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 : UN 인권위원의 새로운 인권 이야기
서창록 지음, 2022
“한국은 사명이 있다”
나의 인권활동에 큰 획을 그은 해를 꼽으라면 2006년이다. 2006년은 휴먼아시아의 전신인 아시아인권센터가 설립된 해다.
2005년 1월, 베이징 대학의 언론학과 교수였던 자오궈뱌오가 쓴 <한겨레> 신문의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강렬했다. “한국과 일본은 사명이 있다.” 그는 아시아 45개국 가운데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 두 국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사명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칼럼이었다. 당시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NGO와 함께 활동하면서 인권의식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글은 그런 나의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다. “인권의 재난을 만들어내는 나라는 사악한 나라다. 다른 나라 인민의 인권 재난에 관심을 돌리지 않는 나라는 영혼이 없는 나라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고故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도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 책임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셨다. 이에 뜻을 같이 이들이 모여 다음 해인 2006년 아시아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아시아인권센터의 목표는 전 세계에서 아시아 지역에만 없는 지역 차원의 인권보호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유엔을 선두로 하는 국제인권보호체제는 지역별로 비슷한 형태로 갖춰져 있다.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aman Rights, 아프리카인권재판소Court of Human Rights in Africa, 미주인권재판소Inter-American Court of Human Rights가 대표적인 지역 인권재판소다. 이러한 체제는 아시아에만 없다.
왜 그럴까?
아시아는 상당히 방대하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 민족이 섞여 있고 경제적, 정치적 발전 또한 격차가 크다. 주요 종교만 해도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세계 종교의 대부분이 섞여 있다. 동시에 인권문제가 심각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시아 지역 상황은 인권보호체제 수립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아시아 지역의 인권보호체제 수립이 긴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에 지역재판소를 비롯해 지역 인권보호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서아시아에 해당하는 아랍국가들은 아랍국가연맹회의Council of the League of Arab States에서 2004년에 아랍인권헌장Arab Charter on Human Rights, ACHR을 채택한 바 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아세안ASEAN에서 2007년 아세안 헌장을 채택하고 이를 기초로 2009년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인권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ASEAN Inter-governmental Commission on Human Rights, AICHR를 출범했다. 그러나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인권협약 제정과 실행 및 감독 기구로서 지역인권법원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동북아에 속하는 국가는 한국과 북한, 중국과 일본으로 수는 적지만 인구와 영토의 크기로는 다른 지역을 능가한다.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이 감당하는 유엔 분담금 규모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아시아 지역의 인권보호체제 수립과 같은 논의를 주도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 네 나라만이라도 모여 인권을 주제로 대화하고 접점에 이르는 것은 안 되는가?
중국과 북한은 오랫동안 인권은 서구가 발전시킨 개념이라며, 자기들은 서구 중심이 아닌 독자적인 인권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은 서구화와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로서 서구에서 온 인권 개념을 받아들이고는 있으나, 과거사 문제로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시아 인권보호체제 수립을 주도할 수는 없을까? 실제로 한국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아시아 인권법원 설립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논의의 진척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보면 어떨까?
얼핏 허무맹랑한 꿈처럼 들린다. 하지만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는 아시아인들을 떠올리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영혼 없는 국민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사실 다른 지역에도 인권보호체제가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평가받는 유럽을 보자. 오늘날 유럽인권재판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유럽인권보호체제는 세밀한 제도 수립으로 원활하게 운영되며 인권보호와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서로 다른 정치제도를 감안하면 이념과 사상을 통합해 인권기구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국 성공했다.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지역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쉽게 만들어진 인권보호체제는 없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해보자고 결의했다. 인권을 두고 정부들이 대화를 시작하기 어렵다면 한국의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보기로 했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규범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인권에 대한 인식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아시아 국가들의 시민사회와 연대, 협력하여 다양한 이슈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궁극적으로 국가들의 협력도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단체를 설립하고 활동하려면 당장 돈이 필요했다. 큰 꿈을 꾸었지만, 이에 공감하고 선뜻 기부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열심히 설명하면 잠시 공감은 얻었지만, 뜬구름 잡는 대화로 끝나기 일쑤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의 어떤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는 건지 체계적인 계획도 부족했다. 막연히 아시아 지역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며 동참해달라고 외치는 것은 효과가 없었다. 정부도 정치인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반인 대상으로 몇 차례 인권교육을 시도했고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협력하여 조금씩 활동을 넓혀보았다. 덕분에 우리 활동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정확히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아는 사람은 여전히 적었다. 또 북한인권단체와 함께 활동한다는 이유로 진보 성향의 인권단체들과 협력도 쉽지 않았다. 북한인권단체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기 마련이라 보수적 성향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덩달아 우리 단체의 중립성도 의심받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Economic and Social Council, UNECOSOC,의 협의체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다. 당시 자금이 부족하여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실과 팩스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 단체의 의도를 의심하는 근거가 될 줄은 몰랐다.
어려움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 계속 노력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 믿었다. 돌이켜보면 인권운동이란 처음에는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는 것 같다. 노예해방에 일생을 바쳤던 이들이나 성평등을 위해 싸워온 인권운동가들 모두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을 바꿔놓지 않았던가. 시간이 걸려도 초심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시아 지역의 인권운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상은 다양하나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독재국가나 공산국가가 자국민에게 가하는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으로, 대개 민주화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이다. 전자는 독재국가를 비판하고 정부와 각을 세워야 하는 일이고, 후자는 정부와 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과거의 인권운동은 전자 쪽에 기울었다. 여러 인권의 종류 중 자유권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서구와 협력하여 독재국가를 압박하는 것이 인권활동의 주된 임무였다. 후자는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기구의 업무로 여겨졌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만 이념과 정책 차이로 양측의 협력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 반목하는 때도 많았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진정한 인권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통합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1년 내가 아시아인권센터 대표를 맡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체명 변경이었다. ‘아시아인권센터’에서 ‘휴먼아시아’로 바꾸었다. ‘인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정서가 그렇다. 아시아의 가치를 담지 못하는 서구의 사상이라 보는 까닭에서다. 그래서 인권humna rights에서 권리rights를 빼고 인간 존엄에 초점을 두고자 사람을 뜻하는 ‘humna’을 남겨 아시아와 접목했다. 그렇게 휴먼아시아가 탄생했다.
더불어 인도지원사업과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차츰 늘려나갔다. 종교적,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인간 중심 단체로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 다양한 행위자와 협력하며 미래 지역인권보호체제 설립을 목표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권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인권의 개념을 바탕으로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선결되어야 건강한 인권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 인권교육 대상을 일반인에서 중고등학생 및 대학(원)생까지 확대하고, 난민을 직접 돕는 활동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교육을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으로 넓혀갔고, 아시아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의 유엔인권이사회도 개발해 여러 차례 개최했다. 최근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학생들과 각국 활동가들의 연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개발협력사업 또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단순히 물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을 통해 인권감수성을 기르는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베트남 의약품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네팔 지진 구호물품 조달사업, 라오스 아동교육 지원사업, 인도 지역 난민 아동을 위한 교육사업, 필리핀의 소수민족 디지털 교육사업 등을 수행했고, 현재는 요르단 난민과 현지 취약계층 아동의 디지털 교육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한 편의 칼럼에 영감을 얻어 국경을 넘어 인권활동을 펼친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금세 성과가 나는 일은 없다. 인권은 속도는 더디지만 쉼 없이 진보하고 진화한다.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고자 매번 다짐할 뿐이다.(10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