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
신현락
PARAN IS 18∣2026년 5월 2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41쪽
ISBN 979-11-94799-32-0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밤을 건너온 문장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쓸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다
[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는 신현락 시인의 다섯 번째 신작 시집으로, 「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영원 속의 순간, 혹은」 「달의 지문」 등 58편이 실려 있다.
신현락 시인은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따뜻한 물방울] [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 [히말라야 독수리] [그리고 어떤 묘비는 나비의 죽음만을 기록한다] [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 수필집 [고맙습니다, 아버지], 논저 [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을 썼다. 2012년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했다.
신현락 시인에게 시간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시인에게 시간이 존재의 의미로 확인되는 것은 그것이 관념을 넘어 인간의 몸이나 사물에 새겨져 구체적인 물질성을 띠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간은 멀리 있지 않다. 시인에게 시간은 생각될 뿐만 아니라 보여진다(가시적이다). 그것은 몸과 사물에 각인된 흔적의 형태로 눈에 띈다.
시간의 뫼비우스 띠 안에서 시간은 움직이는 동물처럼 잊히고 사라지고 흘러간다. 이 혼란스러운 시간의 동선(動線) 안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알 것이며, 시간은 시간을 어떻게 알까. 신현락 시인은 “나는 나를 모르고/시간은 시간을 모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이 깜깜한 ‘무지’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계속 따지고 드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신현락 시인은 결국 존재 물음이 ‘해석’의 문제임을 인식한다. 시간은 “눈물 어린 생의 굴절마저” 지우고 사라지고 흘러가게 만든다. 모든 것이 “망각의 속도에 따라 영원 속의 순간으로” 흘러가 버리는 시간의 폭력 앞에서 주체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능성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존재와 시간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밖에 없다. 존재에게 주어진 유일한 특권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원 속의 순간”을 “불망”하며 “기억”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기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해석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시집의 표제가 된 문장(“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처럼, 시인은 “비록 지난 생이 비문투성이였을지라도” “밤을 빛으로 해석”하는 “아침”에 주목한다. 게다가 “아침”은 그 모든 어둠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찾아”온다.(이상 「영원 속의 순간, 혹은」) 신현락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한 다음의 말을 기억하라. “밤을 건너온 문장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쓸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다.” 밤을 건너온 그의 문장들은 왜 환한가. 그가 밤의 시간을 빛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상 오민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추천사]
고단하지만 정직하게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신현락 시인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시간의 실타래가 아프지만 따뜻한 시선을 따라 마음의 지도로 펼쳐진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시인의 고단하고 지친 저녁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화두처럼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지나온 삶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때로 어긋나고 미끄러지며, 다른 질문과 대답을 요구받곤 하지만 시인은 삶에 대한 선한 믿음과 진정성으로 그런 시간을 흔들림 없이 견뎌 왔음을 보게 된다. 비록 지금 여기가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의 걸음들이 곡진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 모든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 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쩔 수 없이 남는 쓸쓸함의 얼굴조차 넓은 품으로 안아 줄 수 있는 위로의 힘과 마음이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빛나는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의 시간 속에는 “온몸에 푸른 멍이 들도록 겨우내 뒤척이던 슬픈 짐승”이 있고, “빈 들의 맨발”이 있으며(「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아득히 먼 시간을 부르는 풍경으로” 아이가 서 있고(「원경」), “밑둥치의 다친 얼굴”도 있다(「문장의 표정」). 그러나 시인의 마음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은 사라진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느라고 당신의 발목도 많이 부었겠다”는 시인의 측은지심에 있음을 알게 된다(「별빛의 시차」). 이처럼 시인에게 ‘시간’은 그의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와 인식을 보여 준다. 빛과 어둠이 있고, 슬픔과 회한이 있으며,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고, 또다시 그럼에도 지금 여기 절망하는 자신의 모습도 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시간’은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아닌 “시간을 심장으로 느끼는 일”이라는 놀라운 성찰을 보여 주고 있다(「달의 지문」). 삶에 지치고 마음이 쓸쓸할 때 시인의 시를 읽는다면 동의하는 마음을 넘어 오래고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희 시인
[시인의 말]
밤을 건너온 문장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쓸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다.
[저자 소개]
신현락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따뜻한 물방울] [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 [히말라야 독수리] [그리고 어떤 묘비는 나비의 죽음만을 기록한다] [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 수필집 [고맙습니다, 아버지], 논저 [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을 썼다.
2012년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했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詩 자를 못 붙이는 밤 – 11
백지의 물음 – 12
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 14
잃어버린 비망록 – 16
별빛의 시차 – 17
조각배, 섬, 사이프러스 나무―아르노트 뵈클린, 죽음의 섬(1880), 캔버스에 유채, 111×115㎝ – 18
원경 – 19
사강 – 20
문장의 표정 – 22
저물 무렵의 생 – 24
노랑의 현재 시각표 – 26
영원 속의 순간, 혹은 – 28
귀향 – 30
비행운 – 32
낙화 – 33
제2부
달의 지문 – 37
폐염전을 지나며 – 40
흰빛의 인과율 – 41
풍경의 뒷전 – 46
내일, 너를 만났다고 쓴다 – 48
행간 – 50
종의 기원 – 51
열치매, misty – 54
바람의 후서(後書) – 56
밤하늘의 국적 – 58
기억을 운구하다 – 60
무반주 연주 – 62
날 – 64
제3부
작별―어머니 기일에 – 69
돌부처 – 70
감 잡는다는 것 – 72
부부의 얼굴 – 74
쌀집 – 76
낯선 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적이 있다 – 78
미늘 – 80
불 꺼진 동네 책방 앞에서 – 82
별다방 – 84
복기 – 86
팔월의 책 – 89
가을 나무 – 90
철새의 독도법 – 92
가계(歌系) – 94
아침 달 – 96
제4부
문밖의 문 – 99
배교의 봄 – 100
소실점이 통점이 되는 순서 – 101
매미채를 든 아이 – 102
푸른 생의 거푸집 – 104
가정방문 – 106
세간 – 108
내향 – 110
각질의 내력 – 112
내 마음의 집 – 114
이야기가 음악이 될 때 – 116
그리운, 풍진 얼굴―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앞에서 – 118
몸은 해독되지 않는다 – 121
거울의 기하학 – 126
회귀 – 128
해설
오민석 존재의 밤과 시간 – 129
[시집 속의 시 세 편]
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나는 나의 시간을 모른다
걸핏하면 마음은 먼 하늘가 구름 위를 거닐었다
거기 있다고 생각했던 그대 안의 극지에서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
기억 밖에서 찬란하게
아침 창가에 부서지는 햇살이 무슨 색으로 빛나는지
가끔 그 시간이 나에게 왜 푸르게 찾아오는지
시간은 안개로 떠돌다
어느새 들판에 서서 들어 보면
한겨울 저수지 물밑 속 꽝꽝한 얼음장을 지나가고 있으며
그리하여 망각의 주변을 떠도는 자에게
시간은 푸르다, 희다
온몸에 푸른 멍이 들도록 겨우내 뒤척이던 슬픈 짐승
검푸른 대해를 꿈꾸던 지느러미가 지나간 흔적이다
나는 나를 모르고
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며칠째 식탁 위에 놓인 소주병에 푸른곰팡이가 핀다
저녁이면 서녘으로 나는 길, 왜 나에게 흰빛으로 보이는지
아무도 마루에 등불을 내다 걸지 않는 밤이 언제 끝나려는지
오색의 별빛을 파종하던 계절을 돌아 광야로부터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아직도 씩씩하게 걷는 걸음
세상 밖으로 이미 출발하였으나
여기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영원의 부음
먼 하늘 아래 구름을 지나는
이제 나는 빈 들의 맨발이다 ■
영원 속의 순간, 혹은
잠의 문전에 누군가 다녀갔다
꿈에도 잊지 못할 이름이다
구름의 속도에 따라 해가 되거나 비가 되는 계절도 모두 지나고
백일홍의 화사한 향기 끝에 오랜 칩거를 깨치는 소낙비
빗줄기를 헤아리다 문을 나서던 날들
지금은 다음의 첫 발자국이고 망각은 기억의 근친이었으므로
아침에 내리는 비를 대기권에서 타오르는 별똥별로 읽고
저녁에 다시 태어나는 별을 내일의 탄생석이라 쓰기도 했었다
내 안의 울지 않은 소년과 지금 울고 있는 노년의 거리는
단지 시차의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어둠이 깊어 갈수록
돌아보면 문턱이고 아이이고 청춘이며 빈 들이고 절간이고 저잣거리이고……
눈물 어린 생의 굴절마저
몇 개의 단어로 줄어들고 마는 삶 너머로
사라지는 사람들 이름도 가물가물하여
나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서성이다가 잊혀지겠지
이런저런 상념으로 떠오르고 사라지는 시간은
망각의 속도에 따라 영원 속의 순간으로 흘러가고
돌아눕는 순간마다 뒤척이는 마음은
누군가의 연인이 되거나 별이 되어도 좋았어라
한밤에 잠 못 드는 버릇이 생겼다 불면은 불망이다
나는 망각의 문을 열고 나와 기억의 길로 들어섰지만
기억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임을 안다
비록 지난 생이 비문투성이였을지라도
기어코 찾아오는 아침은 밤을 빛으로 해석한다
꿈을 꿈꾸었으나 무슨 상관이랴
한때나마 우연히 옛날의 지금에서 만나
세월의 인과율을 벗어났던 마음이었으므로 ■
달의 지문
1.
달빛이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물가에
파문이 인다
눈먼 물고기가 나뭇잎을 물고 간다
누군가 수색(水色)처럼 차가운 주검 한 장을 들여다본다
2.
한때 이 나뭇잎에도 싱싱한 시절이 있었으리라
바람이 불어오면
아름답고 푸른 이파리들
어린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일 때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이었으랴
하루에도 십만 번이나 흔들리던 이파리에는
단 일 초도 멈추지 않은 생명의 흐름이 있었고
저 혼자서
하루에도 십만 번씩 뛰던 심장에는
단 일 초도 멈추지 않은 사랑의 역사가 있었다
3.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란
심장을 시간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심장으로 느끼는 일이다
4.
하루살이는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일생에 단 하루의 시간을 가진다
죽기 전까지 저녁을 가지지 못하는 심장은
달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5.
검시관은 사망 시간을 달포 전
달 뜨는 저녁으로 추정하였다
시간을 심장으로 측정하는 새로운 수사법 덕분이었다
그러나 달의 지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