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한동대 총장 아내가 쓴 ‘하나님의 산 역사 갈대상자’
김영애 지음, 두란노 출판, 352쪽,12,000원
“이 시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생생한 역사를 보고 싶다면 ‘하나님의 산 역사 갈대상자’를 읽어보라.”
이 책은 한동대 초대 총장 김영길, 김영애 부부가 하나님께 위탁받은 한동대를 제대로 길러내기 위한 애끓는 한동대 양육기이다.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동대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무모해 보였던 학교 출범에서부터,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공격하는 세상과 힘겹게 싸우며 사십여 차례의 고소고발과 총장·부총장 구속 사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은이는 그 숱한 고난의 과정을 마이크로렌즈처럼 또렷하게,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때는 생명수를 찾은 사슴처럼 은혜에 감격하며 이 글을 기록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개인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놀라운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개개인의 삶들을 움직여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어 가시는지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 국내 1천500만 크리스천 각자 각자의 중보 기도와 말씀 묵상. 그 실천적 삶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아래 놓여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동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칼빈대도 증언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증거물이자 하나님께서 우리 사회에 보여 주시는 분명한 비전이다.
△와! 하나님 굉장하시네!
저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94년 설교 말씀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남편 김영길이 안정된 카이스트 교수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 총장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한동대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인재를 양육하는 하나님의 대학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해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나는 길목 길목마다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그분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난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감히 외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되어 갔다. 단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와! 하나님, 굉장하시네! 정말 살아 계시네!”
지난 10년 동안 한동대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하다가, 때로 너무 서러워서 주님께 삐치기도 했고 때로 감사해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친구와도 잔정이 생겨야 친해지듯 나는 날마다 예수님과 잔정을 쌓았다.
내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매일 매일의 성경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들을 붙들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성경 말씀은 활자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능력이었다. 고난과 역경은 흑암 속에서 보화를 캐는 기회였다.(사 45:3)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 33:6)
나는 한동대 곳곳에 가득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목격한 자로서 그분을 증거하는 증언대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나의 증언’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우리의 잘못과 실패, 두려움, 고통스러운 경험들, 그리고 작은 상처들까지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도록 내 모든 것을 내어 놓는다.
▻‘한동’이라는 이름에 흔들리다
남편이 학교 관계자에게 물었다.
“학교 이름을 왜 하필 한동이라고 했지요? 기독교 정신을 나타내는 다른 이름도 많이 있을 텐데요.”
나도 속으로 한동은 너무 평범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설립 본부는 학교 이름을 한동으로 정하고 응모자에게 연락을 했다. 어린아이가 전화를 받고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교회에 가시고 안 계신다고 하더란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버님이 뭐하시는 분이시냐?”
“목사님이세요.”
그분은 구룡포 어촌에서 자그마한 교회를 개척하신 우선화 목사님이었다.(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교회에서 꼭 써야 할 돈 100만 원이 필요해서 학교 이름을 응모했던 목사님 내외분은 그날도 교회에 가서 그 이름이 뽑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그 이름이 이사장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목사님 내외분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동대는 하나님께서 시작부터 개입하시는 대학이란 말인가! 이 이야기에 우리를 크게 감동시켰다. 한동은 더 이상 평범하거나 촌스러운 이름이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여 50억 원을!
1998년 7월, 시카고 휘튼 대학에서 코스타 집회를 마친 뒤, 우리는 워싱턴 펠로우십 교회(김원기 목사)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날 김 목사님의 설교는 소경 바디매오에 대한 것이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하시면서 온 회중에게 제안하셨다.
“누구에게나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단 몇 초 동안 기도를 드립시다.”
순간, 우리는 머리 숙여 짧은 기도를 드렸다. 나는 옆에 앉은 남편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당신은 무슨 기도를 하셨어요?”
“‘하나님! 우리 학교에 돈 50억 원을 주소서’라고 했지!”
역시 그는 학교의 돈 걱정뿐이었다. 축도를 마친 목사님이 말했다.
“몸이 아프거나 절박한 기도 제목이 있는 사람은 이곳 단상 위로 올라오십시오.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으로 꼬꾸라질 듯이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이었다. 그는 어느새 단 위의 목사님 앞에 제일 먼저 무릎 꿇고 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 방문한 낯선 교회에서 그는 체면이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바디매오였다.
그해도 다 저물어 가는 연말, 눈이라도 내릴 듯 찌푸린 오후, 우리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 전부터 잘 아는 기독 실업인 C회장이 한동대에 58억 원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58억 원이라니! 설마 꿈은 아니겠지! 우리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어리둥절했다. 나는 학교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사무처장님! 학교로 58억 원 기부금이 조금 전에 입금되었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쪽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네, 저도 은행에서 막 확인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도 일어나는군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이 절박한 바디매오의 기도를 드린 지 5개월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그것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감격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묵묵히,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대처한 그의 모습은 참으로 거목이었다.
그의 명예와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온갖 비방과 억측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 학교와 총장을 비방하는 보도와 유인물들에 속상해 하는 아내 김영애를 향해 그(김영길 총장)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는 이미 죽은 송장이오. 죽은 송장이 명예 훼손되었다고 벌떡 일어나는 것 봤소? 나는 괜찮아요! 나 김영길이 뭐에 그리 대단한 사람이오? 내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오? 몇 십 년 지나면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게요.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쓰시도록 올려 드렸는데 그분이 높여 주실 때만 나를 드리고, 낮추실 때는 드리지 않을 작정이었소? 내 이름의 주인 되시는 분이 내 이름을 가지고 볶아 잡수시든지 삶아 잡수시든지 나는 아무 권리가 없소!”
▻옥문을 여는 위로
아! 나는 그런 사랑과 희생을 받은 존재구나! 그런데 죄인인 나는 이렇게 편안히 버스에 앉아 가는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는 감사하며 울었고 죄스러워서 울었소.
대구 교도소에 도착하자, 오 부총장은 미결수 쪽으로, 나는 기결수 독방에 각각 수감되었소. 내가 관구실(초소) 앞을 지나는데 교도관 몇 명이 신문을 들고 있다가 깜작 놀라며 알아보았소.
“한동대 김영길 총장님, 창조과학회 회장이셨던 장로님이시죠? 저희가 막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밀알회라는 신우회 회원들로 마침 한자리에서 한동대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으며 만약 총장님이 잘못했으면 학교에서 먼저 들고 일어날 텐데 이상한 일이라고 서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고 했소.
대구 교도소에 이감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을 때, 대구 교도소 밀알회 회원들이 말했소.
“아무래도 총장님은 빨리 나가실 것 같으니 오늘 저녁 저희가 특별한 행사를 갖기로 했습니다. 꼭 참석해 주셔서 저희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빌립보서 2장 5-11잘 말씀을 전했소. 그들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소.
“서머나 교회 교인 김영길 장로님을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내 손등과 어깨에 그들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소.
“총장님 세상에 나가서도 우리 서머나 교회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남편은 지금도 내게 종종 말한다.
“나는 서머나 교회에서 세상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야.”
△책을 읽던 한동대학생의 눈물
이 책을 읽으면서 안 울 수가 없었다.
특히 한동대의 첫 입학생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죽었을 때, 그 학부모들의 행동들이 나왔던 부분에서는 정말 눈물이 쉴 세 없이 흘렀다.
자식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며 더 큰 일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을 보며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됐다.
또 정말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 한다. 특히 성운량 회장의 유산을 자식들이 한동대에 기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 이 기부금은 효암채플을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카페를 만들기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부금을 받고 얼마 후 20억 원의어음이 돌아 온 것이다.
결국 기부금 20억으로 융자를 받아 어음을 막아 내었다.
하나님은 20억 원의 어음을 막을 수 있게 미리 기부금을 한동대로 보내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설명 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딱 필요한 순간 시점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스쳐 만났던 사람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보살핌으로서 이루어 질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총장님과 사모님의 믿음 이었다.
처음부터 안락한 생활을 다 버리시고 학교의 힘든 사정을 알면서고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총장직을 맡으셨다.
보통사람의 믿음으로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원망하거나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했다.
감옥에 갇히게 되셨을 때도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며 분면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모습에서 저도 이런 믿음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국 하나님은 감옥에서 총장님과 부총장님을 빼내어 주셨고 소송결과도 무죄로 끝냄으로써 믿음에 보답해 주셨다.
제가 제일 감동 받았던 부분은 많은 시련이 있기에 대학이 성장할 수 있었고 매일 기도하며 지낼 수 있었다고 오히려 감사를 드리는 모습에서 정말 감동 받았다.
김영길 총장님은 하나님의 시련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정말 참된 믿음을 가진 분이시구나’라고 느꼈다.
△명사들도 감탄사 연발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는 “시 대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고 했고,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해 모든 영예를 내려놓고 험한 광야의 길을 택한 김영애 사모의 족적은 아내로서 내조의 차원을 넘어선 위대한 사도의 길”이라고 칭찬했다.
故(고) 옥한흠 목사는 “이 책을 펴든 순간부터 열 시간 동안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눈물을 훔치느라 몇 번 휴지를 뽑아 들어야 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금방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한동대는 믿음과 순종으로 헌신한 분들을 불러서 세우신 ‘하나님의 대학’”이라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김영애는 이화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제한 속도 35마일을 우직하게 지키는 과학자 김영길과 결혼 이후 미국으로 유학,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했다. 모태 신앙인이었으나 미국에서 남편 김영길과 함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께 삶을 헌신하기로 했다. 1979년 12년만에 영구 귀국, 이화여대에서 14년 동안 특수교육학과에서 가르쳤으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종강시간에는 꼭 복음을 전했다.
/언론인홀리클럽 공동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