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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주일예배
예배의 부름
하나님!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부족함과 허물 많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용서하시고 예배를 통해 영광 받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정말 가야 할 우리의 본향이 하늘나라임을 믿는 우리가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며 영원한 소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하여 주옵소서. 전심으로, 온 맘 다해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
하나님의 기쁨 되는 것이 삶의 첫째 이유가 되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이 좋은 때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군대, 객지,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 병마와 싸우는 이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예배에 동참하는 성도들 …모두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 전합니다.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셔서 능력있게 전하게 하옵소서.
깨달음이 있게 하시고, 결단이 있게 하시며 영육간에 치료와 회복을 받는 시간 되게 하실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송 영 23장 만복의 근원하나님
교 독 문 제85문 요한1서4장
신앙 고백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가 182장
기 도 김춘순 권사
성 경 봉 독 딤후2:20-21
제 목 그릇대로 채워주신다
딤후2:20-21
날씨도 더운데 썰렁한 유머 하나 할께요.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피자 사 주세요.’ 선생님이 난감해하자 아이들이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피자! 피자!’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대로는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알았다 대신 너희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나 치즈 피자 같은 거 말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피자로 하자’ 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피자를 좋아하세요?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책을 피자’
여러분, 성경책을 다 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때로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사람 그릇이 크네’ 라든지‘그 사람 그릇이 작네’ 또는 ‘그릇이 된 사람’이라든지 ‘그릇이 되지 못하다’든지 이렇게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이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흙이지요.
그런데 그릇도 무엇으로 만듭니까?
흙입니다.
요즘은 다른 재료로도 그릇을 만들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그릇은 모두 전부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재료로 만든 것들보다 흙으로 만든 도자기 같은 그릇이 훨씬 더 값어치가 많이 나갑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나 그릇이나 다 그 재료가 흙이기에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9장 21절에서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그리고 우리 인간을 진흙으로 빚은 그릇으로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토기장이들이 그릇을 왜 만듭니까?
그릇들이 다 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 역시 이 땅에서 필요한 역할들이 있기에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어떤 그릇들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릇들도 한 가지가 아니라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큰 집에는 많은 그릇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큰 집 즉 잘 사는 집은 그릇이 많습니다.
별의 별 그릇들이 잔치 때만 되면 다 나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밥그릇·국그릇 등으로 쓰이는 사발이 있으며 또 밥을 담는 주발 그리고 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뚝배기 반찬을 담는 종지기, 찬합, 함지박, 광주리, 바가지 등 이루 셀 수 없는 그릇들이 총 출동을 합니다.
그래서 큰 집이란 다름 아닌 그릇이 많은 집이 큰 집입니다.
지금도 잘 사는 집은 그릇이 종류별로 재료별로 많습니다.
반대로 작은 집은 어떤 집이냐?
그릇이 없습니다.
겨우 있는 것이 사발 뿐입니다.
사발에다 모든 음식을 담아 먹습니다.
밥을 담으면 밥 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고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고 반찬을 담으면 반찬 그릇입니다.
이렇게 그냥 살다가 그래서 제사나 잔치가 돌아오면 그릇 빌리는 것이 일입니다.
많은 그릇을 쓰기위해 계를 하기도 하지요.
맨날 큰 집에 가서 그릇을 빌려 옵니다. 그릇을 빌려 쓰는 집이 작은 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를 큰 집으로 비유했습니다.
큰 집에 그릇들이 많듯이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성격들이 다 다릅니다.
급한 사람 느긋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혈액형도 다 틀리고 취미도 다 다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나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마치 큰 집에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듯이..
문제는 이 그릇들이 다 그 용도대로 쓰임을 받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이 있는 가하면 또 천하게 쓰임 받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봅시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릇의 재료가 어떠하든간에 금으로 만들었든지 은으로 만들었든지 혹은 나무나 진흙으로 만들었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재료를 불문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천하게 쓰임을 받는 그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많이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사람들이 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지만, 좋은 직장과 훌륭한 경력이 있어야지만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그릇을 쓸 때 좋은 그릇 비싼 그릇만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합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그릇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사용하는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스펙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경력이나 학력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가지는 반드시 보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릇이 비싸던 싸던 그 용도대로 사용하는데 반드시 한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베트남 선교를 갔을 때입니다.
아주 가난한 마을로 갔습니다.
작은 시장이 열렸는데 점심 때였습니다.
점심을 먹으로 한 쌀 국수 식당을 갔습니다.
파리가 날라 다니고 테이블은 시커멓고 의자는 목욕탕에 앉아 때를 밀 때 사용하는 것 같은 플라스틱 앉은 뱅이 의자였습니다.
주문한 국수가 나오는데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엄지 손가락 한 마디를 푹 담가서 가져 옵니다.
가만히 보니 그 엄지 손가락 손톱이 까맸습니다.
손톱에 때가 낀 것입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꾹참고 국수를 먹으려고 하는데 그릇이 삥 돌아가면서 까만 줄이 있습니다.
하도 안 씻어서 때가 아예 무늬가 되었습니다.
이걸 보니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더라고요..지금도 그 생각 하면 울렁거립니다.
아무리 그 그릇이 비싼 것이라 하더라도 금으로 은으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더러우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타고난 자기의 재질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토기장이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재질은 바꿀 수 없지만 사용하기 좋도록 조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타고난 재주와 재능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딤전1:5).
삼손이 왜 실패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그리 쉽게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밑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단 한가지 그는 정욕으로 몸과 영혼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깨끗하지가 않았습니다.
더럽혀진 그릇을 어떻게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용두사미 인생의 특징은 깨끗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나중에 다 드러납니다.
요즘 조국이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로 검찰수사 등으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너무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데 공직자로 아랫 사람을 움직이려면 청렴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털어서 먼지가 나더라도 다른 사람 보다 적게 나야 합니다.
국민이 납득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적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에 법무부장관 오직 조국하다보니 임명, 강행하다보니 대통령까지 나라까지 위태위태해진 느낌입니다.
나름 재능도 있고 실력도 있고 유능한데 딱 한 가지....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장관 조국 입명강행은 심히 잘못 한 것으로 판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현재 돌아가는 현실입니다.
개 밥그릇에 밥 담아 먹는 사람 없습니다.
개가 아무리 이쁘고 귀여워도 개 밥그릇은 개 밥그릇입니다.
쓰레기 통에는 쓰레기를 담습니다.
쓰레기 통에다 김치를 담고 물을 담아 먹는 사람 없습니다.
더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재료로 만든 그릇이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냐 얼마나 깨끗하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은혜를 담아 주시고 복을 담아 주십니다.
그릇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그릇의 상태라고 한다면 그릇의 크기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 대로 채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81:10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오해하여 무조건 기도를 할 때 큰 목소리로 큰 소원을 빌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스케일이 크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광대무변하신 분이십니다.
절대로 스케일이 작은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이왕이면 크게 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양이 크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입을 넓고 크게 열라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믿음 특히 심령이나 마음의 사이즈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이 크고 넓어야 합니다.
생각이 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귀기 힘든 사람이 마음이 좁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작은 사람입니다.
이런 친구를 두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저 분 그릇이 크다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마음이 넓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왜 바다입니까?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입니다.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나는 바다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세숫대야 같은 사람인가?
큰 그릇인가? 아니면 간장 종지인가?
조금만 물을 부어도 금방 넘쳐 흘러버리는 그런 좁아 터진 접시인가?
조선조 명재상이셨던 황희 정승이라고 계십니다.
그는 예조판서를 비롯해 20여 년 이상을 재상직에 있었습니다.
1452년 그가 사망한 직후에 작성된 실록에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황희는 관대하고 후덕하며 침착하고 신중하여 재상(宰相)의 식견과 도량이 있었으며, 후덕한 자질이 크고 훌륭하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다.
집을 다스림에는 검소하고, 기쁨과 노여움을 안색에 나타내지 않으며, 일을 의논할 적엔 정대(正大)하여 대체(大體)를 보존하기에 힘쓰고 번거롭게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
재상이 된 지 24년 동안에 중앙과 지방에서 우러러 바라보면서 모두 말하기를, ‘어진 재상(宰相)’이라 하였다.”
한 마디로 큰 그릇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집의 하인 둘이 싸우다가 황희 정승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한 하인이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황희 정승이 말하였습니다.
"네 말이 옳구나."
그러자 다른 하인이 억울하다며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하면서 다른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네 말도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말했습니다.
"아니? 대감께서는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둘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은 ”부인의 말씀도 옳소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싸움이나 갈등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용납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바로 큰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도 사용하시지만 이렇게 큰 그릇도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가 왜 복의 근원이 된지 아십니까?
간단하게 말씀 드릴께요.
아브라함에겐 조카 하나가 있었는데 롯이라고 합니다.
지 앞가림도 잘 못하는 이 롯이 항상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는데 아브라함이 복을 받자 덩달아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복 받는 사람 옆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재수 없는 사람 옆에 있으면 자기 복도 못 챙겨 먹습니다.
되는 일도 안 됩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의 복을 거저 먹어 롯의 양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부딪칩니다.
양들에게 먹일 물과 풀은 한정되어 있고 양을 많고... 날마다 싸움이 일어납니다.
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이렇게 맨날 싸울 수가 없으니 너하고 나하고 갈라서자.. 내 땅이 많으니 네가 죄쪽 지역을 택하면 내가 우측을 쓸 것이고 네가 우쪽 지역을 택하면 내가 좌측을 쓸 것이니 네가 먼저 좋은 땅을 택하거라’
롯은 아브라함의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땅을 선택했지요.
그게 어딥니까?
소돔과 고모라.. 요단 온 지역이었습니다.
심판을 받기 이전의 그 땅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서울 명동이나 미국의 라스베가스 같은 그런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말 없이 그 땅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간 됨됨이와 그릇의 크기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사이즈의 믿음과 생각의 스케일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너무도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그 사이즈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통 크게 양보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하셨습니다.
크게 한 번 양보했더니 하나님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십배 수백배로 갚아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왕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통 크게 한 번 하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통 크게 믿으면 통 크게 주시고 쩨쩨하게 맏으면 쩨쩨하게 주신다”
하나님 앞에 나오실 때 큰 그릇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릇대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수도가 없을 때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물을 받느라고 난리입니다.
공평하게 하늘에서 비를 주셨는데 어떤 집은 한 달 마실 물을 받았습니다.
어떤 집은 일 주일 어떤 집은 하루 어떤 집은 한 끼... 왜 그렇습니까?
물을 받을 그릇의 차이였습니다.
어떤 집은 박카스 병을 갖다 놓았습니다.
어떤 집은 뚝배기... 어떤 집은 바께스로 받았습니다.
어떤 집은 가마솥을 갖다 놓습니다.
어떤 집은 드럼 통을 준비해놓고 거기에다 빗물을 받았습니다.
어떤 그릇이 가장 많이 받았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떤 그릇을 가지고 나왔느냐가 중요합니다.
박카스 병인지 사이다 병인지 바께스인지 가마솥인지 드럼통인지 준비한대로 크기대로 하나님은 채워주시고 부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로 큰 댐이 소양감 댐입니다.
댐의 높이는 123m, 제방 길이는 530m, 총저수량은 29억t으로 진흙과 돌로 만들었는데 1967년 4월 15일 착공되어 1973년 10월 15일 6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6년 반이 걸린 것입니다.
이 댐의 담수 능력은 29억톤입니다.
이 물의 양은 춘천은 물론 서울 경기 지역민들의 생활용수와 농업 경공업 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으며 전기도 생산하는데 발전용량 20만kw/h라고 합니다.
이 댐에 물을 채운데만 6년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많이 채워야 많이 나눠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그릇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안에 다 채워주시고 담아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그릇 크기는 얼마만 합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릇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크기도 우리가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대로 채워주십니다.
거지도 그릇대로 얻어 먹습니다.
최소한 그릇이 있어야 되고 그 그릇의 크기만큼 얻어 먹게 됩니다.
그릇의 크기가 남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런 말은 들어야 합니다.
저 이는 그릇이 남달라...자녀를 키워도 큰 그릇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한국을 담고 세계를 담는 그릇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그릇이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장 튼튼한 그릇일수록 명품일수록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흙의 모든 불순물이 사라집니다.
도자기는 그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이런 도자기 명품들은 모두가 오랜 시간 고온에서 구워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명품 인생이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 불같은 연단을 겪어야 합니다. 명품일수록 그 온도가 더 뜨거워야 합니다.
그 연단을 거치고 나면 훌륭한 그릇이 됩니다.
뜨거운 것을 담아도 차거운 것을 담아도 깨지지 않고 변형이 되질 않습니다.
싸구려 그릇은 웬만하면 그냥 금이 가고 깨집니다. 오래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명품 도자기로 만드시기 위해 훈련하시고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웬만한 고려 청자 이조 백자 가격은 기본이 억대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릇입니까?
깨끗합니까?
더럽습니까?
좁고 작습니까? 아니면 넗고 큼지막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 그릇대로 담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귀한 명품 도자기로 빚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역사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봉 헌 찬 송 191장
<봉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심으로, 온 맘 다해 본향을 향해 가는 여행길을 가게 하여 주옵소서.
힘이 들고 어려워도 가게 하시고 답답하고 한심스럽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 길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주신 분복대로 살게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살면서 일하여 얻은 소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일천번제예물 드립니다.
특별히 조시원이 기억하여 주옵소서 누구든지 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할 수 있기에 구합니다. 복을 주옵소서 주시되 이번 대학을 꼭 보내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만으로 된것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주님안에서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험을 극복하고 다시 교회에 나온 정문숙 집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큰 은혜로 나오게 됨을 알게하시고 그 은혜 사랑으로 응답하게하셔서 하나님의 더 큰 사랑안에서 늘 행복하게하여 주옵소서. 더욱 가정을 돌보아 주옵소서, 무엇보다 평안케하시고 저들의 중심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더욱 주님을 알아가게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알아가는 복을 주셔서 온 가정이 다 주님께 돌아오는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을 지금까지 늘 보호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사오니 무 감사합니다. 영원토록 주안에서 강건하며 넘치게 주신 복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보물을 가져갈 수는 없으나 먼저 보낼 수 있기에 보물을 하늘에 쌓습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고 저들의 가정과 일터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광고및교제
축 도
지금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독생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하심과
날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승리케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기를 결심하고 다짐한 성도들 머리위에와 성도들 가족과 경영하는 생업위에 장유평강교회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