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석가탄신일로 쉬는 날이라 평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저녁 늦게서야 대음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길을 운전하여 11시가 넘어서 대음집 마당에 도착하니 온 주위가 새까맣게 어두웠다.
마당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시내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장면이다.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남기고 싶었으나 작은 카메라에 그 큰 밤하늘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어느 사진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가장 예쁘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곧 우리에게 쏟아질 것만 같다.
아이들과 밤하늘의 별을 한참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짐을 정리하고 보일러를 켜고 TV를 켰다.
대음집에 와서 밤늦게까지 TV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이자 힐링이다.
대부분 예능 프로를 보는데, 모두 모여 하하호호 같이 웃고 같이 즐거워하는 이 시간이 참으로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TV 화면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평소 주중에는 TV를 거의 보지 않았기에 주말에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다.
다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 채 TV를 보다가 피곤해 잠이 든다.
이상하게도 대음집에서 잠을 자면 꿀잠을 잔다.
터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층고가 낮아 아늑해서 그런지 밤에 한번을 깨지 않고 딥슬립을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라도 매주 대음집을 찾는다.
대음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신 부모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여기 오면 잠이 잘 오고 푹 주무신다고...
주위에 불면증으로 시달리시는 분이 있다면 여기 오셔서 한번 주무셔 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해 드린다.
다음 날 아침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난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라고 해도 못 자는데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나 빼고 다들 꿈쩍도 안 하고 그리 잘 잘 수 있을꼬...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니 햇살에 눈이 부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것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핸드폰과 연결하여 음악을 틀고 마당 한쪽에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
한참을 그렇게 멍때리며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저 멀리 바라보는 지리산의 모습은 언제봐도 새롭고 흥미롭다.
음악 소리 때문인지 하나둘씩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일어나자 마다 배고프단다.
풋~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니 배고플만도.
오늘 아침 메뉴는 김치찌개다.
장모님이 주신 김장 김치와 스팸과 어묵을 넣고, 김치찌개인지 부대찌개인지 모를 찌개를 끓인다.
오늘 아침 아니 아점은 마당에서 먹기로 한다.
아이들은 반찬과 그릇을 나르고 나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테이블에 파라솔을 친다.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찌개 하나뿐인데도 밖에서 먹어서 그런지 참으로 근사하다.
뽀딱지게 아점을 든든히 먹고 아이들은 들어가 책을 보고 아내와 나는 일거리를 시작한다.
대음집에 오면 어른도 아이도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집에 있던 책들을 상당히 많이 가져다 놓았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여기에 작은 책방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다.
퇴직 후 나의 작은 소망이자 꿈이다.
하여 집에 있는 많은 책 대부분을 이쪽으로 서서히 옮기고 있다.
책을 한 권 빼 들고 어떤 날은 마당의 나무 밑에서 어떤 날은 냇가에서 독서하는 날을 꿈꿔본다.
대음집에 오면 나는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아니 없다가도 생긴다.
오늘의 할 일은 지인에게 얻어온 씨앗 심기와 아버지가 명하신 나무에 약을 치는 것이다.
마당 한쪽에 예쁜 해바라기가 피기를 기대하며 땅을 파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씨를 세 알씩 심는다.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나거라. 뜨거운 여름날이 되면 그때 만나자.”
지난번에 아버지가 사다 주신 여러 약들을(4-5가지) 물통에 잘 섞어 마당의 나무와 밭에 있는 나무들에 살포한다.
진드기와 병충해 예방이 목적이다.
처음 해보는 건데 아버지와 통화하며 설명과 지시를 듣고 그대로 하니 어렵지 않았다.
들통을 짊어지고 마당의 나무와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심어진 나무들에 정성스레 약을 친다.
위의 사진을 봐서 알겠지만, 자세가 참으로 어설프다. ㅋㅋㅋ
완전 초보다.
이러면서 점점 농부로 변해가는 것일까?
세상에, 심기만 하면 저절로 건강하게 자라는 나무는 없을까?
그런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없겠지?
자주 찾아가서 관심을 두고 필요한 영양분도 공급해 주고 약도 쳐줘야 건강하게 자라겠지.
누가 그랬던가.
농부의 발걸음 소리에 작물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자주자주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러니 대음집에 오면 이리도 할 일이 많아진다.
오늘은 또 유독 햇살이 이렇게 따가운 거냐?
덥다.
“오후에 뭐할까?” 이야기하다가 아내의 제안으로 구례 읍내를 나가기로 한다.
지난번 아내와 둘이 방문한 구례 읍내가 좋아 이번에는 아이들을 대동하기로 한다.
빠른 큰길 말고 작은 국도를 타고 굽이굽이 구만리 저수지 길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한다.
곳곳에 예쁜 꽃들과 푸르른 나무들이 우리를 반기는 것만 같다.
시골길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힐링의 시간이 된다.
어느새 구례읍에 들어선다.
구례 유명 빵집이 보인다.
평소에는 길까지 줄을 서서 감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아무리 맛있어도 줄서서 먹는 거 너무 힘들다. ㅠ,.ㅠ) 오늘은 줄이 없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빵집으로 들어가자고 신호를 보낸다.
ㅋㅋㅋ 드디어 오늘은 저 유명 빵을 먹어볼 수 있는 건가?
오~ 오늘 운이 좋다.
들어갔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줄도 서지 않는다.
간단하게 대표적인 빵 몇 개만 사서 테이블에 앉는다.
구례에서 직접 수확한 우리밀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비싸서인지 빵이 참 맛있다.
아마 후자일 듯싶다. ㅋㅋㅋ
아이들은 구례읍의 여기저기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평소에 보던 풍경이 아니라 그런지 여기저기를 더 살피고 바라보게 된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곳을 가면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다른 환경을 만나면 뭐든 새롭고 더 흥미롭다.
어느 여행가가 그랬던가.
“현재 사는 곳은 마치 여행 온 곳처럼 지내고, 여행을 떠난 곳은 마치 현재 사는 곳인 것처럼 지내라고. 그러면 살아가는 게 여행이 되고 여행이 살아가는 게 된다고. 그렇게 살고 여행하라고.”
작은 골목길을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 예쁜 카페도 보이고 맛집일 것만 같은 음식점도 보인다.
어른도 아이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다 많은 사람이 줄 서 있는 곳을 또 발견한다.
구례읍 음식점은 다 맛집인가 보오.
꽈배기를 막 튀겨 파는 집이다.
안에 자리가 있지만 다들 길거리에 서서 입에 꽈배기를 하나씩 물고 먹는다.
우리도 서서 먹기로...
이상하게도 길거리 음식은 서서 먹는 게 더 맛있다.
예전 학창 시절 학교 앞 분식점이 기억난다.
하굣길 그 앞을 지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서서 떡볶이를 매일 먹어댔었지.
아까 분명 빵집에서 빵을 먹었는데도 언제 소화가 다 됐는지 아니면 주종이 달라서 그런지(구운빵과 튀긴빵은 좀 다르긴 하다.) 주문하기 바쁘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입에 물고(난 튀긴 팥빵을 아내는 꽈배기를 딸은 치즈 핫도그를 아들은 콘옥수수 고로캐를...) 다시 읍내 거리를 활보한다.
다들 반바지에 쓰레빠에 입에 빵 하나씩 물고 지나가는 꼴을 아는 사람이 보며 웃겠다.
하지만 구례 읍내에는 주거지가 아니어서 아는 사람도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
다행이다.
우숩다.
이게 뭐라고.
이리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까.
행복이 뭐 별건 아닌 것 같다.
가족이 함께 있고 입에 따뜻한 빵 하나 물고 있으면 그게 행복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