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수상자 : 강향순
수상년도 : 2023년
수상작품 : 아직 남은 그리움을 위하여
—최원현의 『고요, 그 후』를 읽고
아직 남은 그리움을 위하여
사람은 누구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저마다 바라는 빛깔이 다를 뿐, 미래를 만들어 가는 소망은 모두가 꿈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는 단 하루를 살아도 붉은 태양처럼 뜨겁게 살고 싶고, 누구는 청춘 같은 푸른 희망으로 살고 싶고, 누구는 유유자적 자유를 즐기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꿈만큼 찬란하지도 않고 마음과 뜻대로 안 되는 게 내가 치러야 할 삶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본성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욕망이 지나쳐 나만 차지하려 든다면 채운 만큼 불행해진다. 우리가 꿈을 갖는 것도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목마른 갈증이 아닐까. 잔혹했던 페르시아왕 샤르야리가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못한 것도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구였듯이 나 역시도 어릴 적부터 옛날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 종일 바깥일에 지친 엄마의 피곤함은 모른 채 무작정 옛날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해진 옷이나 양말을 꿰매면서 간직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듯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시작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언문을 깨닫고부터는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책 읽는 재미가 더 흥미롭고 즐겁게 다가왔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 시간은 혼탁한 마음을 쉬게 하는 휴식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책은 나의 유일한 벗이고 취미가 되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우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해 가끔은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친구를 만나되 진솔한 사람을 만나고 싶듯 책을 읽되 양식이 되고 마음에 와닿는 글을 읽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선물처럼 수필집 한 권을 받았다. 평소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분의 새로운 면을 본 것 같은 기대치랄까. 고백적 문자가 전하는 문장에서 가슴 떨리는, 가슴 적시는, 가슴 저미는 사연에서 한 남자의 명멸했던 무수한 여정의 깊이를 본다.
첫 소절부터 부드럽고 편하다. 계절이 오면 웃고 계절이 가면 울던 삶의 빛깔들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작품 「결」은 아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작해, 결에 대한 의미 부여로 전환하여 정서적인 문체로 엮어가는 기술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수필을 오래 써 본 기술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이지 않을까. 할머니 손에서 느꼈던 삶의 결, 손주의 손에서 느끼는 보드라운 결의 감촉, 매일 입는 옷이며 양말에 묻어난 ‘결’의 기억은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심오하다. '결'의 느낌은 사랑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울림의 소리다. 아내의 거친 손바닥에서 느낀 ‘결’을 통해서도 작가는 못다 한 미안함을 자책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부부의 사랑과 정감이 감지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작품 「뒹굴다 보니」는 오늘의 나처럼 우연인 듯 여유로운 시간이 소재가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바쁨에 쫓겨 미처 돌아보지 못한 일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몇 권씩 날아드는 책들에서 작가 자신의 자아를 찾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책을 내면서 겪은 힘든 여정, 글을 쓰는 고통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수필 문단의 중견작가로 인정받기까지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들여다본다.
『고요 그 후』 수필집에 들어 있는 글의 재료 대부분은 소소한 일상의 익숙함에서 쓴 글이 많은 것 같다. 작가 특유의 전형적인 감성이 있어 그런지 작품마다 잔잔한 생명이 흐르는 느낌이다.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고백하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문장의 기술은 어느 책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정서가 흐른다. 고백하는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듣는 사람도 믿어주어야 마음이 상통된다고 할 수 있다. 수필 자체가 일인칭의 고백문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글 안에 있는 작가 자신과 글 밖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으로 읽는 맛이 난다.
작품 「지구의 숨비소리」는 이 시대에 직면한 감염병에 관해 작가의 견해를 솔직 담백하게 밝히고 있다. 과학 문명은 우리 생활에 찬란한 발전일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의 불편함은 미처 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성찰하며 인간존재에 대한 의문과 미래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궁극적으로 작가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성찰로 이어지는 과정은 수필에서만이 볼 수 있는 깨달음의 정서인 듯싶다.
작품 「별을 보고 싶다」를 읽는 동안 작가의 마음처럼 나도 가슴 뛰는 추억을 만난다. 별 이야기에는 이상한 힘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먼먼 그리운 아련한 기억이 담긴 책장이 저절로 열리곤 한다. 무더운 여름날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엄마 무릎에 누워 별 하나 나 하나를 신나게 노래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별 보는 일은 하늘의 별 따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다고 한다. 그 별을 만나고 싶어 작가는 머나먼 몽골까지 가서라도 별을 만나 보고 싶어 한다.
작품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기엔 간절한 바람과 소망이 점철되어 흐른다. 전 세계가 피눈물이 나게 겪어야 했던 코로나19의 만행은 지금도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만큼 소름이 돋는다. 부모ㆍ자식 간에도 오가지 못하게 했던 사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미어지게 한다. 그 또한 우리 스스로가 자처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역경에 지쳐 쓰러질 수만은 없다는 게 작가의 확고한 주장이다. 그는 담백한 필력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것 같다. 그가 내린 정의의 희망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느낌이 든다.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의 시어는 그를 지평선 너머 활짝 갠 날로 데려가고 독자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싶게 만든다.
최원현 수필가의 화법은 작품마다 서정성이 농후하다. 작품 속에서 존재하는 나라는 일인칭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너와 나로 잘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기를 즐기듯 문장도 유려하고 지식도 다양하고, 전달하는 방법도 은은하고 상큼하다. 그가 부른 노래는 언제 들어도 코끝 찡한 감정이 우러난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전하는 수필집에서 그가 보고 느낀 시야에서 따뜻한 체감을 느낀다. 그러기에 수필은 누군가의 삶과 인생을 들여보는 한 편의 자전적 이야기라 했는지도. 최원현 수필가는 주제든 논리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관자처럼 보인다. 아마도 오랜 쓴 경험에서 묻어난 체취이리라.
고요한 오솔길로 접어들 듯 책장을 넘긴다. 나만의 시간에 파묻힌다. 호기심과 궁금함이 나를 설레게 한다. 책 읽는 동안만큼은 나만의 오롯한 평화를 누린다. 누군가의 일상의 체험에서 나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이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수상 소감
기쁨 뒤에는 의무감도
수필로 등단하고 처음으로 접하는 수상 소식에 먼저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제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는데 조금은 당당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이 기뻤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전해오기도 하는 걸 보면 기쁨 뒤에는 반드시내가 지켜야 할 의무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수필집 『고요, 그 후』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줄 긋고, 그 의미를 해석해 가며 독후감을 썼던 것인데,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어 많이 기쁩니다. 문학을 좋아해 작가의 길로 뛰어들긴 했지만, 알 듯 모를 듯 숙제처럼 맴돌던 어려운 것들이 읽고 쓰면서 하나하나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써주신 작가님과 제게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신 선생님, 그리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
강향순 : dlzmssha87@gmail.com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은평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