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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며 사는 삶<헛되지 않는 삶>
2017. 4. 23.(주일낮예배) 전도서 11:1-2
강원도 홍천 앞에 남자아이가 성당 앞에 버려졌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아이는 성당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리도 12살이 될 때까지 고아원의 도움으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고아원출신이라고 왕따를 시켰고, 또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도망을 나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온 아이는 서울역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지만,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었고, 그러는 사이에 전과 3범의 청년이 되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전과 3범의 청년이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혼자 죽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모두 같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휘발유와 라이타를 들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타를 켜려는 순간 누군가가 라이타를 든 청년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청년은 또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전과 4범의 이 청년은 분노와 악이 가득해서 감옥에서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전과 4범으로 감옥에서 생활하는 이 청년이 완전히 변화되는 계기가 생겼다. 전과 4범으로 분노와 독기가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때 우연히 감옥에서 초록우산재단에서 만든 사과나무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다. 그 잡지에는 부모가 없는 고아 남자 중학생의 편지가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가 꿈인 이 중학생에게는 여동생이 2명 있었는데, 그 중에 둘째 지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릴 때 병을 앓아서 등이 굽어져 있는 불쌍한 지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예쁜 가방을 매고 싶어하는데, 누군가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내용의 기고문이었다. 이 글을 읽은 청년은 고아인 자기보다 더 힘들게 사는 그 소년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감옥에서 일하여 모아둔 돈 35만원 중에 11만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여 가방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2주 후에 청년에게 감사편지가 왔다. 그 편지는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고마운 분에게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간 지연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도 가방을 벗지 않고 저녁밥을 먹을 때도 가방을 매고 먹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지연이가 잠을 자는데, 가방을 매고 웃으면서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편지 제일 마지막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동생을 웃게 해 주신 아저씨, 내 동생을 행복하게 해 주신 아저씨,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편지를 보고 청년은 통곡 하였다.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일 때문에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청년은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사람은 출옥한 후에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70만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고시원 쪽방촌에 살면서 5명의 아이를 후원하는 일을 하였다. 얼마되지 않는 5만원, 10만원이지만 이 사람은 그 5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또 그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보험회사를 달려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아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4천만원 보험을 가입하려 하는데, 보험회사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다. 고시원 쪽방촌에서 살고,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70만원을 받는 고아는 회사규정에 가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허락해 달라고 간곡하게 사정을 한다. 그때 보험회사 지점장이 감동을 받아서 보험가입을 해주고, 또 이 청년이 돕는 아이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2011년 9월 13일 배달하기 위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논현동 사거리를 지나다가 신호를 위반한 아반떼 자동차에게 부딪쳐서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렇게 한 평생 부모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면서 힘든 사람을 돕고 살았던 이 사람의 이름이 교통사고 이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바로 철가방 김우수씨이다. 분노와 악이 가득찬 삶을 살았던 김우수씨는 누군가를 돕는 기쁨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김우수씨의 인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늘 본문인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는 허무함으로 시작한다.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이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지고, 이스라엘 역대 왕중에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솔로몬이다. 그런데 지금 그 솔로몬이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 헛되다는 것이다.
왜 솔로몬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전도서 1:3을 읽어보기 바란다.
(전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여기서 수고는 진저리나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것이 솔로몬의 인생이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건축하지 못했던 성전을 7년동안 건축하였다. 그리고 그는 14년동안 궁궐을 건축하여 크고 화려한 궁궐에서 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아로 의자를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칠한 왕좌에 앉아 백성을 다스릴 때는 엄청난 권위를 가진 왕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삶을 위하여 진저리 나는 수고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궁궐을 건축하고, 또 부와 권위를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말 수고하며 살았고, 또 그 수고에 대한 댓가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하는 말이 헛되다는 것이다. 내가 다 살아보고 누려보았는데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솔로몬의 이 고백은 우리에게 충격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 인생이 헛된 것은 어릴 때 부모님이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또 나는 세상이 알아주는 어떤 권위도 없기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솔로몬은 다 가지고 살아도 인생은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헛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 방법이 오늘 본문에 나온다. 이제 본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전 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떡은 레헴이라고 하여서 빵을 말하는 것이고, 물은 흐르는 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강물에 내가 먹는 빵을 던지라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빵은 얇은 전병이다. 그러므로 그 빵을 물에 던지면 잠깐은 떠서 물결따라 내려가겠지만, 얼마 지나면 그 빵은 물에 가라앉고 말것이다. 그런데 그 빵을 흘러가는 강물에 던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는 나눠 주라고 한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수이다. 그러므로 나누어 줄 때 모자라게 주지 말고 완전하게 주라는 것이다. 아니 여덟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을 볼 때 넉넉하여 남을만큼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말을 잘듣는 사람, 또는 형통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2절을 묵상해 보면 재앙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넉넉하게 주라는 것이다. 지금 재앙가운데 있어서 이 사람이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그러한 사람에게 넉넉하게 나누어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1-2절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보상바라지 말고 넉넉하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정말 헛되지 않은 삶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헛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는가? 제가 오래전에 읽었던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이 있다. 왕성한 식욕을 가진 줄무늬애벌레는 나뭇잎을 갊아먹다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줄무늬 애벌레는 모든 애벌레들이 올라가는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밟히고, 또 밝으면서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던 줄무늬애벌래는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는 그때에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한 노랑애벌레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노랑애벌레와 그 탑에서 내려와서 둘은 질식할 만큼 사랑하였지만, 그 행복은 잠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줄무늬애벌레는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서 정상으로 올라가고, 노랑애벌레는 밟고 밟히며 올라가는 그 일을 할 자신이 없어서 혼자 다른 길을 걸었다. 그리고 노랑애벌레는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늙은 애벌레를 만나 나비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노랑애벌레는 늙은 애벌레와 같이 거꾸로 매달렸다.
그 순간 줄무늬애벌레는 정상을 향하여 싸우며 올라갔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정상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또 다른 기둥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동영상으로 보시기 바란다. <꽃들에게 희망을 3'40">
트리나 폴리스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삶의 의미는 모든 사람을 이기고 정상에 올라가여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노랑애벌레를 따라 나뭇가지에 올라가는 줄무늬애벌레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줄무늬애벌레는 기어올라갔습니다. 또 다시. 점점 어둡고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그러는 동안 노랑나비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그러던 중 어느날 끝. 아니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인 것입니다.
줄무늬애벌레가 나비가 되어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일등이 되려고 올라갈 때가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매달려서 자기의 것을 뒤집어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을 때였다. 그때 애벌레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려면 없는 무엇을 더 가져야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힘들지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는가? 이제 다시 1-2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전 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내 빵을 흐르는 강물에 던졌는데, 여러날이 지나면 도로 찾게 될 것이다고 한다. 또 보상을 바라지 않고 힘써서 도왔는데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내가 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내 빵을 도로찾고, 또 내가 재앙가운데 있을 때 나의 도움이 되어주겠는가? 그래서 솔로몬은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저 사람이 나를 도와줄꺼야! 하는 기대로 내 빵을 강물로 흘려보내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 빵을 강물에 흘려보냅니다하고 순종하는 그 사람에게는 내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여서 그의 삶을 헛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전남 영안의 영호마을에 나환자촌 교회가 있다. 그 교회를 담임목사님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음성나환자촌에서 목회를 하는 김요석목사님이다. 그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수를 믿은 지 얼마되지 않는 양씨가 이른 아침에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하고 목사님 집으로 뛰어왔다. 그래서 양씨의 말을 들어보니 어젯밤에 양씨집의 암퇘지 5마리가 옆집 할아버지집 처마밭을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난 옆집 할아버지가 암퇘지 5마리를 잡아 놓고 처마밭을 망친 보상으로 암퇘지 5마리를 주지 않겠다고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양씨는 우리 목사님은 박사목사님이고, 또 여러곳에 집회를 다니는 유명한 분이므로 도와줄 것이다는 생각에 목사님을 찾아왔다. 그런데 김목사님은 고집불통 욕심장이 할아버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만약 양씨가 할아버지와 싸우게 되면 전도문이 닫히므로 양씨가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 말에 양씨는 자기 암퇘지 5마리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돼지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후 양씨가 이른 아침에 목사님을 또 찾아왔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달려오는 양씨에게 목사님은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옆집 영감님이 황소 7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황소 7마리가 양씨집 처마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씨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에 3개월전에 목사님 말씀에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갚아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황소 7마리를 잡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양씨는 암퇘지를 빼앗기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느냐? 그래도 양씨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는데, 저 영감은 예수님도 모르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 그리고 저 영감이 황소 7마리를 빼앗기고 나면 평생 하나님을 욕하고 살지 않겠느냐?
그 말에 양씨는 황소 7마리를 깨끗하게 돌려주었다. 그날 밤에 양씨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잘 잤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날도 밝기 전에 옆집 영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양씨앞에 무릎을 꿇고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용서를 구하면서 암퇘지 5마리를 돌려받았는데, 그 사이에 새끼를 낳아서 90마리를 돌려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후 동네사람들은 양씨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수는 양씨처럼 믿어야 해!
양씨는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훈장이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20여년 전 전남 영암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양씨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내 소유를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가는 자의 삶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