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꽃
2006-08-15 17:34:47
산엘 종종 다니면서 마주하는 들꽃들에 대한 애환이랄까 아니면 그에 얽힌 우리네 여인들의 설음까지 더하여 한스럽게 전해지는 얘기들을 듣다보면 가슴 저리게 슬픈 얘기가 있냐하면 저도 모르게 감추려고 애를 써도 입 꼬리에서 흘러나온 웃음을 감출 수가 없는 꽃 이름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잘 알려진 개불알꽃이라든가 별 차이도 없는데 조금 크다고 붙은 큰개불알꽃, 시어머니와 밭에 김을 매다가 갑자기 배가 뒤틀려 큰일을 보고 나서 뒤처리할 풀이 없어 망설임 끝에 어려운 시어머니를 불러 "어머니 저 밑 닦을 풀 좀 뜯어주세요.." 했더니 잔가시가 숭숭 박힌 풀잎을 뜯어 줘 할 수없이 닦고 일어난 후 그 풀독으로 인해 며느리가 죽었다는 설음이 담긴 며느리밑씻개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설에는 며느리밑씻개가 부인의 냉대하증과 자궁탈수, 그외 음부가려움증. 옴. 버짐. 습진. 태독 등 피부질환과 치질치료 등 부인병과 항문병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한창 나이의 며느리들이 쉽게 걸리는 병들이랍니다. 이때 며느리밑씻개의 잎을 끓인 물로 밑씻개하여 이들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해서 요즘 말로 질세정제로 밑씻개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또한 가을에 쓸쓸하고 애잔한 보라 빛으로 들녘을 수놓은 쑥부쟁이는 옛날 대장장이 딸이 쑥을 캐러 갔다가 사냥꾼에 쫓기던 노루를 구해주고, 함정에 빠져있는 사냥꾼을 구해 주었는데 목숨을 구해준 사냥꾼이 한양 박재상의 아들이라 하며 다음해 가을이 오면 다시 찾아 오마고 약속을 남기고 떠났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은 재상의 아들을 대장장이 딸은 매일 산에 올라 기도했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다 지쳐 죽은 그 자리에 피어났다는 꽃으로써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에서 "쑥불쟁이"라 하다가 "쑥부쟁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꽃이기도 합니다.
어느 해 시집온 새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쌀독에서 퍼준 곡식으로 밥을 지어서 시어머님과 서방님 밥그릇에 퍼드리고 나면 자기 먹을 건 한 톨도 없어 주걱에 붙어있던 밥알을 몇 개 띠어 먹다가 시어머니께 들켜 갖은 욕설을 듣다 보니 너무도 서러워 뒷산에 올라 목을메 자살을 했는데 며느리가 죽은 자리에 피어났다고 해서 며느리밥풀꽃이라고 한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복 입은 여인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꽃 이름의 홀아비바람꽃, 어느 탄산음료 광고에도 나오는 전혀 똥 같지 않고 예쁘기만 한 방가지똥, 배암차즈기 같은 꽃은 생김새가 뱀이 혀끝을 낼름거리고 있는 모양새이듯이 옛적 우리 들꽃들의 이름들은 거의 생김새에서 자연스럽게 그 이름들이 자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꽃 이름은 그 해학적인 이름에서 모두 한번쯤 생김새와 다시 비교해도 어찌하여 그런 이름이? 할 것입니다.
우리 옛 여인네들이 가장 속에 입는 속옷이 여름에는 모시로, 그 외 절기에는 무명으로 입는 다리속곳입니다. 그 위에 홑으로 만든 속속곳을 얇은 자미사로 만들어 외겹으로 입으면 그 하늘거린 자미사 안에 숨어있는 여인의 속살 빛 유혹은 아무리 박색일지언정 불끈 창안에서 이뤄지는 사랑 놀음은?^^ 상상에 맞기겠습니다. 그리고 속바지, 단속곳 너른바지, 여름에는 모시중등이 겨울에는 누비 속바지, 무지기치마, 대슘치마를 입는데 7겹의 속옷을 가춰 입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고쟁이 형태는 아니구요. 4~5겹의 바지 위에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입었지요.
하지만 이처럼 일곱 겹의 속옷을 가춰 입는다고 "아니 그러면 화장실은 어떻게 가남?" 속옷 벗길 때 밤새워 벗겨도 못 벗겨 옷 벗기다 남정네 잠들겠네.." 하실 분이 여기저기 눈이 휘둥그래지시는데 일곱 겹의 속옷은 한 겹의 속옷처럼 아주 가비얍고 활동하기 편하며 한군데도 조임이 없이 살갗에 닿는 부분까지도 상그럽게 해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곱 겹의 밑이 돌복의 풍차바지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그 어린아이 풍차바지처럼 밑이 트여서 앉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벌어져서 해결되는 아주 과학적인 재단이었지요.
가끔 비싼 잠옷 필요 없이 견으로 지은 속치마에 속적삼을 입고 남편 앞에 서보세요. 아마도 그 남편 유록에서 진록빛으로 물든 버들잎의 눈을 하고 게슴프리 두 눈이 풀리며 두 다리까지 풀려버리실 겝니다.
몇 해 전 친정 아버지 산소엘 오르다가 이 꽃을 마주하던 친정 어머니 갑자기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꽃"이 여기 피었네? 하십니다. 처음엔 잘못 들었으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시 여쭸지요. 엄마 저게 무슨 꽃이라고? 저게 은방울꽃인데.. 했더니 엄마는 은방울꽃이라는 이름은 모르시고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꽃"이라고 기나긴 이름을 일러 주셔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배를 움켜잡고 웃었지요.
근데 은방울꽃을 유심히 내려다보니 꽃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니라 진록색의 잎 모양새가 우리 고쟁이의 바지 가랑이 모양새와 아주 흡사합니다. 달빛이 꽃 창을 뚫고 들어와 방 한가운데로 꽃 창살 그림자를 데려다가 내려놓으며 사랑하는 시간을 만들어 줄 때 속고쟁이만 입고 누워서 두 다리를 달의 정기를 보듬을 양으로 달을 향해 벌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가운데 작은 종 모양으로 조롱조롱 맺혀 있는 꽃을 보노라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 옆으로 무성히 하늘 향해 쳐들고 있는 진유록의 잎들은 하나가 아니라 너무 무성하여 화냥년이 속고쟁이 입고 다리를 쳐든다고 치부되고 말았던 모양입니다.
왜 우리 조상님들은 그랬잖아요? 너무 이쁘거나 귀한 것에는 천한 이름을 부쳐서 악귀의 손길을 막는다는 속설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우리가 입는 옷들이 자연 그대로 형상과 너무 닮아 있으니.. 또한 옛적 속속곳들은 이미 박물관에만 존재하고 지금, 남아있는 진록빛의 은방울꽃 무성한 잎처럼 생긴 고쟁이 가랑이 하나라도 지켜야겠지요.
아~! 고쟁이 얘기 나온 김에 여름에 시원하게 입는 허리부분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재단하여 입는 살창고쟁이도 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