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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 알미니안주의 |
1. 무조건적 선택 | 1. 조건적인 선택 |
2. 제한된 속죄 | 2. 보편적인 속죄사역 |
3. 거절할 수 없는 은혜 | 3. 저항이 가능한 은혜 |
4. 전적인 타락 | 4. 자연적인 타락 |
5. 궁극적인 견인 | 5. 조건부적인 견인 |
2012년 여름,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대조한 표를 접하게 되었다. 2005년부터 그 때까지 나는 개혁신앙을 따른다는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고 스스로 종교개혁의 신앙을 따름을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구원에 대한 믿음은 매우 알미니안적이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나를 개혁신앙으로 이끈 첫 관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가 지나 2013년, 주일 아침 교회사 공부시간을 통해 내가 보았던 대조표가 도르트 신조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교회 책장에 꽂혀 있던 “도르트 신조 강해(코르넬리스프롱크)”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내친김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도르트 신조에 대한 30편의 설교는 참 따뜻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자, 믿음의 확신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스스로 열심을 내도록 다그치거나, 지옥의 형벌이 두렵지 않느냐는 위협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인 말씀(개인묵상, 설교 등)과 기도, 성례를 부지런히 활용하며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을 부드럽게 권면하는 것이 참 좋았다. 또 이것은 사람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잘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다.
도르트 신조 강해를 읽으며 잘못된 전도의 방법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 캠퍼스에서 전도를 할 때면 사람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소개하는 소책자를 읽어 주고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을 구원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와 같은 말로 복음을 받아들일 것일지 아닌지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흘린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나는 전도를 할 때 내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분께 주신 자 중 누구도 잃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복음을 전도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전도하지 않아도 되는가? 코르넬리스 프롱크 목사님께서는 그에 대한 답도 해 주셨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고 그것을 명하셨기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죄인을 위한 것임과 복음을 듣는 그들이 바로 죄인임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성경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죄인임은 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택한 자의 마음에 역사하셔서(우리가 그 시기와 때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죄인임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자신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하신다. 여기에서도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보게 된다.
도르트 신조에서 고백하는 구원의 교리가 내 삶에도 적용됨이 참 감사하다. 어떤 죄인(사람)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자라게 하셨지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기뻐하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려 하였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기 곧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그 시기에 나를 사로잡으셨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고 부족하지만 나의 마음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게 하셨다. 내가 먼저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게 하셨고 그것을 주셨다. 여전히 나는 나의 죄악된 모습들과 부족함을 보지만 이미 내 안에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루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큰 위로가 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로마서9:16)ㅍ
첫댓글 여태 교회사 공부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채 두달이 휘리릭 가버렸네요! 책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20대 청년의 때를 이런 배움에 이르렀다니....
진정 부럽습니다.
구양모 선생님과 말씀안에서 한 형제, 자매 됨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