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 해가 저문다. 올해는 고교졸업 50주년이다.
어느새 70문턱에 들어서려하니 내 삶을 돌아보고 또 내다보고 싶다.
‘남자의 후반생’의 저자 모리야 히로시는 말한다. “인생의 열쇠는 후반부에 있고, 후반부의 시작은 40세일 수도 60세 일 수도 있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가 문제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난날 보다 늙었지만 앞으로 다가올 날들보다는 젊은 법이다.”
올 한해를 보내면서 가장 많이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찾았던 장소들을 헤아려본다. 우선 사람들을 보자. 50년 전과 지금을 대비해본다.
그땐 나를 보듬고 키워준 어머니가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식들을 보듬고 키운 내자가 나를 지키고 있다.
나의 스승이자 유일한 멘토가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지금 나의 멘토와 스승은 50년 세월의 세상속에서 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50년전 내 주위에는 학우들이 전부 였지만 지금은 50년을 버텨오면서 사귄 사람들이 있다.
50년 전과 달라진 내 삶을 되돌아본다. 나를 있게 해준 내 조상들의 발자취도 알고 싶고 주위의 권고도 있어 오래전에 종사(宗事)에 발을 들여놓았다. 올 한해는 시조님을 비롯 선조유적지들을 두루 답사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50년 전을 훨씬 뛰어넘어 500여년전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며 살고있는 종가댁 종손(宗孫)과 유림들도 있다.
믿음도 생겨났다.. 50년 전 그 때는 불공드리는 어머니를 따라 절을 드나든 기억이 있다. 이제 나는 가톨릭신자가 되어 내 두발로 성당에 들어가 미사참례를 드린다.
진로를 생각해보자.
50년 전에는 대학진학이 최우선이었으나 지금은 건강이 최우선이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산은 50년 전의 학우들과 매주 오를 수 있다. 고교산악회가 700회 산행을 돌파했으니 머지않아 1천회기록도 가능할 것 같다. 산을 좋아하는 학우,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명산을 찾아다닌 게 햇수로 20년이 지났다. 다릿힘이 생기니 달리기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달리기는 어쩌면 허둥대며 살아온 내 한창 때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흔 살에 신문광고를 보고 입사시험을 치른 후 종합광고대행사에 들어가 일한 적이 있다.
나의 50년 인생이다.
육군병장, KBS, 담배기계수출입대행을 맡았던 보아상사, 대홍기획,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TV, 다시 KBS를 거치면서 중앙일보 인물정보에 내 대표직업은
전 방송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50년간 내 직업의 변화 만큼 의식주의 변화도 놀랍다. 50년 전 집에 들어설 때는 대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가족이 있었다. 마당에는 장독대가 보이고 빨래터도 있다. 부뚜막이 있는 부엌과 다듬이독이 보이는 마루, 방 한쪽 구석에는 요강도 있다. 지금 내 주변에는 당시에는 볼 수 없던 PC, 휴대폰에서부터 자동차, 세탁기, TV, 냉장고, 포장김치, 라면, 생수병 등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즉석식품과 생활용품들이 즐비하다.
자장가처럼 들리던 딱따구리 소리와 찹살떡 메밀묵 파는 소리, 골목길을 점령하고 술래잡기, 말등타기, 구슬치기, 자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를 하던 아이들의 놀이도 사라진지 오래다.
“청춘은 60부터 강녕은 100세 까지” 어느 노인대학 교실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금언(金言) 같은 교훈이다. 어르신 입학생들은 교훈 앞에 손을 들고 선서를 한다. “청춘은 60부터 강녕은 100세까지!! 송죽(松竹)같은 마음으로 바르고 순수하게, 항상 푸르고 씽씽하게 나의 삶을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을 말할 때 수(壽)ㆍ부(富)ㆍ강녕(康寧)ㆍ유호덕(攸好德)ㆍ고종명(考終命)의 다섯가지 복을 오복(五福)이라 했다.
이제 고종명을 향해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가 아닌,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이 아닌,
내 본래의 모습을 찾고 싶다.
나이 못지않게 마음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배우고 또 배우자. 그리고 무엇이 나에게 소중한 것들인지 헤아려 가장 소중한 것들과 만나고 싶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내 50년 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