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팬텀싱어를 보는 이유
요즘 ‘팬텀싱어 시즌 4’를 보고 있다. 시즌 1부터 그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시즌 4는 하지 않나 궁금해하고 있던 차에 우슬초님의 글을 보고 급하게 챙겨 보기 시작했다.(우슬초님, 댕큐~!) 우슬초님이 말씀하신 피아니스트의 심사평도 눈여겨보고 있다. 내게 그분의 사인이 있는 앨범이 있다면 나도 그라시아님처럼 우슬초님에게 드렸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없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내가 팬텀싱어를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대중 가수 규현은 말을 잘 돌려서 부드럽게 심사평을 잘한다. 아마도 내가 배워야 할 점이다. 나는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고 아주 직설적으로 내뱉어 버리는 스타일이니까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심사위원은 음악 감독 김문정이다. 핵심을 콕 집어서 정확하게 말하는 그녀의 심사평을 좋아한다. 성악가 손혜수의 전문가의 소양이 넘치고 무거운 듯 하면서 세심한 평도 좋아한다. 아, 저런 점도 보았단 말이지. 대단해, 역시 대단해. 감탄하면서 보기 일쑤다. 한때 좋아했던 가수 윤종신의 평도 귀담아듣는다. 이번 시즌에 처음 참여한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심사평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규현의 부드러움과, 김문정의 정확함과 손혜수와 윤종신의 전문가적 소양이 모두 있었다.
내가 팬텀싱어를 보는 두 번째 이유는 거기에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그 프로그램에 나오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물론 나를 감동시키는 드라마다. 그보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 가슴으로 노래하는 이들이 펼치는 드라마에 끌린다. 그들의 진정성 있는 노래와 삶에. 이미 득음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화려한 스킬을 최대한 동원해서 부르는 정석 같은 노래도 좋지만, 역시 진정성 있는 노래가 최고다. 가슴은 설레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고, 눈에는 따뜻한 물이 차오른다.
시즌 1에서는 이벼리의 노래가 그랬다. 이벼리는 연극배우였다. 성악가들, 유명한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유독 그의 노래가 나를 울렸다. 그가 진심으로 노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음악 공부나 스킬이 없이도 그는 사람을 감동시킬 줄 알았다. 시즌 2에서는 석유화학회사 연구원이었던 강형호의 노래가 그랬다. 그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팬텀과 크리스틴, 즉 남자와 여자의 이중창을 혼자 해냈을 때 나는 온몸의 털이 모두 일어나는 경험을 했다.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특히 노래할 때의 그의 눈빛과 제스처는 그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 보여 주었다.
세 번째 이유는 음악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고, 오페라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행하는 트롯트 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다. 트롯트에 감명받은 적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밴드 국가스텐’의 보컬 하현우가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을 때, 나는 그 노래를 재발견했다(그런데 하현우는 다른 가수의 노래들을 모두 재발견하게 노래한다.). 하지만, 하현우 버전을 좋아하는 것뿐이다. 심수봉, 남진, 나훈아. 다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거 알겠는데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팬텀싱어가 좋다. 클래식 음악의 향연 같은 프로그램이니까. 이번 시즌 4에서는 카운터테너 이동규를 찍었다. 남자 성부 중에서 테너와 카운터테너를 좋아하는데, 이동규 같은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산 세월이 아까울 정도다. 그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를 부르는 것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노래도 노래지만, 연출력이 대단했다. 연극을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나는 어떤 장르에서도 연출을 본다.
그런 면에서 노래도 노래지만,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참가자를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 시즌 1에서는 뮤지컬 배우 고훈정이 나를 기쁘게 했고, 시즌 2에서는 조민규가 그랬다. 조민규가 아니었으면 고우림이 김연아와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개인적 견해인데, 왜냐하면 팬텀싱어 시즌 2에 출연할 당시 고우림은 서울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음색과 톤은 좋았지만, 아직 불안정했고 원석으로만 그칠 수 있었다. 그것을 끌어올린 사람이 나는 조민규였다고 생각한다(물론 단편적이지만). 조민규는 고우림과 한 팀(포레스텔라)을 이루어서 시즌 2에서 우승했다.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렸을 때, 포레스텔라가 초청받아서 노래했고, 그때 김연아와 고우림이 만났다. 둘은 교제를 시작했고, 국민 부부가 되었다.(이건 나만의 소설일 수 있다^^)
이번 시즌 4는 아직 하는 중이라 프로듀싱 능력을 가진 이가 얼마나 있는지 더 지켜봐야 한다. 음악 부분에서 이동규 말고 찍은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국악인 김수인이다. 시즌 3에서 고영열이라는 국악인이 나온 적이 있다. 딸은 그에게 열광했지만, 개인적으로 고영열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번 김수인은 다르다. 나는 그에게 푹 빠졌다. 그가 부른 ‘쑥대머리’와 찰리 푸스의 ‘Dangerously’를 들은 딸도 바로 고영열을 잊었다(저런~~). 그 정도다.
한도 끝도 없이 얘기할 수 있지만, 그만 쓰겠다. 너무 긴 글은 나도 질색이다(이미 충분히 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요즘 ‘팬텀싱어’ 덕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배운다. 참가자들의 꿈을 향한 자세로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그들에게서. 그런 사람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늘 나의 화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떻게 살까? 나는 대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팬텀싱어’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첫댓글 저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유심히 듣게 됩니다. 연구자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평가를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일까요
팬텀싱어를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