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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장소 : 2013. 08.24(토) / 연신내역(10시)
▣ 참 석 자 : 15명 (갑무, 용우, 정남, 종화, 형채, 원우, 윤환, 경식, 재웅, 삼환, 정한, 문형, 영훈, 양기, 진오) ※ 김진오 산우 - 신규회원(가입) *
▣ 산행코스 : 진관사공원지킴터-진관사(계곡)-비봉(옆길)-사모바위-삼천사계곡-삼천사-뒷풀이집
▣ 동 반 시 : "여행 떠나기" / 목필균
▣ 뒷 풀 이 : '닭백숙' 및 파전에 맥주 / "청솔"(구, 폭포수) → 김진오 일부 제공
입추(8/7), 말복(8/12), 처서(어제, 8/23)가 지났는데도 섭씨 30도가 넘는 땡볕 무더위가 지속되는 터라 시산회 집행부가 시원한 물을 접할 수 있는 계곡이 있는 코스로 오늘의 산행을 정한 것에 대해 크게 감사한다.
오전 10시, 연신내역 3번 출입구에 오늘 산행할 15명의 산우들이 집결, 집행부의 아이디어 로 뒤풀이할 음식점에서 픽업(Pick Up)나오게 한 승합차를 타고 ‘진관사입구’까지 편하고 신속히 이동하였다.
오늘의 216회 산행에는 김진오 친구가 새로운 시산회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모두들 새 산우를 환영해 맞이하는 분위기였다. 고교 졸업 후 젊은 한참 시절에 각자의 생활전선에서 상하좌우 그리고 뒤를 살펴 돌아볼 겨를 없이 바삐 지내온 과거를 지금 탓할 수는 없는 일, 우리가 현재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지금부터 라도 한 달에 두 번하는 시산회 산행에 김진오 친구처럼 새로이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관사입구를 들머리로 하여 오전 10시 30분경에 오늘의 산행은 시작되었다. 10분쯤 포장도로와 목재 계단 길을 걸어가니 좌측에 진관사 사찰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고 일행들이 진관사 경내를 답사한다.
진관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진관사를 소개하는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여 아래에 싣는다.
☞ 비구니스님들의 단아한 수행처인 진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이며, 또한 수륙도량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으며, 6.25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복구된 고찰로 전해진다. 또한 '신라시대 고찰'이란 설과 조선 후기 승려 성능(聖能)이 찬술한 「북한지(北漢志)」 에서는 원효대사가 진관대사와 더불어 삼천사와 함께 세웠다는 설도 전해진다.
수륙도량인 진관사에서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 등의 혼령들에게 불법(佛法)을 강설(講說)하고 음식을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는 것,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물과 육지에 떠도는 모든 조상 영가들을 천도시키기 위한 천도재를 목적으로 하는 수륙재(水陸齋)를 여는 사찰이라고 하는데, 금년의 수륙재를 안내하는 플랭카드가 대웅전 현판 바로 아래에 걸려 있고 그 프랭카드에는『조선시대 수륙재의 전통을 계승한 국행 수륙대재, 2013.10.12.(토)~13(일)』라고 씌여 있었다. ☜
이 사찰의 종무소에서 신도들의 기도/봉양을 접수하고 안내하는 50세 전후로 보이는 우아하고 예쁜 한 미녀가 우리 일행 몇 사람을 상대로 ‘국행 수륙대재’를 설명하고 수륙대재 때에 시간을 내서 참여할 것도 권한다. 그 미녀는 필자가 보기에도 참으로 우아하고 예쁘고 완숙한 모습이었고 함부로 가벼이 대하지 못할 기품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우리에게 친절했으며 우리 일행 중의 한 산우는 그 여인의 면전에서 “보살님은 얼굴이 참으로 곱고, 맑고 투명하신데 어떻게 수행을 하면 그렇게 됩니까?”라는 멘트를 큰 소리로 날리자 다른 어떤 산우가 “보살님을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지 않은가”로 분위기를 수습하였다.
약 10분간의 진관사 답사를 한 후 10시 40분경부터 13시까지 진관사 → 진관사계곡 → 비봉(옆길) → 사모바위까지의 섭씨 30도가 넘는 땡볕 무더위 산행을 2시간 남짓 했다.
날씨는 덥고 산 오름은 가팔라서 산행 출발, 30분 정도 지난 11시에 첫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 첫 휴식에서 김용우 친구가 옛날식 꽈배기(맛이 매우 좋았음)를 다량 준비해 와서 18명 전원이 간식을 할 수 있었고, 김정남 친구가 나눠준 오이와 함께 꽈배기를 먹으니 오전 간식 이 충분히 해결되었다. 특히 옛날식 꽈배기를 푸짐하게 준비한 김용우 산우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후 1시경에 사모바위 부근의 한 장소에 점심식사 자리를 잡았다. 점심식사를 위해 펴 놓은 자리 위에 먹산회답게 갖은 먹을거리가 놓여진다. 각자 가져온 막걸리, 묵은김치(한양기), 각종 떡(지참자 기억 못함), 김치전과 홍어무침(조문형), 약밥(김종화), 바나나와 6년근 홍삼(신원우), 지초술, 당귀술과 곰배나물조림(임삼환), 두부, 한과와 오이(김정남) 그리고 조영훈의 찹쌀떡피자 등등 진수성찬이었다. 열거한 음식 외에도 더 있는데 필자가 기억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은 열거를 못하니 열거에서 빠진 산우들이여 이해해 주시게들.
특히, 맛있는 '찹쌀떡피자'를 힘들여서 만들어주신 조영훈의 어부인님께모든 산우들은 시산회의 이름을 빌어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그 찹쌀떡피자를 맛보지 못한 여러 친구들이여, 이해해 주시기 바라네.
점심식사 자리를 잡고 난 후 자리에 앉고 보니 몇몇 산우들이 보이지 않는다. 뒤에 오는 그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식사를 하자는 산우들도 있었으나, 배가 고파서 앞에 있던 음식을 한,두 번 먹다보니 뒤쳐진 산우들이 도착하기 전이지만 식사가 진행되어 버렸다. 뒤쳐졌던 산우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음식이 처음처럼 풍성하지 않았는데도 늦게 온 산우들이 내색 없이 흔쾌히 식사를 하여 주셨으니 그 넓은 마음 씀씀이에 필자가 대신 감사를 표합니다.
점심식사 도중에 동반시를 낭송하는 시간이다. 그날 산행의 기자에게 영광스럽게 주어지는 모처럼의 시낭송 기회인데 김용우 산우가 추천한 목필균 시인의 ‘여행 떠나기’를 낭송하게 하였다.
동반시에 이어서 김용우 산우의 자작시 발표 낭송이 있었다. 김용우 친구는 금년의 어느 때인가부터 당구를 열렬히 배우고 있는데 요 몇 달 만에 상당한(?) 수준까지 당구실력이 올라간 것이다. 그러면서 ‘당구야 놀자’라는 제목의 시를 자작하여 오늘 친구들 앞에서 그 시를 발표하였다. 모든 친구들 그 시낭송을 듣고 연발 감탄사를 토해낸다.
"당구야 놀자" / 김용우(자작시)
사각의 직선하나로는 부족하여 하나를 더해 만든 긴 울타리 되고
그럼으로 입사각과 반사각의 기하학이 새롭게 탄생하는 마당 되니
하양 빨강 노랑의 공 셋이서 두께와 속도로 회전무대의 세상 되어
돌리고 집어넣고 빗겨치고 당겨치고 밀어치고 잘라쳐야 길이 된다
담벼락에 부딪쳐야 공이 제 갈길을 가는 것이어서 소리가 좋아야 하고
때로는 뒷길과 모퉁이를 돌고 돌아 쿠션의 빗각과 큐질이 맞아야 하고
적구로 인한 목적구의 방해를 피하는 길에도 진한 키스의 아픔이 있고
백차를 타게 되는 허망함과 두점 포인트의 헛발치기는 깊은 탄성이다
공은 서로 직선과 곡선으로 부딪치며 어울러지게 만나야 한다
하얀 마음가진 소년의 호기심으로 그림을 그리고 순수해야 한다
빨간 열정으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뜨거운 집중이어야 한다
노란 성숙과 절제가 주는 품격과 예를 다듬고 키우는 배움이 된다
혼자 하는 기록경기가 아니다
친구가 있어야 기대도 웃음도 신음도 아쉬움도 즐거움도 공존하게 된다
한게임 두게임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지만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고 좋다
도전 받아주고 마지막 지하철도 보내며 때론 알밤 까는 우정무대도 된다
완성이 없는 오직 과정만이 아름다운 경기가 아니겠는가
파도가 없이는 비구름과 바람에 지혜로온 뱃사공이 나오겠는가
오늘 부족함과 모자람이 있어 다음의 약속이 반성이며 발전이다
사각의 공간에서 곡선과 직선의 교합이 주는 소통이 바로 도이다
당구야 놀자!
점심시간은 이렇게 먹을거리 잔치에 시 낭송에 정다운 벗들과 신선놀음을 만끽하고는 오후2시에 하산행군을 시작하였다.
사모바위를 지나서 승가봉을 향해서 200m쯤 가다가 좌측으로 내려가면 삼천사계곡길 코스다. 인원이 15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인지라 임삼환 친구 등 6명의 친구들은 사모바위에서 곧 바로 내려가는 응봉능선코스를 타고 하산하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삼천사계곡 코스를 타고 내려가다가 삼천사계곡의 시원한 계곡물에 탁족을 즐겼다.
오후 2시30분에서 오후 3시경까지 약 30분간의 계곡물 탁족은 마지막 가는 여름 피서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사진 찍느라 무척 분주하긴 했지만, 오후 3시 30분경에 삼천사에 도착하였다.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 삼천사 건물의 화려한 단청, 삼천사 입구에 높이 세워진 두 개의 석탑 등을 감상하면서 사진촬영도 하였다. 유서 깊은 사찰이란다. 번창하고 있는 절인지 큰 공사도 한창이다.
인터넷 “다음”에서 검색한 “삼천사”에 대한 소개 내용 중 일부의 내용이다. ☞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현재의 주지 평산 성운 화상이 부임하여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로 지정받고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참배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삼천사를 지나 10분쯤 내려와서 오늘 우리의 뒷풀이 장소인 '청솔식당'의 큰 방 한 칸에서 15인의 일행이 다섯 시간 넘는 무더위 속 산행의 피로를 닭백숙, 파전에 맥주와 소주로 오후 4시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즐겁게 풀었다.
오늘의 뒷풀이 비용 중 일부의 금액(15만원)은 오늘 가입한 김진오 친구가 신고인사로 쾌척하였다고 조문형 총장님이 소개하였다(나도 2005년 8월 15일 제19회 산행 때 입회하여 제20회 오대산 산행 때 입회 턱을 냈었 는데 그로부터 만 8년이 흘렀고 산행 횟수로도 거의 200회가 지나가 버렸다). 새로 입회한 김진오 신입 산우가 앞으로 오랜 세월을 시산회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뒷풀이 도중에 한양기 친구의 돌발 발표에 그에 호응한 신원우 친구의 무반주 아카펠라(?) 육성 타령에 오늘의 산행 분위기 절정의 박수소리가 북한산 전체를 흔들었다. 그 내용인 즉, 한양기 친구가 황석영의 ‘여울물소리’에서 A4용지 2장에 자필로 미리 채록하여 준비해 온 ‘오봉산 타령’과 ‘산 타령’의 두 가지 중 ‘오봉산 타령’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잠시 설명을 하자 이 설명을 듣고 있던 신원우 친구가 돌연 일어서더니 ‘오봉산 타령’을 실제 로 불러 보겠단다.
모두들 박수로 호응하자 신원우 친구가 ‘오봉산 타령’을 무반주 육성으 로 한바탕 하자 청중들의 중간박수에 또 한바탕의 타령을 구성지게 하여 뒤풀이장의 분위기 를 한껏 띄워서 모두들 박수와 박장대소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한양기 친구와 신 원우 친구에게 필자가 참석자들을 대신하여 고마웠다는 뜻을 여기 산행기에 싣겠네.
그런데 한양기 친구는 당초의 생각은 ‘오봉산타령’과 ‘산타령’ 중 ‘산타령’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려 고 했었으나 준비해 둔 ‘산타령’종이를 미처 찾지를 못해서 ‘오봉산 타령’ 종이를 차선책으 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으로 이 필자는 이해하는데 ‘오봉산 타령’을 소개했기에 신 원우 친구가 생음악 육성 아카펠라 타령을 하여 좌중 분위기를 한껏 띄울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되어 오히려 잘 된 거라 생각되네(산행 도중에 한양기 친구가 ‘산 타령’사본을 필자에 게 주면서 오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산타령’을 소개할 뜻을 표한바가 있었음). 오늘 한양기 친구가 준비하고 신원우 친구가 노래한 ‘오봉산 타령’과 원래 한양기 친구가 소개하려고 마음먹었던 ‘산타령’을 아래에 게재한다.
"오봉산 타령"
오봉산 꼭대기 에루화 돌배나무는
가지가지 꺾어도 에루화 모양만 나누나
에헤요 어허야 영산홍록의 봄바람
도봉산 만경봉에 백학이 춤추고
단풍진 숲속에 새 울음도 처량타
그윽한 준봉에 한 떨기 핀 꽃은
바람에 휘날려 에루화 간들거리네
삼각산 꼭대기 채색구름이 뭉게뭉게
만학의 연무는 에루화 아롱아롱
백운대 암벽에 홀로섰는 노송나무
광풍을 못 이겨서 에루화 반춤만 춘다
인왕산 마루다 국사당 짓고
임 생겨지라고 노구메 정성을 드리네
삼청동 골짜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
꽃피고 새 울어 심신이 쇄락해 지노라
에헤요 어허야 영산홍록의 봄바람 - < 황석영 “여울물소리”에서 채록 > -
"산타령"
나니나 산아지로구나 어뒤어나에 나나지루 산이로구나
오수산 십일봉은 은자봉이 둘러있고
도령청대 거자봉은 옥계수가 둘러있다
수락산 폭포수는 동구재 만리재라
약잠재 누에머리 용산 삼개가 둘러있다
동소문을 내달아 문넘어 얼른 지나
다락원서 돌려보니 도봉망월에 천축사라
동 불암 서 진관 남 삼막 북 승가요 ※필자 註 : 한양기 친구가 ‘서 진관’이 대목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함
우연히 잠두에 올라 한양 성내 굽어보니
인왕 삼각은 용반호거세로 북국을 고여있고
한강 종남은 여천지 무궁이라 - < 황석영 ‘여울물소리’에서 채록 > -
다음 9월 8일(일)의 산행지는 4호선 서울대공원역에서 집결하여 청계산에서 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식당에서 나와 단체사진 촬영을 끝으로 뒷풀이 절차를 모두 끝냈다. 뒷풀이 음식점이 제공하는 승합차에 몸을 실어 오후 5시50분경에 연신내 전철역 근처에 하차하여 오늘의 산행은 마감이 되었다.
시산회 친구들이시여! 시산회 산우들이시여! 모두들 건강관리 잘하여 우리의 산행이 길게길게 이어져 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필을 놓겠네.
2013. 9 .6. 이재웅 씀.
< 동반시 >
"여행 떠나기" / 목필균 (김용우 추천)
파도처럼
무지한 갯바위도 부서지며 껴안을 수 있고
세월이 아프면 목청껏 울 수도 있게
바다로 가볼까
소나무처럼
숨찬 바람 소리도 다듬어 읽을 줄 알고
마르지 않은 추억 속에 서성거릴 수 있게
산으로 가볼까
들꽃처럼
질긴 그리움에도 무던히 기다릴 줄 알고
아픈 사랑도 삭여서 피어날 줄 알게
들로 가볼까
아무도 날
부르지 않은 곳에서 파도도 되고,
소나무도 되고, 들꽃도 되었다가
겁없이 누워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