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11)
20. 화개장터 거쳐 토지의 무대 악양 들판 휘돌다(석주관 – 하동 흥룡마을 24m)
9월 2일(토), 아침은 서늘하고 낮에는 햇살이 제법 따갑다. 아침 6시 20분에 숙소(용궁가든)에서 아침식사(제첩국)를 하고 전날 도착했던 석주관으로 이동하였다. 6시 50분에 석주관을 출발, 하동방향으로 향하였다. 이른 시간부터 19번 2차선 국도를 달리는 차량들이 많아 갓길에 일렬로 늘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4km쯤 걸으니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석주관 출발에 앞서
곧이어 유명한 화개장터, 장터 입구에 경상남도가 설치한 이순신 백의종군로 입석이 세워졌다. 이곳에서 백의종군로의 마지막 지점인 합천군 율곡까지는 136.8km, 앞으로 6일간 걸어갈 코스다.
배준태 단장의 고향은 하동, 어릴 적 친구(정경문 씨)가 장터에서 일행을 반긴다. 화개장터를 출발할 즈음 최지용 화개면장이 트럭을 타고 부리나케 좇아와 일행을 맞는다. 군으로부터 9시쯤 우리 일행이 화개장터를 지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오는 길이란다. 간단한 꽃다발과 생수도 한 박스 챙겨들고 온 호의가 고맙다.
화개장터 앞의 남도대교(섬진강을 가로 질러 하동과 광양을 잇는 다리)에서부터 2차선 도로 옆으로 데크와 산책길이 따로 마련되어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동군에 들어서자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유홍준의 글에서 인용)라고 써 붙인 글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표처럼.
섬진강 하류는 재첩이 많이 잡히는 지역, 강 속에서 이를 채취하는 여인들의 손길이 바쁘고 은어낚시에 열을 올리는 태공들도 눈에 띤다. 낚시를 물었는가, 멀리 보기에도 제법 큰 은어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데크 길 곳곳에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의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섬진강의 모래는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박경리의 토지 속에서)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0시 지나 토지의 무대 악양면에 들어선다. 30여분 더 걸으니 악양 들녘, 이곳에 토지의 주요무대인 평사리 최참판댁을 문화관광테마로 조성한 단지가 있다. 들녘 초입에 평사리가 삼한시대인 변한 때 악양의 대외 창구였다는 설명이 적혀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고을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에 살고 있다는 배준태 단장의 동생(배흥태 씨)이 일행을 반기며 인사를 나눈다.
은모래 강변의 데크 길이 아름답다
최참판댁 관광단지의 ‘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글귀를 뒷받침하듯 단지 입구의 소나무 숲이 품위 있고 그곳에서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34km의 1~3코스가 시작된다. 상점가에 있는 식당(하늘채)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들고 12시 쯤 악양 들녘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행군 길에 나섰다. 면내의 온 마을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들녘 순환코스는 면소재지까지 올라갔다 반대방행으로 돌아 나오는데 면소재지 앞 로터리에 설치된 ‘전통문화 락로국으로 만나보세요’라는 표지가 이곳이 옛 작은 나라의 터전이었음을 알려준다. 걷는 길의 봉대마을 비석에는 동이열전과 위서에도 마을의 흔적이 적혀 있다고 새긴 고을, 충무공이 백의종군길에 석주관 들러 악양에서 묵었다는 기록 따라 걷는 중이다.
악양 들녘을 돌아 대축 마을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하동방향 국도에 접어드니 오후 2시, 국도 옆 데크 길 따라 2km쯤 걸으니 오늘의 도착지인 하동읍 흥룡마을 앞이다. 이른 시간은 오후 2시 반, 24km를 걸었다.
흥룡마을회관 앞 쉼터가 운치 있다. 쉼터 곁에 특이한 나무 한 그루,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 뿌리인 보기 드문 연리목이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나오는 길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일행에게 말을 건다.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왔소? 오늘이 무슨 날이오?’ ‘이순신 백의종군길 걷고 있습니다. 오늘이 19일째예요.’ 하니 ‘이순신, 임진왜란’ 하며 알은체를 한다. 나이와 이름을 물으니 ‘99세, 황해도 평산에서 6.25 때 피란 온 이옥기’라고 또렷이 대답한다. ‘어서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를 되뇌는 할머니께 ‘네, 그렇게 되어야지요.’라며 발길을 돌렸다. 통일의 기적이여, 할머니 생전에 오라.
흥룡마을의 연리목, 다른 나무가 한 뿌리 되었는데 한 겨레 속히 하나 되라
숙소(OK무인모텔)에 여장을 풀고 쉬는 동안 배 단장의 친구가 배 즙을 한 박스나 가져와 목을 축였다. 저녁 식사는 악양면사무소 앞의 삼미식당, 배 단장의 가족(동생인 흥태, 덕승 씨와 제수인 제귀연 씨)이 마련한 자리다. 막걸리와 맥주를 곁들인 전어 구이와 회, 재첩국 등 토종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배 단장은 9남매의 맏이, 온후한 인품을 닮았는지 동생들도 순박하다. 하동 길이 아름답고 가족들 강건하네, 형제는 친밀하고 고향은 좋은 것이로다. 열심히 걷고 잘 먹었으니 내일도 좋은 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