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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 4
씬 91. 대포리/갯벌/오후.
드러나는 광활한 바다.
크고 작은 섬들이 입구를 막고 있지만 부챗살 같은 호를 끼고 푸진 갯벌이 펼쳐진다.
방죽을 따라 뻘을 향해 걷는 점심과 재문.
재문의 시야에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갯벌 위로 뻘널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낙네들.
옹송그린 채 좌우로 움직이는 폼이 마치 방게 같다.
그녀들을 향해 소리치는 점심.
점심: 자 참이요. 새참들 들고 하씨요오!
점심을 발견하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과 손 인사들.
재문,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콩닥거린다.
씬 92. 바지선 위/오후.
부르스터에서 끓고 있는 잡탕죽.
아낙들이 이제 막 뻘에서 뽑은 가리맛과 쭈구미를 던져 넣는다.
아낙1: 언제 이런 조카가 있었대? 서울서 대학 다니는 갑네?
재문: 예?
아낙2: 방학이라 놀러온 거여? 군대는 다녀왔어?
아낙3: 자, 술 한 잔 받아봐.
재문: 예? 예.
아낙2: 저 여편네는 젊은 놈만 보면 사죽을 못 써, 속 창아리 없이! (술 따라주며) 내 것도 받아봐 이?
아낙1: (만지며) 어이구, 이 허벅지 봐라! 서울 지집들 백 명은 빵창나겄네!
아낙3: 에라이! 미친 년아!
아낙들: 히히히히!
수다 들으랴, 술 받아 마시랴 도무지 정신없는 재문.
점심을 보면 익숙한 일인 듯 수첩과 볼펜을 꺼내든다.
점심: 자, 곗돈들 내드라고…….
아낙1: 오늘 네 시까정 물때여요. 젊은 총각도 있는디 천천히 놀아보잔께요? 자 받어, 받어!
점심: 왜 자꾸 술을 줘 싸?
아낙1: 아, 쐬주라도 있응께 샛서방 따라 도망 안가고 붙어 살제?
아낙들: 히히히히!
시간경과.
바지선 밑의 그늘에 앉아있는 점심과 재문.
점심: 낮술 먹어 졸리제?
재문: 기분은 좋네 뭐.
점심: 뻘밭 끼고 사는 동네에선 남자들이 상전이여. 여자야 죽어 흙에 눕기 전까지는 뻘에 뒹굼서 살아야헐 팔잔께…….
재문: …….
점심: 뻘일허고 있으믄 아들놈이 새참 들고 와서 저만치서 소리치고 했다.
재문: …….
점심: 전에 니가 물어 봤제? 건달 아니냐고? 맞어, 건달 중에 상 건달이여. 읎이 사는 사람덜 아프고 씨린 맘 몰라주고 행투 고약허게 해감서 배 터지게 묵고 사는 눔덜, 고것이 다 건달이제……. 그려도, 이 뱃속으로 난 자식을 어쩔 것이냐?
재문: 큰 아들네미?
점심: (웃음) 고게 성깔은 있어갖고 동네 성들 대구빡에 구멍 내놔서 핵교도 여러번 불러 다녔어. 그려도 친구끼리 우애 좋고 의리 좋아 따르는 놈도 많았어야?
재문: …….
점심: 애비 얼굴도 한 번 제대로 못봤제, 가슴이 사방을 가둔 뻘만키로 답답했을 것이다……. 도시락에도 돌이 서걱거렸을 것잉께 지는 얼매나 뻘질하는 애미가 싫었을 것이냐? 내가 그 속을 모르는 것이 아니제.
소주 한 잔을 따라 들이키는 점심.
점심: 너 엄니는 살아 계시냐?
재문: …….
점심: 어째 대답이 없냐?
재문: 서울에 있어요.
점심: 잘해드려라. 철되면 얼굴 뵈드리고, 때 되면 엄니 나 여기 살아 있소, 허고 전화 한 통 넣어주는 게 그게 효도다. 큰놈이 건달 때려 치고 효도하믄서 살겠단다. 썩을 놈, 누가 저한테 돈을 벌어 오랬냐, 집을 사놓으라 해쌌냐? 부모 앞세우지 않고 살아있음 그게 다 효도제.
재문: …….
점심: 알아 듣냐?
재문: 뭘요?
점심: 천하에 없는 호로자슥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 뜨는 놈이라고……. 효도하라고.
재문: …….
점심: 왜 대답을 안허냐?
재문: 난 아줌마 아들이랑 달라. 한 달에 한 번씩 꼬박 꼬박 용돈에 에버랜드도 데려가. 아줌마 에버랜드도 모르지?
점심: (웃는다) 그러냐?
재문: 왜요? 못 믿어?
점심: 믿는다. 믿어. (술을 따른다) 그럼 우리 건배허고 약속하자.
재문: 뭘 약속해?
점심: 효도 한다고.
재문: …….
점심: 부모 가슴에 못 박는 짓일랑 허지 않는다고…….
재문: …….
재문, 자신을 보는 점심의 눈이 촉촉이 젖는 걸 본다.
어색한 듯 얼른 잔을 부딪혀 마시고 뻘 한가운데로 걷기 시작하는 재문.
점심: 어디 가냐?
재문: 오줌 마려!
점심: 개불보다 쬐그망게 뭐 감출 게 있다고?
재문: 아줌마가 봤어?
서쪽 하늘로 번지는 붉은 기운.
일하는 아낙들의 실루엣이 평화롭게 보인다.
씬 93. 전야제/밤.
구령대를 개조한 간이 무대.
이장, 마이크에 대고.
이장: 에. 다들 아시겄지만 내일은 우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체육대회입니다. 그러나 예부터 전쟁을 나서도 먹고 나서는 것이고, 애새끼를 만들어도 먹고 만드는 것이고, 똥 싸도 먹고 싸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물며 허벌나게 뛰당겨야 되는 내일을 위해서, 우리는 잘 먹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 태어난 것이라 이 말입니다……. 이, 길어? 그려 짧게 할게……. 아따, 저 싸가지 없는 자슥은 누구 아들네미여? (웃음소리) 딴 것이 아니고, 저쪽에 보쌈허고 전하고 탁주를 받아놨응께 많이덜 자시고 즐겁게 노시다 갑시다. 그리고 그 전에 먼길 오신 귀한 손님 있어, 누구여? 우리 군수님이시다 이 말이시, 자 박수!
군수가 일어나 인사하면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
이장: 끝으로 후원금 발표가 있겄습니다. 올해도 제일 짠돌이는 농약상 박씨가 차지했습니다! (우 야유가 터지면) 자자……. 그러시지 마시고 다코레이트, 마이다스 많이 팔아줘서 우리 박씨를 부자 만들어줍시다! (웃음소리) 글고 젤루 많이 낸 것은……. 이게 누구여? 국밥집 아들 민 대식 선상입니다!
와, 함성 소리.
쑥스러운 듯 일어나 인사하는 대식.
씬 94. 체육사/옥상/밤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재문,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면 치국이 서 있다.
재문: 왜?
치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재문: 뭔데?
치국: 후배로서가 아니라 동생으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인디요…….
재문: …….
치국: 이번 작업……. 그만 두시면 안되겠습니까?
재문: …….
치국: 형님이 민재형님 땜에 그러는 건 압니다, 알지만서도……. 일의 발단은 민재 형님께서 영산포 식구 잘못 작업한데서부터 시작된 것이고요, 벌써 영산포 애들허고도 애저녁에 정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고것을 다시 벌집 쑤셔 논 거 만키로 맹글어놓는 것은, 식구들헌테도 못 할 짓이라 생각되서요.
재문: …….
치국: 그리고……. 돌아가신 형님께서도…….
재문: …….
치국: 죄송합니다.
재문: 일루 와봐.
치국: 예, 형님.
다가서는 치국.
노려보던 재문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고인다.
재문: 나는……. 성격이 졸라 이상해요.
치국: ?
재문: 화가 나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냐?
실실 웃는 재문.
치국의 뺨을 잡으며 한 발짝 다가선다.
재문: 문치국이.
치국: 예 형님.
재문: 너 민재형 아냐?
치국: …….
재문: 너 나 알어?
치국: …….
재문: 입 꽉 다물어 새끼야.
퍽! 치국의 안면을 강타하는 주먹.
얼굴이 돌아오기 무섭게 또다시 턱에 꽂히는 펀치!
재문: 양아치 새끼가! (퍽!) 니가 민재형을 알어? (퍽!) 드러운 주둥아리로 어디 형님 이름을 함부로 놀려 새끼야!
퍽, 퍽!
휘청하는데, 그 가슴을 내지르는 발차기!
길게 피침을 토하며 쓰러지는 치국.
재문: 일어나 새끼야!
비틀거리면서도 재문 앞에 서는 치국.
재문: 작업을 하고 안하고는 내가 결정해 새끼야! 너 뭐하는 새끼야? 선배가 시키면 하는 거지 어따 대고 감놔라, 배놔라 지랄이야, 지랄이?
치국: …….
재문: 내가 왜 그만 둬? 어? 내가 왜 그만 둬야 되는데? 대답해 봐……. 한 가지라도 맞으면 내가 그만 둘게.
치국: …….
재문: 대답해 보라구 새끼야!
치국: …….
재문: …….
치국: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재문: 뭐가? 뭐가 안 돼 새끼야?
눈물이 핑 도는 치국. 입술을 깨물며.
치국: 아무리 건달이어도요……. 저그 엄니랑 같이 있는데요. 인두껍을 쓴 것도 아니고요…….
재문: …….
치국: 저그 엄니 보는데요. 그 아들놈 배때지에 칼 꽂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재문: …….
치국: 형님도 건달 이전에 사람 아닙니까?
치국의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재문의 입술이 떨린다.
재문: (갈라진 목소리) 너희 엄마 병원에 있다며?
치국: …….
재문: 난 너희 엄마도 제낄 수 있어.
치국: !
창백하게 굳는 얼굴.
재문: 너 건달이 뭔지 알어? 시키면 하는 게 건달이야.
치국: …….
재문: 선배가 시키면 무조건 하는 게 건달이라구……. 난 삼년 동안 내 빤스 빨아 준 새끼도 작업한 적 있어, 알어?
치국: …….
정적이 흐르는데, 갑자기 운동장에서 터져나오는 뽕짝 음악.
아싸 아싸 소리 속에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다시 입을 여는 치국의 얼굴엔 눈물이 지워지고 없다.
치국: 알겄습니다.
재문: 뭘 알아, 새끼야?
치국: 건달이 뭔지요……. 이제 알겄습니다.
재문: …….
치국: 지도 편달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계단을 내려가는 치국.
재문: …….
씬 95. 인서트/밤.
초대가수의 노래에 맞춰 노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운동장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동네 청년들.
씬 96. 다방/밤.
펑펑!
불꽃이 밤하늘에 수놓아진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미령.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현란한 잔상을 남겨놓는 불꽃들.
미령: 예쁘다……. 근데 쪼금 슬프다…….
씬 97. 체육사/옥상/ 밤.
불꽃을 바라보는 재문.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가장 큰 불꽃이 하늘에 터지면, 그 소리는 예포 소리로 전환되며.
씬 98. TV화면/오전.
광복절 행사.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하늘에 예포를 쏘아올리고.
다큐로 보여지는 광복의 기쁨과 사람들의 환성들.
화면에서 빠지면, TV가 켜진 점심의 가게 안.
개밥을 들고 뒷마당으로 나서는 점심.
씬 99. 뒷마당/오전.
꼬리치며 덤벼드는 잡종 개.
그 앞에 밥을 내려놓는 점심.
점심: 많이 묵어. 오늘이 마지막인게…….
너른 들판.
자막이 떠오른다.
“8월 15일/맑음/기온 33.6도/강수량 0.0”
씬 100. 읍내거리/오전.
아침부터 내리쬐는 강한 햇살.
마을 초입에 걸려 나풀거리는 “제23회 읍면체육대회” 플랭카드.
씬 101. 체육사2층/오전.
클로즈업된 사진.
민재와 재문이 소년원에서 함께 찍은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재문: …….
방을 둘러보는 재문.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들려오는 함성소리.
씬 102. 벌교초등학교/오전.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휘날리는 만국기.
데구르, 카메라를 향해 굴러오는 배구공.
동네 아낙이 뻥 지른다.
하늘 높이 솟는 공!
그것을 신호로 시작되는 체육대회.
칠판엔 기수별로 대진표가 짜였고, 아웃이다 아니다로 소리 지르는 사람들.
여자들의 웃음과 아빠의 선글라스를 쓴 채 하드를 먹는 어린아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몇몇이 경운기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오토바이 하나를 훔쳐 교문 밖으로 도망친다.
재문이 그들 사이를 걷는다.
천막 안에서 뭔가를 끄적이는 슈퍼노인.
다가가는 재문.
재문: 무슨 운동회구나……. 왜 이렇게 시끄럽나 했네? 뭐하세요?
노인: 기록해.
재문: 심판이세요?
노인: 소주하고 맥주 나가는 거 적는다고……. 수박 먹을랑가?
아이스박스에서 수박 한 덩이를 건네는 노인.
노인: 자네도 뛰어, 사람 부족하다고 난리던디?
재문: 에이, 난 여기 사람도 아닌데 뭐…….
노인: 상금도 있어.
재문: 상금이 뭔데?
노인: 김치냉장고도 있고 벼멸구제도 있고…….
피식 웃는 재문.
이때, 노래방 기기에서 울려 퍼지는 윤도현의 “오 필승 코리아”.
보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몸을 푸는 건장한 사내들.
재문, 그들 옆에서 웃고 있는 대식을 발견한다.
재문: …….
노인: 축구도 있고, 계주도 있고 줄다리기만 빼고 한 번 해 봐?
재문: 줄다리기는 왜?
노인: 모르는 놈이나 달겨 드는 겨. 예선부터 본선까정 총 네 번 당겨야 되는디 고게 완전 중노동이여. 멋모르고 덤볐다가 삼일을 누워있어어야, 내가? 그 뭐다냐, 왈츠……. 왈츠 같은 거란 말이시.
재문: (낄낄거린다) 왈츠요?
노인: 그게 그렇다며 한 번 뛰어들믄 끝날 때까정 못 나온다매?
재문: 어이구, 유식하시네 우리 아저씨?
하는데, 건너편의 대식이 서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움찔, 하는 재문. 얼른 고개 돌린다.
재문: 난 뭐……. 계주나 하지 뭐.
다시 대식을 보면 누군가와 얘기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씬 103. 다방/낮.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는 미령.
마담: (다가와) 누구 줄려고 그렇게 열심히 싸냐?
미령: 체육대회잖아? 구경 가야지?
마담: 미친 년. 동네잔치에 우리 같은 뜨네기들 좋아라 할 거 같냐?
미령: 무슨 상관이래?
김밥 하나를 쏙 집어넣고 우물거린다.
솜씨에 감탄하듯 탄성을 내뱉는.
씬 104. 벌교초등학교/ 낮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축구시합.
유니폼 차림의 서울팀과 각양각색 옷차림의 벌교팀.
마을 청년들은 꾸준히 연습해왔던 듯 드리블이나 패스가 수준급이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서울팀.
대식이 라인 밖에서 소리지른다.
윽박에도 불구, 서울팀 수비가 공을 뺏기면 요리조리 몰고 간 벌교팀의 스트라이커, 힘껏 공을 내지르자 골인이 된다.
와아.
함성소리.
벌교팀 옆에 ‘1’이라고 쓰여진다.
대식, 벌건 얼굴로.
대식: 웃통 벗어 새끼들아!
유니폼을 벗어제끼는 서울팀.
몸을 장식한 다양한 문신들이 드러나면, 주민들의 “저것들 또 시작이여” “느그들 그러는 거 어무니도 아냐?” 소리가 터져 나온다.
다시 전개되는 경기.
벌교팀의 선수들.
살벌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문신투성이에 압도된 듯 위축된 플레이를 펼친다.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마을 주민들.
그들 사이를 거닐던 재문, 벌교팀의 골대를 지키고 선 상근을 본다.
골대 옆으로 다가온 재문.
재문: 치국이 못 봤냐?
상근: 저가 묻고 싶은 말인디요? 아침부터 안보여 쌌던디?
재문: …….
마이크를 움켜쥔 마을 이장.
해설자 같은 목소리.
이장: 벌교 선수 몰고 나가는 순간! 이, 잉어? 잉어 슬라이딩! 공 뺏깁니다! 다시 호랭이한테 패스 했다. 좌측 빈 공간을 달리는 호랭이, 골포스트로 크로스! 헤딩 슛! 아, 벗어납니다. 네, 저 십이지용 선수 조심해야 겠네요……. (옆사람에게) 근데 저쪽 쟤는 뭐여? 요새 애덜 문신은 봐도 모르겄어…….
씬 105. 교문 앞/낮.
달려와 멈추는 미령의 스쿠터.
예쁘게 보자기에 싼 김밥을 들고 운동장을 향한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재문을 찾는 미령.
씬 106. 운동장/낮.
칠판에 적혀진 “서울팀:1 벌교팀:3” 글씨.
천막 아래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서울팀.
대식: 박아, 새끼들아!
우르르 흙바닥에 원산 폭격하는 건달들.
지나던 사람들이 낄낄거린다.
구령대 앞에 선 이장.
이장: 곧이어 고장마을, 적령마을, 벌교 이렇게 계주가 있겄습니다. 자 선수들 앞으로!
운동장 라인에 정렬하는 선수들.
남자와 여자, 청년과 노인이 혼성을 이룬다.
노인: 한 사람이 반 바퀴씩 운동장 두 바퀴여. 자네는 제일 끝에 달리믄 되는 겨.
재문: 계주라며 바통은 어딨어요?
노인: 신고 있잖여?
재문: ?
장화를 신은 채 라인업한 주민들.
탕!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달려 나간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응원소리.
미령이 선수들 틈에서 재문을 발견한다.
‘오빠!’
하고 불러보지만 들릴 리 없다.
오히려 미령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
입을 비죽 내밀며 경기를 지켜보는 미령.
1번 주자, 반 바퀴를 돌고 장화를 벗어 던지자 다시 신고 달리는 2번 주자들.
와와.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에 괜스레 긴장되는 재문.
그러다 저만치서 보고 있는 대식과 눈이 마주친다.
대식: …….
옆 사람에게 말을 걸며 애써 친한 척 하는 재문.
2번 주자의 장화를 신은 3번 주자. 큰 몸으로 뒤뚱거리는 아낙들이다.
라인업한 재문, 늦게 달려오는 아낙을 보며 애가 타고 상대편은 벌써 장화를 교체한다.
자기도 모르게 빨리! 빨리!를 외치는 재문.
겨우 달려온 아낙이 장화를 벗다가 넘어지면, 재문이 달려들어 억지로 벗긴다.
아낙: 아, 아퍼! 이 사람아!
낄낄거리는 사람들.
재문, 장화를 신고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일등은 이미 저만치 앞서 간 상태.
재문, 속력을 더하기 시작하고 재문이 점점 간격을 좁혀가자 그 빠른 뜀박질 실력에 감탄하는 사람들과 슈퍼노인.
미령: 오빠, 달려달려!
결승점 가까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선두와 재문.
불과 몇 미터 앞두고 겨우 앞선 재문이 일등으로 골인한다!
와아!재문에게 달려와 부둥켜안는 마을 사람들.
달려온 미령, 폴짝 폴짝 뛰며 재문을 부르는데 뒤에서 엉덩이를 만지는 중년남.
중년남: 어쩐 일이냐? 여까지 배달온 겨?
미령: (싸늘한) 하지마……. 씨발.
중년남: 나 언제 줄겨? 안 줄겨?
달라붙는 남자를 피해 재문으로부터 멀어지는 미령.
재문을 둘러싼 사람들 틈에서 “근데 누구여, 누구여?”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쁜 숨을 쉬면서도 누군가를 찾는 재문의 눈빛.
저만치서 재문을 바라보던 대식,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본부석으로 향한다.
대식을 쫓는 재문의 시선.
씬 107. 교사 뒷 편/낮.
장화를 신은 채 뒤뜰에 들어서는 재문.
대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재문: …….
방송으로 이제 곧 줄다리기를 시작한다는 이장의 목소리.
씬 108. 복도/교실/낮.
복도를 걷는 재문.
텅 빈 교실들을 훑다가 문이 열려진 교실 앞에 선다.
살펴보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다.
대식: (소리) 누구 찾으시나 봐요?
재문: !
뒤에서 웃고 있는 대식.
재문: 화, 화장실 좀 찾다가요……. 이쪽이 아니구나.
가려는데.
대식: 달리기 잘 하시데요?
재문: 예? 뭐 좀…….
대식: 이 동네분 아니시죠? 가게 알아보러 왔다고 누가 그러던데?
재문: 예…….
대식: 근데 이상하게 낯이 익네……. 가게는 뭘 하시게?
재문: 체육사요.
대식: 아, 체육사……. (교실로 들어서며) 제가 서울서 사업하다가 이번에 아주 내려 올려구요. 고향 후배들한테 뭘 좀 베풀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네. 어때요? 이 정도 학교에 공이니 골대니 새로 싹 할라믄 얼마나 들라나?
재문: 그게……. 주먹구구로 하면 안되거든요. 일단 견적을 뽑고…….
대식: 들어와요. 여기 시원해요.
재문: …….
교실에 들어서는 재문.
대식, 손가락으로 책상을 통통거리며.
대식: 서울에 계시나 봐요?
재문: 예.
대식: (돌아보며) 차 넘버는 전남이던데?
재문: !
대식: (웃는다)
잠시 바라보는 두 사람.
재문: 그건 아는 동생 찹니다.
대식: 그래요?
재문: 어떻게 차 넘버까지 아시네?
대식: 동네가 좁잖아요……. 제가 건달 일을 좀 했거든요. 딱히 남한테 원한 산 건 없는데 이상하게 여기저기서 노리는 새끼들이 많더라구…….
재문: …….
대식: 며칠 전에도 우리 애들이 누굴 봤다는데, 그게 형씨랑 외모가 비슷하다고 하네? 알죠? 사거리에 있는 국밥집?
재문: !
대식: 어이구, 뭐 이런 게 여깄어?
책상서랍에서 꺼내는 물건 사시미 칼이다!
재문: !
대식: 요새 애들 참 무서워요? 그죠?
콰직, 책상에 칼을 박아 넣는 대식.
재문을 노려보며 실실 웃는다.
침을 꿀꺽 삼키는 재문.
징 소리에 맞춰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재문: 아드님은 원양어선 탄다던데 그게 아닌가 보네?
대식: !
재문: 제가 거기 아줌마 잘 알거든요. 같이 장도 보러 갔는데…….
대식: 장이라뇨?
재문: 거 아드님 드린다고 책이다 옷이다 잔뜩 사시더라구. 순천까지 태워다 드렸었는데…….
대식: …….
재문: 그날도 밥이나 먹을까 하고 갔더니 손님도 계시고, 밖에 무섭게 생긴 사람들도 있고 해서…….
대식: (찬찬히 노려보는)
재문: 배 타는 거 아니었어요?
대식: …….
대식, 책상에 꽂았던 칼을 빼내어 도로 집어넣는다.
대식: 미안합니다. 흉한 모습 보였네.
재문: …….
창가에 멈춰서는 대식.
뭔가 지금까지의 긴장을 풀어버린 얼굴이다.
대식: 말씀하신 건 제 동생입니다.
재문: 동생이요?
대식: 예……. 사고로 실종된 지 반 년이 넘었어요. 그런데도 어머닌 미련을 못 버리시네요.
재문: 아…….
대식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재문.
허리에 손을 가져가면 불룩하게 솟은 손잡이.
긴장으로 떨리는 손.
대식: 우체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꾸 반송되니까 찾아가라구요. 창고에 쌓인 박스를 딱 보는데, 유품 같기도 하고 맘이 안좋더라구요…….
재문, 눈빛이 번쩍인다!
칼을 잡고 뽑는 순간 책상에 팔이 걸리며 놓쳐 버린다!
쨍그렁!
대리석 바닥에 던져지는 사시미.
재문: !
대식: ?
대식의 시선에 잡히는 바닥에 던져진 칼.
그리고 책상에 넣어둔 또 하나의 칼.
대식: …….
재문: …….
줄다리기하는 사람들이 잔뜩 구겨진 얼굴 클로즈업.
파란 리본은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왔다갔다.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재문: 아아악!
버려진 칼을 향해 점프한다.
대식도 책상을 향해 점프한다.
거의 동시에 칼을 움켜쥔 두 사람.
재문, 파고들며 대식의 복부에 칼을 꽂는다.
대식: !
밀리면서도 재문의 등을 사시미로 찍는 대식!
쾅, 두 사람이 교실 뒷벽에 부딪힌다.
다시 한 번 배를 향해 칼을 날리는 재문.
벽에 붙은 아이들의 그림 위로 튀는 피.
등에 꽂았던 칼을 빼내려 안간힘 쓰는 대식.
잡은 칼에 힘을 더하며 끌어올리자 비명을 지르는 재문.
대식의 뺨을 입으로 물어뜯는다.
거친 숨을 뱉으며 떨어지는 두 사람.
재문: 내가, 내가 빨랐지 씨발놈아!
희색이 완연한 재문의 표정.
숨을 헐떡거리는 대식.
대식: 니가……. 재문이냐?
재문: !
대식: 그때……. 민재가 부른 게 너지?
재문: !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오르는 민재.
연신 “재문아! 재문아!” 소리친다.
순간, 그의 가슴에 칼을 꽂는 대식.
이제 막 개찰구를 통과하던 재문,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본다.
달려가는 재문.
이미 계단 밑에서 죽어가는 민재를 본다.
충격으로 멍한데, 그 앞으로 다가오는 평상복 차림의 두 명.
그 중 살벌한 눈빛의 대식과 시선이 마주친다.
헉,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떨구며 물러나는 재문.
멀어지는 대식.
재문은 죽어있는 민재를 보다가 서서히 뒷걸음질 한다.
부리나케 도망친다.
재문: 나……. 너 처음 봐.
대식: (키득거리며) 도망친 게……. 그렇게 쪽팔렸냐?
재문: 조까, 이 개새끼야!
달려드는 재문.
눈을 감는 대식.
낮은 숨소리.
대식 눈 뜨면 칼을 든 채 떨고 있는 재문.
대식: …….
쨍그렁!
칼을 내던지는 재문.
다리를 절룩이며 교실을 나선다.
대식: …….
씬 109. 복도/낮.
재문이 복도를 달린다.
환한 햇살로 눈부신 복도의 끝.
웃는데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재문: 행복한 줄 알어……. 씨발놈아.
재문, 이제 복도의 끝에 거의 다 왔다.
씬 110. 소각장/낮.
출입문을 잡는 손!
밖으로 나서는 순간.
퍽!
가슴에 와 닿는 서늘한 느낌.
재문: ?
재문의 시점.
화이트 아웃된 하늘이 천천히 고개 숙인다.
보면, 칼을 움켜쥔 채 떨고 있는 치국.
얼굴엔 재문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재문: !
치국, 다시 한 번 재문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재문: 아, 아파!
치국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비틀거리는 재문.
쿠당탕, 땅바닥에 구르는 두 사람.
재문, 헐떡거리며.
재문: 누가 시켰냐?
치국: …….
재문: 원기냐? 범진이냐?
치국: 아무도……. 안 시켰소.
선글라스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재문: 쪼크냐?
치국: 형님 스스로 시킨 것이제.
재문: …….
치국: 오다가 떨어졌소. 대식이 몸에 칼 들어가는 순간, 형님도 제끼라고요…….
재문: !
울먹거리며 고개 숙이는 치국.
치국: 긍께……. 내가 그만 두라 안혔소!
재문: …….
치국: 건달은 시키믄 하는 것잉께 내는 하나도 안 미안허요!
재문: …….
재문, 피식 웃는다.
재문: 넌 새끼야……. 선글라스가 안 어울려 새끼야.
치국: …….
재문: 가라……. 가라구, 씨발놈아!
치국: …….
걸음을 띠는 치국.
돌아서서 달리는 치국의 모습이 꽃에 가려져 사라진다.
울컥, 넘치는 피를 막으며 벽에 기대는 재문.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럴수록 자꾸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재문의 얼굴.
씬 111. 운동장/오후.
김밥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앉아있는 미령.
아무리 둘러봐도 재문은 보이지 않는다.
부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 앉은 그녀의 모습에서.
씬 112. 소화다리/오후.
여름 한낮을 절룩이며 걷는 재문.
발엔 아직 장화를 신었고, 위엔 소각장에서 타다 남은 잠바를 걸치고 있다.
그런 재문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다리 끝을 지날 즈음, 난간에 묶여진 개 한 마리를 본다.
점심의 개다.
다리 아래엔 끓고 있는 솥단지 옆에서 야채를 다듬는 여인들.
재문, 개에게 다가간다.
원경으로 수다를 떨던 여인들이 화들짝 놀라 달려가는 다리 위.
사라지고 없는 개.
씬 113. ‘점심 따로’/오후.
딸랑, 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재문.
가게엔 메리야스 차림의 늙은 노가다 하나가 있을 뿐이다.
점심, 재문의 장화를 보고.
점심: 논 매다왔냐?
재문: 계주했다 씨…….
점심: 몇 등 했는데?
재문: 당연히 일등이지!
점심: (실실 웃으며) 잘했네.
점심이 주방으로 향하면.
재문: 배고파!
점심: 번갯불에 콩 볶냐? 점심때가 언젠데 이제 와서 지랄이여?
재문: 빨랑 먹고 갈려고 그러지 씨…….
재문을 보던 노가다가 점심에게 소리친다.
노가다: 아들 네미 온다더니 여근가 보네?
잠깐 얼굴이 굳는 점심.
재문을 보다가 이내 웃음을 짓는다.
점심: 아니, 걔는 첫 째고 저 놈은 우리 둘째!
노가다: 이이, 둘째여?
점심, 재문을 향해 웃는다.
재문도 웃어보지만, 웃는 얼굴이 이상하다.
코를 벌름벌름 거리며 빠개질 듯 앙다문 입술.
재문, 겨우 입을 열어 점심을 부른다.
재문: 아줌마!
점심: ?
재문: (목이 메인다) 미안해.
점심: 뭐가?
재문: 그냥.
점심: 미친 놈.
재문: 아줌마.
점심: 왜 또?
재문: 진짜 그 남방이 나랑 어울려?
점심: (뭔 소린가 하다가 웃음) 그려……. 얼굴 검다고 어둔 것만 입으면 성깔도 어두워지는 것이여. 너처럼 인상 더러운 놈도 가끔 그렇게 어지러운 걸 입어줘야 화색이 돌제. 내 보기엔 잘 어울리더라…….
피식, 웃는 재문.
재문: 순……. 뻥쟁이.
실실 웃음을 흘리는 재문.
눈물이 핑 돈다.
콧물이 찌룩 나온다.
재문,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고개 숙이는데, 두두두두 흔들리는 테이블!
수저통에서 울리는 소리!
재문: !
진동으로 현기증을 느끼는 재문.
돌아보면, 노가다는 무슨 일 있냐는 듯 밥만 먹고 있을 뿐이다.
재문: 아저씨.
노가다: ?
재문: 방금 트럭 지나갔어요?
노가다: (시큰둥) 뭔 소리래?
재문: …….
노가다: 어디 아픈가 보네? 얼굴색이 안 좋아.
재문: 잠을……. 못자서 그래요.
고개 숙이는 재문. 이마를 박고 눈을 감는다.
테이블 밑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피.
씬 114. 벌판/오후.
부아앙! 논길을 질주하는 자동차.
사거리에 다다를 즈음, 불쑥 튀어나오는 잡종 개 한 마리!
핸들을 꺾으면, 차는 길을 벗어나 전봇대를 받은 뒤 논두렁에 내다꽂힌다.
원경으로 치이이, 연기를 뿜어내는 다이네스티.
와락 문이 열리고 피칠갑을 한 운전자가 뛰쳐 나와 벌판을 향해 소리친다.
“내가 뭐? 내가 뭐?”
메아리가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유유히 사라지는 잡종 개.
씬 115. ‘점심 따로’/오후.
테이블에 머리 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 재문.
쟁반을 들고 다가오는 점심.
점심: 자냐?
대답 없는 재문.
점심, 국밥을 놓다가 축축한 바닥을 느낀다.
점심: ?
바닥을 보면 흥건하게 번진 붉은 피.
점심: …….
점심, 재문을 본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눈을 뜬 채 죽어있는 재문.
점심: …….
움직이지 않는 점심.
가게 안을 돌아보면 노가다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점심, 천천히 재문의 옆자리에 앉는다.
재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점심: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지?
재문: …….
점심: 그지? 대식이가 이런 거 아니지?
재문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점심: 말해 봐라……. 아야, 일어나 봐. 응? 어여 일어나 봐라.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지?……. 이? 말해 봐……. 싸게 일어나 보라고……. 아야! 아야! (버럭) 일어나 보라고옷!
소리치는 점심.
미친 듯이 재문을 흔든다.
들썩이는 재문의 몸뚱아리.
점심: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지? 우리, 우리 아들 놈이 이런 거 아니지? (후려치며) 이눔아! 이눔아! 말해 놓고 뒤져! 언능 말해, 언능! 동네 사람들! 여기 이 놈 말하는 거 들어보소! 우리 아들놈이 그런 거 아녀,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래! 일어나 봐라! 언능 일어나서 말해 봐라!
퍽퍽, 등짝을 때리며 절규한다.
점심: 미친놈아! 이 썩을 놈아악! 너 이러는 거 아녀. 여서 이러는 아녀! 일어나……. 언능! 너, 너그 엄니 기다린다매 요로코롬 자빠져 있음 워쩔 것이여? 이러믄 안 되는 겨……. 밥 먹어야제, 이? 옳지! 얼른 일어나라……. 얼른 못 일어나? 이 못된 놈아! 에라이 못된 놈아!
재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륵 흘러내린다.
통곡하는 점심의 주름진 손이 뺨을 향한다.
재문의 눈물을 닦는다.
점심: 뭐가……. 뭐가 그렇게 서러웠냐? 뭐가 그리 서러워 울고 자빠졌냐? 미친놈아……. 이 썩을 눔아!
그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며.
씬 116. 체육사/2층- 옥상/오후.
깨끗이 정리된 방 안을 훑는 카메라.
만국기의 현란한 색의 향연을 지나 옥상으로 붐업하면, 햇빛 쏟아지는 창가를 지나 초등학교를 비추면, 아직 끝나지 않은 운동회의 환성이 들리고 깨끗이 세탁되어 빨래 줄에 걸린 꽃무늬 남방.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꽃잎이 살짝 흔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