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택식물원>
국내 최대의 식물원이라는데 국영이 아니라 민영이다. 우리는 산의 나라이지만 요즘은 공개된 산이 아니면 아무 산에나 가기는 어렵다. 아무 산에나 오르면 왠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안이 있어 다행이다. 수목원과 식물원이 그것이다.
국영은 거대하고 조성된 군락이 굵직굵직하나 아담한 맛이나 손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떨어진다. 한택은 이 모든 것을 갖췄다. 규모와 섬세함, 편의 시설까지, 불편한 거 아쉬운 것이 없다. 이만한 시설과 전문적 배려를 민간에서 갖추었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다.
요즘은 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는 한택의 자랑이다. 멀리 충남 오서산까지 가지 않아도, 아산 영인상휴양림까지 가지 않아도 억새 갈증이 가신다. 사람 키보다 세 배는 큰 억새 아래 기죽지 않고 서 있으면, 가을 하늘 닿는 억새의 손이 가슴도 위무하는 기분이다.
한택식물원은 1984년 정식으로 개장하였다. 특히 자생식물 보호와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 특산식물, 보호식물, 멸종식물 등 1,750여종을 보존 관리하는 국내 유일 최대의 한국식물 유전자 자생지다.
민간 식물원으로서 이만한 기여는 국가기관도 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끊임없이 초등학생 등 많은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온다. 이렇게 배워가니 얼마나 다행인가. 애써 뭔가 배우려 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공기만 마셔도 앉아 쉬기만 해도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니 식물원의 보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방문일 : 2019.11.27.
입장료 : 성인 9,000원

하늘까지 솟은 나무, 아무리 애써도 렌즈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늘로 하늘로 날아간다. 수목신앙의 대상 고목들은 무성한 잎이 하늘로 향하지만 굵은 기둥이 굳건하게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견고하게 얽힌 뿌리는 깊이 흙에 박힌다. 그래서 땅에만 발 디딘 인간의 소망을 하늘로 전달하는 수목신앙이 발달하였다. 동네마다 입구에 의젓하게 자리잡은 당산목은 그러한 수목신앙의 신체이다.
이 나무는 하늘로 하늘로 시원하게 뻗었다.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은 확실히 날라다 줄 거 같다. 하늘로 닿는 소망 뒤로 타는 단풍이 아직은 가을이다. 하늘로 전달되지 않아도 수평으로 전달되는 가을의 향기를 누리기만 해도 행복한 가을이다.

바오밥나무. 호주식물원 온실에서 만날 수 있다. 지가 살아남으려 지 몸에 가둔 물이 풍성함의 여유로 우리를 이끈다. 한택의 또 다른 자랑이다.

어디나 이런 정경이다. 나무는 잎을 달고 있을 때나 잎은 흙에 떨굴 때나 다 아름아운 품위와 의미를 담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나무는 모양새로도 우리에게 볼 복을 누리게 한다. 생명 자체가 보시다.
이런 복을 제일 많이 누리는 것이 한국이다. 단풍과 낙엽을 확실히 구분하여 표현하는 나라도 드물다. 프랑스는 단풍이 없다. <고엽>은 '죽은 잎'(Les Feuilles Mortes)의 낯선 번역어일 뿐이다. 낙엽과 단풍으로 가을 잎의 느낌과 실체를 어느 언어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언어감각이 빚어낸 합리성과 조화이다.



가을 낙엽이 온통 식물원을 뒤덮고 있다. 관람객은 없고 한적하다. 최근에는 많이 다녀가지 않은 듯. 깊은 가을 정취를 독점했지만 안타까운 마음. 이 좋은 곳을...

한택식물원 설립자 공덕비다.



화살나무다. 한쪽으로 뻗어 벤치를 에워싸고 있다. 가을에 잎이 떨어져서도 사람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까마귀밥나무란다. 식물 이름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태반은 우리말 이름이다. 누가 지었는지 귀신같은 명명이다. 공부도 하며 감탄도 하며 본다.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꽃과 반대로 잎보다 나중에 지는 열매가 가지를 붉게 물들인다. 덕분에 앙상한 가지가 꽃같은 열매로 둘러싸여 함께 화려해진다.



하늘말나리, 술채꽃, 알록제비꽃, 가지가지 우리말 풀이름을 다 적어 놓았다. 물론 봄 여름에 오면 다 만날 수 있는 풀이다. 그저 이름없는 들풀이라고만 하였던 것들이 다 제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새소리가 정겹다. 무슨 새인지도 모를 새 소리, 새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데 꽃은 제 이름을 보이며 피는 건지. 확실한 건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면 내 가슴에 와서 꽃이 된다는 거다.
2,400종 야생식물을 보유하여 보고라고 불리는 이 식물원은 단지 물량만 최고가 아니라 식물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최고다.




식물원 안으로는 계곡물도 흐른다. 산이 숲이고, 산에는 계곡이 있고, 어느 나라 산이나 이렇지는 않다. 한국은 복 받은 나라다. 산타의 나라라고 꿈꾸듯 그리는 핀란드에 가니 산이 숲이 아니고, 숲은 숲일 뿐이었다.
파미르 고원, 사하라 사막의 산에는 나무가 없어 숲이 아니다. 중국도 태반은 산이 없고, 산이 있어도 나무가 없다. 나무 없는 숲, 산없는 평원은 우리에게 황사라는 위협으로 불어어온다.
산이 숲인 나라, 그 숲 사이로 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 물이 흐르는 나라, 그런 나라 찾기 쉽지 않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여행이라면, 그 파랑새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일 것이다.


전망대 오르는 계단. 이제 거의 다 왔다. 낙엽이 덮어버린 땅, 계단, 산길, 그것들은 산 색도 바꾼다. 내 맘도 덮고 내 맘색도 바꾼다.







*중남미 온실

*호주 온실. 안에 그 유명한 바오밥나무가 있다.




바오밥나무. 사막에서 버티기 위해 줄기 안에 물을 가득 저장하여 기둥이 물병 모양이 되어 물병나무라고도 한다는 바오밥나무, 낯선 곳이 이 나무는 <어린 왕자> 덕분에 우리에게는 친근한 나무가 되었다. 한택의 대표적 식물이기도 하다.


출구가 가까워 온다. 호박이 조형물인가 했더니 진짜다.




억새원




호수를 끼고는 메마른 듯하면서도 온갖 식물 정취가 다 있다.


이 식물원의 좋은 점은 너무나 많지만, 이와 같이 소상한 식물 소개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나무와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식물에 대한 사랑과 전문성,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다 같이 담겨 있다. 오늘 고즈넉한 가을을 독점해서 황감하나, 더 고마운 것은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산하가 얼마나 좋은지 너무 많이 잊고 지낸다.
이런 식물원을 민영으로 운영하는 관계자분들께, 감사 감사 드린다. 이 분들의 식물 사랑, 인간 사랑을 느낀 것이 보답이 될지 모르겠다.
#용인가볼만한곳 #한택식물원 #바오밥나무 #화살나무 #억새원


구경 마치고 나오면 커피숍이다. 안은 작은 정원이다. 예쁘게 꾸며놓은 실내에 커피맛도 상등급이다.

길 건너는 수생식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