각해 볼게 많다.
“한국의 비인가 대안학교 학생들도 학력 인증 없이 슈마허컬리지 입학할 수 있다. 다만 영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직업 경험, 동기 부여, 기구관심, 자연사랑 뭐든지 누구든 괜찮다. 18, 19세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 관심과 의지가 있어야 하고 영어 실력이 있어야 한다.”
“25년간 교육의 주제는 바뀌지 않고 심화되어왔다. 배움은 직관적 이해와 지적 이해의 통합이다. 자연의 직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서구 교육에서는 소홀했으나 슈마허는 통합했다.”
할의 말이다.
“7,8년전 일할 때 교육과정을 만들 때 실질적인 것을 만들자 해서 전환을 위한 경제학 과정을 만들었다. 런던 정경대를 가지 않고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이다. 음식 관련, 디자인쪽도 모두 생태와 관련되어 있다.”
스테판박사의 말이다.
“가이아 이론이 교육과정에 녹아있다. 홀리스틱사이언스에 대해 더 설명하면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직관적, 지능적, 감정적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다. 지구는 살아있다.”
질문이다.
“슈마허컬리지가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주고 있는가?”
“슈마허컬리지는 지역공동체와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강연이 있다. 대중에게 열린 강의가 Tuesday Group으로 지역민들이 심화된 주제를 함께 토론한다. 지역과 대학의 연계, 학생들의 지역 참여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자연으로 데리고 가라. 자연이 교사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속에 있게 하라. 숲 속에 30분만 있어도 자연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다. 나무, 새, 바람, 소리는 우리 삶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 게 한다. 밤에 자연으로 나가라. 불을 피우면 더 좋다. 불교, 숲 이야기를 나눠라. 별 아래서 그런 공간에 있어보는 것이야말로 정신이 치유되고 변화를 일으킨다.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어질 것이다.”
거실에서 스테판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작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한 층으로 이뤄진 아주 작은 대학교는 가정집 같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공간이 주는 힘이다. 식당과 휴게실에서 차와 빵을 먹고 쉬며 슈마허컬리지 분위기를 느껴본다. 생태와 영성, 프로젝트 참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함께 먹고 자고 살아가며 지역을 바꾸어 가는 실천 속에 교육을 일구는 모습이 그려졌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가 주는 활발한 열정과 다른 차분하고 깊은 영성을 끌어올리는 슈마허컬리지였다. 뒤 쪽 텃밭을 들려 나오는 길에 본 슈마커컬리지 건물이 참 예쁘다. 비는 그쳤는데 날이 차갑다.
4시 49분 슈마허 컬리지를 떠나서 5시 다팅톤홀 다팅톤가든을 둘러보았다. 이미 날은 어둡다. 다팅톤은 다트강 조류가 끝나는 곳이란 뜻이다. 1400년대 건물을 밤에 보는데 조명 덕분에 더 멋있어 보인다. 토트네스 주민 할이 다팅톤가든을 40분간 밤길을 걸으며 그곳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두운 밤 길을 걸어 큰 나무가 가득한 숲 속으로 들어가고, 메아리가 땅에서 울리는 놀라움도 느껴보고, 큰 상록수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다팅톤의 전설과 삶을 그려보았다. 몸은 피곤한데 할의 열정이 있어 낮선 경험에 몸을 맡긴다.
춥고 배고플 때쯤 6시 27분 토트네스 옆 브릭스햄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7시에 브릭스햄식당에 닿았다. 피쉬앤칩스는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인 셈인데 진짜 양이 많이 나온다. 느끼한 맛에 와인 한 병을 시켜서 같이 마셨다. 따듯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니 좀 낫다. 양산에서 온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밥 먹고 나오니 예쁜 브릭스햄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맞다. 브릭스햄은 어업으로 유명한 항구도시다. 전세계를 항해한 골든아이 모형배가 바닷가에 서있다.
9시 30분 잠집에 닿아 바로 씻고 강행군한 하루 피로를 푼다. 진짜 하루가 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