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잠그는 소리
ㅡ 이춘자
어머니는 어린 딸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였다. 아기는 업고 다닐 수 있지만 딸애는 오랜 시간을 걸어서 다닐 수가 없었다. 집에 혼자 두고 나가자니 열두 살 막내 시동생처럼 될까 봐 마음이 불안하였다. 시동생은 친구랑 시집간 누나 집에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집에 오는 길을 잃었는지 유괴를 당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6.25 전쟁 중에 어린 딸도 잃어버릴까 염려가 되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징집이 되어 전장에 나간다. 어머니는 딸을 집 안에 가둬 놓고 다닐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은 최악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왜 판잣집에 혼자 가둬 놓는지 영문을 모른다. 어머니가 동생만 업고 나간다. 문밖에서 자물쇠 잠그는 ‘찰칵’ 소리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아이는 널빤지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단절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판잣집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 여인들의 악쓰는 소리가 아이와는 상관이 없었다. 아이에게 허락된 것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요강이 있다. 방구석에는 물 주전자와 밥상도 차려져 있다. 어른이 된 아이는 그때 차려 놓은 밥을 먹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방 한 켠 벽에는 아이 키보다 높은 곳에 조그만 봉창이 있다. 아이는 봉창으로 해가 들어올 때는 손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며 논다. 어느덧 해가 떨어져서 별이 뜰 무렵에는 방안은 어둠이 내려오고 조용하다. 아이가 불장난을 할 까 걱정이 되어 성냥을 감춰 놓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요가 무섭고 외로워서 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울어도 달래주는 사람이 없으니 지쳐서 잠이 든다.
잠결에 어머니가 문을 여는 ‘찰칵’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잠든 동생을 업고 힘없이 집에 왔다.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면 아이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간다. 이때는 아이가 밖에 나가도 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는 두 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코끝에 스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아이는 코 평수를 한껏 넓힌다. 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총총 반짝이고 있다. 부산 영도 언덕길 가에 자리를 잡은 피난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 준비에 분주하다. 전쟁 중에 부산은 어디를 가도 피난민들로 초만원이다. 부산 국제시장은 피난민들의 생존경쟁장이다. 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피난 생활이 무척 막막하고 고달프다. 지금 전쟁 중에 고통을 당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면 그때 우리나라의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어머니는 서른 살이 채 되기 전에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버거웠을 것이다. 큰아이를 어쩔 수 없이 집에 가둬 놓고 나가는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을 업고 양식을 구하러 나가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하였다. 창조주는 지구의 한쪽에서 살상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 무심한 별들만 경쟁하듯 반짝인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전쟁을 감지한다. 울어도 소용이 없고 달래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이는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울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 내일이면 지켜지지 않겠지만 아이도 어쩌지 못하는 환경에서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았던 고향 집에는 대문이 없었다. 삼십 호 남짓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사립문을 아예 잠그지 않았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인지 알고 있을 정도다. 낯선 사람이 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도둑이 왔더라도 사람들 눈과 관심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가져갈 만한 물건들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동네일지 모른다.
결혼을 하고 단독 주택에 살 때. 나는 대문을 잠그지 않아서 도둑을 몇 번 맞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한 번밖에 입지 않은 쉐-타를 걷어갔고, 다음에는 아이들 동전 저금통을 들고 갔다. 세 번째는 월부금을 다 갚지도 않은 흑백 텔레비전을 들고 가 버렸다. 도둑치고는 치사한 좀도둑이다. 세 번을 도둑에게 당하는 나도 답이 없는 사람이다. 이제는 도둑이 탐을 낼 만한 물건이나 돈도 없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끔은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것은 내 마음이 문 잠그는 것을 거부 했지 않았나 싶다.
우리 집 현관문은 번호 키가 아니고 열쇠로 연다. 남편이 외출을 하면서 현관문을 잠근다. 나는 현관문을 잠그는 ‘찰칵’하는 소리가 눈물이 나도록 듣기 싫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문 잠그는 소리.
이제 나는 마음대로 현관문을 열고 손님도 초대한다. 사랑하는 자녀들도 오고 친구도 온다. 거실에는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와 화초들이 꽃을 피운다. 하루에도 수없이 현관문을 여닫는 찰칵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은 열쇠 소리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신호로 들릴 뿐이다.
ㅡ 한국수필 2024년 01월호(통권347호)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