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코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윤행원
어디를 가더라도 흥미와 관심을 가지면 모두가 볼거리가 된다. 특히 러시아의 모스코바나 제2의 도시 상트페트르부르크는 구경거리가 많다. 러시아는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 안톤 체홉, 푸시킨, 고골, 도스토엪스키...같은 대문호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나라다.
한국문협에서 주최하는 해외문학심포지엄을 모스코바 한국문화원에서 마치고 4일간은 모스코바에서 체류를 하고 2일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문화유적을 찾게 된다.
6월 중순의 모스코바 기온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때로는 조금 춥기도 하지만 한낮 햇빛은 강렬하고 열기가 대단하다. 아침저녁 기온차이가 심한 편이다. 모스코바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영웅의 도시라 일컫는 툴라를 지나 14km 조금 가면 톨스토이 장원이 나타난다.
그날은 유달리 햇빛이 쨍쨍했다. 러시아의 관광버스는 매일 바뀌는데 하필 이날은 시원찮은 냉방장치와 창문 가리개도 없는 허름한 버스를 타게 된다. 버스 안이 하도 더워 왼쪽에 앉은 사람들은 내려쬐는 따가운 햇볕에 견디다 못해 차 안에서 우산과 양산으로, 어떤 사람은 천으로 만든 보자기를 창문에 붙이는 등 더위를 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면서 어느덧 톨스토이 장원에 도착했다.
톨스토이가의 문장(紋章)이 버티고 있는 정문을 지나니 메기와 붕어가 많을 것 같은 수초가 듬성하고 흐린 물이 가득한 호수가 있고 그 옆으로 마차가 다니는 길 양쪽에 쭉 뻗은 자작나무 숲이 일렬로 길게 늘어져 있다. 마치 사열을 하는 군대 같아서 우람한 장관이 구경꺼리다. 거대한 장원 울창한 숲과 잘 다듬어진 밭에는 농작물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길 중간쯤 가니 60대 가까운 러시아 여자안내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톨스토이 장원을 설명하느라 줄곧 쑤알라 거린다. 우리 일행 35명은 숫자가 많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우리를 담당한 한국인 가이드는 러시아 말이 부족한지 제대로 통역을 못한다.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옛날 농노들이 일을 하던 집과 마구간이며 사료저장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숲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 옆으로 펼쳐진 밭이며 농기구 보관소가 있다.
여기저기 세운 집들 한쪽에 있는박물관엔 톨스토이가 기거하고 글을 쓴 서재가 있고 많은 유품이 1층과 2층에 가득 진열되어 있다. 1828년생인 톨스토이는 프랑스와의 전투에 청년장교로 참전을 했고 여기서 주로 그의 명저를 저술 했다. 그 유명한 부활,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등 최고의 걸작이 탄생한 곳이다. 우리는 차례대로 줄을 서서 톨스토이의 유품과 가족사진을 천천히 그리고 많은 생각과 함께 감명 깊게 보고 나왔다.
톨스토이 묘가 있다는 한글로 쓴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숲속 오솔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얼마큼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솔길 옆에 약 20여 평쯤 되는 잔디밭 가운데 실물 관(棺) 크기의 풀로 덮인 입체 직사각형 무덤 한 기가 있다. 무덤모양 치고는 꽤 이색적이다.
추종자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톨스토이의 무덤치곤 기대 밖으로 소박하고 초라하다. 화려한 묘비명이나 큰 무덤을 예상하고 갔으나 기대가 어긋났지만 그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세계 문학도의 가슴을 부풀게 했던 대문호이자 평화주의 사상가인 톨스토이와의 해후였다.
구도자처럼 치열하게 살다간 톨스토이, 이 곳에서 태어나서 대부분을 보내고 드디어 이 곳에 묻힌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그의 무덤 주위에 고운 잔디라도 있지만 옛날 사진을 보니 자작나무 사이에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위에 덩그러니 풀이 무성한 무덤만 있었다. 이 곳은 말을 타고 산책을 즐기던 추억의 장소라고 한다. 톨스토이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막내딸 사샤에게 이 곳을 자신의 묏자리로 정하고 미리 당부를 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다. 한때는 레닌그라드라고 불리기도 했다. 모스코바가 러시아 전통적 특성이 있는 도시라고 한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화적 사상적 기반이 다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야심적으로 건설한 인공의 도시다.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차갑고 웅장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그러나 인구 500만 명의 매력적인 도시다. 늪지대를 개발하여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한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 유명한 예술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 도시는 1713년에 모스코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200여년간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에 수도는 다시 모스코바로 바뀌었다. 이곳이 레닌의 고향이자 사회주의 혁명의 불을 당 긴 곳이다.
겨울궁전을 개조해서 만든 에르미타쥐 박물관, 나는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이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진열된 세계적인 명품이 수두룩하다. 다 보려면 몇 날이 걸려도 모자란다. 고갱, 마티스, 반 고흐, 피카소...등 세계 유수의 대가들의 작품이 가득 하지만 특히 나의 눈에 띄는 건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 온 탕자'였다.
전시된 그 많은 보물 중에서도 렘브란트의 큰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게 된다. 아버지가 나눠준 재산을 허랑방탕 다 써 버리고 벗겨진 머리에 다 떨어진 신발과 맨발의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오랜 방황과 온갖 간난을 겪은 끝에 돌아 온 아들을 꾸짖지 않고 아버지가 따뜻하게 맞아주는 장면이다. 산 같이 높고 바다같이 넓은 아버지의 자애로운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림이다. 그렇게 수많은 미술품 중에서 커다랗게 걸려있는 이 그림이 유달리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름다운 도시다. 거리를 걷다가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과거 독재자 스탈린의 잘못된 이데올로기(Ideologies)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백야의 도시 100년을 생각하고 만든 도시, 예술작품이 가득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시 찾을 것이다.
첫댓글 우물안 개구리처럼 인도네시아 일본여행이 전부인데 구경 잘했습니다.
언젠가는 따라나설 때가 오겠지요. 코로나도 다 극복하고 더 멋지게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석계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왕성한 필력을 유지하시니 반갑습니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저로서는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가 됩니다.
건강 늘 조심하시고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청석 선생님, 고맙습니다.
적조했습니다. 모처럼만에 들렀더니 반가운 윤형의 글이 있네요. 저도 다녀온 곳이라 여기에 다시 실어놓습니다.