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알아갈 때에만 우리는 공동체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제가 꽤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선배교사들에게 사랑받을 때에는 잘 몰랐습니다. 참 실수가 많았는데, 참 부족한 교사였는데, 그래도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선생님들이 곁에 있어서였습니다. 종종 그때가 그립습니다. 선배선생님들이 계셔서 마음 놓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잘 해내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연약함을 알기에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알 때, 좋은 공동체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교사의 연약함은 아름다움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한 송이만 피었을 때와 많은 꽃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낼 때의 장면은 전혀 다릅니다. 꽃들은 옮겨 다닐 수 없지만,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타인의 위대함을 깨달을 때 함께 모여 공동체가 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곧 결핍은 부족함이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조선어학회와 그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을 다룬 영화 '말모이'에서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수많은 우리말들은 뛰어난 몇몇 학자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노력했기에 모아지고 남겨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고향이라고 부르는 몇몇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제가 연약함을 느낄 때, 좋은 분들이 만든 공동체에 함께 했고, 또 함께 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받은 그 사랑과 섬김이 결국은 저도 누군가를 섬기는 귀한 일들을 감당하는 힘이 됩니다. 마치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자녀들에게 전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학교와 교무실이라는 공동체도 있겠지만, 계속 이어지는 그런 공동체도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좋은 공동체는 안전하다는 성격을 가집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나쁜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그 무엇을 하든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좋은 공동체는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만듭니다. 훌륭한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헌신'과 '안전지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비전과 사명을 만들고, 그것에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거죠. 그것을 우리는 비합리적인 헌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공동체는 살아남습니다.
제가 만난 공동체는 그렇게 저의 교직생활의 시간만큼 버틴 공동체들입니다. 제가 살아온 날보다 더 오래된 공동체도 있고요.
리플러스 박재연 소장은 강의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행복해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그 속이야기를 해도 평가나 비판 받지 않는 안전지대가 있는, 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한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공동체는 시작됩니다. 나눔이 즐겁고 함께 있는 시간이 재미있다'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공동체를 세우게 됩니다.
<잡담이 능력이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건과 관련된 이야기만으로는 그 상황이 끝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버린다. 절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은 도모할 수 없다. 그런 콘크리트 같은 분위기 틈에서도 돋아나는 잡초 같은 잡담이야말로, 깊숙한 곳에서부터 인간관계를 이어준다."
우리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교사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잡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가장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게 하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많은 노력 중에서는 가장 비효율이면서도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