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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올린 앞글의 연속입니다. 오늘 글 원제목은 --기업 무르기를 따라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2)--입니다.
아기 예수는 초막에서 태어나십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초막을 치시매...(요 1:14, 로고스 성경, 1992년)
(And the Word flesh and became and tabernacled among us, ...)
그래도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시기는 의문입니다. 미리 이주하여 출산을 준비하면 좋았을텐데 왜 만삭이 되어서야 이주를 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도 성경 희년법을 이해하면 쉽게 풀립니다. 희년과 토지 무르기는 농업시대에 토지 경작과 관련됩니다. 곧 토지 무르기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년 중 계절과 때가 있습니다. 토지 무르기는 1년 중 “속하는 날(욤 키푸림)”이 되는 7월 10일에 해야 합니다. 희년도 이날 돌아옵니다(레 25:8,9,10).
임대한 토지에 지은 보리와 밀 농사는 경작자가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포도원 과일 추수는 7월 절기가 되어야 마칩니다. 농사철이라서 기업을 무르지 못하면, 고향에 와도 정착할 집도 발붙일 땅도 없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인데 섣불리 이주하면 생업이 문제입니다. 더구나 임신한 마리아의 안전과 생활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요셉 가계의 선조인 나오미와 룻은 보리 추수 시작기(1월, 유월절과 초실절)에 돌아왔기 때문에(룻 1:22) 귀향을 했어도 생계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줍기로 살아야 했고, 이 문제는 7월 10일 속하는 날이 되어 토지 무르기를 해야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요셉은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베들레헴 이주는 토지 무르기가 가능한 희년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토지 무르기가 가능하여 토지의 경작권과 소유권을 되찾아서 황제의 칙령에 따른 재산신고는 물론이고, 조상의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영구 거주할 목적으로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이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 무르기는 여의치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7월 10일이 경과하지 않아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토지법이 문란하여 장기로 외지에 있던 소유자에게 토지권을 찾는 데는 신분 확인 등의 절차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현 경작자가 소유자의 토지 무르기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을 수가 있습니다. 토지는 소유자가 장기로 권리 행사를 하지 않은 경우 흔히 경작자나 점유자가 소유자의 권리를 대신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장기화하면 남들이 보기로는 경작자나 점유자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민법에도 점유 취득이 있는데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가의 소유(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이것으로도 토지 무르기가 쉽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도 갈릴리 지방에서 있었던 부재지주와 경작자들의 생활 형태를 비유로 제시한 내용인데 구체적인 것은 뒤에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토지 무르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만삭인 된 마리아가 해산한 날이 차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는 마구간으로 지어놓은 초막에서 출생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초막을 치셨다(로고스 성경 1:14)”라고 했습니다.
성탄절은 초막절 또는 초막절기(7월절기)로 추정합니다.
지금의 성탄절 12월 25일은 성경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이날은 태양신을 섬기는 로마의 축일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이교도의 축제일을 성탄절로 삼은 것은 중세의 가톨릭이 성경적으로 충분한 연구와 검토 없이 졸속으로 결정한 것이며, 이에 배경에는 가톨릭과 로마 황제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전통 신앙인 태양신 문화와 신흥 종교인 가톨릭을 혼합하여 백성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탄생일은 이러한 혼합 종교와 정치적 의도를 벗어나서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일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도 명확하게 날짜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근거로도 명확한 날짜를 찾아낼 수가 없다면, 그다음은 이러한 근거 중에서 그래도 성경적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날짜를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종교계나 학계의 일반적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로 태어난 사실이 중요하지, 날짜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세주의 탄생은 날짜보다 탄생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붙여서 출생 시기에 관한 연구나 논의 자체마저도 피해버리는 것은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은 죽은 형의 아내 형수와 시동생이 성관계(계대결혼)로 자녀를 낳아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적 일반 정서로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대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후대에 전해주지 않거나 그 의미를 찾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계대결혼제도가 성경이 중요시 해오는 족보(씨)와 씨의 생존에 필요한 기업(땅)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서 한 질문과 오해처럼 계대결혼이 죽은 사람(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산 사람(형수)을 위해 있는 것을 잘 모르게 되며, 계대결혼이 과부의 생존과 한 가정의 복원에는 필수적 수단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보아도 성경 구속사의 핵심인 “속량(Redemption)”이 인간 구원의 유일 수단임을 모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성경 말씀을 내 생각대로 더하고 빼버리는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대한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양치는 목동들과 동방박사가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아기 예수를 영접한 것으로 잘못 알며, 기쁜 성탄의 축하행사만 알고, 유아학살 같은 슬픈 성탄의 역사는 감추거나, 모르거나, 인식이 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알려 주는 사실은 우리가 찾아내고, 전하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쯤 출생을 했는지에 날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해도 그 근접 시기에 대한 성경적 검토는 충분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신화나 소설이 아니며, 역사적 사실이고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장 부합하는 성탄절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와 근거들을 참작하여 찾아낸 성탄절은 필자의 추정으로 초막절 또는 초막절의 근접기인 7월 절기입니다. 1년 중 성탄의 시기는 이때가 성경에서 가장 부합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제사장 24반차의 직무일을 따라서 성탄절을 추정하는 것은 가장 정확할 수 있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불확실한 것이 많아서 그 직무일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러한 제사장의 직무일을 따라 세례 요한이 출생하게 되고, 아기 예수의 출생은 세례 요한의 출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펴본 바와 같이 아기 예수의 탄생과 조세등록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조세의 재원인 재산권의 소유와 변동이 희년법에서 날짜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토지 사용권의 변경이 가능한 날은 매년 7월 10일, “속하는 날”입니다. 요셉은 이날을 따라 아우구스도가 명한 조세등록과 토지 재산권 정비를 위하여 자신의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왔고, 여기서 해산의 날이 차서 아기 예수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른 조세등록과 희년법에 따른 재산권 변동이나 신고가 가능한 7월 10일 “속하는 날”이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때를 성탄절로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그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① 들판의 방목 시기 : 아기 예수 출산을 할 시기는 양들이 들판에서 방목하던 시기입니다(눅 2:8). 여기서 들판은 밀과 보리를 경작하는 들판을 말합니다. 맥추절 밀 추수가 끝이 나고, 다시 씨를 뿌리는 시기는 초막절 축제가 마친 후입니다. 들판은 이때가 재배하는 작물이 없어서 양 떼를 방목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② 목동들의 야영 시기 : 아기 예수를 가장 먼저 목격한 자들이 들판에서 야영하던 목동들입니다(눅 2:8).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라서 겨울 기온도 비교적 따뜻한 지역은 맞지만, 그래도 지금의 성탄절로 삼은 12월은 춥습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이른 비가 오는 우기라서(약 5:7) 야영이 더 어렵습니다. 목동들의 야영 시기는 초막절기가 적기에 해당합니다.
③ 사관에 있을 곳이 없다 : 마리아가 출산할 당시 사관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눅 2:7).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절기가 있어서 예루살렘에 순례객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7km 떨어진 곳인데 이곳에서 절기에 바칠 제물용 양들이 사육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례객들이 제물을 구입하고자 7~10km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모여들게 됩니다. 이 절기가 초막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④ 구유, 마굿간, 강보 등의 용어 :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용어, 마구(눅 13:15)와 구유(눅 2:7)는 헬라어로 “화트네”로 같은 단어이며, 야곱이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곳은 “숙곳”이라 하여 어원이 같습니다.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숙곳(수콧)”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에게 입힌 강보는 수태한 마라아가 출산을 앞두고 제사장이 입었던 세마포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사장의 헌옷은 버리지지 않고 구별하여 모아두었다가 강보와 초막절 축제일에 가로등을 밝히는 용도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기 예수는 만인을 죄에서 구원할 제사장의 신분이기 때문에 초막절에 쓰이는 제사장의 세마포 헌옷으로 만든 강보에 에워싸여 가축이 사는 수콧, 곧 마구간 구유에 누이셨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⑤ 스갸라서의 예언(슥 14:16) : 스가랴서 14장 16절 이하에서 초막절은 세계 열방이 지킬 명절이 될 것으로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명절이 될 초막절은 초림 또는 재림 중 어느 하나이거나 아니면 초림과 재림이 모두 초막절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⑥ 학개의 보물과 성전의 예언 : 학개는 성전 건축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천하를 진동시킬 만국 보배의 출현을 예언했습니다. 학개는 축제나 절기를 뜻하는 이름입니다. 학개가 처음 환상을 보고 회개를 선포한 6월 1일부터 속죄일이 있는 7월 10일까지 40일 기간입니다. 두 번 째 환상은 9월 24일이며, 이날은 수전절 하루 전입니다. 이날부터 280일 후는 초막절이 됩니다. 곧 학개에게 보여 준 성전 재건의 환상은 참 성전이자, 만국의 보배이신 아기 예수가 수전절(또는 전날)에 수태하여 280일 후가 되는 초막절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⑦ 3년 반의 공생애 기간 :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활동 기간은 보통 3년 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희생양으로 공생애를 마쳤으므로 이때부터 3년 반의 기간은 초막절이 됩니다. 정확성을 단정할 수 없지만, 이 초막절은 출생일로부터 만 30년 되는 해의 초막절기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⑧ 메시아닉 쥬의 메시아 대망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의 단체를 “메시아닉 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를 믿어도 구약의 율법을 따라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는 신조를 가져서 전통 기독교인들과는 좀 다른 양상을 띄웁니다. 그런데 메시아닉 쥬를 비롯한 대다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초막절에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⑨ 3대 명절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중 신약이세에 오면, 유월절은 부활절로, 칠칠절은 성령강림절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명절 초막절은 성취 여부가 불확실합니다. 신약시대에 초막절이 성취가 되었다면, 이날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3대 명절 중 유독 초막절만은 날짜와 의미를 잘 모르고 있으며, 그래서 성경의 초막절 대신 서양의 추수감사절을 도입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⑩ 처음 보았듯이 제사장 스가랴의 반차의 성전 직무일은 기록이 분명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연초부터 1반차가 시작되고, 유월절과 칠칠절은 공동봉사를 한다면, 스가랴의 8반차 직무일 기준으로는 아기 예수 탄생절기는 7월 절기가 됩니다. 그러나 이 추리는 반차 적용에 대한 가정이 신빙성이 약하여 그 확실성은 제일 낮습니다. 이 조건은 주전 4~5년 8반차 직무일이 실제로 밝혀져야 확실합니다.
위에서 근거로 제시한 ① ~ ⑩의 내용은 모두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초막절기에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막절 출생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온 목적이 기업 무르기와 관련이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날은 7월 10일 속량절(속죄일)이고, 초막절은 7월 15일이므로 성탄절은 초막절 또는 초막절기가 됩니다. 요한복음 본문에서도 아기 예수가 탄생하여 초막에 거하신다고 했는데, 초막에 거주하는 것은 초막절 행사의 하나입니다(요 1:14). 성경의 초막절은 7월 15일인데, 이날은 한국인에게는 음력으로 8월 보름, 한가윗날입니다.
기업 무르기와 베들레헴의 거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아기 예수를 처음 영접한 사람들은 목동들입니다. 이들은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장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영접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입니다. 이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별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라 유대 땅 예루살렘까지 옵니다.
예루살렘에서 박사들이 예수의 출생지를 알아보려고 헤롯왕에게 갔다가 소동이 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한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고,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가서 예수를 만나 예물을 올리고 경배를 했습니다. 이때 왕에게 드린 예물이 황금과 유황과 몰약입니다.
예수를 두 번째 영접한 동방박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들이 동방에서 왔지만 어느 나라 민족인지는 모릅니다. 동방에서 왔다는 말을 근거로 주로 “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왔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서양 사람들이 성경을 서양 중심으로만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멀리 동양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영접한 기간이 2년 정도 걸렸기 때문에 그 시기를 감안한 견해입니다. 메데는 3개월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알이랑 민족』 저술한 유석근 목사는 동방박사들이 신라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3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아무튼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영접한 곳은 집이었습니다(마 2:11).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고 경배를 드린 장소가 집이라는 사실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기 예수가 출생하여 목동들의 영접을 받을 때는 마구간 또는 초막이었습니다. 지역 백성들이 토지의 주인을 인정하지 않아서(요 1:11) 집을 구하지 못했고, 사관에 있을 처지도 아니었습니다(눅 2:7).
그런데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을 때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토지 무르기가 완성되어 거처가 마련된 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첫째,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한 시기가 아기 예수가 출생한 지, 햇수로 2년 정도 기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유아 학살 명령을 내릴 때 그 지역의 두 살 이하를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마 2:16). 그러므로 이때는 아기 예수가 출생 후 2년 정도 경과한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아기 예수의 출생 사실을 말하고 있는 누가복음의 아기는 헬라어로 “브렙호스(눅 2:12)”로, 동방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은 마태복음의 아기는 “파이디온”이라고 합니다(마 2:8,11,13,14,20). “브렙호스”는 갓난아이(baby)를 말하며, “파이디온”은 갓난아이를 벗어난 어린이(child)를 뜻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은 마태복음의 아기를 갓난아이와 구분하여 “young child(어린 아이)”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경배를 받은 시기는 적어도 출생하여 갓난아기를 지나 2살(만 1살) 정도는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직 아기이지만 박사들이 왕의 신분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경배하고 있습니다. 왕의 신분으로 경배를 받는다는 것은 아기 예수가 마구간이 아니고 자기의 소유의 집에서 정상 거주를 하면서 공식적인 경배를 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식적인 경배는 첫돌 또는 첫돌이 지나서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아기 예수와 그 가족들은 베들레헴에서 약 2년간, 거주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목동들이 만난 예수는 갓난아이(브렙호스, baby)이었고, 동방박사들이 만난 예수는 두 살이 된 어린이(파이디온, young chiid)었습니다.
註) 간혹 누가복음 2:39에 근거하여 아기 예수는 출산에 따른 정결의식을 마치고, 바로 나사렛으로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동방박사의 경배를 베들레헴 집에서 받았으므로, 그때는 정결의식 이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 2:39는 정결의식과 나사렛으로 떠난 사이에 동방박사의 경배와 애굽으로 피난간 사실이 모두 생략되어 있다. 킹제임스성경은 본문을 “정결의식을 마친 후”, “나사렛으로 갔다”라고 번역하였다. 사실에 부합한 번역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면 요셉이 베들레헴에 온 이유는 호적과 조세등록을 하고, 기업을 찾아서 영구 거주를 할 목적으로 이주를 했다는 사실을 대변해 줍니다. 그리고 요셉은 베들레헴에 온 목적대로 무르기를 행한 자기 소유의 집과 땅에 거주하며 모든 생활 조건을 갖추고 난 후 아기 예수가 왕의 신분으로 경배를 받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의 영구 거주는 요셉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에 왕이 났다는 소문을 들은 헤롯이 유아 학살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꿈에 헤롯을 피하라는 전달을 받고 급히 애굽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죽은 후에 요셉이 이스라엘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헤롯의 아들 아켈레오의 보복을 염려하여 베들레헴으로는 가지 못하고 다시 나사렛으로 가서 살았습니다(마 2:19~23).
이와 같이 요셉은 천신만고 끝에 토지를 무르고, 아들과 함께 조상의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에 살기를 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사연과 기업 무르기라는 경제적 여건을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고,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기업을 무르는 희년을 선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