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 또한 느슨함이나 둔감성이라고 간단히 처리해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여기에도 또한 매우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특히 헤겔 이래로 알고 있듯이 철학사는 단순히 어느 정도 우연히 연속되는 체계들 및 설명시도들의 일종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체 내에서 어떤 논증의 연관관계 혹은 일관된 사고의 연관관계를 나타내며,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연속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습니다.(19) 물론 이는 고대 철학의 몰락이나 그 후의 스콜라철학의 몰락과 같은 거대한 단절을 통해 명시되는 어떤 경계선들 내부에서 그렇습니다. 또 어떤 문제는 하나의 철학으로부터 다른 철학으로 계승되는데, 이 경우 흔히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문제의 전통은 사람들이 고수하고 있는 전문용어의 형태로 보존되며, 반면에 이때 일어나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 혹은 변화는 그 전문용어들의 새로운 활용법을 통해 정착되는 것입니다.
10. 하지만 전문용어들은 상이한 철학자들의 경우에 상이한 맥락 속에서 등장할 뿐 아니라, 이미 자체 내에서 변하는데, 이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이는 철학적 모티프만 아니라 언어사적 모티프들과도 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고대 철학사에서 아는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발생기에 아직 일반적으로 쓰이고 이해되던 특정한 말들이 사라지거나 혹은 더 빈번한 일이지만 언어사의 진행과정에서 훨씬 더 특수한 의미를 얻게 되어 더 이상 철학에서도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전문용어상의 결정적 변화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하자면, 사태 혹은 사물이라는 말, 그러니까 라틴어 단어 레스(res)를 나타내는 소크라테스 이전 아르카익 시대 그리스어로는 크레마(χρη̃μα)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크레마가, 여러분 가운데 고전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처럼, 특히 크레마타(χρη̃ματα)라는 복수형으로 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크레마타, 크레마타’라는 말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돈, 돈이 곧 인간이다, 돈이 문제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