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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曠野광야』 李陸史(이육사, 1,904 ~ 1,944) | ||
過去 | 1 聯 광야의 원시성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2 聯 광야의 광활함과 신성성 | 모든 山脈산맥들이 바다를 戀慕연모해 휘날릴 때에도 차마 이곳을 犯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
3 聯 역사와 문명의 시작 | 끊임없는 光陰광음을 부지런한 季節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江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
現在 | 4 聯 암담한 상황(일제치하)과 현실 극복 의지 | 지금 눈 내리고 梅花매화 香氣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未來 | 5 聯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 (기대와 확신) | 다시 千古천고의 뒤에 白馬백마 타고 오는 超人초인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 이 作品의 주제는 조국 광복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다. ‘曠野’라는 광막한 공간, 그리고 아득한 시간을 배경으로 강인한 지사적 의지와 미래 지향적인 역사의식을 웅장한 상상력과 남성적 어조로 보여 주고 있다.
- 5연 15행의 自由詩이고 抒情詩이며, 성격은 意志的, 抵抗的, 未來 指向的, 象徵的이다. 題材로는 ① 野: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현장, ② 눈: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 시련과 고통, ③ 梅花香氣: 강인한 민족정신, 조국 광복의 기운, 현실 극복 의지, ④ 가난한 노래의 씨: 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희생적 의지, ⑤ 白馬 타고 오는 초인: 광복의 상징이다.
- 특징으로는 ① 獨白的 어조로 내면의 신념을 드러냄. ② 상징的 詩語와 自己의 犧牲희생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③ ‘過去 - 現在 - 未來’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詩想을 전개함. |
* 李陸史(이육사)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出生, 1,944년 1월 16일 中國 北京에서 死亡함. 本名은 李源綠이원록, 李源三이원삼, 字는 台卿태경. 改名은 活활임. 이육사라는 이름은 刑務所 囚人 番號 264에서 따온 것이다.
12세 禮安普文義塾예안보문의숙에서 漢學을 배웠다. 17세 대구 교남학교에서 新學問을 배우고 영천의 백학학원을 거쳐 일본의 東京正則豫備校동경정칙예비교, 일본대학 문과 전문부에서 수학하고 1925년에 귀국하였다.
1935년 ≪新朝鮮신조선≫에 〈春愁三題춘수삼제〉·〈黃昏황혼〉 등을 발표, 1937년 ≪新朝鮮≫·≪批判비판≫·≪風林풍림≫·≪朝光조광≫·≪文章문장≫·≪人文評論인문평론≫·≪靑色紙청색지≫·≪子午線자오선≫ 등에 30여편의 시를 발표함.
- 대표작으로는 〈黃昏황혼〉·〈靑葡萄청포도〉(문장, 1939.8.)·〈絶頂절정〉(문장, 1940.1.)·〈曠野광야〉(자유신문, 1945.12.17.)·〈꽃〉(자유신문, 1945.12.17.) 등을 꼽을 수 있다. 遺稿詩集유고시집으로 “李陸詩集”(1946)이 있다.
-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詩風으로 日帝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抗日鬪爭의 獨立運動家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가진 詩人이자 非妥協的인 實踐家이었다.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
* 안동댐의 민속촌 내에 이육사를 기리는 광야시비가 있다. 이비는 1968년에 낙동강변에 세워진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앞면에는 대표적인 광야 를 새기고 있고, 뒷면에는 시인 조지훈이 육사를 추모하고 있다. |
노래, 춤, 랩 각종 암기법으로 외우는 이육사 시인의 광야 [1박 2일 시즌4/Two Days and One Night 4] 20200119 |
1934년 서대문형무소 수감당시의 신원카드 <사진=이육사문학관 제공> |
* 이육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264.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