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필
김 희 선 |
대표저서 1 | 《잠깐!》 |
대표저서 2 | 《고마운 역마살》 |
대표저서 3 | 《마음이 피는 웃음꽃》 |
대표저서 4 | 《가을밤에 부르는 노래》 |
대표저서 5 | 《은빛날개 역사수필》 |
출생연도 | |
별세년도 | 2025 |
출생지 | |
수상경력 | 제39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2018년) 종로문학상 수상( 2017) 연암문학예술상 수상 (2016년) 충헌문학상 수상(2001년) 송현수필문학상 |
직위직책 | 한국수필작가회 16대 회장역임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한국문학 진흥재단 이사 한국문인협회 분과위원 펜클럽 분과위원 사임당문학(시문회)회장 역임 |
◈ 대표작
여보, 나무가 왜 저래
시간이 나면 산에 오르고 싶다. 자연만큼 우리의 심신을 밝고 건강하게 해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기에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면 하늘이 손끝에 닿을 듯 하다. 그 신선한 공기의 청량감 앞에서 가슴이 탁 트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건너편 산을 향해 메아리를 보낸다.
내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대답이긴 하지만, 언제나 신비한 속삭임을 기대하며 메아리를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 마음의 빗장을 스스로 열리게 한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온 이웃에게 물었다. 외국에서도 가로수를 저토록 무모하게 자르느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여인이 이상하게 보았던 것이 가로수였다고 한다. "여보, 나무가 왜 저래?" 하고 물으니 남편의 대답은 "글쎄, 한국에 오니 별 이상한 나무도 다 있군." 마치 두 팔을 잘린 듯한 가로수를 보고 공포감마저 느꼈다고 한다.
오존층 파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요즈음, 자동차 배기가스가 그대로 공중으로 올라가기 전에 나뭇잎 사이에서 정화작용을 하게 된다면 서울의 공기는 조금은 더 맑아질 것이다.
태풍이 불게 되면 나무가 쓰러질까 봐, 간판이 가려진다 해서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무뿌리가 깊이 있게 자랄 수 있도록 공해에 찌든 흙 살짝 걷어내고 새 흙과 비료도 넣어주고 헝클어진 머리 고운 빗으로 빗어주듯이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가로수 밑동에 받쳐준 철판은 몇 년째 방치해 두어서인지 나무 밑동이 쭈그러들 듯이 힘들게 자라고 있다.
우리 동네의 가로수도 벌목대상이었다. 자동톱으로 장비를 갖추고 나뭇가지를 마구 자르던 날, 나의 강력한 반대로 중지되었다. 태풍이 불면 나무가 쓰러질까봐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풍이 부는 날, 나는 두 팔 벌리고 길가에 서서 사람들을 지나가지 못하게 막을 거라고 말했다. 내 얘기를 들어준 구청직원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언제 다시 잘릴지 모르니 늘 불안하다.
한번 자르고 나면 원래의 모습은 찾기 힘들고 기형적인 모양의 나무가 된다. 나무의 모양은 몇십 년의 연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톱으로 자른다 해서 준수한 모양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날아다니는 새는 나뭇가지 어디쯤 집을 짓고 있는가 살펴보면 전지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새가 깃들 수 있도록 나뭇가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전지를 하는 것도 나무가 다 자라기 전에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이다. 다 자란 나무는 자르지 말아야 한다. 미적 감각도 없는 어설픈 지식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과 꼭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고 거듭되어 계속하고 있으니….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펼치던 딸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것도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기쁨의 소리였다. 신문을 들여다보니 거기엔 '서울역 앞 광장에 푸른 숲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있었다. 이 신문기사는 2년 전에 발표했던 내가 쓴 수필의 제목과 같았다. 그때는 미지수의 희망사항이었지만 머지않아 푸른 숲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면 마치 내 글이 전달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온다. 이렇게 서울역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 기차역마다 푸른 숲이 들어서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에 대한 내 생각이 참으로 황당하고 어리석은 상상일는지도 모른다는 염려의 마음으로 쓴 글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나무란 본래 10년이 넘어야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가지의 모양도 자리를 잡는 것이다.
몇 해 전 예천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그리고 세미나가 끝나면 가까운 곳에 관광을 겸하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났던 소나무의 자태는 참으로 놀라웠다. 검푸른 소나무의 잎새가 우리를 압도하며 가지를 뻗어오고 동서남북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돌기둥이 받치고 있었으며 나무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돌아볼 정도로 큰 나무였다. 참으로 싱싱하고 우람한 소나무였는데 주민등록번호까지 있다고 한다. 마음껏 크게 자라고 있는 건장하고 늠름한 소나무였다.
요즈음 우리는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건물을 짓거나 아파트를 지을 때 제일 먼저 나무부터 자르고 난 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를 만든 다음에야 집을 짓는다. 건물을 짓기 전에 나무를 가꾸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무를 한 그루도 남김없이 모두 없애고 난 뒤에야 무슨 일을 시작한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보려면 삼각지 근처에 가면 알아볼 수가 있다.
외국인은 나무들이 클 수 있을 만큼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그대로 두었다. 물론 예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해도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존중하는 듯 푸른 숲이 빼곡하게 우거져 있다. 그러나 그 옆은 용도가 바뀔 때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벌판을 만든 다음에야 건물을 짓는다. 건물만 우뚝 서고 나무는 작다. 이런 시행착오는 언제쯤이나 시정이 되는 것인지. 나무의 수명을 너무 쉽게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건물을 짓기 전에 나무의 생태를 존중하는 분이 있으니 경희대학교 총장이셨던 조영식 박사이다. 학창시절에 교내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버찌를 따느라 나뭇가지에 손을 뻗치고 있을 때, 총장님의 차가 잠깐 멈추는 듯 하다가 지나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대학생인 우리들에게 인격을 존중해 주시느라 주의도 주지 않고 그렇게 지나치신 것에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또한 교내에 건물을 짓기 전부터 오래 전에 미리 나무부터 심었고 가꾸던 분이었기에 오늘까지도 아름다운 교내경치가 일품이다. 외국에 갔을 때 그 곳 대학 교수분들이 내 모교를 잘 안다고 했다. 경치가 아름다운 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건물이 들어선 자리마다 푸른 숲이 사라졌지만 내가 다니던 학창시절엔 건물보다는 나무가 훨씬 더 많았다. 화사한 꽃길을 따라 강의실을 옮겨 다녔고 사계절 따라 갖가지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나고 고황산의 푸른 정기를 받아 싱싱한 나무들이 마음껏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과 기억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환경을 느껴보았기 때문일까, 나무를 마구 자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상한다. 오늘부터라도 나무를 이리저리 옮겨 심는 일을 삼가야 하겠고, 볼품없이 가지를 자르는 일은 더욱 삼가하면 좋겠다. 우리 눈에는 뭉턱뭉턱 잘라버려 볼품없이 서 있는 나무만 보아와서 그렇게 자르는 것이 올바른 나무사랑인 줄 잘못 알고 있다. 뭉턱뭉턱 자른 곳에서 잎은 돋아나지만 나뭇가지의 모양은 이미 사라진다.
나무는 자기 나름대로의 멋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자면 소나무는 전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소나무는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전지는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 어렵던 시절에 아이들 머리 자르듯 까까머리처럼 그렇게 자르는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문화수준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옛 조상들은 나무를 존중했다. 우리 나라는 땅은 좁아도 문화수준은 높았다. 내 나라 내 땅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며 나무를 무모하게 자르지 않았다. 나무를 보호하면서 나무에 대해 당산제까지 지냈다.
우리의 옛 풍습을 생각해서라도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는 물론 모든 나무를 존중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